그때 캐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리고 푸짐한 저녁상을 보고 씩씩거리며 하영 앞으로 다가와 투덜대기 시작했다.“G, 지금 나만 쏙 빼놓고 맛있는 걸 먹는 거야?”하영은 곁에 있는 의자를 빼주며 웃었다.“난 오늘 집에 안 오는 줄 알았지.”캐리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입을 열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여자야! 나만 버려두고 혼자서 나가 놀더니, 돌아와서 어떻게 한 마디도 없을 수 있어? 회사랑 공장,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캐리가 불만을 다 토로하기 전에 지영이 얼른 반찬을 그의 입에 밀어 넣자, 캐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고는 얼른 씹어서 삼켰다.지난번에 목을 졸렸던 사실을 잊지 못했던 캐리는 지금도 지영을 대하는 게 조금 꺼려졌다.캐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고마워요, 지영 누나.”딱- 소리와 함께 하영이 젓가락으로 캐리의 머리를 때렸다.“이분은 정유준 씨 어머님이셔.”“뭐?”캐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충격받은 얼굴로 되물었다.“그 자식 어머니라고?”캐리의 목청에 하영은 귀를 막았다.“소리 그만 지르고 앉아서 얘기해.”그제야 캐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G,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 어쩐지, 그래서 애들의 호칭이 달라진 거였어.”“호칭이 바뀌었는데도 이상한 걸 못 느꼈어?”하영이 어이없는 눈빛으로 캐리를 쳐다보자, 그는 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그냥 즉흥적인 줄 알았지. 정유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알아.”하영이 옥수수차를 마시며 대답했다.“이모가 유준 씨를 따라 가는 걸 원치 않으시거든.”“그래? 친엄마조차 따라가지 않으려는 걸 보면 확실히 나쁜 놈이네.”“멋대로 판단하지 마, 네가 모르는 사실도 있으니까…….”“맞아요!”하영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세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쁜 아빠 욕하지 마세요!”지영을 제외하고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세희를 쳐다보자, 세희는 닭 날개를 한입 베어 물고는 멍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지영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눈가에 실망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그렇게 오래 걸려? 세희랑 애들이 기뻐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하영은 지영의 손을 잡아끌며 입을 열었다.“네, 오래 걸려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자러 가는 게 어때요?”내일엔 지영을 데리고 함께 회사로 출근해야 하므로, 너무 늦게 잘 수 없었다.지영이 간절한 눈빛으로 하영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하영 씨, 구연희 씨가 없으니 혼자 자기 싫어.”그러자 하영이 웃었다.“그럼 같이 자요.”그제야 지영은 활짝 웃으며 하영의 손을 꼭 잡았다.“그래, 이제 방으로 올라가자!”저녁 10시, 카페.양다인은 선글라스를 끼고 기자와 룸에 앉아 있었는데, 느긋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뭐, 대충 이 정도면 되죠?”기자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양다인 씨, 제가 다시 요약해 볼게요. 그러니까 지금 MK 대표인 정유준 씨 어머니가 술집 여자였는데 정 회장님과 결혼 후에 큰 아드님을 유혹했고, 그것 때문에 큰 아드님이 울분을 참으면서 수십 년을 해외에서 지냈다는 말이죠?”양다인은 불쾌한 표정으로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제일 중요한 사실이 빠졌잖아요.”그러자 기자는 웃으며 답했다.“양다인 씨, 일단 급해하지 마세요. 양다인 씨가 TYC 대표를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걸 알지만 그건 별개의 일이잖아요. 저희도 모욕죄를 감수하면서 이 일을 하거든요.”그러자 양다인은 피식 소리 내 웃었다.“돈이 필요하단 얘기네요.”“조금 듣기 싫은 얘기겠지만, 사실이니까요.”“얼마가 필요한지 얘기해 봐요. 언제 발표할 거죠?”“늦어서 다음 주 전에 기사로 내보낼게요.”“나는 기다리는 거 딱 질색이니까 빠를수록 좋아요. 2천만 원이면 충분해요?”“물론입니다!”돈을 받은 기자는 양다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양다인 씨, 앞으로 잘해봅시다!”양다인은 불쾌한 눈빛으로 힐끗 쳐다보고는 가방을 챙기더니 그대로 자리를 떴다.병실 안.유준은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손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그럼 유준 씨가 와서 가족들을 돌볼래요?]문자를 보낸 뒤 하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씻었다.금방 양치질을 마쳤을 때 유준한테서 또 문자가 왔다.[어제 보낸 문자는 못 본 걸로 해줘.]하영은 문자를 보고 순간적으로 수긍하고 답장하고 싶지 않았는데, 입력 중이라고 뜨는 표시에 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져서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소식이 없었다.그러다 몇 분 뒤에야 문자를 받았다.[오늘 바빠?][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유준은 하영의 답장에 표정이 어두워졌다.‘눈치가 왜 이렇게 없는 거야?’유준은 밀려오는 짜증을 꾹 참으며 답장을 보냈다.[병원엔 안 와?]하영은 세면대에 기댄 채 언짢은 표정으로 답장을 보냈다.[병원에 가서 또 유준 씨랑 싸울까요? 말도 안 되는 얘기나 들으면서?][내가 누구 때문에 다쳤는지 잊었어?][저 때문에 다친 건 맞아요. 그렇지만 유준 씨가 자꾸 사람 속을 긁는 말만 골라 하니까 가기 싫어요. 당신이랑 싸울 만큼 한가하지 않거든요.][조용히 있을게!]하영은 유준이 그런 식으로 솔직하게 대답할 줄은 몰랐기에 조금 놀라웠다.사실 오늘 유준을 보러 병원에 가려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유준이 보낸 문자를 보고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괜히 심기를 건드리고 싶었다.그런데 유준이 먼저 한발 물러서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맞서고 싶지 않았다.[조금 늦게 갈게요.]하영의 문자에 그제야 유준의 굳은 얼굴이 점점 펴지기 시작했고, 허시원이 가져온 죽을 받아 느긋하게 먹기 시작했다.8시.하영은 지영과 함께 애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줬다.애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것은 처음이었던 지영은 애들이 차에서 내리자, 그녀도 차에서 내려 애들을 따라가자 경비원이 그녀를 막았다.세희는 그 모습을 보고 얼른 입을 열었다.“할머니, 여기까지 데려다주면 돼요.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어요.”지영은 머리를 끄덕이고 애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래. 들어가는 걸 볼게.”세 녀석은 아주 협조적으로
하영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수술 방안을 서류로 작성한 뒤 저한테 연락해 주세요. 확신이 서면 그때 수술을 진행해 주세요.”의사는 하영이 고집을 내려놓자 기쁜 표정을 지었다.“정말 잘됐네요!”지영은 병실 침대 옆에 서서 임씨 아주머니를 가리키며 물었다.“하영 씨 어머님이야?”“아뇨. 예전에 저를 보살펴 주던 임씨 아주머니에요.”하영은 침대 곁에 앉아 안타까운 눈빛으로 임씨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거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죠. 저의 친엄마랑 양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거든요.”5년이나 흘렀지만 하영은 이곳에 돌아온 뒤로 친어머니 무덤을 찾아갈 면목이 없었다.지금까지도 살인범을 돌아다니게 한다고 혹시라도 엄마가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나무랄까 봐 겁이 났다.아직은 능력 부족으로 결국 그들의 죽음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친모의 묘소에 찾아갈 수 없었다.만약 진상을 밝히고 진범을 잡게 된다면 반드시 엄마의 묘소에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그녀의 영혼을 달랠 것이다.하영의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게 된 지영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아줬다.하영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지영은 하영의 차가운 볼을 매만져 주며 미소를 지었다.“하영 씨, 울지 마. 비록 다들 안 계시지만 하영 씨 곁엔 내가 있잖아. 내가 하영 씨 엄마가 돼줄 수도 있고, 하영 씨를 딸처럼 대해줄게.”지영의 미소는 따뜻하고 순수했다.하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참지 못하고 지영의 품에 안겼고, 지영은 하영의 긴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하영 씨, 울지 마…….”하영은 지금 이 순간 지영의 마음이 누구보다 맑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오전 11시.하영은 지영과 함께 만두를 사서 VIP 병실로 향했다.유준은 침대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하영과 지영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어머니……,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지영은 유준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뒤,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그러자 유준의 눈가에 쓸쓸
하영은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지영은 이미 하영을 밀치고 유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지영은 눈을 부릅뜨고 유준을 침대에 누른 채 소리 질렀다.“너구나! 바로 너야!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나를 망쳤어! 죽어, 죽어버려!”하영은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손에 든 만두를 제쳐두고 지영을 말렸다.“이모! 이 사람은 정유준 씨잖아요! 얼른 손 놔요!”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유준의 얼굴은 산소부족으로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그는 상처받은 눈으로 겨우 한 마디를 짜냈다.“건드리지 마!”하영은 유준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지영을 잡아끌었다.“이모, 진정 좀 하세요. 유준 씨 갈비뼈가 부러져서 그렇게 다리로 누르면 안 돼요!”하영의 말에도 아무 반응 없는 지영의 모습에 하영은 호출 벨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빠르게 간호사들이 도착했고, 병실 안의 상황에 깜짝 놀라더니 의사를 부르기 시작했다.의사가 진정제를 놓아주자 지영의 힘이 점차 풀리더니 그대로 유준의 곁에 쓰러졌고, 서둘러 정유준의 몸 상태를 살피고 있었는데 유준이 싸늘하고 딱딱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다들 나가!”“알겠습니다!”의사는 말을 마치고 급히 병실을 나가 문을 닫았고, 동시에 하영은 유준의 눈가에서 흐르던 눈물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빛을 잃은 듯 어둡게 변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영의 가슴은 무언가에 막혀버린 듯 숨을 쉴 수 없었다.하영의 앞에서 늘 강하고 차가운 모습만 보여주던 유준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엔 누구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내 꼴이 많이 우습지?”유준이 잠긴 목소리로 피식 웃으며 묻자, 하영은 입술을 꾹 깨물며 대답했다.“아뇨.”“아니라고? 자기 아들 목을 조르며 죽이려고 하는 어머니를 본 적 있어?”하영은 유준을 바라보며 위로를 건넸다.“아니에요, 그건 지영 이모의 본심이 아닐 거예요. 방금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잖아요!”“그건
“네, 지금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오시라 할까요?”하영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당장 모셔 와!”수진은 교장 선생님을 데리러 나갔고, 하영은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TYC의 첫 계약 건인데 절대 홀대할 수는 없었다.고준우 교장 선생님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하영은 웃으며 교장을 향해 악수를 청했다.“고준우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교장은 웃으며 하영의 손을 잡았다.“강 대표님 회사 분위기가 아주 좋던데요?”“과찬입니다.”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고 하영은 교장에게 차를 따라주었다.“교장 선생님, 차 마셔요.”“고마워요. 오늘은 학생들의 여름 교복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교장 선생님, 부끄럽지만 제가 이번에 처음으로 학생들의 교복 디자인을 맡게 됐는데 우선 교장 선생님의 생각부터 들어보고 싶네요.”교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하영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그의 의견을 물어본 건 하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교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하영에게 되물었다.“하영 씨는 여름 교복 옷감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네요.”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세희와 세준에게 옷을 골라줄 때 생각을 교장한테 얘기해줬다.그러자 교장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아이가 있었어요?”그러자 하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네, 아이가 모두 셋이거든요.”“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군요. 아직 미혼인 줄 알았거든요. 애들은 몇 살이에요?”“다섯 살이에요.”“좋네요! 애들은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있나요?”“컴퓨터요. 두 아들이 프로그래밍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거든요.”그 말에 교장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언제 한 번 만나볼 수 있을까요?”“물론이죠. 교장 선생님께서 시간을 정하시죠. 그런데 지금은 우선 교복에 대해 논의해 볼까요?”두 사람은 오후 4시까지 논의한 뒤에야 교장은 회사를 떠났다.그때 마침 허시원한테서 연락이 왔다.“강하영 씨, 사모님께서 정신을 차리셨는데 언제쯤 시간이 편할까요?”하영은
하영이 막 말을 꺼내려 할 때, 캐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니지, 친구로서 보살피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어쨌든 너 때문에 다쳤으니까.”그 말에 하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알았으니까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얼른 손 씻고 밥이나 먹어.”“그래, 가는 건 괜찮지만 괜히 이상한 짓은 하지 마.”캐리의 당부에 하영은 어처구니없는 눈빛으로 캐리를 흘겼다.“제발 위험한 상상은 그만해줘!”10여 분 뒤 하영은 음식을 도시락에 담은 뒤 차키를 챙기며 애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잠시 나가 볼일 보고 올 테니까, 캐리 아저씨와 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해.”세 녀석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하영은 이미 집을 나섰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세 녀석은 빠른 속도로 위층으로 올라가 문은 닫아걸고 상의하기 시작했다.세준이 먼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엄마가 저녁에 분명 나쁜 아빠를 만나러 가신 게 틀림없어.”희민도 약간 미간을 좁힌 채 세희의 인형을 껴안으며 입을 열었다.“나도 아빠보러 가고 싶어.”세희는 양반다리를 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보러 가면 되잖아. 큰일도 아닌 데 뭐.”그 말에 세준과 희민이 동시에 세희를 쳐다봤고, 세준의 눈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세희야, 뭔가 이상한데?”그러자 세희의 표정이 굳어졌다.“뭐,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예전에는 엄마가 아빠 만나러 가는 걸 나보다 네가 더 반대했잖아. 지금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거지? 설마 엄마를 구해줬기 때문은 아니겠지?”세희의 머릿속에는 유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모습이 떠올랐다.커다란 손이 아주 든든하게 느껴졌다.세희의 귀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세준에게 되물었다.“오빠는 아빠가 싫어?”“예전보다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은 건 아니야.”세준의 솔직한 말에 세희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달싹였다.“나, 나도 그래…….”세희는 엄마와 오빠의 기분이 상할까 봐 아빠가 좋아진 것 같다고 말하지 못했다.세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챈 세준
하영은 유준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짢은 기분으로 물건을 정리했다.“맛없으면 먹지 마세요!”‘내가 한가한 사람인 줄 알아? 앞으로 안 해주면 되지!’유준은 하영의 말투에서 가시가 돋친 것을 느끼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었다.“삐졌어?”하영은 도시락을 옆에 탁- 내려놓았다.“정유준 씨, 나 바쁜 사람이에요. 음식까지 만들어 주면 가리지 말고 고마운 줄 알아야죠!”유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하영을 잡아끌었고, 하영이 반응하기 시작했을 땐 이미 유준의 품에 안겨있었다.하영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쳐들자, 빠져들 것만 같은 유준의 두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유준은 미소를 잔뜩 머금은 눈빛으로 몸을 숙여 하영의 귓가에 속삭였다.“농담이야, 내 입맛에 꼭 맞거든.”하영의 귓불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얼굴마저 달아올라 유준의 몸을 밀어내려 할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하영과 유준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니 허시원이 화들짝 놀란 눈빛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저……, 저기. 죄, 죄송합니다! 제가 방해를 했군요!”말을 마친 허시원은 빠르게 문을 닫았자 유준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하영은 어색하게 그와 거리를 두었다.“다 먹었으면 그만 돌아갈게요!”그 말을 남긴 하영은 도시락을 챙겨서 빠른 걸음으로 병실을 빠져나갔는데, 유준이 미처 잡기도 전에 이미 문을 닫아버렸다.문밖.허시원은 하영이 급하게 떠나는 것을 보고 다시 병실에 들어섰다.“대표님…….”말이 채 끝나기 전에 유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고, 허시원은 몸을 흠칫 떨더니 이내 변명하기 시작했다.“대,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얘기해!”유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불쾌한 듯 한 마디 내뱉자, 허시원이 태블릿으로 메일을 클릭하며 유준에게 건넸다.“캐리가 답장을 보내왔습니다.”유준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답변을 확인하던 순간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캐리의 답장에는 딱 한 마디만 적혀 있었다.[회사를 옮겨도 상관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