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 손을 뻗어 유준의 이마를 만져보니 불덩이처럼 뜨거운 것을 느끼고, 얼른 유준의 얼굴을 감쌌다.그러자 유준이 천천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하영은 검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유준 씨 지금 체온이 너무 높아요. 제 손이 차니까 열을 내려주려는 거예요.”유준은 짧은 신음을 흘리더니, 하영의 차가운 손을 꼭 쥐었다.“쓸데없는 짓이야.”“쓸데없지 않아요!”하영은 손을 빼낸 뒤 외투를 벗어 유준의 머리에 덮어줬고, 유준은 하영의 얇은 옷차림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얼어 죽을 생각이야?”“아니요. 그냥 당신이 여기서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유준은 가까스로 눈을 뜨고 하영을 잠시 바라보다가 하영의 손을 덥석 잡았고, 깜짝 놀란 하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대로 유준의 품에 안겼다.이어 남자의 차가운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정…….”하영이 토끼 눈이 되어 유준의 이름을 부르려 할 때, 유준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꽉 껴안고 진한 키스를 남겼다.가까스로 정신이 돌아온 하영은 얼른 유준의 가슴을 밀어내며 벗어나려고 애썼다.“정유준 씨, 이러지 마세요!”그러자 유준이 입술 사이로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는데, 안색이 더욱 창백해진 것 같았다.“갈비뼈가 부러졌으니 움직이지 마.”“갈비뼈?”유준의 말에 하영의 손이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왜 진작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유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으며 하영의 도톰한 입술을 문질러 줬다.“내 몸이 망가지는 걸 보고 싶으면 계속 움직여도 좋아.”“…….”같은 시각.현욱과 인나는 많은 직원과 함께 숲에서 하영과 유준을 찾아다녔다.큰비가 쏟아지는 날씨에 인나가 자꾸 삐끗하는 모습을 본 현욱은 마음이 안타까웠다.“인나 씨, 캠핑장에서 애들을 돌볼 것이지, 왜 기어이 따라 나온 거예요?”인나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현욱을 노려보았다.“그 입 좀 다물어요! 하영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찾아야죠!
“뭐?”인나가 얼른 고개를 돌리니, 창백한 얼굴에 커다랗게 “짜증”두 글자가 쓰여 있는 것 같은 유준이 보였다.인나는 얼른 하영을 놓아주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두 사람 또 싸웠어?”하영은 방금 유준과의 키스를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아니, 차 갖고 왔어? 얼른 병원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아.”“유준이 상태가 왜 이래?”현욱은 유준을 부축하며 물었다.“갈비뼈가 부러지고, 전에 꿰맸던 상처도 벌어진 것 같아요. 게다가 열도 나는 것 같은데 얼른 병원에 데려가야 해요.”그러자 현욱은 토끼 눈이 되어 유준의 얼굴을 살폈다.“대박, 그런데 기절하지 않았단 말이야?”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현욱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그 입 좀 다물어!”“?”‘내가 또 뭘 잘못했는데 그래?’……인나의 생을은 유준이 병원에 실려 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다.애들을 병원에 있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인나와 현욱은 먼저 애들을 데리고 아크로빌로 돌아갔고, 하영은 병원에 남아 유준의 곁을 지켰다.의사가 하영에게 지금 유준의 상태는 갈비뼈가 부러진 정도로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얘기했다.다리도 다쳐서 당분간 움직일 수 없고, 온몸에 상처가 많아 반드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하영은 조용히 병실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고 있는 유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해지기 시작했다.만약 유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지금 병실 침대에 누워 생사를 다투고 있는 사람은 하영이었을지도 모른다.‘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구해줬는데 이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하지?’생각에 잠겨 있던 하영은 소파에 기댄 채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저녁 9시.정 노인이 막 정주원의 병실에서 나왔을 때 주치의가 다가오더니, 정 노인에게 보고서를 건네주며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어르신, 정주원 도련님에 관한 검사 결과 보고서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정 노인은 주치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곁에 있던 경호원을 전부 내보낸 후 보고서를 꺼내 확인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양다인이 기뻐하며 얼른 휴대폰을 확인하니, 정유준이 아니라 김형욱이었다.김형욱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여러 번이나 그녀를 도와준 베일에 싸인 인물인지라 너무 무례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양다인은 전화를 받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김형욱 씨, 아직 쉬지 않고 있었어요?”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김형욱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태해진 거야? 강하영한테 복수 안 해?”그 말에 양다인은 깜짝 놀랐다. 예전엔 늘 그녀가 먼저 김형욱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번에는 그가 먼저 강하영에게 복수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왔기 때문이다.“김형욱 씨, 그건 오해예요. 제가 강하영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걸 잘 아시잖아요. 지금은 미처 그럴 시간이 없었을 뿐이에요.”그러자 김형욱이 피식 웃었다.“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정유준이 다칠까 봐 걱정되는 게 아니고?”‘그게 정유준이랑 무슨 상관인데?’그 말에 양다인은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얼른 해명하기 시작했다.“당연히 아니죠. 그 인간이 모질게 저를 쫓아냈는데 원망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그렇다면 지금 갖고 있는 증거로 일석이조의 기회를 이용하면 되겠네.”양다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무슨 말씀인지…….”“정주원이 이미 정씨 집안의 추문을 알려줬잖아.”양다인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지금 정유준 어머니에 관한 비밀을 얘기하는 거야? 김형욱 씨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지금까지 감시당하고 있었던 거야?’양다인은 빠르게 뛰는 심장을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아, 알았어요!”“나 실망하게 하지 마!”“그럴게요!”전화를 끊은 뒤, 양다인은 멍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봤다.이 휴대폰은 김형욱이 그녀에게 보내준 것이었는데, 도청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하지만 섣불리 행동했다가, 김형욱의 능력에 혹시라도 괜한 봉변을 당하게 될까 두려웠다.그런데 김형욱이 했던 말을 다시 곱씹어 보면 뭔가 이상했다.양다인더러 어서 하영에게 복수하라고 하지만, 이 사
하영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얼른 생강차를 받았다.“지영 이모, 정말 고마워요.”지영은 자리에 앉으며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비를 맞으면 안 좋아. 감기에 걸리면 더 안 되고. 주사를 맞는 건 아프니까, 하영 씨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하영은 숟가락을 들며 입을 열었다.“알았어요. 그런데 이모, 유준 씨도 비를 맞아서 지금 병원에 있는데, 보러 가야 하지 않아요?”갑자기 언급된 유준의 이름에 지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한참 뒤에 반응을 보였다.“내 아들? 남자애들은 몸이 튼튼해서 괜찮아. 여자애들이 걱정이지.”지영의 말을 듣고 하영은 마음이 쓰렸다. 지영의 사상은 여전히 정유준의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영은 생강차를 한 모금 마셨다.따뜻한 생강차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위까지 따뜻해지면서, 팽팽하게 긴장돼 있던 몸도 편안해지기 시작했다.지영은 하영이 생강차를 다 마실 때까지 곁에서 유심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우리 아들이랑 결혼하면 참 좋을 것 같네.”지영의 말에 숟가락을 쥔 하영의 손이 멈칫하더니, 쓴웃음을 지었다.하영과 유준은 이제 가능성이 없었지만, 지영의 앞에서 너무 듣기 싫은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이모, 유준 씨가 분명 상냥하고 좋은 며느릿감을 데려올 거예요.”그때 지영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하영 씨, 나도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알아.”하영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며, 지영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이모…….”“가끔 머리가 너무 복잡해져.”지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가끔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도 있는데, 또 가끔은 너무 복잡해지거든. 지금은 맑은 정신이야.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마다 과거 일들이 떠오르니까.”이 점에 대해서 하영도 늘 궁금했지만, 혹시라도 지영의 상처를 들추게 될까 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섣불리 물어볼 수 없었다.그때 지영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유준이 참 불
구연희의 답장을 보고 하영은 오랫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지영이 정유준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것도, 어쩌면 정유준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운 과거가 떠올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오후.회사에서 회의를 마친 하영은 일찍 퇴근해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애들을 데리러 갔다.유준이 병원에 입원해 있기 때문에, 희민이 당분간 하영의 집에서 머물게 됐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하영이 애들을 데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지영은 다시 예전의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저녁밥은 하영이 직접 솜씨를 발휘하여 애들과 지영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줬다.세희가 탁자에 엎드려 예쁜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엄마, 오늘 누구 생일이에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푸짐해요?”하영은 웃으며 세희를 탁자에서 내려오게 했다.“손을 깨끗이 씻기 전에는 밥을 먹을 수 없어.”세희가 싱글벙글 웃으며 몸을 돌려 지영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할머니, 우리 손 씻으러 가요.”지영은 얼른 세희의 손을 잡더니 희민과 세준도 데리고 갔다.“다 같이 손 씻고 밥 먹을까?”지영이 애들을 데리고 화장실로 향하는 것을 보고 구연희가 다가와 얘기를 건넸다.“계속 이 상태로 지내면 참 좋을 것 같은데, 하영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하영은 네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이모는 진심으로 애들을 아끼고 있어요. 될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여기서 지냈으면 좋겠어요.”“하영 씨, 저 당분간 휴가를 내고 싶어요.”그 말에 하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며칠 동안이요?”그러자 구연희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제가 결혼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며칠이 될지 아직 확답을 드릴 수 없네요.”“결혼이요?”하영은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정말 죄송해요. 제가 연희 씨 사정도 잘 모르고 계속 여기서 지내게 했네요.”“괜찮아요. 제 남편도 의사라서 저희 행복보다는 환자를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하영 씨도 많이 바쁠텐데,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때 캐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리고 푸짐한 저녁상을 보고 씩씩거리며 하영 앞으로 다가와 투덜대기 시작했다.“G, 지금 나만 쏙 빼놓고 맛있는 걸 먹는 거야?”하영은 곁에 있는 의자를 빼주며 웃었다.“난 오늘 집에 안 오는 줄 알았지.”캐리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입을 열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여자야! 나만 버려두고 혼자서 나가 놀더니, 돌아와서 어떻게 한 마디도 없을 수 있어? 회사랑 공장,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캐리가 불만을 다 토로하기 전에 지영이 얼른 반찬을 그의 입에 밀어 넣자, 캐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고는 얼른 씹어서 삼켰다.지난번에 목을 졸렸던 사실을 잊지 못했던 캐리는 지금도 지영을 대하는 게 조금 꺼려졌다.캐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고마워요, 지영 누나.”딱- 소리와 함께 하영이 젓가락으로 캐리의 머리를 때렸다.“이분은 정유준 씨 어머님이셔.”“뭐?”캐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충격받은 얼굴로 되물었다.“그 자식 어머니라고?”캐리의 목청에 하영은 귀를 막았다.“소리 그만 지르고 앉아서 얘기해.”그제야 캐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G,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 어쩐지, 그래서 애들의 호칭이 달라진 거였어.”“호칭이 바뀌었는데도 이상한 걸 못 느꼈어?”하영이 어이없는 눈빛으로 캐리를 쳐다보자, 그는 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그냥 즉흥적인 줄 알았지. 정유준은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알아.”하영이 옥수수차를 마시며 대답했다.“이모가 유준 씨를 따라 가는 걸 원치 않으시거든.”“그래? 친엄마조차 따라가지 않으려는 걸 보면 확실히 나쁜 놈이네.”“멋대로 판단하지 마, 네가 모르는 사실도 있으니까…….”“맞아요!”하영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세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쁜 아빠 욕하지 마세요!”지영을 제외하고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세희를 쳐다보자, 세희는 닭 날개를 한입 베어 물고는 멍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지영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눈가에 실망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그렇게 오래 걸려? 세희랑 애들이 기뻐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하영은 지영의 손을 잡아끌며 입을 열었다.“네, 오래 걸려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자러 가는 게 어때요?”내일엔 지영을 데리고 함께 회사로 출근해야 하므로, 너무 늦게 잘 수 없었다.지영이 간절한 눈빛으로 하영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하영 씨, 구연희 씨가 없으니 혼자 자기 싫어.”그러자 하영이 웃었다.“그럼 같이 자요.”그제야 지영은 활짝 웃으며 하영의 손을 꼭 잡았다.“그래, 이제 방으로 올라가자!”저녁 10시, 카페.양다인은 선글라스를 끼고 기자와 룸에 앉아 있었는데, 느긋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뭐, 대충 이 정도면 되죠?”기자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양다인 씨, 제가 다시 요약해 볼게요. 그러니까 지금 MK 대표인 정유준 씨 어머니가 술집 여자였는데 정 회장님과 결혼 후에 큰 아드님을 유혹했고, 그것 때문에 큰 아드님이 울분을 참으면서 수십 년을 해외에서 지냈다는 말이죠?”양다인은 불쾌한 표정으로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제일 중요한 사실이 빠졌잖아요.”그러자 기자는 웃으며 답했다.“양다인 씨, 일단 급해하지 마세요. 양다인 씨가 TYC 대표를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걸 알지만 그건 별개의 일이잖아요. 저희도 모욕죄를 감수하면서 이 일을 하거든요.”그러자 양다인은 피식 소리 내 웃었다.“돈이 필요하단 얘기네요.”“조금 듣기 싫은 얘기겠지만, 사실이니까요.”“얼마가 필요한지 얘기해 봐요. 언제 발표할 거죠?”“늦어서 다음 주 전에 기사로 내보낼게요.”“나는 기다리는 거 딱 질색이니까 빠를수록 좋아요. 2천만 원이면 충분해요?”“물론입니다!”돈을 받은 기자는 양다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양다인 씨, 앞으로 잘해봅시다!”양다인은 불쾌한 눈빛으로 힐끗 쳐다보고는 가방을 챙기더니 그대로 자리를 떴다.병실 안.유준은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손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그럼 유준 씨가 와서 가족들을 돌볼래요?]문자를 보낸 뒤 하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씻었다.금방 양치질을 마쳤을 때 유준한테서 또 문자가 왔다.[어제 보낸 문자는 못 본 걸로 해줘.]하영은 문자를 보고 순간적으로 수긍하고 답장하고 싶지 않았는데, 입력 중이라고 뜨는 표시에 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져서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소식이 없었다.그러다 몇 분 뒤에야 문자를 받았다.[오늘 바빠?][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유준은 하영의 답장에 표정이 어두워졌다.‘눈치가 왜 이렇게 없는 거야?’유준은 밀려오는 짜증을 꾹 참으며 답장을 보냈다.[병원엔 안 와?]하영은 세면대에 기댄 채 언짢은 표정으로 답장을 보냈다.[병원에 가서 또 유준 씨랑 싸울까요? 말도 안 되는 얘기나 들으면서?][내가 누구 때문에 다쳤는지 잊었어?][저 때문에 다친 건 맞아요. 그렇지만 유준 씨가 자꾸 사람 속을 긁는 말만 골라 하니까 가기 싫어요. 당신이랑 싸울 만큼 한가하지 않거든요.][조용히 있을게!]하영은 유준이 그런 식으로 솔직하게 대답할 줄은 몰랐기에 조금 놀라웠다.사실 오늘 유준을 보러 병원에 가려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유준이 보낸 문자를 보고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괜히 심기를 건드리고 싶었다.그런데 유준이 먼저 한발 물러서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맞서고 싶지 않았다.[조금 늦게 갈게요.]하영의 문자에 그제야 유준의 굳은 얼굴이 점점 펴지기 시작했고, 허시원이 가져온 죽을 받아 느긋하게 먹기 시작했다.8시.하영은 지영과 함께 애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줬다.애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것은 처음이었던 지영은 애들이 차에서 내리자, 그녀도 차에서 내려 애들을 따라가자 경비원이 그녀를 막았다.세희는 그 모습을 보고 얼른 입을 열었다.“할머니, 여기까지 데려다주면 돼요.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어요.”지영은 머리를 끄덕이고 애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래. 들어가는 걸 볼게.”세 녀석은 아주 협조적으로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