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희가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유준의 곁으로 다가간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저기요, 제가 불을 지피는 걸 도와드릴게요.”통통한 여자는 유준을 보며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유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난 여자를 보며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여자가 갑자기 유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얼른 손을 빼낸 유준은 불쾌한 눈빛으로 여자를 보며 싸늘한 말투로 경고를 날렸다.“함부로 몸에 손대지 마시죠!”여자는 더욱 쑥스러운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며, 손으로 유준의 팔을 툭툭 쳤다.“에이,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저 다 알고 있어요.”그러자 유준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뭘 안다는 겁니까?”여자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자기 몸으로 유준을 툭툭 건드렸다.“그러니까, 그쪽 마음을 다 알고 있으니까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고요.”“???”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하영과 나머지 일행들도 멍한 표정이 되었다.‘이게 다 무슨 상황이야?’인나도 깜짝 놀라며 감탄했다.“대박, 대표님이 너무 매력적이라 지금 여자가 먼저 다가와 도와주려는 거죠?”현욱도 웃음을 꾹 참았다.“지금 유준의 표정 너무 웃기지 않아요?”그 말에 숯처럼 어둡게 가라앉은 유준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던 인나는 그만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저 망할 매력이 문제라니까요!”하영은 웃긴다기보다 오히려 갑자기 나타난 여자를 이상하게 생각했다.한참 생각에 잠겨 여자가 걸어온 방향을 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세준이 세희를 끌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세희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고 하영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바로 눈치챘고, 차가운 표정으로 세희 앞으로 다가갔다.깜짝 놀란 세희는 억울한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엄마…….”하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낮은 어조로 물었다.“세희야, 저 아줌마가 갑자기 나타난 게 혹시 네가 한 짓이야?”“엄마, 제가 잘못했어요…….”세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답하자, 하영은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
세희는 눈물을 훔치고 세희 품에서 내려와 훌쩍이며 여자 곁으로 다가갔다.그러자 통통한 여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세희를 보며 물었다.“꼬마야, 왜 울어?”세희는 여전히 훌쩍이며 대답했다.“이모, 죄송해요. 제가 이모를 속였어요. 저 사람이 이모를 불러오라고 시킨 게 아니라 제가 일부러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큰일도 아닌데 괜찮아. 이제 불도 지폈으니까 이만 가볼게. 꼬마야, 울지 마.”하영도 여자 곁으로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사과를 건넸다.“죄송해요. 저희 애가 철이 없어서 폐를 끼쳤네요.”“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여자는 손을 휘휘 저으며 답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고, 하영은 세희를 보며 입을 열었다.“사과해야 할 사람이 또 있잖아.”세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유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나쁜……,죄송합니다!”유준은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눈치채고, 손을 들어 올렸다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세희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그리고 평소에 보기 드문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알았으니까 울지 마.”작은 몸을 움찔하던 세희는 흐느낌도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고, 아빠의 손길이 따뜻하고 다정하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유준을 똑바로 쳐다보았는데, 고개를 들자마자 유준의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나쁜 아빠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아…….’유준이 약간 미간을 좁히기 시작하자, 세희는 그제야 얼른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텐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세희를 혼낸 뒤 마음이 좋지 않았던 하영은 제대로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세희를 따라 텐트로 들어갔다.그들은 바비큐를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다 같이 승마장으로 향했다.하영은 예전에 유준과 함께 고객 접대를 위해 여러 가지 활동에 참석하면서 승마를 배운 적이 있었다.말을 고를 때 하영은 조련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애들을 위해 온순한 망아지 세 마리를 골라줬고, 애들과 함께 한 바퀴 산책한 뒤에 말을 고르러 갔다.마구간에 도착한
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현욱을 흘겼다.“심심한가 봐?”그러자 현욱은 머쓱한지 코를 매만졌다.“에이, 그냥 농담한 거잖아.”“어라?”그때 인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 조련사 지금 하영이 쫓아가는 거 아니에요?”유준과 현욱이 동시에 조련사 쪽을 바라봤고, 조련사의 다급한 표정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또 두 명의 조련사가 마구간에서 나와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에 유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두운 표정으로 직원이 서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현욱과 인나도 다급히 쫓아갔고, 세 사람이 직원 앞에 도착했을 때 유준이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그러자 직원은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저 여성분이 고른 말이 마구간에서 제일 다루기 힘든 말이거든요…….”직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하영의 비명이 들려왔다.유준과 일행이 바로 고개를 돌리자, 그 말은 하영을 데리고 이미 승마장을 벗어나고 있었다.유준은 입술을 꽉 깨물고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두 사람은 가서 애들을 돌봐줘!”말을 마친 유준은 마구간에 들어가 말을 끌고 나오더니, 날렵하게 말 등에 오른 뒤 하영이 사라진 방향으로 쫓아가기 시작했다.“젠장! 유준아, 너 상처도 아직 다 낫지 않았잖아!”현욱이 뒤늦게 반응하며 외쳤을 때 유준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우인나도 곁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현욱 씨! 현욱 씨는 가서 차 좀 갖고 와요. 우리도 찾으러 가야 해요! 하영이 떠난 방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있는데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어요!”“숲이요?”현욱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래, 알았어요!”그 시각.말 등에 올라탄 하영은 말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하자 거의 심장이 멎을 듯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하영은 오장육부가 흩어질 것만 같은 세찬 흔들림에 고삐를 꽉 조이려고 노력했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말을 컨트롤할 수 없었고, 좌우로 당기려고 해도 그대로 튕겨져 나뒹굴 것만 같았다.
“유준 씨?”하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에 황급히 일어나 앉아 유준의 이름을 불렀다.그때 유준의 미간이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고, 하영은 유준의 의식이 돌아오는 것 보고, 다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유준 씨, 제 말 들려요? 대답 좀 해 봐요!”유준의 손가락이 약간씩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애써 눈을 떴고, 하영이 무사한 것을 보더니 눈가에 어린 걱정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아직 안 죽었으니까 그만 불러…….”유준의 대답에 하영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목멘 소리로 물었다.“쫓아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유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또다시 내 앞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거든…….”하영은 유준의 말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눈물을 훔친 뒤 유준을 부축해 줬다.“일단 앉아요. 또 다친 곳은 없어요?”유준은 입술을 깨물고 가까스로 일어나 앉았고, 하영은 그를 부축해 나무에 기대게 한 다음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여기저기 살펴보니 가장 심각한 곳은 전에 다친 팔의 상처가 다시 벌어진 것이었다. 다리에도 찰과상이 있었지, 다행히 골절은 아니라 움직이는 데 문제는 없었다.그제야 안심이 된 하영은 시선을 거두고 구조를 요청하려고 할 때, 휴대폰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유준 씨, 혹시 휴대폰 갖고 있어요?”“그걸 챙길 정신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유준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되묻자, 하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걸을 수 있겠어요?”여기서 오래 머무를 순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팔의 상처가 감염될 수도 있으니까.유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다리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하마터면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하영은 얼른 유준의 팔을 잡아 주며, 그의 팔을 자기 어깨에 둘렀다.“조금만 참고 천천히 걸어 봐요.”유준은 조용하게 하영을 곁눈질하더니, 그녀에게 기댄 채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멈춰 섰다.그러자 하영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얼굴 가
하영이 손을 뻗어 유준의 이마를 만져보니 불덩이처럼 뜨거운 것을 느끼고, 얼른 유준의 얼굴을 감쌌다.그러자 유준이 천천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하영은 검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유준 씨 지금 체온이 너무 높아요. 제 손이 차니까 열을 내려주려는 거예요.”유준은 짧은 신음을 흘리더니, 하영의 차가운 손을 꼭 쥐었다.“쓸데없는 짓이야.”“쓸데없지 않아요!”하영은 손을 빼낸 뒤 외투를 벗어 유준의 머리에 덮어줬고, 유준은 하영의 얇은 옷차림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얼어 죽을 생각이야?”“아니요. 그냥 당신이 여기서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유준은 가까스로 눈을 뜨고 하영을 잠시 바라보다가 하영의 손을 덥석 잡았고, 깜짝 놀란 하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대로 유준의 품에 안겼다.이어 남자의 차가운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정…….”하영이 토끼 눈이 되어 유준의 이름을 부르려 할 때, 유준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꽉 껴안고 진한 키스를 남겼다.가까스로 정신이 돌아온 하영은 얼른 유준의 가슴을 밀어내며 벗어나려고 애썼다.“정유준 씨, 이러지 마세요!”그러자 유준이 입술 사이로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는데, 안색이 더욱 창백해진 것 같았다.“갈비뼈가 부러졌으니 움직이지 마.”“갈비뼈?”유준의 말에 하영의 손이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왜 진작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유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으며 하영의 도톰한 입술을 문질러 줬다.“내 몸이 망가지는 걸 보고 싶으면 계속 움직여도 좋아.”“…….”같은 시각.현욱과 인나는 많은 직원과 함께 숲에서 하영과 유준을 찾아다녔다.큰비가 쏟아지는 날씨에 인나가 자꾸 삐끗하는 모습을 본 현욱은 마음이 안타까웠다.“인나 씨, 캠핑장에서 애들을 돌볼 것이지, 왜 기어이 따라 나온 거예요?”인나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현욱을 노려보았다.“그 입 좀 다물어요! 하영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찾아야죠!
“뭐?”인나가 얼른 고개를 돌리니, 창백한 얼굴에 커다랗게 “짜증”두 글자가 쓰여 있는 것 같은 유준이 보였다.인나는 얼른 하영을 놓아주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두 사람 또 싸웠어?”하영은 방금 유준과의 키스를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아니, 차 갖고 왔어? 얼른 병원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아.”“유준이 상태가 왜 이래?”현욱은 유준을 부축하며 물었다.“갈비뼈가 부러지고, 전에 꿰맸던 상처도 벌어진 것 같아요. 게다가 열도 나는 것 같은데 얼른 병원에 데려가야 해요.”그러자 현욱은 토끼 눈이 되어 유준의 얼굴을 살폈다.“대박, 그런데 기절하지 않았단 말이야?”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현욱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그 입 좀 다물어!”“?”‘내가 또 뭘 잘못했는데 그래?’……인나의 생을은 유준이 병원에 실려 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다.애들을 병원에 있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인나와 현욱은 먼저 애들을 데리고 아크로빌로 돌아갔고, 하영은 병원에 남아 유준의 곁을 지켰다.의사가 하영에게 지금 유준의 상태는 갈비뼈가 부러진 정도로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얘기했다.다리도 다쳐서 당분간 움직일 수 없고, 온몸에 상처가 많아 반드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하영은 조용히 병실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고 있는 유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해지기 시작했다.만약 유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지금 병실 침대에 누워 생사를 다투고 있는 사람은 하영이었을지도 모른다.‘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구해줬는데 이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하지?’생각에 잠겨 있던 하영은 소파에 기댄 채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저녁 9시.정 노인이 막 정주원의 병실에서 나왔을 때 주치의가 다가오더니, 정 노인에게 보고서를 건네주며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어르신, 정주원 도련님에 관한 검사 결과 보고서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정 노인은 주치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곁에 있던 경호원을 전부 내보낸 후 보고서를 꺼내 확인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양다인이 기뻐하며 얼른 휴대폰을 확인하니, 정유준이 아니라 김형욱이었다.김형욱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여러 번이나 그녀를 도와준 베일에 싸인 인물인지라 너무 무례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양다인은 전화를 받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김형욱 씨, 아직 쉬지 않고 있었어요?”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김형욱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태해진 거야? 강하영한테 복수 안 해?”그 말에 양다인은 깜짝 놀랐다. 예전엔 늘 그녀가 먼저 김형욱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번에는 그가 먼저 강하영에게 복수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왔기 때문이다.“김형욱 씨, 그건 오해예요. 제가 강하영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걸 잘 아시잖아요. 지금은 미처 그럴 시간이 없었을 뿐이에요.”그러자 김형욱이 피식 웃었다.“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정유준이 다칠까 봐 걱정되는 게 아니고?”‘그게 정유준이랑 무슨 상관인데?’그 말에 양다인은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얼른 해명하기 시작했다.“당연히 아니죠. 그 인간이 모질게 저를 쫓아냈는데 원망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그렇다면 지금 갖고 있는 증거로 일석이조의 기회를 이용하면 되겠네.”양다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무슨 말씀인지…….”“정주원이 이미 정씨 집안의 추문을 알려줬잖아.”양다인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지금 정유준 어머니에 관한 비밀을 얘기하는 거야? 김형욱 씨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지금까지 감시당하고 있었던 거야?’양다인은 빠르게 뛰는 심장을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아, 알았어요!”“나 실망하게 하지 마!”“그럴게요!”전화를 끊은 뒤, 양다인은 멍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봤다.이 휴대폰은 김형욱이 그녀에게 보내준 것이었는데, 도청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하지만 섣불리 행동했다가, 김형욱의 능력에 혹시라도 괜한 봉변을 당하게 될까 두려웠다.그런데 김형욱이 했던 말을 다시 곱씹어 보면 뭔가 이상했다.양다인더러 어서 하영에게 복수하라고 하지만, 이 사
하영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얼른 생강차를 받았다.“지영 이모, 정말 고마워요.”지영은 자리에 앉으며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비를 맞으면 안 좋아. 감기에 걸리면 더 안 되고. 주사를 맞는 건 아프니까, 하영 씨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하영은 숟가락을 들며 입을 열었다.“알았어요. 그런데 이모, 유준 씨도 비를 맞아서 지금 병원에 있는데, 보러 가야 하지 않아요?”갑자기 언급된 유준의 이름에 지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한참 뒤에 반응을 보였다.“내 아들? 남자애들은 몸이 튼튼해서 괜찮아. 여자애들이 걱정이지.”지영의 말을 듣고 하영은 마음이 쓰렸다. 지영의 사상은 여전히 정유준의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영은 생강차를 한 모금 마셨다.따뜻한 생강차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위까지 따뜻해지면서, 팽팽하게 긴장돼 있던 몸도 편안해지기 시작했다.지영은 하영이 생강차를 다 마실 때까지 곁에서 유심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우리 아들이랑 결혼하면 참 좋을 것 같네.”지영의 말에 숟가락을 쥔 하영의 손이 멈칫하더니, 쓴웃음을 지었다.하영과 유준은 이제 가능성이 없었지만, 지영의 앞에서 너무 듣기 싫은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이모, 유준 씨가 분명 상냥하고 좋은 며느릿감을 데려올 거예요.”그때 지영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하영 씨, 나도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알아.”하영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며, 지영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이모…….”“가끔 머리가 너무 복잡해져.”지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가끔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도 있는데, 또 가끔은 너무 복잡해지거든. 지금은 맑은 정신이야.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마다 과거 일들이 떠오르니까.”이 점에 대해서 하영도 늘 궁금했지만, 혹시라도 지영의 상처를 들추게 될까 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섣불리 물어볼 수 없었다.그때 지영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유준이 참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