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하영은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공장 화재 사건으로 상의할 일이 있다고 전해 들었다.서둘러 경찰서에 도착하자 형사는 하영에게 물을 건네고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강하영 씨, 정말 죄송하지만 이번 화재 사건은 실마리가 없어서 수사에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확실히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습니다.”하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하실 말씀이 있으면 편히 하세요.”“강하영 씨, 혹시 주변에 의심이 갈 만한 인물은 없습니까?”“저희 직원들은 전부 조사를 마친 걸로 알고 있는데, 누구 혐의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죠?”“저희가 모든 기록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우선 여기 두 개 기록을 확인해 보시죠.”형사는 조서 두 장을 하영에게 건네주었는데, 바로 부공장장과 임서진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부공장장과 제 비서의 조서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부공장장의 조사 기록을 보면 시간관념이 비교적 애매한데, 반대로 강하영 씨 비서의 조서를 살펴보면 어느 시간대에 뭘 했는지 아주 분명하게 적혀있죠.”형사의 말에 하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시간관념이 너무 확실한 사람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인가요?”형사가 머리를 끄덕였다.“사람마다 어느 시간대에 뭘 했는지 정확히 모를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강하영 씨 비서의 진술은 매우 깔끔했습니다. 바로 그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임수진 씨는 어느 시간에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너무 잘 기억하고 있더군요. 마치 미리 외워둔 듯이 말이죠. 강하영 씨는 본인이 몇 시 몇 분에 경찰서에 들어왔는지 기억하십니까?”형사의 질문에 하영은 멍해지고 말았다. 경찰서에서 언제 연락이 왔는지도 확실치 않은데, 들어온 시간이 기억날 리가 있겠는가?형사는 하영이 아무 말 못 하는 것을 보고 웃었다.“보세요, 아무도 정확한 시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강하영 씨 비서만은 달랐죠.”“혹시 개인의 습관일 수는 없을까요?”“그럴 가능성도 있겠죠. 만약 임
캐리는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목소리 왜 그래? 그동안 회사에서 많이 바빴어?”하영은 이마를 문지르며 캐리의 물음에 답했다.“캐리, 네가 전화기를 꺼놓은 동안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서 대량의 제품들이 환불됐어.”“뭐?”충격받은 캐리가 전화기 너머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아니, 어떻게 내가 떠나자마자 공장에 사고가 생길 수 있어? 대체 누구 짓이야!”하영은 귀청이 찢어질세라 휴대폰을 귀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렸다.그러다 캐리가 소리를 지르지 않자 다시 스피커폰으로 통화했다.“누가 한 짓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 나머지는 네가 돌아오면 얘기해 줄게.”“젠장!”캐리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전화기를 꺼놓은 틈에 그런 일이 발생하다니, 범인은 분명 나한테 뒤집어씌우려 했던 거잖아!”하영은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풉하고 소리내 웃었다.“반응이 참 빠르네. 네가 한 짓이 아닌 건 확실해?”“이봐, G. 나는 은혜도 모를 정도로 배은망덕한 인간이 아니라고!”캐리가 화를 내자 하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계속 놀려댔다.“벌써 선을 긋는 거야?”“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너무 속상하잖아.”캐리는 코를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나는 G를 위해 좋은 걸 찾으러 온 거란 말이야. 내가 요 며칠 얼마나 처참했는지 알아? 내가…….”“캐리!”하영이 캐리의 말을 끊었다.“서프라이즈 준비했다고 했잖아. 지금 얘기하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지.”“이런, 하마터면 속아 넘어갈 뻔했네, 아무튼 오늘 저녁 공항으로 데리러 나와. 꼭 나와야 해!”캐리의 말에 하영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보아하니 그냥 서프라이즈가 아닌 것 같은데.”“맞아! 나중에 감동받아서 내 품에 안겨 울지나 마!”하영은 캐리의 말에 무정하게 대답했다.“신호가 안 좋아서 끊을게!”“이렇게 매정할 수가! 아무튼 저녁에 꼭 나와!”“알았어.”하영은 쓴 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오후.유준이 막 회사의 재무 누락 문제를 처리했을 때, 허시원이 다가와 입을
유준이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이제 슬슬 너의 아버지를 뵈러 갈 때가 된 것 같네.”그러자 현욱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그래, 알았어! 가면 되잖아!”저녁 6시.현욱은 예준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처음엔 이것저것 쓸데없는 얘기를 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오히려 소예준이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배현욱,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날 부른 거야?”현욱은 머쓱한지 코를 매만졌다.“오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만나자고 한 건 사실이야.”“뭔데?”현욱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내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강하영 씨가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 왜 같이 살지 않아? 결혼식도 안 올리고.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우리한테 미안하지 않아?”예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축하주 마시고 싶어서 그래?”“친구 축하주라면 당연히 마셔야지. 우리 셋 중에 네가 제일 빠르잖아. 안 그래?”예준은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직은 때가 아니라서.”“5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때가 아니라고? 갈라서려는 거야?”“그건 아니고. 나랑 하영이는 두 사람이 오래 같이 있으면 언젠가 서로 질리게 된다는 것에 같은 의견을 갖고 있거든. 두 사람이 적당히 거리를 두면 서로 보고 싶기도 하고,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날 땐 신혼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이 있잖아.”현욱은 신선한 충격에 눈만 깜빡였다.‘정말 일리가 있는 말이잖아!’현욱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다시 물었다.“혼인신고 했으면, 친구들을 불러 한턱 내야지.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냐?”예준은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우리 둘은 혼인신고는 신경 쓰지 않거든. 두 사람 감정이 제일 좋은 증명이 아니겠어?”예준의 말에 현욱은 할 말을 잃었다.“두 사람 정말 개방적인 사상을 가졌네…….”식사 자리가 끝나고 현욱은 소예준이 했던 얘기를 정유준에게 전했고, 그 얘기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혼인신고는 신경 쓰지 않아? 두 사람 감정이 제일 좋은 증명이라고? 5년을 못 본 사이에 남
“나야 가족 기업이라, 나한테 모든 운영 지식을 가르쳐 줬는데, 하영 씨한테는 뭐가 있죠?”“확실히 저한텐 아무것도 없어요. 대신 반드시 노력해서 강해져야 할 이유가 있죠. 디자인만 해서 멀리갈 수 없다는 말씀은 저도 인정해요. 대중들도 언젠가 저의 디자인에 질리는 날이 오겠죠. 하지만 배움엔 끝이란 게 없는 법입니다. 리사 여사님은 무슨 근거로 저의 디자인 이론이 여기서 끝이라고 단정 지으시는 거죠? 길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성공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말로만 이뤄내는 게 아닙니다. 제가 TYC를 순조롭게 이끌어 온 것이야말로 제일 좋은 증거가 아니겠어요?”하영의 침착하고 분명한 말에 그녀를 보는 리사의 눈빛이 점점 변하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환히 웃는 얼굴로 하영에게 말했다.“하영 씨는 다른 젊은 여성의 몸에서 볼 수 없는 기개를 갖고 있군요. 확실히 다시 보게 됐어요!”“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영은 말을 하며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환영해요.”리사도 손을 내밀어 하영의 손을 맞잡았다.“하영 씨 능력을 기대할게요.”같은 시각.검은색 슈트를 차려입은 몸매가 다부진 남자가 공항에서 나오고 있었다.허시원은 캐리어를 밀고 남자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남자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깜짝 놀란 허시원은 서둘러 캐리어를 멈추고 상사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하영과 캐리, 그리고 리사의 모습이 보였다.‘어쩐지 대표님께서 전용기를 거부하시더니, 캐리가 이 시간에 김제에 도착하고, 강하영 씨가 마중 나올 줄 예상했던 거였구나. 대표님은 왜 굳이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려는 걸까?’“대표님, 차가 도착했습니다.”허시원이 입을 열어 유준의 주의력을 돌렸지만, 그는 굳은 얼굴로 강하영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기 시작했다.“큰일 났네.”허시원은 자기만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얼른 유준의 뒤를 따랐고, 하영과 캐리가 그런 정유준의 모습을 발견했는데, 리사마저도 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 유준을 발견했
하영은 이를 악물었다.“정유준 씨,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독재자처럼 굴지 마시죠!”눈을 가늘게 뜬 유준의 눈가에 살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내가 독재자처럼 구는 거야, 아니면 네가 쓰레기 더미에서 뒹구는 거야?”“쓰레기 더미? 그러면 당신도 쓰레기겠네요?”말을 마친 하영은 몸을 돌려 캐리를 잡아끌며 말했다.“가자! 한밤중에 추위에 떨며 이런 사람이랑 싸우고 싶지 않아!”캐리도 고개를 끄덕이고 리사한테 입을 열었다.“차에 타시죠.”그들이 왜 싸우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리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차에 탔고, 세 사람은 유준의 서늘한 눈빛을 등 뒤로 하고 훌쩍 떠났다.허시원은 유준의 쓸쓸하고 처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께서는 강하영 씨가 분명 다른 남자를 감싸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저러시는 걸까?’하영과 캐리는 리사를 오성급 호텔에 방을 잡아 주고 함께 아크로빌로 돌아왔다.차에서 내린 캐리는 갑자기 정원에 생긴 닭장과 8마리의 닭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G, 언제부터 닭 키우는 취미를 가졌어?”하영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들어가서 설명할게.”“그래.”별장 문을 여는 순간 캐리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고, 충격적인 표정으로 거실에 널려 있는 감자와 고구마들을 쳐다봤다.“세상에…… G, 내가 없는 사이 특산품에 관심이 생긴 거야?”하영은 거실에서 하루 종일 라이브 방송을 하는 강백만을 보며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진상 친척들이 우리 집을 차지했는데, 지금 라이브 방송하고 있는 거야.”캐리는 너무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세상에, 그런 사람들도 다 있어?”하영은 피곤한지 눈을 비볐다.“응, 며칠 뒤에는 있을 곳도 사라지게 될 거야, 올라가자.”“그래.”토요일, 오전 9시.캐리는 일어나 세 녀석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깜짝 놀라게 해 주려 했다.그런데 침대로 다가가니 희민의 베개에 적잖은 혈흔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반쯤
강미정은 고개를 들어 캐리를 발견하고 얼른 몸을 일으켰다.“당신 대체 누구야! 무단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할 줄 알아!”“저요?”캐리는 자신을 가리키며 낄낄 웃었다.“그쪽 조상님인데요?”‘이 사람 뭐야? 다짜고짜 욕부터 하고, 경찰에 신고한다고?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강미정은 눈을 부릅뜨고 캐리를 향해 삿대질하기 시작했다.“뭐 이런 미친X이 다 있어? 다시 한번 말해 봐!”그러자 캐리도 진지한 얼굴로 다시 대답해 줬다.“뭐라고 하긴요. 그쪽 조상님이라고 했잖아요.”미정은 캐리한테 말려 아직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캐리가 또 한마디 덧붙였다.“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줄 알아요? 비켜요!”말을 마친 캐리는 미정을 한쪽으로 밀어냈고, 화가 치밀어 오른 미정은 허리에 손을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미친X이야?”캐리는 걸음을 멈추고 미정을 향해 씩 웃었다.“아줌마가 쉽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 아줌마처럼 길거리에 파는 싸구려 같은 줄 알아요?”“너!”강미정은 모욕적인 욕에 치를 떨었고, 캐리는 미정을 향해 네가 뭘 어쩌겠냐는 듯 혀를 홀랑 내밀었다.계단 입구에서 캐리의 욕을 전부 들은 하영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캐리, 이만 가자.”“그래!”세 녀석을 다독여준 뒤, 하영은 캐리와 함께 리사를 찾으러 갔다. 그런데 호텔 아래층에 도착하니 리사가 진작에 떠났다는 사실을 알았고, 캐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차에 올라탔다.“G, 일단 리사를 기다리자. 리사가 돌아오면, 네가 예전에 주문한 원단 원재료에 관해 제대로 얘기도 해보고, 리사가 소개해 준…….”“잠깐!”그때 하영이 캐리의 말을 끊었다.“네가 이미 원재료를 나한테 메일로 보내 줬잖아.”“뭐?”캐리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내가 언제 보내줬어? 너한테 서프라이즈 주려고 준비한 건데!”하영은 깜짝 놀랐다.‘캐리가 보낸 게 아니라고?’“나는 네가 서프라이즈로 나한테 보내준 줄 알았는데.”“아냐! 내가 준비한 서프라이즈는
“아빠.”“지금 데리러 갈게.”유준의 말에 희민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벌써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희민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물었다.“혹시 조금 늦게 가도 괜찮아요?”희민의 말에 유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이유가 뭐지?”“엄마가 맛있는 거 사 갖고 온다고 하셨거든요.”그러다 갑자기 하영이 전화를 끊기 전에 캐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다시 말을 이었다.“오시는 길에 엄마를 모시고 오는 건 어때요? 차가 없거든요. 지금 핸더슨 레스토랑에 있을 거예요.”희민의말에 곁에 있던 세준과 세희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래, 알았어.”통화가 끝나자, 세희는 답답한 듯 투덜거리기 시작했다.“희민 오빠, 왜 나쁜 아빠를 엄마한테 접근하게 하는 거야? 나쁜 사람이잖아!”희민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미안, 나는 그냥 아빠가 조금 불쌍해 보여서 그랬어.”그 말에 세준은 약간 한숨을 내쉬며 위로를 건넸다.“괜찮아. 이번 한 번인데 뭘. 괜찮으니까 희민이 너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세준의 말에 희민은 침묵을 지켰다.11시.하영은 수진과 전화 통화를 하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려고 마지막 계단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갑자기 발을 헛디디며 몸이 앞으로 기울기 시작했다.그대로 휘청이며 바닥에 넘어지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긴 덕분에 그대로 품에 안겨버리고 말았다.하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얼른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밀어내고 인사를 건넸다.“고마워요!”인사를 건넨 그녀가 고개를 들어 보니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괜찮습니다.”그 남자가 말을 마치고 나서야 하영은 지난번 지영 언니와 애들을 데리고 나왔을 때 레스토랑 입구에서 마주친 남자라는 것을 알아봤다.“그쪽은…….”“죽고 싶어?”하영이 미처 말을 꺼내기 전에 귓가에 익숙한 남자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정유준
답을 들을 수 없었던 하영은 할 수 없이 레스토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하영은 심란한 마음으로 뉴스라도 보면서 주의력을 돌리려고 휴대폰을 켰다.그런데 정유준이 사람을 때리는 영상이 벌써 실검에 떴는데, [MK 대표가 자기 큰형을 때리다!]라는 제목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그 기사에 하영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정주원이 중유준의 형이었어?’그 사실을 깨달은 하영의 머릿속에는 백지영이 정주원을 발견했을 때 겁에 질려 덜덜 떨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하영의 짐작이 맞다면, 정유준과 정주원의 모순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주원이 하영을 부축해 줬단 이유만으로 사람을 때릴 리는 없으니까.비록 맞은 사람은 정주원이지만 하영의, 무의식은 그가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유준은 정주원을 데리고 가는 길에도 그를 향한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본가 입구에 도착해서야 경호원을 시켜 주원을 끌어내리라고 한 뒤, 어두운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정주원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유준의 검은 눈동자는 서늘한 한기를 내뿜으며 정유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를 날렸다.“잘 들어. 또다시 강하영 손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죽는 것만 못할 정도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그래?”정주원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고개를 쳐들고, 피 묻은 이를 드러내며 피식 웃었다.“만약 내가 건드리는 정도가 아닌 네 엄마를 괴롭혔던 것처럼 내 독점물로 만들어 버릴 거라면 어쩔 건데? 정유준, 네 엄마까지 내 여자로 만들었으니까, 네 여자도 똑같이 만들어 줄 수 있어!”주먹을 꽉 쥐고 있는 정유준의 검은 눈동자엔 끝없는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그럼 지금 당장 죽여줄게!”유준은 차 트렁크에서 야구 방망이를 꺼내 정주원의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했고, 정주원은 머리를 감싸 안고 고통을 참았지만, 일그러진 표정에는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중유준이 그를 죽이려고 달려들수록 주원은 더욱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