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회사 오픈은 잘 됐어요?”양다이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만 떠올리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전혀 그런 내색은 내지 않았다.“그럼요. 유준 씨, 혹시 실례지만 제가 뭐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양다인은 예전에 정유준과 결혼한 사이인데, 정주원이란 남자가 정말 자기를 모르는지 떠보려 했다.‘아무리 모른다고 해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거 아냐?’“정유준 씨는 정씨 집안 사람이죠?”양다인의 물음에 주원은 손가락을 움찔했다.“네, 그렇지만 신분은 나한테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서요.”양다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럼 정유준 씨는 제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씀인가요?”“아버지 때문에 장기간 해외에 있어서 국내에서 일어난 사실들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말을 마친 주원이 고개를 들며 웃었다.“그렇게 묻는 건 혹시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이상하네, 그래도 친형제인데 정유준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단 말이야?’설령 몰랐다고 해도 여기까지 말을 꺼낸 이상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으니, 미리 얘기하면 정주원이 신경이야 쓰겠지만, 그녀의 인품만은 인정받을지도 모른다.정주원이 지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양다인은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그에게 접근할 자신이 있었다!“저 정유준 씨랑 결혼했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양다인의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주원의 표정에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주원의 표정은 곧 평소대로 돌아왔다.“우리 막내동생이 양다인 씨를 아껴주지 못한 점에 대해 대신 사과할게요.”양다인은 주원이 완전 격이 다른 남자라며 속으로 깜짝 놀랐다.“양다인 씨랑 막내 동생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거든요.”주원의 말에 양다인의 마음이 편안해졌다.“그동안 속여서 미안해요.”“숨기는 게 당연하겠죠. 그런데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강미정은 하영의 손목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또 다른 속셈을 품고 있다가, 하영의 말에 어느새 손목시계는 까맣게 잊은 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아휴,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당연히 써야지!”강미정은 고작 계약서 하나로 집 한 채와 바꿀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고 생각했다.게다가 집문서는 그녀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하영이 절대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여겼다.“좋아요. 내일 아침 변호사 부를 테니까, 사인만 하면 돼요. 사인만 끝내면 사드리죠.”강미정은 보물이라도 건진 듯, 지금은 하영의 모든 게 좋게 보였다.“하영아,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네 고모인데,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으면 싸우는 일도 없었잖아…….”수문이 고장 난 것처럼 강미정의 말은 끝없이 쏟아져 나왔고, 하영이 딱 잘라 말을 끊고 나서야 끝이 났다.침실로 돌아온 하영은 변호사한테 문자를 보내며, 계약서에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꼭 넣으라고 당부했다.다음 날 아침.하영이 일어났을 때 마침 집을 나서고 있는 강백만과 마주쳤다.강백만은 하영이 집을 사준다는 소식을 알았는지 아주 예의 바른 태도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하영아, 나 고향에 잠시 다녀올게!”강백만의 말에 하영은 웃는 얼굴로 답했다.“조심히 다녀오세요.”“하하, 앞으로도 우린 가족이잖아. 내가 올 때 특산품을 사다 줄게.”“그것참 고맙네요.”강백만은 하영의 비웃음 섞인 조롱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나섰다.강백만은 바로 버스터미널로 향하지 않고 자동차 대리점으로 향했다.이번에 도시로 올라올 때 마을 사람들 전부 강씨 집안은 이제 돈벼락을 맞았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했는데,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면 한바탕 비웃음을 살 게 분명했다.강백만은 택시를 타고 포르쉐 대리점으로 향했다.그리고 한 바퀴 구경하더니 TYC 회사의 명의로 포르쉐 카이엔을 한 대 구입하고 나서야 즐거운 심정으로 고향에 내려갔다.하영이 자동차 대리점에서 보내온 문자를 확인
소씨 집안.잠에서 깬 양다인이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 어두운 표정의 소 노인과 소예준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양다인은 예준을 힐끗 쳐다보고는 속으로 몰래 비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소 노인은 분명 예준을 혼내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양다인이 느릿느릿하게 계단을 내려오자, 인기척을 들은 소 노인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쳤다.“당장 내려오지 못해?”소 노인의 호통에 양다인의 발걸음이 멈칫하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할아버지, 지금 저한테 하신 말씀이세요?”“그럼 우리가 지금 누굴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거냐?”소 노인의 성난 목소리에 양다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에,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소 노인 곁으로 다가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할아버지, 왜 그러세요?”소 노인은 곁에 있던 사진을 집어 들어 양다인 몸에 힘껏 내던졌다.사진이 흩어지며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화면들이 눈에 들어왔고, 사진 속에 있던 사람도 다름 아닌 양다인이었다.양다인은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온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이번엔 또 무슨 낯짝으로 변명할 거야?”소 노인은 잔뜩 화난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회사가 개업하자마자 너의 더러운 사생활을 회사 직원들이 다 알아 버렸어!”양다인은 소 노인의 욕을 고스란히 들으면서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양다인은 고개를 번쩍 쳐들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예준을 노려보았다.“오빠야? 오빠가 할아버지한테 얘기한 거야?”“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소 노인은 양다인이 모든 일을 예준한테로 떠넘기려는 것을 보고, 손에 들린 지팡이로 양다인의 등을 사정없이 내려쳤다.“아악!”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통이 엄습하자 양다인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고, 예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양다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할아버지께서 아침부터 알고 계셨더라고, 내가 얘기한 거 아니야.”양다인은 고
“매번 그런 식으로 얘기해 놓고 언제 제대로 한 적이 있었어? 이제는 사람까지 죽여?”양다인은 벌벌 떨며 무릎을 꿇은 채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앞으로는 뭐든 할아버지 동의를 걸치고 행동할게요. 네? 그러니 제발 살려주세요.”소 노인은 답답한 눈으로 계속 눈물만 흘리는 양다인을 바라보더니,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소예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이번 일은 여기서 그만하자꾸나. 너도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고 있어.”“네, 그럴게요. 할아버지 생신날 제가 도와드리러 다시 올게요. 이만 가보겠습니다.”예준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예준이 떠나자 소 노인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는데, 그 내용인즉슨 양다인 곁에 있던 경호원들을 경찰서에 넘기라는 뜻이었다.소 노인의 목적은 양다인은 이번 일과 전혀 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저녁 무렵, MK.인나는 회사에 나서자마자 차 안에 있는 현욱과 마주쳤다.차 안에서 한참 동안 인나를 기다렸던 현욱은 우인나를 발견하고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인나 씨!”현욱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인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인나는 무시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현욱은 빠르게 인나 곁으로 달려와 그녀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인나 씨, 아직도 지난번 일로 화난 거예요?”인나는 그런 현욱을 힐끗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용건만 빨리 얘기했으면 좋겠네요.”“그게 아니라 나는 인나 씨한테 사과하러 온 겁니다.”“현욱 씨 사과 따위 필요 없어요. 사과라니, 정말 송구스럽네요!”인나가 싸늘한 말투로 거절하고 점점 걸음이 빨라지자, 현욱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알았어요. 내가 다 잘못했고,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인나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비꼬는 듯한 표정으로 웃어보였다.“이봐요, 처음이 있다면 다음번도 있다는 얘기 못 들어 봤어요? 그렇게 좋은 친구를 뒀으면서 차라리 친구랑 같이 살지 그래요?”“생각해 봐요. 내가 내 친구마저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면, 앞으로 내 여자를 어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인나의 귀에 낯선 목소리들이 들려왔다.“엄마, 두 꼬맹이 얼마나 쪠째한 줄 알아요? 아무것도 못 놀게 하잖아요.”“뭘 못 놀게 했는데?”“노트북이요! 강세준 그 자식이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해요. 그리고 태블릿도, 저한테 갖고 놀 자격이 없대요.”“웃기는 자식이 다 있네! 그 자식이 뭔데 안 줘? 가자. 내가 가져다 줄게!”어른 한명과 어리애가 말을 하며 거실에서 나오는 순간 우인나와 마주쳤는데, 인나는 너무 놀라 두 눈만 깜빡였다.‘이 두 사람은 누구야? 세준이 노트북은 아무도 못 건드리는 건데, 지금 엄마를 데리고 가서 차지할 생각이야? 그리고 딱 봐도 관상이 착해 보이지 않는 이 아줌마가 방금 뭐라고? 웃기는 자식? 지금 누구한테 웃기는 자식이래?’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았던 인나는 세준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생각에, 화가 더욱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다들 거기 서요!”인나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다가갔고, 강미정은 고개를 돌려 집안에 들어서는 인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당신은 또 누구야?”“그건 제가 묻고 싶네요. 당신을 대체 누구죠? 방금 세준이 노트북을 가지러 간다고 들었는데, 그쪽이 뭔데 세준이 노트북을 건드려요?”강미정은 이 여자가 트집을 잡으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우리 집안일에 외부인이 뭔데 끼어들어?”강미정은 인나의 얼굴에 침을 튀겼고, 인나는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터뜨렸다.“하참, 외부인? 어디서 굴러먹다 온 인간이 나랑 하영이 사이를 알고나 지껄여요?”강미정도 인나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네년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뭐라하는 거야?”“그럼 그쪽은 무슨 자격으로 우리 하영이 집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는 거죠?”“퉤!”강미정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우인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교양도 없는 년이, 어디 다시 한번 지껄여 봐!”얼굴에 구린 냄새와 함께 진득한 게 느껴지자 인나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정유준이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하영의 집에 얹혀사는 그 성가신 친척이지.”“지난번에 레스토랑에서 봤던 그 인간들?”유준의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에 웃음기가 스쳤다.“맞아. 두 사람이랑 가깝게 지냈으면서 가서 도와주지 않아?”현욱은 갑자기 그 말이 듣기 싫었다.“너는 왜 안 가?”사이를 따지고 보면 유준과 하영이의 오랜 감정이 자신과 우인나보다 깊었으면 깊었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게다가 오늘 오후 우인나 발길에 하마터면 고자가 될 뻔하지 않았는가?정유준은 술잔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내가 그래도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인데, 어떻게 여자랑 싸우겠어?”‘이제서야 자기가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 타락해서 5년 동안 강하영을 찾아다닐 때는 몰랐나 봐?’현욱은 유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너는 여자랑 싸울 수 없는데, 나는 괜찮다는 말이야?”유준이 그런 현욱을 힐끗 쳐다봤다.“그래도 너는 여자들이랑 친하게 지냈으니까, 여자의 약점을 가장 잘 알잖아.”“지금 그거 칭찬이야?”현욱의 잘생긴 얼굴에 경련이 일기 시작했고, 잠시 뒤에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됐어, 말 돌리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설득이 안 되면, 무력을 행사해야지. 정말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손을 써도 돼. 나머진 내가 다 책임져 줄게.”“아니, 지금 나더러 여자랑 싸우라는 거야? 정유준,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네 아버지 쪽에…….”유준이 느릿한 동작으로 술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지금 당장 갈게!”현욱이 급히 아크로빌로 도착했을 때, 인나와 하영이 마침 별장을 나서고 있었다.하영은 갑자기 나타난 현욱을 보며 의외라는 표정으로 인나에게 물었다.“현욱 씨가 너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인나도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나도 얘기한 적 없는데, 어떻게 찾아왔는지 누가 알아?”현욱은 두 사람을 발견하고 얼른 차에서 내
인나는 아크로빌을 떠났고, 현욱도 그런 인나의 뒤를 따라가다가, 인나의 월셋집에 도착해서 차를 멈췄다.인나는 그런 현욱을 무시한 채,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막 층수를 누르고 있을 때 현욱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 들어오자 인나가 눈을 크게 뜨고 뭐라고 쏘아붙이기 시작했다.“배현욱 씨, 당신 정말 미쳤어요……, 읍…….”말이 채 끝나기 전에 현욱이 인나의 머리를 잡고 입술을 덮쳤고, 인나가 벗어나려 하자 현욱은 그녀의 두 손을 꽉 잡아 자기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입술을 뗀 현욱은 약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인나 씨, 좋아해요.”현욱의 말에 인나는 깜짝 놀랐다.“뭐라고요?”“내가 인나 씨를 좋아하게 됐다고요!”현욱의 진지한 말에 인나는 잠시 당황하더니,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이 말 현욱 씨가 먼저 한 거예요!”인나는 바로 현욱의 넥타이를 잡아당겨 먼저 키스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한창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밖에서 갑자기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노인은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놓쳐버리고 말았다.“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인나와 현욱은 동시에 서로 깜짝 놀라더니, 노인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상대방의 몸에서 떨어졌다.그 모습에 노인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계속해…….”“…….”수요일, MK.허시원은 알아낸 정보들을 정유준에게 보고했다.“대표님, 캐리가 묵고 있는 별장의 주인은 영국에 있는 리사라는 여성입니다.”그 말에 유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리사?”“그러니까 영국의 방직 왕으로 불리는 여성이고, 현재 유럽 전체의 원단 시장을 독점하고 있습니다.”허시원의 말에 유준의 눈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지금까지 두 사람이 나오는 건 본 적이 없고?”“네, 식사나 생필품도 도우미가 나와서 구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우미를 미행한 적이 있는데 성인용품도 구매하더군
말을 마친 하영은 수진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지만, 아쉬운 건 임수진이 여전히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네.”라고 대답했다.하영은 시선을 거두고 수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수고 좀 해줘. 회사 사정이 좋아지면 월급 올려줄게.”“감사합니다, 대표님.”하영은 급히 아크로빌로 돌아와 지영을 데리고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으니, 지영도 만족이라는 듯 고분고분 약을 먹었다.하영은 지영의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지영 언니, 집에만 있으니 답답한 건 이해하겠는데, 저도 출근해야 해요. 매주 주말마다 오늘처럼 같이 밖에 나와 놀고, 저녁에 시간 되면 같이 산책하는 건 어때요?”지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하영 씨, 오늘 내가 하영 씨 일을 방해한 거예요?”“네.”하영은 지영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솔직히 대답했다. 또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확실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렇지 않으면 지영이 매번 이런 식으로 나오면 회사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으니, 공과 사는 분명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그러자 지영이 고개를 푹 숙였다.“하영 씨, 나는…….”“지영 언니, 언니도 지금 제 사정을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방금 제가 말이 좀 심했어요.”하영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지영 언니도 약속을 잘 지킬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렇죠? 제가 돈을 벌어야 맛있는 것도 사드릴 수 있잖아요.”지영은 하영의 말에 입술을 오므렸다.“그러니까 하영 씨가 매일 이렇게 나랑 놀아줄 수 없다는 거죠?”“네, 주말만 휴식할 수 있거든요.”지영은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앞으로 하영 씨 일하는 데 방해하지 않을게요.”하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네, 이따가 저랑 같이 애들 데리러 가요.”그 말에 지영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좋아요! 우리 세준이와 세희 데리러 가요!”저녁.하영이 지영과 함께 유치원에 애들을 데리러 갔다. 유치원 입구엔 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