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갑자기, 양다인이 술집 룸에서 섹시한 끈나시 차림으로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 화면에 나타났다.끈나시는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섹시한 엉덩이를 덮었고, 가면을 쓰고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었다.그러더니 양다인은 어깨 위에 걸쳐진 끈나시 끈을 내리더니 알몸으로 남자한테 다가가 무릎을 꿇더니, 손을 뻗어 남자의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그 광경에 양다인의 비서가 얼른 제정신을 차리고, 뚫어지게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부사장을 보며 고함쳤다.“진소영 부사장님, 당장 끄지 않고 뭐 하고 있습니까?”소파에서 거의 잠들 뻔했던 양다인은 비서의 고함에 불쾌한 표정으로 눈을 뜨고 비서를 째려보았다.“소리 지르지 말고 그 입 좀 닥치지 그래?”비서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가리켰다.“대, 대표님. 저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양다인은 밀려오는 짜증에 시선을 거두고 화면을 돌아보는 순간,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양다인이 화면 속의 여자가 누군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가 해외에서 돈 많은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했던 행동들이었으니까.두 주먹을 꽉 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양다인의 가슴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부사장은 온몸을 덜덜 떨며 얼른 화면을 끄려고 아무리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려 봤지만, 화면을 멈출 수 없었다.“진소영! 당장 끄지 못해? 끄란 말이야!”양다인은 일그러진 얼굴로 부사장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고, 진소영은 거의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대, 대표님. 화면을 끌 수 없습니다. 대표님! 이건 절대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당장 선을 뽑아버려요!”비서의 고함에 부사장이 선을 뽑아버렸지만, 여전히 화면은 꺼지지 았았다.비서는 재빠르게 상단으로 올라가 리모컨으로 정지 버튼을 눌렀고, 화면이 마침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에서 멈춘 동시에 또 글자가 나타났다.[양다인 대표님, 3번의 스톱 기회를 획득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진소영이 아무리 설명해도 지금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노트북을 케이블에 연결하자마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전혀 통제를 할 수 없었다.“아직도 모르는 일이라고?”화가 난 양다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소영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녀의 얼굴을 잡고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다시 한번 물어볼게. 정말 몰랐어?”“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기술팀에 제 컴퓨터를 조사하라고 해도 돼요…….”“짝-”진소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다인이 그녀의 뺨을 내려쳤다.“노트북도 네가 갖고 온 거고! PPT도 네가 준비했잖아! 그런데 모르는 일이라고?”진소영은 더욱 흐느끼기 시작했다.“양다인,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데, 내가 이 회사로 들어와 너를 도와줬는지 잊었어? 우리 친구잖아. 아무리 나를 못 믿어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나를 모욕할 수 있어?”“관계?”양다이는 소영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웃었다.“밑바닥에서 뒹구는 너 같은 애가 나랑 지금 관계를 논하는 거야? 거울을 보면서 네 꼴을 좀 봐봐. 너한테 알량한 재주라도 없었으면 내 곁에 두지도 않았어!”“뭐, 뭐라고?”진소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양다인은 피식 웃었다.“어차피 너의 컴퓨터에서 유출된 거니까, 마땅히 네가 책임을 져야지!”그 말에 소영은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그게…… 무슨 뜻이야?”양다인은 싸늘한 표정으로 소영을 보며 소리쳤다.“경호원!”그때 경호원 몇 명이 밖에서 우르르 들어왔고, 양다인은 경호원을 힐끗 보며 입을 열었다.“이 여자를 마음대로 해도 좋아. 절대 마음 약해질 것도 없어.”그때 진소영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양다인!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이러면 안 되잖아!”양다인의 잔혹한 미소에 절망을 느낀 진소영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양다인! 용서할 수 없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다인의 눈빛에는 비웃음이 가득 찼다.‘대단한 해커라도 찾
“팔로워 수가 뭔데?”뭔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묻는 미정이한테 강백만이 설명하기 시작했다.“엄마, 그러니까 내가 인터넷에서 조금은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됐다는 얘기야!”“그게 뭔데?”“돈이 된다는 뜻이지!”이해를 못 하는 미정을 향해 강백만은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엄마도 SNS로 인플루언서들이 제품 판매하는 걸 자주 보잖아. 우리도 그렇게 하는 거야! 나중에 강하영 그년이 우리한테 또 돈을 준다는 보장은 없잖아. 일단 강하영을 이용해서 자급자족하는 거야!”“그러니까 인터넷으로 물건을 판다는 거지?”강미정은 그제야 이해한 듯 보였다.“맞아! 집에서 생산하는 계란이랑, 밭에 있는 고구마, 감자 등 모두 팔 수 있잖아!”“우리 아들!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돈으로 바꿀 방법이 이렇게 빨리 생길 줄 몰랐어!”강미정은 벌써 흥분하기 시작했다.“엄마, 내가 요즘 집에 내려가서 그것들을 전부 여기로 가져올 테니까 우리도 라이브 방송을 해보자! 어차피 여기 집도 크고 빈방도 많은데, 엄마가 요즘 또 집을 사 달라고 계속 얘기 좀 해 봐! 여기 별장 구역도 좋은 것 같아. 마침 저기 옆에 비었잖아. 앞으로 밥 얻어먹으러 오기에 편할 것 같은데.”미정은 격동된 표정으로 강백만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역시 우리 아들이 제일 똑똑하다니까.”“당연하지! 강하영 그년을 평생 뜯어먹어도 절대 우리를 어쩌지 못할 거야!”저녁.양다인은 정주원한테서 저녁에 시간 괜찮으면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는 문자를 받았다.그 문자에 바로 기분이 들떠버린 양다인은 서둘러 스타일리스트를 회사로 불러 메이크업을 받고 예쁘고 섹시한 원피스로 갈아입은 뒤, 높은 구두를 신고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기술팀 직원들은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양다인의 모습에 좀처럼 두서를 잡을 수 없었다. 마치 오늘 망신당한 사람이 본인이랑 상관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양다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나자, 직원들은 그제야 한자리에 모여서 수군거렸다.
양다인은 그렇게 무방비한 상태로 하영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가 됐고, 딱한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힐끔거리며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하영은 두 아이가 이런 식으로 자기 대신 화풀이를 해줄 줄 몰랐는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 새끼들이 진짜!”양다인이 욕설을 퍼부으며 고개를 쳐들었지만, 뜻밖에 하영이 앞에 우뚝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양다인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하영이 그런 양다인의 어깨를 누르면서, 몸을 굽혀 입을 열었다.“우리 애들이 실수로 부딪친 것 같은데, 마음이 너그러운 네가 충분히 이해해 주겠지?”말을 마친 하영은 양다인의 어깨를 움켜쥔 손끝에 힘을 주기 시작하더니, 다시 평온한 얼굴로 양다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지금 보는 눈이 많으니까, 너의 숙녀 이미지 챙겨야지.”양다인은 두 눈에 쌍불을 켜고, 떨리는 입술로 울기보다 더 흉한 표정으로 억지로 웃으며 이를 악물었다.“그래, 내가 어떻게 애들한테 뭐라 할 수 있겠어?”“그럼 됐어. 우린 먼저 올라갈 테니까, 나중에 인연이 되면 또 봐.”하영이 애들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양다인은 화가 치밀어 올라 손톱이 살갗을 뚫을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정주원 씨만 여기 없었어도 절대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양다인은 얼른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는 고통을 참으며 정주원이 예약한 룸으로 향했다.문 앞에 도착한 양다인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바로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린 정주원은 양다인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신사답게 의자를 빼주었다.그리고 상냥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양다인에게 묻기 시작했다.“길이 많이 막히죠?”“잠깐 막혔을 뿐이에요. 오래 기다렸어요?”양다인이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정주원이 갑자기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깜짝 놀란 양다인은 정주원의 커다란 손에서 전해져 오는 따스한 온기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정주원 씨
주원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회사 오픈은 잘 됐어요?”양다이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만 떠올리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전혀 그런 내색은 내지 않았다.“그럼요. 유준 씨, 혹시 실례지만 제가 뭐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양다인은 예전에 정유준과 결혼한 사이인데, 정주원이란 남자가 정말 자기를 모르는지 떠보려 했다.‘아무리 모른다고 해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거 아냐?’“정유준 씨는 정씨 집안 사람이죠?”양다인의 물음에 주원은 손가락을 움찔했다.“네, 그렇지만 신분은 나한테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서요.”양다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럼 정유준 씨는 제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씀인가요?”“아버지 때문에 장기간 해외에 있어서 국내에서 일어난 사실들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말을 마친 주원이 고개를 들며 웃었다.“그렇게 묻는 건 혹시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이상하네, 그래도 친형제인데 정유준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단 말이야?’설령 몰랐다고 해도 여기까지 말을 꺼낸 이상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으니, 미리 얘기하면 정주원이 신경이야 쓰겠지만, 그녀의 인품만은 인정받을지도 모른다.정주원이 지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도, 양다인은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그에게 접근할 자신이 있었다!“저 정유준 씨랑 결혼했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양다인의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주원의 표정에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주원의 표정은 곧 평소대로 돌아왔다.“우리 막내동생이 양다인 씨를 아껴주지 못한 점에 대해 대신 사과할게요.”양다인은 주원이 완전 격이 다른 남자라며 속으로 깜짝 놀랐다.“양다인 씨랑 막내 동생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거든요.”주원의 말에 양다인의 마음이 편안해졌다.“그동안 속여서 미안해요.”“숨기는 게 당연하겠죠. 그런데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강미정은 하영의 손목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또 다른 속셈을 품고 있다가, 하영의 말에 어느새 손목시계는 까맣게 잊은 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아휴,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당연히 써야지!”강미정은 고작 계약서 하나로 집 한 채와 바꿀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고 생각했다.게다가 집문서는 그녀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하영이 절대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여겼다.“좋아요. 내일 아침 변호사 부를 테니까, 사인만 하면 돼요. 사인만 끝내면 사드리죠.”강미정은 보물이라도 건진 듯, 지금은 하영의 모든 게 좋게 보였다.“하영아,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네 고모인데,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으면 싸우는 일도 없었잖아…….”수문이 고장 난 것처럼 강미정의 말은 끝없이 쏟아져 나왔고, 하영이 딱 잘라 말을 끊고 나서야 끝이 났다.침실로 돌아온 하영은 변호사한테 문자를 보내며, 계약서에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꼭 넣으라고 당부했다.다음 날 아침.하영이 일어났을 때 마침 집을 나서고 있는 강백만과 마주쳤다.강백만은 하영이 집을 사준다는 소식을 알았는지 아주 예의 바른 태도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하영아, 나 고향에 잠시 다녀올게!”강백만의 말에 하영은 웃는 얼굴로 답했다.“조심히 다녀오세요.”“하하, 앞으로도 우린 가족이잖아. 내가 올 때 특산품을 사다 줄게.”“그것참 고맙네요.”강백만은 하영의 비웃음 섞인 조롱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나섰다.강백만은 바로 버스터미널로 향하지 않고 자동차 대리점으로 향했다.이번에 도시로 올라올 때 마을 사람들 전부 강씨 집안은 이제 돈벼락을 맞았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했는데,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면 한바탕 비웃음을 살 게 분명했다.강백만은 택시를 타고 포르쉐 대리점으로 향했다.그리고 한 바퀴 구경하더니 TYC 회사의 명의로 포르쉐 카이엔을 한 대 구입하고 나서야 즐거운 심정으로 고향에 내려갔다.하영이 자동차 대리점에서 보내온 문자를 확인
소씨 집안.잠에서 깬 양다인이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 어두운 표정의 소 노인과 소예준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양다인은 예준을 힐끗 쳐다보고는 속으로 몰래 비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소 노인은 분명 예준을 혼내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양다인이 느릿느릿하게 계단을 내려오자, 인기척을 들은 소 노인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쳤다.“당장 내려오지 못해?”소 노인의 호통에 양다인의 발걸음이 멈칫하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할아버지, 지금 저한테 하신 말씀이세요?”“그럼 우리가 지금 누굴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거냐?”소 노인의 성난 목소리에 양다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에,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소 노인 곁으로 다가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할아버지, 왜 그러세요?”소 노인은 곁에 있던 사진을 집어 들어 양다인 몸에 힘껏 내던졌다.사진이 흩어지며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화면들이 눈에 들어왔고, 사진 속에 있던 사람도 다름 아닌 양다인이었다.양다인은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온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이번엔 또 무슨 낯짝으로 변명할 거야?”소 노인은 잔뜩 화난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회사가 개업하자마자 너의 더러운 사생활을 회사 직원들이 다 알아 버렸어!”양다인은 소 노인의 욕을 고스란히 들으면서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양다인은 고개를 번쩍 쳐들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예준을 노려보았다.“오빠야? 오빠가 할아버지한테 얘기한 거야?”“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소 노인은 양다인이 모든 일을 예준한테로 떠넘기려는 것을 보고, 손에 들린 지팡이로 양다인의 등을 사정없이 내려쳤다.“아악!”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통이 엄습하자 양다인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고, 예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양다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할아버지께서 아침부터 알고 계셨더라고, 내가 얘기한 거 아니야.”양다인은 고
“매번 그런 식으로 얘기해 놓고 언제 제대로 한 적이 있었어? 이제는 사람까지 죽여?”양다인은 벌벌 떨며 무릎을 꿇은 채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앞으로는 뭐든 할아버지 동의를 걸치고 행동할게요. 네? 그러니 제발 살려주세요.”소 노인은 답답한 눈으로 계속 눈물만 흘리는 양다인을 바라보더니,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소예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이번 일은 여기서 그만하자꾸나. 너도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고 있어.”“네, 그럴게요. 할아버지 생신날 제가 도와드리러 다시 올게요. 이만 가보겠습니다.”예준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예준이 떠나자 소 노인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는데, 그 내용인즉슨 양다인 곁에 있던 경호원들을 경찰서에 넘기라는 뜻이었다.소 노인의 목적은 양다인은 이번 일과 전혀 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저녁 무렵, MK.인나는 회사에 나서자마자 차 안에 있는 현욱과 마주쳤다.차 안에서 한참 동안 인나를 기다렸던 현욱은 우인나를 발견하고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인나 씨!”현욱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인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인나는 무시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현욱은 빠르게 인나 곁으로 달려와 그녀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인나 씨, 아직도 지난번 일로 화난 거예요?”인나는 그런 현욱을 힐끗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용건만 빨리 얘기했으면 좋겠네요.”“그게 아니라 나는 인나 씨한테 사과하러 온 겁니다.”“현욱 씨 사과 따위 필요 없어요. 사과라니, 정말 송구스럽네요!”인나가 싸늘한 말투로 거절하고 점점 걸음이 빨라지자, 현욱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알았어요. 내가 다 잘못했고,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인나는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고 비꼬는 듯한 표정으로 웃어보였다.“이봐요, 처음이 있다면 다음번도 있다는 얘기 못 들어 봤어요? 그렇게 좋은 친구를 뒀으면서 차라리 친구랑 같이 살지 그래요?”“생각해 봐요. 내가 내 친구마저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면, 앞으로 내 여자를 어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