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 집에 들어와 살라고 강요했어? 게다가 회사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잖아.”강하영이 웃으며 농담을 건네자 캐리가 씩씩거리기 시작했다.“너 정말 인정머리라곤 하나도 없어! 참, 요즘 회사는 잘 돌아가?”“그럼, 네가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어.”강하영은 계속 농담조로 얘기했다.“됐어. 그런 식으로 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내 위치를 굳이 확인 사살 시켜주지 않아도 돼. 그 못된 놈은 요즘 안 찾아와?”“찾아왔지! 8시쯤에 네가 어떤 미인을 껴안고 있는 사진도 보내 주던데?”“헐! 마수의 손길을 영국까지 뻗은 거야? 그럼 내가 예전에 우리가 사귀는 사이라고 속이려 한 것도 다 헛수고네!”“???”얘기를 들으니, 얼마 전부터 캐리가 약을 잘못 먹었는지 정유준한테 미친 소리를 해대던 것이 떠올랐다.“다음부터 무슨 일 하기 전에 미리 나랑 상의하고 해. 어설프게 들켜버리면 서로 어색해지잖아.”“사장님의 분부인데 당연히 따라야지.”헤헤 웃으며 대답하는 캐리의 모습에 강하영도 웃음을 터뜨렸다.“알았으니까 나 이만 자야겠어. 볼일 봐.”다음날.강하영은 아침부터 부진석의 전화를 받았다.“깼어?”웃으며 묻는 부진석의 목소리에 강하영은 눈을 비비며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제 겨우 6시였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진석 씨 전화 덕분에 깼어. 무슨 일이야?”“괜찮으면 내려와서 문 좀 열어줄 수 있어?”그 말에 깜짝 놀라 침대에서 내려온 강하영이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열어젖히니, 예쁜 샴페인 색의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서 있는 부진석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옅은 색의 트렌치코드와 아주 잘 어울렸다.“지금 바로 갈게.”강하영이 경탄하며 아래층에 가서 문을 열고, 꽃다발을 들고 있는 부진석을 보며 물었다.“오늘 무슨 특별한 날이야? 웬 꽃 선물이야?”부진석은 장난기가 섞인 눈빛으로 하영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생일 주인공이 자기 생일마저 잊어버리다니, 대체 얼마나 바빴던 거야?”말을 마치고 부진석은 꽃다발
목걸이를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강하영은 부진석이 들어오는 소리도 전혀 듣지 못했다.그러다가 부진석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아침밥 준비해 달라며?”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는지 강하영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농담이야, 오늘 내 생일도 아니잖아.”부진석이 가볍게 웃자, 강하영은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굳이 생일을 쇠고 싶지 않아. 이따가 우인나를 집으로 불러서 밥이나 먹을까? 떠들썩하고 좋을 것 같아.”“그래.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도와줄게.”“좋아.”강하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부진석은 하영의 어깨를 잡아 몸을 돌렸다.“그럼 우리 주인공 씨는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강하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주방에서 쫓겨났고, 아래층에서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아예 위층으로 올라가 애들을 깨웠다.애들을 데리고 세수를 마친 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부진석은 이미 아침상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었다.세희는 부진석을 보고 흥분하며 얼른 앞으로 뛰어갔다.“진석 아빠! 보고 싶었어요. 요즘 왜 놀러 오지 않았어요?”부진석은 세희를 안아 들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세희의 콧등을 쓸었다.“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세희는 작은 손을 내밀어 부진석의 목을 껴안았다.“네, 완전 보고 싶었어요.”강세준은 주방 계단에 기댄 채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그런데 네가 진석 아빠 얘기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강세희는 갑자기 몸을 곧게 펴고 세준을 노려봤다.“오빠는 가만히 있어! 왜 자꾸 듣기 싫은 말만 하는 거야!”강세준은 입가에 우아한 미소를 띠고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래? 그럼 한 가지만 물을게. 너 엄마 사랑해?”“그건 너무 유치한 질문이잖아!”강하영은 세준을 향해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홱 돌렸다.“유치하다고? 그럼, 오늘 엄마 생일인데 선물은 준비했어?”“어……?”세준의 말에 세희의 몸이 굳어져 버렸다.“오늘 엄마 생일이야?”“몰랐어
부진석의 설명에 강하영은 그제야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니었으면 진석 씨 생일에 뭘 선물해야 할지 엄청 고민했을 거야.”“우리 사이에 괜히 남처럼 대할 필요 없잖아.”부진석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하자 강하영은 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그게 아니라, 진석 씨가 너무 귀한 선물을 줬잖아.”“됐어, 농담이야. 일단 병원에 갔다가 저녁에 다시 축하해 줄게.”“그래.”점심.강하영이 하던 일을 마무리했을 때, 마침 우인나가 전화를 걸어왔다.“하영아! 생일 축하해!”우인나의 밝은 목소리에 강하영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고맙긴! 너는 저녁에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 없어. 내가 호텔 예약해 뒀으니까, 거기서 축하 파티 열자.”“그냥 생일일 뿐인데 그 정도로 거창할 필요 없어.”“그건 안 되지! 귀국하고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니까 반드시 성대하게 축하해야지!”“…….”‘누가 들으면 팔순 잔치인 줄 알겠네.’“알았어. 그럼 생일을 핑계로 아주 바가지를 씌워줄게.”강하영은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그럼, 저녁에 봐! 이따가 주소 보내줄게.”우인나는 전화를 끊은 뒤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배현욱에게 문자를 보냈다.“배현욱 씨, 지금 어디예요?”정유준과 함께 밥먹으려고 MK에서 기다리고 있던 배현욱은 우인나의 문자에 바로 답장을 보냈다.“MK에 있어요, 무슨 일인데요?”“잘됐네요! 이따 백화점까지 태워다 줘요.”“대체 왜요?”“오늘 하영이 생일이라 선물이랑 케이크 좀 주문하려는데 차가 없어서요! 언제든 부르면 달려와 준다면서요!”우인나는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남자가 돼서 왜 여자보다 질문이 더 많아?’문자를 확인한 배현욱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오늘 강하영 씨 생일이라고? 유준이는 아마 알고 있겠지?’배현욱은 슬쩍 떠보기로 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유유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뗐다.“유준아, 오늘 계획이 어떻게 돼?”정유준은 그런 배현욱을 힐끔 쳐다봤다.“할 얘기 있으면 바로 해
그 한마디 말 때문에 정유준은 배현욱의 손에 이끌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인나와 함께 백화점으로 향했다.배현욱의 말은 쉽고 직접적이었다.“여자는 여자가 제일 잘 알지!”그 말에 정유준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우인나는 뒤에서 수많은 경호원의 시선 속에서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가는 내내 배현욱을 노려보다가, 앞장서고 있는 자기 상사를 보고 낮은 목소리로 이를 갈며 물었다.“대표님은 대체 왜 부른 겁니까!”뒤에서 속삭이는 소리에 정유준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우인나는 바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정 대표님, 저한테 혹시 묻고 싶은 거라도 있나요?”“…….”우인나의 이중적인 모습에 배현욱은 어이가 없었다.‘어떻게 표정이 바로 바뀔 수 있지?’정유준은 꾹 다문 입술로 시선을 거둔 뒤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고, 우인나는 그 틈을 타 배현욱의 엉덩이를 세게 꼬집었다.갑자기 엉덩이에 밀려오는 고통에 배현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그러니까 대체 왜 대표님을 불렀냐고요! 하영이가 대표님을 상대하지 않는다는 거 몰라요?”“유준이가 먼저 나한테 얘기를 꺼냈는데, 친구로서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우인나의 입꼬리가 마구 씰룩거렸다.“설마 대표님께서 저녁에 하영이 생일 파티에 참석하는 건 아니겠죠?”“우인나 씨가 유준이를 안 데려갈 수 있겠어요?”배현욱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가 졌어요!”한참 투덜거리고 있는데 정유준이 쥬얼리 샵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하영이가 이런 걸 좋아할까?”“안 좋아해요.”정유준이 우인나에게 묻자, 우인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유준은 또 명품 가방 매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그럼 이건?”“아니요.”이번엔 명품 시계 매장에 도착했다.“이런 건??”“그것도 안 좋아해요.”우인나가 계속해서 고개를 저으니 정유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대체 뭘 좋아하는데?”배현욱은 그런 정유준을 보더니 얼른 입을 열었다.“
진석과 하영은 우인나를 따라 자리에 앉았고, 세 사람이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귓가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세상에, 정유준 대표님과 배현욱 대표님이셔!”“우와! 정유준 대표님 품에 안긴 아이가 아드님이야? 너무 귀엽잖아!”사람들의 환호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진 하영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검은색 하이웨이스트 슈트를 차려입은 남자가 귀여운 남자아이를 품에 안은 채, 긴 다리를 자랑하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뒤를 따르던 경호원들은 정유준이 연회장에 들어서자 양쪽으로 줄을 지어 서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입구를 지켰다.연회장의 화려한 조명을 한 몸에 받은 남자의 매력적인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 잘생긴 외모에 싸늘한 한기를 풍기고 있어서 사람들은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눈을 크게 뜬 채 말문이 막힌 하영은 뻣뻣한 자세로 인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네가 초대한 거야?”하영의 물음에 우인나는 멀리 서 있는 배현욱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배현욱 저 나쁜 자식이 얘기한 거야! 오늘 당한 배신, 언젠가 꼭 갚아 줄 거야!”“됐어, 왔으니까 할 수 없지.”하영은 조금 난처했지만, 그래도 희민을 데리고 왔으니 상관없었다. 희민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었으니까.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정유준과 배현욱이 하영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정유준의 품에서 내려온 정희민은 하영의 앞으로 다가와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내밀며 쑥스러운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엄마, 생일 축하해요.”희민의 축하에 하영의 표정이 부드럽게 펴지기 시각했다.“고마워, 우리 아들.”“강하영 씨, 생일 축하해.”“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배 대표님.”배현욱도 준비한 선물을 내밀자, 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받았다.“별말씀을.”배현욱이 곁에 있는 정유준을 툭툭 치며 얼른 선물을 주라고 눈치를 보내자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부진석을 한번 쓱 훑어본 뒤 하
하영도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다들 이렇게 축하해 줘서 고마워요.”인사를 마친 하영은 술잔을 들고 원샷을 했고, 정식으로 생일 파티가 시작되자 모두 즐겁게 먹고 마시며 떠들기 시작했다.세희와 세준도 달려와 희민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희민의 손을 끌고 밥 먹으러 갔다.부진석은 하영의 술을 대신 마셔주려 했지만, 한 남자 직원이 물어볼 것이 있다면서 그를 끌고 다른 곳으로 갔다.한 모금씩 술을 마시던 하영의 붉고 도톰한 입술은 술에 촉촉이 젖어 더욱 매혹적으로 빛나기 시작했다.촉촉하게 빛나는 그녀의 눈망울은 곁에 앉아있던 남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강 대표님, 생일 축하드립니다!”하영이 자리에 앉으려 할 때, 또 여직원 2명이 다가와 술을 권했고, 직원들의 성의를 거절하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다시 잔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그녀의 앞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하영이 미처 반응하기 전에 정유준은 그녀의 잔을 뺏앗아 들어 원샷을 했고, 두 여직원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자리를 벗어났다.“이제 그만 마셔.”“신경 쓰지 마세요.”정유준이 술잔을 툭 내려놓으며 불쾌한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자, 술을 좀 많이 마셨던 그녀는 약간 취기가 오른 말투로 답하고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화장실에서 나와 손을 씻고 문을 열고 나오려던 순간 남자가 이미 문 앞에서 하영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하영은 비틀거리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고 애쓰며 매혹적인 입술로 정유준을 향해 쏘아붙였다.“정 대표님, 여기는 여자 화장실이잖아요. 변태로 오해받고 싶어요?”“너 많이 마셨어. 집에 데려다줄게.”정유준은 손을 뻗어 비틀거리는 하영의 몸을 잡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지만, 하영은 그런 정유준의 손을 바로 뿌리쳤다.“이것 놔요! 절대 당신이랑 같이 가는 일은 없을 테니까.”“그만 좀 해. 너 지금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알아?”화를 억누르며 낮은 소리로 얘기하는 정유준을 향해 하영이 웃으며
하영이 자리로 돌아가자 우인나가 흥분하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하영아, 뭐라고 얘기 좀 해봐. 배현욱 이 인간이 계속 술을 빼잖아, 저 인간 술잔 좀 봐…….”반쯤 말하던 우인나는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하영을 쳐다봤다.“하영아, 입술이 왜 그렇게 부었어?”배현욱은 우인나의 말에 금방 자리로 돌아온 정유준을 쳐다보니, 그의 입술에 빨간 립스틱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뭔가를 깨달았다.‘두 사람, 분명 나쁜 짓을 하다 온 게 틀림없군!’하영은 불쾌한 기색으로 기분이 좋은지 자리에 앉아 웃고 있는 남자를 보며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괜찮아. 알레르기 반응인가 봐.”“그래? 그럼 너는 술 마시지 마.”우인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계속해서 하영에게 투덜거리며 배현욱을 비난했다.파티가 끝난 뒤, 하영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우인나와 잠이 든 두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다.“집에 데려다줄게.”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정유준과 부진석이 거의 이구동성으로 하영을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하는데, 상황은 다시 한번 불편한 분위기에 빠졌다.“부진석 씨, 내가 방금 본 게 맞다면 그쪽도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까?”정유준의 가시 돋친 발언에 부진석은 부드럽지만 강한 말투로 답해줬다.“술을 마셨으니, 대리기사를 불러 데려다주면 되잖아요. 안 그렇습니까?”부진석의 말에 정유준은 코웃음을 쳤다.“11월의 쌀쌀한 밤에 밖에서 대리기사를 기다리게 할 겁니까?”“꼭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우인나 씨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인나 씨부터 먼저 데려다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숙취해소제 사주면 되니까 괜히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하영은 두 남자의 다툼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막 뭐라 얘기하려 할 때, 그들 곁으로 갑자기 차 한 대가 멈춰 섰다.모두의 시선이 그 차로 향했을 때, 황급히 차에서 내리는 소예준의 모습에 하영은 깜짝 놀랐다.“출장간 거 아니
아크로빌.집으로 돌아온 뒤 소예준은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고, 하영은 잠든 두 아이를 대충 씻겨준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와 식탁에 앉았다.“하영아, 저녁에 왜 정유준도 거기 있었어?”소예준이 정유준을 언급하자, 하영은 문득 그가 자신을 화장실로 끌고 가 강제로 키스하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배현욱 씨가 정유준 씨한테 얘기해서 온 건데, 몇 천만 원짜리 시계도 선물하더라고.”하영의 말에 소예준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정유준이야.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확실하게 쓰네.”하영은 그릇에 있는 면을 헤집으며 입을 열었다.“오빠, 그런 식으로 자꾸 놀리지 마. 그럴 시간에 앞으로 정유준을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해 보는 게 어때?”소예준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반문했다.“그래?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냐? 유준 씨가 만약 오빠가 나와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그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 분명 오빠를 귀찮게 할 거야.”소예준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그건 큰 문제가 아니야.”“그래도 요 며칠은 조심해.”“그래, 네 말대로 할게.”다음날.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중 문득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잠에서 깬 하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에 서둘러 침실을 나섰다.그때 마침 백지영과 구 선생님도 깜짝 놀라 방에서 나왔다.“하영 씨, 방금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강사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구 선생님에게 당부하기 시작했다.“구 선생님, 일단 지영언니랑 방에 들어가서 절대 나오지 마세요.”구 선생은 얼른 백지영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고, 하영이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와 문을 열자 정 노인이 문 앞에 서 있었다.“정 어르신,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정 노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하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뒤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올라가서 두 아이를 데려와.”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영을 밀치며 위층으로 뛰어올라갔고, 하영은 고통을 참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