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연결되자 하영은 몸이 떨려오는 것을 억누르며 울부짖었다.“오빠! 정 어르신이 세희와 세준이를 데려갔어!”하영의 말에 소예준은 깜짝 놀랐다.“정 어르신이?”하영은 울면서 아침에 있었던 일을 소예준에게 얘기해줬다.“오빠, 나 이제 어떡하지? 정 어르신의 능력이면 세희와 세준이의 출생을 알아내기란 너무 쉬운 일이잖아!”“일단 진정해, 하영아.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보고 곧 연락할게!”말을 마친 소예준은 황급히 전화를 끊었고, 정신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하영은 끝없는 공포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어마어마한 권력을 갖고 있는 정씨 집안을 상대로 내가 뭘 할 수 있지?’소예준이 옷을 입고 정씨 집안으로 출발하려 할 때, 정유준한테서 걸려 온 전화에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야?”“지금 어디야?”“중요한 일 아니면 이만 끊을게.”“강하영의 아이들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어. 그러니까 지금 어디야?”화를 억누르는 듯한 정유준의 말투에서 슬슬 그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의 말에 소예준도 차분하게 이성을 되찾았다.‘어쩌면 정유준이 애들을 다시 데려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소예준이 그에게 위치를 보내주자 반시간 뒤에 정유준이 별장에 도착했고, 소예준이 미처 얘기하기도 전에 정유준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게 된 소예준은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며 표정도 험악하게 구겨지기 시작했다.“미쳤어?”정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예준의 멱살을 잡아 올리고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소예준! 세준이와 세희, 너랑 하영이 아이야?”정유준의 말에 소예준은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왜 세준이와 세희를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거지?’“할 말이 없어졌어? 네놈이 5년 동안 강하영을 숨긴 거지?”정유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예준을 노려보며 위험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고, 소예준은 그런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게 중요해? 네가 강하영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입가의 핏자국을 닦아내는 정유준의 모습은 어딘가 딱해 보였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로 싸늘한 한기를 풍기고 있었다.“하나는 내 친구고, 하는 내가 20년 넘게 찾아다니던 여자였어!”피식 웃던 정유준의 붉게 물든 눈동자에는 감출 수 없는 서글픔이 묻어났다.“그래! 두 사람 아주 좋아!”몇 걸음 뒤로 물러나던 정유준이 말을 마치고 굳은 얼굴로 별장을 나섰다.쓸쓸하게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영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파왔다.“강하영 씨, 대표님께서 5년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허시원은 한숨을 내쉬며 하영을 향해 한 마디 남긴 뒤 정유준 뒤를 따라갔다.하영은 눈을 아래로 드리우며 억울한 마음과 상처받은 눈빛을 감췄다.‘유준 씨는 여전히 변한 게 없어. 여전히 혼자서 오해하고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잖아.’“하영아…….”소예준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면서 바닥에서 천천히 일어나자, 하영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훌쩍이며 예준을 부축해 줬다.“그래, 내가 상처를 치료해 줄게.”소예준은 하영의 곁에 앉았다.“하영아, 네가 그 자식이랑 다시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정말 미친놈이야.”하영은 묵묵히 구급상자를 찾아와 소예준 곁에 앉아 상처를 치료해 주기 시작했다.하영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던 소예준의 마음이 다친 곳보다 더 쓰라렸다.“하영아…….”“그만 얘기해!”하영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을 끊어버리자, 예준도 하영이 약을 다 바를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상처를 다 치료하고 나서야 하영은 움직임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애들 일은 오해하도록 내버려 둬.”하영의 말에 소예준은 쓴웃음을 지었다.“그 미친놈이 설명할 시간을 주지 않더라고, 그래도 정유준이 이번에 우리 집에 와서 행패 부린 것을 빌미로 세준이와 세희를 데려올게.”“됐어, 급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아이를 데려오려고 할수록 의심만 더 사게 될 거야.”하영은 침착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허둥대는 모습은 오히려 빌미만 잡힐
같은 시각, 정씨 집안.세희는 세준의 품에서 끊임없이 흐느끼고 있었지만, 세준은 다섯 살 아이답지 않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 노인은 점점 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만약 이 아이가 정말 유준의 자식이라면 곁에 두고 잘 가르쳐야지. 나중에 어른이 되면 크게 될 놈이야!’정 노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세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얘야. 혹시 네 아빠가 누군지 이 할애비한테 얘기해 줄 수 있겠니?”세준은 세희의 등을 토닥여 주며 도발적인 눈빛으로 정 노인의 물음에 대답했다.“저한테도 질문에 거절할 권리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궁금하시다면 직접 조사해 보세요.”“허이고, 이보게 서씨, 이놈 자식 말투 좀 보게.”정 노인은 어딘가 흥분된 모습으로 집사에게 말하자, 집사는 허둥대며 대답했다.“그러게 말입니다, 어르신. 언행이 꼭 셋째 도련님 판박이군요.”세준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나는 엄마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 쓰레기 같은 아빠의 판박일 수 있어?’정 노인은 더없이 기뻤다.“얘야,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내가 섭섭지 않게 용돈을 쥐여주마.”“그래요? 얼마 주실 건데요?”“네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줄 수 있단다.”도발적으로 눈썹을 치켜올리며 묻는 세준의 말에 정 노인이 호탕하게 대답하자 세준의 눈가에 교활한 빛이 스쳤다.“좋아요. 그럼 이제부터 저의 몸값을 계산해 볼까요? 엄마 회사의 지금 시가가 500억 정도거든요. 저의 아빠가 정유준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알기로 그의 몸값은 이미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고 알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제가 정유준의 아들일 경우 용돈으로 수천억은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초라할 것 같은데.”정 노인은 세준이 이런 식으로 계산할 줄은 생각지 못했는지 깜짝 놀랐다. 어린 나이에 벌써 부모님의 자산으로 자신의 몸값을 환산하다니, 이게 바로 비즈니스 천재가 아니겠는가?“네가 진짜 내 손자라면, 이 정씨 집안 모든 게 다 너의 것이란다!”정 노인의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세희는 아까와는 달리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정 노인과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정 노인은 그런 세희의 태도 변화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세희야, 이제 울다가 지쳤나 보구나.”정 노인의 관심 조로 묻는 말에 세희는 고개를 갸웃했다.“맞아요. 울다가 지친 건 사실이지만, 또 울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어요.”세희의 말에 정노인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무슨 말이냐?”“희민이 오빠가 놀러 온다면 울지 않겠어요. 오빠랑 같이 놀고 싶거든요.”세희는 일부러 세준이가 당부한 말을 특별히 맨 마지막에 강조했다.“고작 그런 일로 안 운다고? 희민이가 놀러 왔으면 좋겠니?”“네, 저는 희민이 오빠가 좋아요.”정 노인은 앞에 있는 시계를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지금은 시간이 늦어서 못 올지도 모르겠구나.”정 노인의 말에 세희는 금방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예쁜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아직 전화도 안 해봤는데, 왜 희민이 오빠가 안 올 거라고 단정짓는 거죠?”정 노인은 하루 종일 울어대던 세희 때문에 머리가 아팠는데, 지금 또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위로하기 시작했다.“아니, 얘야, 착하지? 울지 마. 할애비가 대신 전화해 주마.”정 노인은 인내심을 갖고 세희를 달래기 시작했다. 정씨 집안에 손녀가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기뻤다.“그럼 지금 희민 오빠한테 전화해 보세요! 만약 희민이 오빠가 안 온다면 할아버지 침대맡에서 울 거예요!”“…….”울음을 꾹 참으며 얘기하는 세희의 모습에 정 노인은 할 말을 잃었다.세희의 울음 공격에 놀란 정 노인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정희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걸려 온 시간에 정희민은 한창 멍한 표정으로 정유준 얼굴의 상처를 보며 밥을 먹고 있었는데, 정 노인의 전화에 약간 의외였다.“네, 할아버지.”“희민아,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올래? 여기 세준이랑 세희도 있단다.”정 노인의 말에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
“둘 다 제 아이가 아닙니다!”정유준의 딱딱한 말에 세희는 세준의 손을 꼭 잡았다.“나쁜 아빠는 나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바보였어.”세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정유준의 입꼬리를 주시하며 생각에 잠겼고, 정 노인은 그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그렇다는 건 이미 검사를 해봤다는 얘기냐?”정유준이 막 대답하려는 순간 정 노인이 코웃음을 쳤다.“그렇게 잘난 척하던 네놈한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구나. 세준이 저 아이가 너랑 이렇게도 똑 닮았는데 그래도 네 자식이 아니라고?”정유준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DNA 검사 결과가 틀리기라도 했단 말씀입니까?”정 노인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글쎄, 누군가 양육권을 얻기 위해 손을 썼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내가 우리 정씨 집안의 핏줄인지 확인하기 위해 DNA 검사 기계를 사 오라고 했다.”‘양육권?’정유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설마 강하영이 몰래 친자확인 검사 결과를 조작했단 말인가? 지금의 인간관계를 본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검사 결과는 언제 나옵니까?”“이틀 뒤면 나올 거다.”“그럼 저도 이틀 동안 희민이와 이곳에서 지낼 겁니다.”“네 마음대로 하거라.”저녁 8시 30분.정희민은 샤워를 마치고 세준이와 세희의 사진을 찍어 강하영에게 전송했다.문자를 확인한 강하영은 애들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희민아, 네가 왜 거기 있어?”희민은 세준이 정 노인한테 했던 얘기와 세 사람이 상의한 계획을 강하영에게 얘기해 주자, 하영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동시에 애들의 배짱과 순발력에 마음이 뿌듯해졌다.어쩌면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엄마, 제가 또 문자 보낼게요.”“그래, 꼭 조심해야 돼.”새벽 열두 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희민과 세준은 조심스럽게 방안을 나섰다.두 아이는 아래층에 도착해 DNA 검사 기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정희민이 갖고 온 노트북을 기기에 연결해 수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한 시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네가 정유준 곁으로 돌아가면 돼.”‘정유준 곁에 있으면 정말 애들을 볼 수 있는 걸까?’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도무지 과거를 용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다음 날 점심, MK.정유준을 찾으러 간 배현욱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유준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유준아. 언제부터 네가 직접 싸움까지 했어? 대체 누구야?”배현욱의 놀림에 정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현욱을 째려보았다.“그 입 닥쳐.”배현욱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소파에 앉았다.“대체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걸까? 혹시 소예준?”순간 정유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내가 배 회장님을 찾아가 얘기를 좀 나눠볼까?”“…….”“나도 너를 도와 방법을 생각해 주려고 이러는 거지. 너무 매몰차게 굴지 마.”배현욱이 얼른 말을 돌리자 정유준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네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당연히 필요 없겠지. 그런데 이렇게 보면 강하영 씨 주변에 능력 있는 남자들이 참 많은 것 같단 말이야.”“그 입 닥치지 못하겠으면 당장 여기서 나가!”정유준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자, 배현욱은 얼른 두 손을 위로 들고 투항했다.“그래, 알았어. 오늘은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온 거야.”“얘기해.”배현욱은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정주원이 돌아온 거 알아?”정주원의 이름 석 자에 정유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떻게 알았어?”“어젯밤 위스키 바에서 정주원과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았거든. 너무 오래전이라 나도 확신할 수 없어서 사진을 찍어뒀어.”곧 정유준은 배현욱이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영감이 정주원을 위해 애를 참 많이 쓰셨네. 내가 이 짐승만도 못한 자식을 찾아낼까 봐, 정주원이 다시 출국했다는 거짓 소식을 퍼뜨리다니. 두 사람이 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두고 볼 거야.’YN.양다인
두 사람은 근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을 선택했고, 자리에 앉은 양다인은 남자에게 명함을 건넸다.“제 명함이예요. 양다인이라고 합니다.”남자가 양다인의 명함을 받아 확인하더니 미소를 지었다.“YN회사를 설립한 대표님이셨군요.”“딱히 언급할 만한 일은 아니에요. 그쪽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양다인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묻자 남자가 웃으며, “정주원입니다.”라고 대답했다.‘정…… 정주원?’정유준의 큰형인 정주원이란 이름에 양다인은 깜짝 놀랐다.할아버지한테서 정주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충격을 받은 듯한 양다인의 표정에, 우호적이던 정주원의 눈가에 경멸의 빛이 스치더니 이내 표정을 숨겼다.“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양다인 씨.”정주원의 부드러운 어조에 양다인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아, 아니에요.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TYC.하영은 한창 영업팀과 기획팀이랑 회의를 열고 있었다.영업팀 팀장.“강 대표님, 신제품을 출시하고 지금까지 매출액이 100억을 돌파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곧 두 번째 신제품을 출시해도 될 것 같습니다.”“알겠어요. 고객센터도 반드시 제때 고객들과 소통해야 해요. 그리고 매장 위치는 알아봤어요?”“네, 찾았습니다. 이따가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확인해 보세요.”“좋아요. 모델 쪽도 많이 신경 좀 써주세요. 다음 주까지 확정될 수 있게…….”말이 끝날 무렵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하영의 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임수진의 이름이 뜬 것을 확인하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하영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전화기 너머로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와,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하영은 굳은 몸으로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이 시간이면 수진 씨가 공장에 있을 텐데, 공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때 임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 대표님!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어요! 대부분 노동자는 이미 철수했고, 119도 오는 길이라고 합니다!”임수진의 말
하영은 공장의 화재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직원들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저 사람들도 먹고살아야지. 직장을 잃게 됐으니 당분간은 일자리 찾기 힘들 거야.”“알겠습니다.”하영도 쉬지 않고 경호원들한테 다친 직원들을 근처 병원에 데려다 주라고 분부하고, 취재하러 들어오는 기자들을 막았다.그리고 부상을 입지 않은 직원들과 함께 보상금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MK.허시원이 다급하게 정유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대표님, 강하영 씨 회사에 일이 생겼어요!”허시원은 태블릿 PC를 정유준 앞에 보여주면서 하영의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영상을 보여줬다.“지금 상황은 어때?”“아직은 화재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친 사람들은 이미 병원에 보냈고, 강하영 씨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는 중입니다.”그 말에 정유준의 찌푸려진 미간도 드디어 풀렸다.잠시 강하영이 자기 곁에서 몇 년간 단련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어떠한 돌발 상황에서도 강하영은 언제나 완벽한 해결 방법을 찾던 여자였다.“시청에 전화해서 화재 원인을 다시 조사하라고 해.”“대표님은 누군가 일부러 화재를 일으켰다고 생각하십니까?”“어떨 것 같아? 이제 막 설립한 신생 회사가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건드렸는데, 그들이 급해 나지 않았을 것 같아?”허시원은 TYC와 나란히 서 있는 YN회사로 시선을 돌렸다.“혹시 누군가가 빼앗으려 했을지도 모르겠군요.”허시원이 지금 누구를 얘기하는지 잘 알고 있는 정유준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그게 누구든 절대 가만 놔둬선 안 되지.”그 말을 들은 허시원은 몰래 웃었다.“대표님께서는 여전히 강하영 씨를 신경 쓰시는군요.”정유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허시원을 째려보았다.“쓸데없는 말이 참 많은 것 같네.”허시원은 깜짝 놀라 얼른 태블릿 PC를 챙겼다.“대표님, 그럼 저는 다른 일 때문에 제 사무실로 돌아가겠습니다!”허시원이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가자, 정유준은 몸을 돌려 시선을 창밖으로 보이는 TYC회사로 돌렸다.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