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홍수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물었다.“혹시 강하영?”“맞아. 하지만 증거를 원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과 교환해야 할 거야.”“뭘 원하는데요?”“이 일을 당신한테 알려 주고, 강하영한테 찾아가 배상을 청구하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만 말해.”소예준은 손에 들린 USB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당신이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도 확인할 방법이 있으니까 괜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런데 만약 거짓말을 하거나, 혹은 증거를 손에 넣은 뒤에 또 내 동생한테 찾아가 귀찮게 한다면, 당신은 아마 살아서 김제를 벗어날 수 없게 되겠지. 그리고 또,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당신한테 달렸어.”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강제로 자신을 차에 태울 정도라면 무슨 일을 할 수 없겠는가?‘내가 그 여자의 인간관계를 간과했구나.”“좋아요. 말씀드릴게요. 저한테 전화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통화 기록이 있습니다…….”홍수혁은 솔직히 설명하고 전화번호를 소예준에게 알려준 뒤 입을 열었다.“그럼 이제 배후가 누군지 저한테 얘기해 주고, 증거도 넘기고 저를 보내줄 수 있나요?” “급해하지 마. 확인해 봐야 하니까.”말을 마친 소예준이 차창을 내리고 번호를 경호원에게 넘긴 뒤 누군지 알아보라고 당부하자 몇 분 뒤, 경호원이 소예준에게 보고를 올렸다.“대표님, 양다인 씨가 다른 사람 정보로 등록한 휴대폰 번호였습니다.”경호원의 말에 소예준의 눈가에 싸늘한 한기가 스쳤다.“그래, 알았어.”그리고 USB를 홍수혁에게 건네주었다.“당신 어머니를 다치게 한 사람은 소백중과 양다인이 보낸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당신한테 전화를 걸어 이 일을 얘기해준 여자 말이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서 판단해.” 홍수혁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USB를 받고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대표님, 이대로 그냥 넘겨줘도 괜찮을까요?”소예준은 멀어져가는 홍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 눈엔 내 할아버지가 그렇게 호락호
강하영이 후자를 선택한다면 다시는 희민이를 만날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정유준의 분노를 감지한 허시원은 마음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네, 대표님.”그리고 대표 사무실을 나가려는 순간 정유준이 또 허시원을 불러세웠다.“새로 온 경호원들도 모두 해고하고, 기술팀도 전부 교체해!”그 말에 허시원의 가슴이 떨렸다.‘원래 있던 경호원들은 사모님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미 전부 교체를 하고 김호진 한 명만 남았는데, 오늘 또 강하영 씨 때문에 물갈이를 시작하다니, 이러다간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불안에 떨 것 같은데…….’그래도 허시원은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소씨 집안.양다인을 찾아간 홍수혁은 경호원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자 이번에는 저번보다 경험이 생겼다.“저기 두 분, 저는 소백중 어르신을 만나러 왔으니 부디 말씀 좀 전해주세요. 그저 녹음된 물건을 전해주러 왔다고 얘기하시면 됩니다.”“들어가서 여쭤보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세요.”“따라오세요.” 홍수혁이 밖에서 몇 분 정도 기다리자 경호원이 나오더니 홍수혁을 데리고 커다란 집안으로 안내했다.소씨 집안의 커다란 정원과 어마어마한 면적의 별장을 본 정수혁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별장에 들어선 홍수혁은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는 소 노인을 발견하고 얼른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어르신, 안녕하십니까!”소백중은 고개를 돌려 홍수혁을 힐끗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나한테 전할 물건이 있다고?”소백중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홍수혁도 더는 숨기지 않았다.“그러니까 어르신이 보낸 사람 때문이 제 어머니가 많이 다쳤는데, 그건 어떻게 보상할 생각입니까? 저는 많이는 필요 없고 딱 1억이면 됩니다.”홍수혁은 소 노인의 어마어마한 집안을 보고 금액을 올렸고, 소백중은 싸늘한 눈빛으로 피식 웃었다.“내가 네놈 어머니를 다치게 했다고? 네놈 어머니가 대체 누군데?”“임연수. 바로 강하영의 집에서 도우미로 일
곧 변호사가 도착해 서류를 작성한 뒤에 각자 사인을 하고 나니, 소 노인은 통쾌하게 1억짜리 수표를 홍수혁에게 건네줬고, 홍수혁은 수표를 손에 넣은 순간에도 이렇게 쉽게 1억을 얻을 줄 생각도 못 했다. 홍수혁은 소백중이 보는 앞에서 휴대폰에 든 녹음을 삭제하고, USB도 소백중에게 넘겨준 뒤 수표를 들고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홍수혁이 떠나고 나니 소백중의 안색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고작 하찮은 놈 주제에 나한테서 1억을 뜯어낼 생각을 하다니. 꿈 깨!’소백중은 곁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싸늘한 말투로 지시를 내렸다.“가서 깨끗이 처리해!”“네!”오후.유치원 하원 시간이 되자 강하영은 문 앞에 서서 아이들을 기다렸다.그때 귀청을 찌르는 듯한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검은색 한정판 마이바흐가 하영의 뒤에 멈춰 섰다.이어 허시원이 운전석에서 내려 공손한 자세로 뒷좌석의 문을 열자, 검은 양복을 빼입은 정유준이 강한 카리스마를 뿜으며 차에서 내렸는데, 거뭇거뭇한 눈 밑만 보더라도 최근에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여전히 그 미모를 가리지는 못했다.강하영은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지만 정유준은 하영을 발견하지 못한 듯 곧장 곁을 스쳐 지나갔다.‘지금 바쁜 일 끝내고 애들을 데리러 온 건가?’하영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돌려 애들이 나오기를 기다렸고, 곧 선생님이 한 무리의 꼬마들을 데리고 학교를 나오기 시작했다.한눈에 강하영을 발견한 정희민이 세준과 세희와 함께 앞으로 달려가려던 순간, 정유준의 무뚝뚝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아빠가 왜 온 거지? 게다가 엄마랑 거리를 두고 계시네.’뭔가 불길한 예감이 정희민의 머리를 스치며 어느 쪽으로 발길을 향해야 할지 망설였는데 곁에 있던 강세희가 갑자기, “엄마가 오셨어!”라고 소리를 지르자 강세준이 정희민의 팔을 잡고 입을 열었다.“가자, 희민아. 집에 가야지.”말이 끝나기 바쁘게 허시원이 정희민 앞으로 다가왔다.“작은 도련님, 이제 저희랑 돌아가셔야죠.”
아들의 그런 모습에 강하영은 가슴이 아팠다.‘대체 왜 저러는 거야? 아무리 기분이 안 좋다고 해도 어떻게 애한테 화풀이할 수 있어?’“먼저 아이 생각을 물어볼 수 없어요? 왜 그렇게 독단적으로 결정해요?”강하영의 말에 정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강하영을 힐끗 쳐다봤다. 정유준은 강하영과 그녀의 두 아이를 볼 때마다 머릿속에 강하영이 다른 남자와 침대에서 뒹구는 모습이 저도 모르게 자꾸만 떠오르며,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정유준이 몸을 굽혀 정희민을 안아 들고 몸을 돌려 차를 향해 걸어가자, 강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정유준 씨!”남자가 멈칫했다가 다시 앞으로 걸어가자 강하영은 아이들을 데리고 정유준을 쫓아갔다.“희민이가 싫어하는 게 당신 눈에는 안 보여요?”정유준은 그런 강하영의 말을 무시하고 희민이를 데리고 차에 오른 뒤 차문을 세게 닫아버리자 강하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허시원은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또 시작이네……, 이제 겨우 관계가 좋아지나 싶더니…….”강하영은 가슴 한켠이 시큰거리는 것을 참으며, 정유준이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렇다고 강제로 정유준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정유준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앞으로 희민이를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니까.“엄마…….”강세희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엄마를 올려다보니 하영이 울고 있었다.“엄마, 울어요?”하영은 세희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언제 흘렀는지도 모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냈다.강하영은 답답한 마음과 가슴 아픈 고통을 참으며 눈물을 닦고 웅크리고 앉았다.“괜찮아. 그저 희민이가 저렇게 가버린 게 아쉬워서 그랬을 뿐이야.”강세희는 작은 손으로 하영의 얼굴을 어루만졌다.“희민이 오빠는 곧 돌아올 거니까 울지 마세요.”강하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우는 표정보다 더 보기 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그래, 곧 돌아올 거야.”곁에 있던 강세준은 멀어져가는 차를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나쁜 아빠가
소예준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흐느끼고 있는 세희를 품에 꼭 안고 세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며 강하영을 향해 물었다.“하영아, 그게 사실이야?”“그래…….”강하영이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이유가 뭐야?”하영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여전히 두서를 찾지 못했다.“나도 모르겠어.”“하영아. 급해한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정유준이 아직도 너를 잊지 못하고 있다면 분명 강하게 나가지 못할 거야.”“오빠, 나 소송 걸고 싶어.”“네가 희민의 양육권을 얻을 순 없을 거야. 처음부터 정유준과 함께 있었으니까. 게다가 김제에서 정유준의 영향력으로 네가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어.”강하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하영은 희민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쿵쾅쿵쾅-”그때 강세준이 갑자기 계단에서 뛰어 내려오며 강하영의 손을 잡아끌었다.“엄마, 얼른 올라와요.”강하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세준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 세준의 방에 들어가니, 노트북 화면에서 희민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강하영은 얼른 앞으로 다가가 희민을 불렀다.“내 아가!”“엄마!”어둡게 가라앉아 있던 희민의 눈동자는 강하영을 보는 순간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자, 하영의 코끝이 시큰거렸다.“희민아, 아빠가 속상하게 하지는 않았어?”“아니요. 엄마, 눈이 빨개요.”“괜찮아, 눈에 먼지가 들어갔나 봐.”“엄마는 네가 보고 싶어서 우신 거야.”강세준은 하영의 체면을 전혀 세워주지 않고 솔직히 얘기하자, 처음엔 멍한 표정을 짓던 희민이 이내 환하게 웃었다.“저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그 말에 강하영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흘렸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민이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기 시작했다.“엄마, 속상해하지 마세요. 서로 연락하고 지낼 수도 있고, 이제 아빠 기분이 조금 좋아지면
목요일 새벽, 소씨 집안.휴대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깬 양다인은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누구야?”“XX년!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 아주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니까!”낮게 잠긴 쉰 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 오자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든 양다인은 고개를 숙여 액정에 찍힌 번호를 확인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홍수혁? 할아버지가 처리한다고 했는데 왜 아직 살아있는 거야?’양다인은 일부러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되물었다.“홍수혁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위선 떨지 마! 비록 나한테 증거는 없지만 네년 목소리만큼은 똑똑히 기억하니까!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그들을 찾아가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이렇게 쫓기는 신세가 되지도 않았을 거야!”양다인은 이불을 꽉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홍수혁 씨,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저도 억울해요. 저도 죄책감 때문에 홍수혁 씨한테 양다인을 찾으러 가라고 얘기해 준 것인데 대체 왜 우리 할아버지를 찾아온 거예요?”“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아직도 변명을 늘어놓을 거야?”“변명한 적 없어요. 강하영 때문에 일어난 일은 사실이잖아요!”양다인은 홍수혁을 세뇌하기 시작했다.“홍수혁 씨, 잠깐 진정하고 제 얘기 좀 들어봐요. 강하영이 일부러 나를 귀찮게 해서 할아버지가 그 여자를 혼내줬을 뿐이에요. 따지고 보면 강하영 때문에 홍수혁 씨 어머니가 그렇게 되셨잖아요. 아닌가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흐르자 양다인의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이런 인간이랑 절대 엮일 수 없어!’한동안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양다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홍수혁 씨는 분명 이용당한 게 틀림없어요. 소씨 집안이 김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몰라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협박당할 수가 없잖아요. 그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분명 홍수혁 씨가 할아버지한테 당할 걸 예상하고 일부러 그런 것 같네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홍수혁 씨를 해치려고 말이죠. 그러니 이 일을 꾸민 원흉을 찾아가야죠!”“어떻게 찾지? 어떻게 하면 그 강하영이란
“투자 회사?”강하영은 설계도를 손에서 내려놓으며 물었다.“네, 아마 TYC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협력하려는 것 같아요.”그 말에 강하영은 웃으며 임수진을 바라보았다.“수진 씨는 어떻게 생각해?”“만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판매 수익으로 볼 때 충분히 다음 제작과 매장 확장까지 가능하거든요. 충분히 자금을 움직일 수 있는데 다른 사람과 나눌 필요는 없잖아요.”“그렇다면 김제에서 입지를 굳히려면 돈이 중요한 것 같아, 아니면 인맥이 중요한 것 같아?”강하영의 반문에 임수진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뗐다.“김제에 돈이 부족한 사람은 없어요.”“그러니까 인맥이 충분해야 멀리 갈 수 있는 거야. 수진 씨는 나를 도와서 그 회사의 자세한 상황과 대표의 경력을 좀 조사해 줘. 만나는 건 급한 것 없으니까.”“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MK, 주차장배현욱이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배현욱의 차를 박아버렸다.배현욱이 고개를 돌리니 빨간색 벤츠 안에서 황급히 내려오는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는데, 상대방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어서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배현욱이 어이가 없는 듯 차에서 내려 뭐라고 몇 마디 하려 할 때, 여자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배현욱 쪽으로 다가왔다.배현욱은 고개를 들었고, 상대방과 서로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은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그쪽이었어요?”“배현욱 씨?”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외쳤고, 우인나는 질색이라는 표정으로 배현욱을 노려보았다.“쓰레기 같은 인간! 어떻게 책임질 건지 얘기해 봐요!”우인나의 말에 배현욱의 한쪽 입꼬리가 실룩거렸다.“내가 왜 쓰레기예요? 그날 나랑 잠을 자고 그냥 가버린 건 우인나 씨잖아요.”“그냥 가버렸다고요? 아니면 내가 거기 남아서 애정 표현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우인나가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배현욱은 그런 우인나를 훑어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뭐 안 될 것도 없죠…….”“변태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요. 유준이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유준이처럼 감정에 충실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양다인한테 속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있었겠어요?”“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겠어요? 남자들은 늘 핑계만 댄다니까요.”“…….”우인나의 조롱에 배현욱은 할 말을 잃었다.‘이렇게까지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들어?’배현욱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우인나 씨, 내가 바람둥이인 건 인정하지만, 나한테도 선이란 게 있어요. 아무튼, 흠흠, 괜찮다면 나한테 시간을 좀 줘요. 내가 책임질 테니까.”“그럼 내가 고맙다고 해야겠네요?”우인나는 눈을 흘겼다.‘책임지는 것도 시간이 필요해? 그딴 식으로 성의도 없으면 나도 필요없어!’‘정말 얘기도 안 통하고 피곤한 여자네.’접촉 사고 문제를 해결하고 배현욱은 위층으로 올라가 정유준을 찾아가려 했는데,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정유준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런 쓰레기를 지금 보라고 내민 거야? 못하겠으면 당장 꺼져!”“죄송합니다, 정 대표님. 지금 바로 시정하겠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기획팀 직원이 겁에 질린 얼굴로 뛰쳐나오더니 배현욱에게 인사를 하고 가버렸고, 배현욱은 엉망진창이 된 사무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또 어느 멍청한 놈이 우리 대표님을 화나게 했을까?”정유준은 배현욱을 힐끗 보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네가 여긴 웬일이야?”“왜 엄한 사람한테 화풀이야?”정유준은 의자에 앉으며 더욱 딱딱해진 말투로 말했다.“한가해 보이네.”배현욱은 바닥에 떨어진 자료를 주워 정유준 책상에 올려놓았다.“그러게.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정유준은 책상 위에 있는 담배를 집어 들어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인 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혹시 어머님 일 때문이야?”“질문이 참 많네.”넌지시 떠보려는 배현욱을 향해 정유준은 체면도 봐주지 않고 쏘아붙였다.“네가 걱정되니까 그러지. 무슨 일인지 얘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