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준이 대답했다.“그 여자가 이곳에서 잠깐 지낸다면, 난 염수지를 손님으로 여기고 예의를 지킬 수 있어. 그러나 난 너희들처럼 염수지를 그렇게 다정하게 대할 수 없어. 더군다나, 넌 나에게 왜 염수지를 좋아하지 않는지를 물어볼 필요조차 없어.”“그럼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데??”“난 염수지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없으니, 좋고 싫음이 어딨겠어?”세준이 되물었다.세희는 멈칫하더니,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수지는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차인 건가?!’‘나와 수지는 정말 남자 하나 잘 골랐구나!!’세희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세준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세준은 세희의 생각을 알아차리더니, 말투가 엄숙해졌다.“강세희, 내가 경고하는데, 네 생각을 나에게 강요하지 마. 난 염수지를 좋아하지 않고, 그 여자와 함께 하지도 않을 거야. 날 귀찮게 하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면 돼. 지금 난 이미 충분히 바쁘니까, 다른 사람과 연애할 시간 없어.”“그러다 정말 ‘벌’ 받을지도 모른다니깐?” 세희는 계속 설득했다.그러나 세준은 그저 냉담하게 웃을 뿐이었다.“그런 일은 영원히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야.”그는 수지를 좋아하지 않았고, 심지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더욱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이 말을 남긴 다음, 세준은 손을 들어 세희의 이마를 짚으며 그녀를 밀어냈다. 그리고 주방을 나서자마자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더니, 거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세희는 그 자리에 서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수지는 대체 왜 이렇게 차가운 남자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네.’‘우리 희민 오빠가 얼마나 좋아!! 강세준 저 자식은 수지와 함께 할 자격조차 없어!’세희는 주방에서 나와 거실로 돌아갔다.세희를 보자, 수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웃으며 물었다.“세희야, 네 둘째 오빠가 돌아온 거야?”세희는 수지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응, 세준 오빠가 돌아왔어.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바로 서재에 들어갔
세준은 시선을 거두며,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다음날, 희민은 세희와 수지를 데리고 함께 학교에 갔다.가는 길에서 희민이 물었다.“수지야, 주강 아저씨는 왜 이번에 공항에 널 마중하러 가시지 않은 거야?”어젯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기 때문에, 수지는 정신을 딴 데에 팔고 있었다. 세희가 그녀의 팔을 흔들어서야 수지는 정신을 차리고 멍하니 세희를 보았다.“희민 오빠가 묻잖아. 왜 주강 아저씨가 공항에 안 가셨냐고.”수지가 대답했다.“우리 아빠 지금 김제에 안 계셔. 출장 가셨거든.”이 대답을 듣고, 희민은 눈을 들어 백미러를 통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수지를 보았다. 그는 계속 물었다.“어젯밤에 잘 자지 못한 거야?”수지는 담담하게 웃었다.“낯선 환경에 와서 그런지, 잠을 좀 설쳤어. 오늘은 많이 좋아질 거야.”“필요한 것이 있으면 우리에게 말해. 우리가 준비해 줄게.”“아니야.” 수지는 얼른 손을 흔들었다.“챙겨야 할 것은 나도 다 챙겨왔어. 신경 써줘서 고마워.”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학교에 도착했다.희민은 수지와 함께 세희를 교실까지 데려다주었다.세희는 들어간 후, 희민에게 문자를 보냈다.[오빠, 수지도 교실로 데려다줘.]희민은 메시지에 답장했다.[응, 알겠어.]핸드폰을 접고, 옆에 있던 수지가 입을 열었다.“희민아, 진우빈이 어느 교실에 있는지 알아?”“4층에 있어. 지금 찾아가려고?”“응. 난 1교시에 수업이 없어서 급하게 갈 필요가 없거든.”“그래, 그럼 찾아가 봐. 난 먼저 교실로 갈게. 일 있으면 핸드폰으로 연락해.”수지는 웃으며 말했다.“응.”희민이 떠난 후, 수지는 4층을 향해 걸어갔다. 우빈이 있는 교실에 도착하자, 그녀는 안을 들여다보았다.우빈을 발견한 다음, 수지는 자신과 가까운 학생에게 말했다.“안녕, 진우빈 좀 불러 줄래?”남학생은 수지를 보자마자, 눈에서 빛이 났다. 그는 얼른 일어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불러 줄게!”말이 끝나자, 그는
수지는 우빈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 정도로 이성적일 줄은 정말 몰랐는데.’그러나 이렇게 찾아온 이상, 수지도 나름 준비를 했다.“존중? 그럼 세희를 이토록 존중하는 사람이 왜 14년 전에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세희와 연락을 끊은 거지?”“나도 나만의 이유와 고충이 있었어. 만약 세희가 이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 난 세희를 찾아가서 진지하게 설명할 거야.”우빈은 여전히 수지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거부했다.거리감을 느낀 수지는 미리 준비를 했어도, 이 순간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잠시 후, 수지가 말했다.“만약 세희가 진우빈 씨의 설명을 들을 마음이 있었다면, 오늘 내가 이렇게 찾아올 필요가 없잖아? 마찬가지로, 너에게 만약 설명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세희도 지금처럼 널 피하고 다니니 않았겠지.”“세희가 평생 날 무시하고, 내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난 다른 사람에게 우리 사이의 일을 말하지 않을 거야.”수지는 웃으며 말했다.“세희를 무척 존중하고 있는 것 같군. 세희는 정말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어.”“세희를 위한 마음,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지금 나도 딱히 할말이 없어서. 먼저 갈게.”말을 마치자, 우빈은 떠나려 했고, 수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세희가 14년 동안 줄곧 진우빈 씨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거 알아?”우빈은 발걸음을 멈추었다.“세희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렇지 않으면 나도 계속 기회를 찾아 세희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겠지. 만약 정말 내 대답을 듣고 싶다면, 나 대신 세희에게 이 말을 전해줘. 나에게 설명할 기회를 좀 주라고.”우빈이 가는 것을 지켜보며, 수지는 핸드폰을 꺼내 세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우빈이 한 말을 모두 세희에게 전달했다.세희는 문자를 보며 핸드폰을 응시했다.그녀에게 아무런 답장이 없는 것을 보고, 수지는 계속 문자를 보냈다.[세희야, 넌 어떻게 생각해?]세희는 천천히 타자를 했다.[나도 내 생각을 잘 모르겠어. 매
그러나 전화가 연결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임지나는 세희를 세게 밀었다. 세희는 방비를 하지 않았기에, 하마터면 땅에 쓰러질 뻔했다.곧이어 임지나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여기서 가식 떨지 말고 빨리 좀 꺼져 줄래?!”수지는 바로 세희를 일으켜 세우더니, 임지나에게 말했다.“지금 여기서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괜찮아, 하고 싶은 말 다 하라고 해. 난 괜찮아.”세희가 대답했다. 곧이어 그녀는 천천히 일어서더니, 핸드폰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곧 학교의 의사가 먼저 와서 우빈을 위해 응급 지혈 처리를 했다.구급차가 도착하자, 세희는 구급차를 따라 함께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간호사에게 설명하려는 순간, 그녀는 문득 음산한 시선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세희는 고개를 홱 돌이며 그 차가운 기운을 향해 바라보았다. 그러나 군중 속에서 그녀는 아무런 수상함도 발견하지 못했다.세희가 정신을 차릴 때, 앞에 있던 구급차는 이미 문을 닫았다. 그녀가 멍해지자, 옆에 있던 수지가 설명했다.“세희야, 임지나가 먼저 올라갔어.”세희는 말없이 입술을 오므리더니 잠시 침묵했다.“응, 우리는 기사에게 병원에 가자고 하면 돼.”이때 희민이 그녀들 곁에 나타났다.“세희야, 수지야.”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고, 세희는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오빠, 지금 차로 우리를 병원에 데려다 주면 안 돼?”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하지만 그 전에 밥부터 먹으러 가자.”“입맛이 없는데...”“안 먹으면 갈 생각하지 마.” 희민은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수지도 세희를 설득했다.“세희야, 먼저 밥 먹으러 가자. 그쪽엔 임지나가 있으니 괜찮을 거야. 지금 가도 그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잖아.”세희는 두 사람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그럼 병원에서 아무거나 사 먹자. 더 이상 날 설득하려 하지 마.”그렇게 희민과 수지는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병원으로 가는 길에, 세희는 뒷좌석에 앉아
희민이 입을 열려고 할 때, 수지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임지나의 얼굴을 향해 사정없이 따귀를 날렸다.이 행동에 세희와 희민은 깜짝 놀라더니 멍하니 수지를 바라보았다.임지나는 얼굴을 가리며 수지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수지가 먼저 말했다.“우리는 널 상대하고 싶지 않은데, 넌 오히려 스스로 문제를 자초하려 하는군. 너도 마땅히 얻어맞아야 해. 세희가 진우빈을 보러 오든 안 오든, 그것은 세희의 마음이지, 넌 참견할 자격이 없어. 그런데 감히 세희를 욕하다니.”임지나는 분노에 두 눈이 붉어졌고, 눈물도 눈가에서 맴돌기 시작했다.“그래, 난 자격이 없지만, 강세희, 난 네가 너무 눈에 거슬려! 넌 나보다 먼저 우빈을 만났을 텐데, 내 말 맞지?그런데 왜 굳이 우빈이랑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너희들은 우빈의 사정에 대해 모르지만, 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우빈은 최근에 심지어 아르바이트까지 그만뒀다고!”‘아르바이트?’세희는 멍해졌다. “무슨 아르바이트?”임지나는 차갑게 웃었다.“넌 우빈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어? 그동안 우빈은 줄곧 밖에서 중학교나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과외를 해가면서 생활비를 벌었다고!”“우빈의 이모는 생활비를 주지 않은 거야?”세희는 마침내 자신의 의혹을 제기했다.“이모?” 임지나도 어리둥절해졌다.“우빈에게 언제 이모가 있었지? 내가 알기로는 우빈은 늘 혼자였어.”이 말을 듣자, 세희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난 우빈이의 이모를 본 적이 있는데, 그동안 늘 혼자서 지냈다니?’‘설마...’세희는 더 이상 생각할 엄두가 없었다.임나는 손을 내려놓고 울먹였다.“우빈이 초등학교 때 어떻게 지냈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어. 야간 자습 시간에 돈을 벌러 나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 성적은 줄곧 떨어진 적이 없었어. 우빈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겠더라고. 중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
“정 사장님,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강하영 씨는 각종 산부인과 검사 결과 모두 깨끗합니다. 완벽한 처녀입니다.”병원 검사실 입구에서 경호원이 전화기 저편에 있는 남자에게 공손하게 말했다.강하영은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행인들의 이상한 시선을 최대한 견뎌야 했다.어머니는 아픈 상태이고, 아버지는 거액의 노름빚을 졌다.이 두 큰 짐은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자기 몸을 밑천으로 삼아 정유준의 침대에 올랐다.잠시 후, 경호원의 전화에서 남자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난원으로 보내.]……난원.어두컴컴한 불빛 아래 하영은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상태로 긴장한 채 이불 속에 움츠러들었다.침대 옆에 서 있는 남자는 잘생기다 못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의 그림 같은 눈썹 아래에는 깊고 차가운 봉황의 눈동자가 있다.정유준, 김제를 휩쓸고 있는 막강한 제왕.하영은 그의 존재를 알고 있다.남자가 이불을 들추자 강하영의 깨끗하고 매끈한 몸이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에 들어왔다.곧 뜨거운 키스가 그녀의 몸에 떨어졌다.몸의 마지막 장애물이 뚫렸을 때 강하영은 아픈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정유준은 갑자기 그녀의 입술을 깨물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눈물 흘리지 마. 네가 선택한 일이야. 그리고 기억해. 아무나 내 침대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어느덧 잠에서 눈을 뜬 하영은 귓가에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정유준은 옆에서 고요히 자고 있었다. 하영의 기억이 잠시 흐릿해졌다.어느덧 정유준과 알게 된 지 이미 3년이 흘렀다.3년 동안 그녀는 그의 개인 비서였고, 더욱이 그의 오피스 와이프였다.뜻밖에도 어젯밤에 그들이 처음 만난 날의 꿈을 꾸었다.하영은 지긋지긋 아파오는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나려고 했다. 이 때 침대 머리맡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전화벨 소리에 눈을 뜬 유준은 재빨리 일어나 핸드폰을 받았다.“얘기해.” 그는 핸드폰을 귓가에 바짝
호텔 방문이 열렸다.매튜는 금빛 단발머리에 헐렁한 가운을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그런대로 잘생긴 얼굴에 푸른 눈은 마치 독사가 사냥감을 노리는 것처럼 하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하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5천만 원의 성과금을 위해 그녀는 지금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사장님, 실례합니다.”매튜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가 내리며, 웃는 모습으로 몸을 옆으로 비켜 세웠다. 그러고는 어색한 한국어로 말했다.“강 비서님, 드디어 오셨네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두근거리는 가슴은 터질 것 같았지만 하영은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다.그리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스위트 룸에 들어가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곁눈질로 객실에 놓여 있는 모든 물건을 꼼꼼히 훑어보았다.매튜가 맞은편의 소파에 앉은 후, 하영은 비로소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똑같이 앉았다.곧이어 매튜가 와인 한 잔을 건네왔다.잔을 받아 든 하영은 매튜의 와인잔에 낮게 부딪혔다.“환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매튜의 눈에는 화색이 돌았다.“강 비서님 뭐 좀 아시네. 쭈뼛쭈뼛하지 않고…… 좋아, 내 스타일이야!”하영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순조롭게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손에 든 와인을 쭉 들이켰다.이를 본 매튜의 미간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이렇게 술 한 잔 마시고, 내 계약을 따내려는 건 아니지? 그럼 너무한데…….”하영은 매튜가 순순히 계약을 해줄 거라는 생각은 진작에 집어치웠다.와인잔을 내려놓고 못 들은 척 사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사장님께서 우리 MK와 협력할 의향이 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아시아에서의 MK의 실력도 잘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매튜 사장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자, 제가 저희 사장님을 대표하여 이렇게 계약을 체결하러 왔습니다. 사장님, 어떻습니까? 생각해 보셨습니까?”매튜의 얼굴에 웃음이 걷혔다. 하영을 쳐다보는 눈빛이 날카로워졌다.하영은 비록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냉정을
강한 현기증을 참으며, 하영은 문 쪽으로 도망쳤다. 방문을 나서기 전, 테이블 위의 계약서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순간, 높고 큰 인간 벽에 부딪혔다.그녀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건 더없이 익숙한 얼굴이었다.하영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계약서를 유준의 가슴으로 밀어 넣었다.비록 유준의 옷을 꽉 잡았지만, 가녀린 몸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미끄러져 바닥에 축 처졌다…….그러고는 힘없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사장님, 계약서에 서명했어요. 5천만 보너스 준다고 약속한 거 잊지 마요…….”하영이 쓰러지는 것을 본 유준은 즉시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았다.이때 매트도 방에서 쫓아 나왔다.하영을 안고 있는 유준을 본 매트가 분노를 참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았다.“미스터 정! 그 여자 내놔!”매트의 말을 들은 유준의 눈빛은 순식간에 분노로 휩싸였다.이어 뒤따라온 허시원이 매튜를 가로막으며 경고했다.“매튜 사장님, 지금 감히 우리 사장님의 사람을 건드리겠다는 겁니까?”매튜는 피 흘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한 글자씩 내뱉었다.“그럴 리가! 저 여자 혼자 왔다고!”허시원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럼 우리 사장님이 여기에 나타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매튜는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검은색 마이바흐 뒷좌석.유준의 다리에 누워 있던 하영은 갑자기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그녀는 여린 입술을 벌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꼬대를 했다.약 때문에 빨갛게 달아오른 뺨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남아있었다.그윽한 차 안의 불빛 아래 유준의 칠흑 같은 눈동자엔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예리한 턱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그는 하영의 작은 손을 잡고 눈을 치켜뜨며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프로젝트팀에 연락해. 매튜와 합작한 프로젝트, 지금 당장 자금 투입 중단하라고……. 그놈이 찾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