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맞지.” 인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있어야 그래도 식은 올려야지. 나 좀 봐, 결혼을 하고 싶어도 그게 언제 일어날지 모르잖아.”“현욱 씨의 부모님은...”“아이고.” 인나는 짜증을 느끼더니 하영의 말을 끊었다.“그 사람들 언급하지 말자. 정말 짜증난다니깐!”하영은 창밖을 내다보았다.“이제 곧 새해가 다가오는데. 새해가 지나면 설이 되겠지. 올해는 전처럼 그렇게 떠들썩하지 않을 거야.”인나는 턱을 괴고, 하영의 시선을 따라 창밖의 등불을 바라보았다.“그럼 우리가 떠들썩하게 놀면 되지.”하영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렇게 해봤자, 아이들이 그리운 공허함을 가득 채울 수 없어.”이 말을 마치자, 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한참 후, 인나는 갑자기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하영, 우리 내일 집 한 채 사러 가자!”하영은 멍해졌다.“집을 사? 뭐 하려고??”“너도 이제 집이 없고, 나도 없잖아.” 인나는 두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우리 별장 사지 말고, 분양주택 하나 사자! 같은 층을 산 다음, 중간을 뚫어버리는 거지!”“그래도 되지만.” 하영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뭐야?”인나는 헤헤 웃었다.“당연히 쓸모가 있어서 그러지! 예를 들면, 네가 정유준과 싸우거나, 내가 현욱 씨와 싸우면, 우리는 우리의 집에 돌아가는 거야!”“응, 그 다음에는?” 하영은 계속 물었다.“그리고 파티를 여는 거야! 멋진 남자들 가득 불러서 같이 놀자고!인나와 하영이 모르는 것은, 지금 그녀들 뒤에 이미 두 남자가 서 있다는 것이었다.인나의 말을 들었을 때, 현욱의 얼굴은 이미 파랗게 질렸다.“인... 나... 씨!!”현욱은 참다못해 인나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인나는 놀라서 부들부들 떨었고,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당신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인나는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하영과 급히 고개를 돌렸는데, 유준이 그녀의 뒤에 서
유준이 말했다.“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강하영, 넌 내 아이들의 어머니야. 이건 바꿀 수가 없는 사실이라고!”“이 관계 때문에 날 간섭하려는 거예요?” 하영은 냉소를 했다.“당신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지만, 당신도 나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잖아요. 더군다나 나도 단지 당신 아이 엄마의 신분일 뿐인데, 대체 무슨 자격으로 날 간섭하려는 거죠?”하영의 말에 유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다시 차에 시동을 건 다음. 마인하우스의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하영은 차 속도에 놀라 옆에 앉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마인하우스에 도착해서야 유준은 비로소 차를 멈추었다.그는 차에서 내린 다음, 조수석으로 가서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하영을 어깨에 메고 곧장 별장으로 향했다.하영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정유준, 빨리 내려줘요!”그러나 유준은 놓아줄 의사가 없었고, 방으로 돌아간 후, 하영을 침대에 던져버렸다.그는 두 손과 두 다리로 마구 움직이는 하영의 사지를 억누르며, 분노에 소리쳤다.“강하영, 내가 말했었지, 너에게 명분을 주겠다고!”하영은 유준을 노려보았다.“그것도 내 회사로 바꿔야 하잖아요! 난 원하지 않아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바로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사는 거예요!”“넌 나에게 빌붙어 살 필요가 없어. 강하영, 난 너 하나만 원한다고! 만약 남들이 신경 쓰인다면, 오늘부터 MK는 Tyc의 부속 회사가 될 수도 있어!”하영은 몸부림을 치는 것조차 잊어버렸고, 놀라서 유준을 쳐다보았다.“지금 뭐라고요?”유준은 일어나서 침대 머리맡의 서랍을 열더니, 계약서 한 부를 꺼내 하영에게 던졌다.하영은 한 번 훑어본 후, 눈을 크게 뜨며 유준을 바라보았다.“이게 무슨 뜻이에요?”“이 계약서는 내가 프러포즈한 후에 너에게 말하려 했어. 네가 원하지 않는 한, 나도 널 강요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난 방법을 강구해서 네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할 거야.”말하면서 그는 하영의 곁에 앉았고, 검고 밝은 눈빛에
“하영아.”“네.”“우리 결혼하자.”하영은 몸이 뻣뻣해졌고, 대답하지 않은 채로 유준을 가볍게 밀어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감히 유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이, 이 일은 그렇게 조급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말하면서 하영은 황급히 일어섰다.“앞으로 다시 이야기해요. 나 먼저 샤워하러 갈게요!”하영이 당황해하며 도망가는 것을 보고, 유준은 눈빛이 어두워졌다.‘예전 같으면, 하영은 감동을 받으며 내 프러포즈에 동의를 했을 텐데. 지금은 왜 미루려 하는 거지?’‘이유가 무엇일까?’‘내가 아직 소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아서?’유준은 욕실 문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내일 시간을 내서 소씨 가문에 한 번 들러야 할 것 같군.’다음날, 유준은 회사의 일을 처리한 다음, 소씨 가문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현욱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시간이 아직 이른 것을 보고, 유준은 동의했고, 두 사람은 함께 레스토랑에 갔다.밥을 먹을 때, 유준은 줄곧 창밖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현욱은 의혹을 느끼며, 그를 여러 번 훑어보고서야 물었다.“유준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현욱이 물었다.유준은 손에 든 커피를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우인나 씨는 너와 결혼하는 것을 거절한 적 있어?”현욱은 물끄러미 유준을 바라보았다.“그러니까 하영 씨가 널 거절했다는 뜻이네??”유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우인나 씨는 이렇게 말한 적 있냐고?”“아니.” 현욱이 말했다.“지금 매일 간절히 기대하고 있어. 내가 자신과 일찍 결혼해야 안심할 수 있거든.”유준이 침묵에 빠졌다.‘그 하영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현욱도 따라서 생각해 보았다.“유준아, 지난번 약혼식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건 아닐까? 무슨 증후군이라고 했더라? 정신과 의사라고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유준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 심각하진 않을 거야.”“그건 아니지!”현욱은 엄숙하게 말했다.“네 일을 알게 된 후, 하영 씨는 어쩔 수 없이 약혼식 현장을
“유준 씨는 자기 MK의 지분을 모두 내 명의로 양도하려고 했어. 내가 Tyc가 MK의 부속이 될 수 없다고 한 말 때문에.”“그거 좋은 일 아니야?!”인나는 감격에 겨웠다.“김제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더 없을걸?!”하영은 고개를 저었다.“바로 이러하기때문에 난 결혼하고 싶지 않아. 그건 유준 씨가 심혈을 기울인 회사인데, 결혼한다고 나에게 넘겨주다니, 그게 말이 돼?”“나 좀 이해가 안 되네. 정유준은 널 사랑해서 그런 건데, 넌 오히려 이것을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하영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니라고. 유준 씨에는 그 자신 만의 능력이 있고, 나에게는 나 자신 만의 능력이 있는 거지. 난 이걸 원해. 결혼하면 그 사람이 바로 다른 한 사람의 부속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거야. 왜 결혼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자신의 회사를 줘야 하는 거냐고?”“너도 정말 독립적이구나.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 너 만약에 임신한다면?”하영은 생각에 잠겼다.“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난 전부 정유준에게 맡겨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해. 넌 그저 자유롭게 사모님 행세를 하며 매일 하고 싶은 대로 지내면 되지.”“싫어!” 하영은 단번에 거절했다.“난 절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일 놀고먹는 데만 신경 쓰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 그럼 난 병신과 다름없잖아.”인나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하영의 팔을 툭툭 쳤다.“넌 지금 이렇게 말하면서, 그때 왜 세준과 희민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까?”하영은 인나를 힐끗 노려보았다.“그건 같은 일이 아니지.”인나는 하영의 팔을 안았다.“하영아, 난 너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그동안 줄곧 고생을 한 것도 다 정유준과 결혼하기 위해서였잖아?이제 그 기회가 코앞에 있는데, 넌 왜 오히려 움츠러든 거지? 부속품을 핑계로 삼지 말고 너 자신에게 물어봐. 정유준과 함께 있고 싶은지를.”“만약 함
유준은 침묵을 하며 책상을 두드렸고,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젠 조급해도 소용없어. 아이고, 너희들 그렇게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결국 하영 씨 자신의 문제로 결혼할 수 없게 될 줄이야.”“맞지 않는 자물쇠가 있을지 몰라도.”유준은 나지막이 말했다.“열리지 않는 문은 없어.”“무슨 뜻이야??”“모든 일에는 계기가 필요해. 다만 지금 이 계기가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야. 하영이 지금 결혼하고 싶지 않은 이상, 나도 강요하지 않을 거야.”“아니. 그럼 너희들은 도대체 결혼을 할 거야 말 거야! 지금 줄 서서 결혼하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유준은 입술을 구부렸다. “기다려.”현욱은 어이가 없었다‘이러다 내 결혼식도 따라서 연기되겠지!!’저녁에 유준은 예준과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도착한 후, 예준은 피곤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 앉았다.“유준아, 오랜만이야.”유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예준을 바라보았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요즘 많이 바쁜 거야? 소진 그룹은 지금 무척 안정적일 텐데.”“회사에는 별일 없어.” 예준은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지?”“하영에 관한 일이야. 지금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아.”예준은 잠시 침묵했다.“넌 하영과 결혼하고 싶지만, 오히려 거절을 당한 거구나?”“응.” 유준은 찻잔을 내려놓았다.“그래서 너에게 묻고 싶은 거야. 네 관점에서 볼 때, 난 어떻게 하영을 설득하면 좋을까?”“나라면 설득하지 않을 거야.”예준은 유준의 시선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는 단지 하영이 내린 그 어떤 결정을 지지할 뿐이라고. 네 말에 따르면, 하영은 약혼식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어서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 왜 하영이 그 일을 마주하도록 강요해야 하는 거지?”유준은 문득 예준을 찾아온 것이 잘못이라고 느꼈다.‘세준과 희민이 세희를 그렇게 아껴주는 것도 완전히 이 삼촌을 닮은 것 같군.’유준의
“맞아.”예준이 말했다.“때로는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가 우리의 수천수만 마디보다 낫지.”유준은 묵묵히 눈을 드리우며, 예준이 한 말을 깊이 생각했다.식사가 끝난 후, 유준은 차에 올라탔고, 잠시 생각하다 노지철에게 전화를 걸었다.뜻밖에도 연결되자마자 세희의 목소리가 울릴 줄이야.“아빠?” 세희의 앳된 목소리가 유준의 귀에 들려왔다.유준의 고운 입술을 저도 모르게 구부렸다.“세희야, 밥 먹었어?”“그럼요!” 세희는 웃으며 물었다. “아빠가 지금 할아버지 찾고 싶은 거예요? 할아버지 향을 피우며 일 보고 계시니 금방 돌아오실 거예요.”“안 급해. 최근에 어떻게 지냈는지부터 말해줄래?”“아빠, 나 방금 돌아왔잖아요!” 세희는 뾰로통해지더니 불만을 품었다.“아빠는 뭐가 그렇게 바쁜 거예요? 기억력이 어쩜 이렇게 나쁘죠!”유준은 가볍게 웃었다.“날 골치 아프게 하는 난제에 부딪혔거든.”“그래요?” 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뭔데요? 이 세희 선생님에게 부탁해 봐요! 1000원만 받을게요!”유준은 그런 세희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엄마는 아빠와 결혼하고 싶지 않대. 세희야,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할까?”“네?!” 세희는 목청을 높였다.“엄마가 왜 결혼하고 싶지 않은 거죠! 왜 예쁜 신부로 되고 싶지 않은 거냐고요?!”유준은 되물었다.“세희는 어떻게 생각하지?”세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열심히 생각했다.“아빠, 바람을 피운 거예요??”유준은 표정이 굳어졌다.“아빠가 그런 일을 할 것 같아?”“안 해본 것도 아닌데...”세희는 가볍게 말했다.“그건 아니야.”“바람피운 게 아니라면, 설마 엄마가 아빠를 사랑하지 않아서?”유준은 머리가 아팠다.“나 알았어요! 아빠는 늙었으니까, 엄마는 다른 젊은 아저씨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 아이고, 아빠, 엄마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그냥 내버려둬요. 나도 그냥 아빠를 내 진정한 아빠로 인정하면 되잖아요?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마요!”유준의 잘생긴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됐
세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요?”“너 전에 누구와 약속을 했는데, 아직 그 일을 완성하지 못했지?”노지철이 웃으며 물었다.세희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저는 다른 사람에게 약속을 한 적이 없는데요? 세희는 아직 어려서, 함부로 이런 일에 약속을 하지 않았어요.”“다시 잘 생각해봐. 어떤 사람과 무슨 일을 약속한 적이 있지?” 노지철은 말을 마치자, 또다시 말을 고쳤다.“혼이지 사람이 아니겠구나.”“혼이요?!”세희는 더욱 영문을 몰랐다.‘내가 언제 혼과 약속을 했었지!’노지철은 웃으며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조급해할 필요 없어. 천천히 생각해봐. 생각나면 다시 김제에 가면 된다.”노지철의 말 한마디 때문에, 세희는 밤새 엎치락뒤치락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녀의 밝은 눈은 창밖의 휘영청 밝은 초승달을 바라보았다.‘내가 도대체 누구와 약속을 한 거지??’생각을 하다가 세희는 하품을 하며 어렴풋이 꿈에 잠겼다.꿈속에서 아름다운 흰 여우가 세희를 에워싸고 끊임없이 빙빙 돌았다.세희는 즐겁게 쫓아가다가, 갑자기 무언가에 부딪혀 넘어졌다.아프다고 소리치기도 전에, 부드러운 손이 그녀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세희는 고개를 들었고, 앞에는 허리를 굽힌 채 긴 곱슬머리를 한 여자가 하나 서 있었다.그녀의 이목구비는 흐릿하여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세희는 하영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모는 누구세요?”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희를 부축하여 천천히 일어났다.세희는 똑바로 서서 여자를 자세히 봤지만, 여전히 이목구비를 잘 보지 못했다. 마치 안개가 그녀의 시선을 막고 있어, 일부러 똑똑히 보지 못하게 하는 것만 같았다.세희를 위해 종아리의 먼지를 턴 다음, 여자는 일어섰고 몸도 점차 투명해졌다.세희는 다급하게 잡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헛수고였다.“이모, 대체 누구시죠? 왜 왔는데 말도 없이 가시려는 거죠??”여자의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 세희는 갑자기 부드러운 소리를 들었다.“네가 날
노지철은 세희를 바라보았다.“세희야, 넌 학교에 가봐. 난 가서 일 좀 보겠다.”세희는 이 여자의 집을 알고 있었고, 학교에 가려면 겨우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세희는 영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어차피 곧 학교에 도착하니까 얼른 가서 일 보세요. 저는 학교에 갈게요.”오후, 그 여자의 집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세희는 창가에 앉았기에, 아주 잘 들였다.어젯밤 노지철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기 때문인지, 이 장면을 보자, 세희는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꿈속의 이모는 도대체 누구일까?’‘그 이모의 말은 왜 또 그렇게 익숙할까...’“세희야?”갑자기 귓가에 짝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세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어, 우빈아. 왜 그래?”진우빈은 깨끗하고 바짝 마른 남자아이였는데, 피부가 하얗고 이목구비도 꽤 깔끔해서, 시골 아이들처럼 새까맣게 타지 않았다.말할 때도 무척 부드러워, 여태껏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른 적이 없었다.세희는 우빈에게 호감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녀는 그의 감정에 기복이 생긴 것을 본 적이 없었다.우빈은 고개를 돌려 세희에게 물었다.“너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거야? 아까부터 줄곧 집중하지 않더라.”세희는 두 손으로 턱을 괴며 서글프게 한숨을 쉬었다.“그래, 그런데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참, 우빈아, 난 항상 궁금했는데, 너 여기 사람이 아니지?”세희는 화제를 바꾸었다. 계속 생각하면, 그녀는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우빈은 웃으며 새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냈다.“맞아, 난 여기 사람이 아니고, 이곳으로 보내진 거야.”세희는 눈이 밝아졌다.“보내졌다고? 어쩐지. 넌 딱 봐도 도시에서 자란 것 같은데. 넌 어디 사람이야?”“김제.”“김제?!”우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너도 김제에서 왔던가?”“맞아, 맞아!” 세희는 무척 흥분했다.“넌 왜 이곳으로 보내진 거야?”“엄마, 아빠가 출장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난 지금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