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유준은 부인했다.“하지만 내 동의를 거쳤어.”현욱은 영문을 몰랐다.“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데?? 이 일 때문에 하영 씨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유준은 눈을 들어 창문 밖의 야경을 바라보았다.“말하자면 길지만 또 굳이 할 말이 없어.”‘난 이미 경청할 준비를 했는데, 계속 말을 하지 않다니?!’그러나 현욱도 계속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준에게 매달려도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유준이 말하고 싶다면 묻지 않아도 말할 것이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 죽어도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현욱은 화제를 돌렸다.“인나 씨에게 들었는데, MK로 돌아가려고?”“응.” 유준이 대답했다.“오늘 이미 주식을 회수했어.”현욱은 어안이 벙벙했다.“너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는 거야?? 이렇게 빨리 회수했다니??”유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현욱을 바라보았다.“뭐가 궁금한 거지?”현욱은 헤헤 웃었다.“당연히 이 모든 게 다 궁금하겠지. 지금 네 명의로 된 자산이 얼마나 있는 거야?”“노코멘트.” 유준은 대답을 거부했다.‘쳇!!’현욱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언젠가는 내가 이 일들을 유준에게서 전부 알아낼 거야.’오픈타운 안방에서.진석은 또다시 자신을 방에 가두며 끊임없이 술을 마셨다.달빛이 그의 몸에 쏟아져 음침하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가져다주었다.진석은 술잔을 들고 안의 술을 단숨에 다 마셨다.톡톡 쏘는 술이 목구멍에서 위로 퍼지자, 그의 눈동자도 알코올로 인해 새빨개졌다.술을 계속 따르려던 참에야 진석은 술을 다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진석은 피식 웃으며 손에 든 술과 술잔을 소파에 내팽개쳤다.창밖의 고요한 밤을 바라보니, 눈 밑의 불쾌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정유준이 대체 어떻게 살아서 돌아온 거지!’‘그 비행기 사고에서 마땅히 죽었어야 하는데!’‘만약 정유준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영은 언젠간 내 여자로 될 거야.’‘그러나 지금, 이 유일한 희
인나가 대답했다.“나 오후에 갈 때가 있으니까 주소 보내줘. 일 끝나고 바로 갈 테니까.”“좋아.”점심, 인나는 밥을 먹은 다음 바로 회사를 나왔다.차에 탄 후, 그녀는 한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우 사장님, 드디어 전화가 왔네요. 어디에서 만날까요?”“주소 하나 보내줄게요. 나 지금 가는 길이에요.”20분 후, 인나는 커피숍에 도착했다.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그녀 앞에 앉았다.“우 사장님, 뭐 마실래요?” 진연월이 웃으며 물었다.“라떼면 돼요.”음료를 주문한 후, 진연월은 인나에게 말했다.“우 사장님...”“인나라고 부르면 돼요.”인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우 사장이라고 부르니 너무 어색하네요.”“좋아요.” 진연월은 호칭을 바꿨다.“인나 씨, 내가 오늘 인나 씨를 찾아온 것은 한 가지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예요.”“정유준에 관한 일이겠죠?”진연월의 그 요염한 눈동자는 은근히 웃음을 짓고 있었다.“맞아요, 나랑 같이 계획 좀 했으면 좋겠거든요. 지금 도련님이 기억을 회복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잖아요.”인나는 눈살을 찌푸렸다.“사실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왜 하영과 정유준의 과거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는 거죠? 말하는 게 더 낫지 않나요? 이렇게 하면 하영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인나 씨라면, 그런 말을 믿겠어요?” 진연월은 가장 간단한 말로 인나에게 질문했다.인나는 잠시 침묵했다.“믿기 어렵겠죠. 심지어 상대방과 접촉하도록 핍박받는 느낌까지 들 거고요.”“맞아요.”진연월이 말했다.“어떤 일은 너무 많이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어요. 차라리 도련님이 스스로 강 사장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낫죠.”인나는 이전 화제로 돌아갔다.“내가 뭘 했으면 좋겠는데요?”“염주강을 남겨 강 사장님과 만날 기회를 좀 더 만들어 줘요.”진연월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인나는 어리둥절해졌다.“이러는 이유가 뭐죠
인나는 손에 와인 두 병을 들고 있었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염 대표님, 늦게 와서 죄송해요.”주강은 시선이 와인에 떨어졌다.“우 사장님은 오늘 저녁에 한 잔 마시려나 봐요.”“어디 한 잔일 뿐이겠어요!” 인나는 하영 옆에 앉았다.“반드시 다 마셔야 해요! 염 대표님이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지 어렵게 알아냈거든요.”주강은 웃으며 말했다.“신경 써줘서 고마워요.”하영은 테이블 밑에서 인나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목소리를 낮추었다.“너 아픈데 술 마실 수 있겠어?”“당연하지!”인나가 대답했다.“염 대표님 내일 떠나시니 오늘 저녁에 제대로 마셔줘야지. 게다가 염 대표님은 주량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나도 술치로서 진작에 그와 겨루고 싶었다고!”인나는 술을 따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어쨌든, 술을 마셔야 무슨 말이든 하기 쉽지.’‘알코올은 사람을 충동적이게 만들 수 있으니까!’술을 따르자, 종업원도 음식을 하나하나 올리기 시작했다.인나는 종업원에게 주사위를 달라고 했는데, 주강에게 건네주었다.“다들 성인이니 주사위를 흔드는 방식으로 술을 마시죠!”주강은 주사위를 보았을 때, 웃음을 금치 못했다.“좋아요, 그럼 시작하죠.”하영도 인나에게 끌려 게임에 참여했다.연거푸 몇 판을 놀았지만, 잘 놀지 못한 하영은 연속 여섯 잔이나 마셨다.일곱 번째 판에서 또 하영이 졌다.인나가 하영에게 술을 따르자, 주강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우 사장, 내가 대신 마실 수 있을까요?”인나는 주강의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래요! 하영이 지면 염 대표님이 마셔요.”하영은 거절하려 했지만 주강이 먼저 말했다.“좋아요.”인나는 원래 술집을 자주 다녔으니, 주사위를 흔드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정말 너무 간단한 일이었다.그렇게 몇 판을 거치자, 거의 주강이 술을 마시는 횟수가 가장 많았다.이때, 레스토랑 밖에서.진연월은 사람을 청하여 유준과 함께 달밤 파스타에 들어갔다.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진연월은 인나에게 문자를 보
오히려 주강이 차분하게 말했다.“이건 정 대표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나요?”이 말이 나오자, 하영은 머리가 아팠다.‘그럼 우리가 확실히 서로를 껴안았다는 것을 인정한 거잖아?’그러나 지금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종업원은 이미 그림자조차 사라졌으니까.너무 많이 말하면 오히려 사실을 숨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하영은 피곤한 마음에 은근히 한숨을 쉬었다.유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얇은 입술을 가볍게 입을 열었다.“하긴, 두 사람이 뭘 하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말이 끝나자, 그는 진연월을 바라보았다.“이제 길을 안내해.”진연월이 입을 열었다.“이왕 이렇게 만난 이상, 같이 식사하죠!”유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거절하려 했지만, 인나는 이미 그들 앞에 나타나더니 입을 열었다.“어머,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인나는 진연월에게 말했다.“정말 인연이에요! 우리 같이 먹지 않을래요?!”진연월은 그야말로 잽싸게 대답했다.“그럼 우 사장님의 초대에 감사드릴게요. 도련님, 가시죠?”“넌 돈이 없어서 남에게 밥을 얻어먹는 거야?” 유준은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정 대표님, 지금 날 무시하는 거예요?”인나가 물었다.유준이 말했다.“필요 없어...”“맞아요, 무시할 필요가 없죠, 안 그래요?”인나는 직접 유준의 말을 오해했다.“가요, 우리 룸으로.”말이 끝나자, 인나는 또 주강을 향해 말했다.“염 대표님, 먼저 하영이 데리고 화장실에 가줘요.”이 말을 듣자, 유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더욱 세게 찌푸렸다.마음속에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또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주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영과 함께 화장실로 갔다.룸에 들어가자, 인나는 또 술을 시켜 그들에게 가득 따라주었다.진연월은 앞에 놓인 술잔을 보며 눈썹을 들었다.“강 사장님 이미 많이 마시지 않았나요?”“괜찮아요.” 인나는 웃으며 말했다.“염 대표님은 우리 하영이를 많이 아껴 주셔서 술을
그러자 유준이 물었다.“그게 무슨 표정이야?”“나요?” 하영은 영문을 몰랐다.“지금 나한테 물어볼 때가 아닌 거 같은데. 당신이 왜 여자 화장실에 들어온 거죠?”‘잘못 들어왔나?’하영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그러나 유준의 시선은 자꾸만 하영의 뒤쪽을 바라보았다.가서 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하영의 핸드폰이 울렸다.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주강의 전화인 것을 보고 연결 버튼을 눌렀다.“주강 오빠?”“난 괜찮아요, 그냥 좀 토한 것뿐이에요. 지금 바로 나갈게요.”“좋아요.”말이 끝나자, 하영은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유준 앞으로 걸어가더니 이상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정말 여기서 볼일 보려고요? 그럼 나 먼저 나갈게요. 당신도 변태로 몰리지 않게 조심하고요.”하영의 말에 유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나 그런 습관 없어!”하영의 손은 문 손잡이에 떨어졌는데, 유준의 말을 듣고 또 의혹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그럼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주강이 여기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유준은 한동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그냥 이 여자 찾으러 왔다고 말해?’‘아니, 그건 절대로 불가능해!’‘결국 우리 두 사람은 지금 아무런 관계가 없고, 나도 이 여자를 간섭할 자격이 없지.’생각하면서 유준은 점차 후회하기 시작했다.‘내가 대체 뭐 하러 온 거지?’유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하영은 어이없어하며 문을 열었다.주강은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단번에 안에 있는 유준을 발견했다.그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고, 하영의 목소리를 들었다.“주강 오빠, 우리 이제 그만 돌아가요.”주강은 갑자기 가볍게 웃으며 하영에게 물었다.“정 대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하영은 설명하려던 참에 문득 유준이 왜 여기에 나타났는지를 깨달았다.여자 화장실이란 선명한 글자를 유준은 못 볼 리가 없었다.‘우리가 화장실에서 무슨 이상한 일 하는 줄 알고 찾아온 거구나?!’‘그 남자가 볼 때, 난 그렇게도 경박한 여자인 건가??’
인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염 대표님, 하영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진 사장과 손잡고 대표님을 이용해 그 남자를 자극했다 해도, 이 기회를 빌어 하영과 관계를 발전하고 싶지 않는 거예요?”“난 하영 씨에게 호감이 있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주강은 솔직하게 말했다.“마찬가지로, 내가 하영 씨에게 접근한 것도 내 딸을 위해서였고요.”인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하영이 대표님의 부인으로 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일을 한 거예요?”“맞아요.” 주강은 태연하게 말했다.“하지만 하영 씨는 좋은 여자이니, 부부가 될 수 없어도 우린 친구를 할 수 있죠. 친구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인나는 감탄했다.“염 대표님, 당신은 정말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좋은 남자인 것 같아요.”“과찬이에요.”주강은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내가 필요하면 미리 알려줘요.”“네, 그렇게 할게요.”“그래요.”돌아가는 길에 진연월은 여전히 안색이 좋지 않은 유준을 쳐다보며 말했다.“도련님, 도대체 왜 그러세요?”유준은 진연월을 노려보았다.“너희들 일부러 그런 거지?”“뭐가요?” 진연월은 모르는 척했다.“도련님이 말하는 너희들은 또 누군데요??”유준은 진연월을 몇 번이나 자세히 훑어보았는데, 그녀가 확실히 모르는 것을 보고 그저 묵묵히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그는 자꾸만 오늘 밤의 만남이 너무 이상하다고 느꼈다.그러나 어디가 이상한지는 유준 자신도 몰랐다.한강 호텔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진연월이 입소문이 좋은 달밤 파스타에서 MK 주주와 식사를 하는 것도 당연했다.‘만약 내가 추측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면, 오늘 밤은 정말 너무 공교롭잖아!’생각을 접으며 유준은 또 참지 못하고 하영을 떠올렸다.그 차분한 작은 얼굴이 요즘 자꾸 그의 머릿속에 나타났는데, 심지어 지워지지가 않았다.그러나 하영과의 일은 여전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한참 침묵을 하다가 유준의 시선은 차창 밖에 떨
“소식을 캐낼 수 있든 없든, 난 먼저 돌아가서 이 일을 발표할 거야!!”“나도!! 이런 여자가 김제에 있고 심지어 방금 돌아온 정 대표님의 곁을 따르고 있다니, 틀림없이 센세이션을 일으킬 거야!”기자들은 앞을 다투며 회사를 떠났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후, 눈앞의 장면을 본 유준은 한동안 익숙함을 느꼈다.그는 많은 사람들의 놀란 시선에 발을 들었다. 심지어 남이 알려줄 필요도 없이 유준은 기억에 따라 자신이 원래에 있던 사무실에 찾아갈 수 있었다.이 시각, 비서 사무실에서.시원은 자료를 안은 채 문을 열고 나왔다.고개를 드는 순간, 그는 마침 앞에 걸어오는 사람과 마주했다.그 얼굴을 보았을 때, 시원은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도, 도련님”시원은 코끝이 찡해지더니 입술을 떨며 소리쳤다.소리를 듣고, 유준은 발걸음을 멈추며 눈을 돌려 시원을 바라보았다.순간, 시원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흘러내렸다.“도련님...”시원은 울먹이며 말했다.“마침내, 돌아오셨군요...”유준은 의혹의 시선을 던졌다.“지금... 날 부르고 있는 건가?”시원은 멍해졌다. 그는 유준을 자세히 바라보았는데, 남자의 눈빛이 매우 낯설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가슴이 조여왔다. “도련님, 지금...”“허시원, 허 비서 맞죠?” 진연월은 앞으로 다가가서 설명했다.“우리 도련님의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지금 도련님은 어느 사무실로 들어가야 하는 거죠? 회장님의 신분으로 말이에요.”“위, 위층이요.” 시원은 충격에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어쩐지 염 회장님이 갑자기 떠나셨더라니, 도련님이 돌아오신 거구나.’‘현재 상황으로 볼 때, 도련님은 기억을 잃었을 가능성이 커.’‘하지만... 돌아오셨으면 됐어. 멀쩡하시면 됐어.’진연월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길을 좀 안내해 줄 수 있나요?”시원은 엄청나게 아름다운 진연월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곧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시원의 반응을 보며 진연월은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웃었다.
시원은 조심스럽게 유준을 바라보았고, 이어 작은 소리로 섭섭하게 말했다.“도련님께서 저를 알아보시지 못할 때부터 기억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진연월은 화제를 돌렸다.“앞으로 내가 정 회장님을 따라 MK에 있을 거예요. 비서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네요.”시원은 의아하게 진연월을 바라보았다.진연월은 웃으며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아니요.” 시원은 시선을 거두었다.“도련님의 곁을 따르고 있는 이상, 틀림없이 무엇이든 할 줄 알 것이라 생각했어요.”“난 이 회사의 업무를 접촉한 적이 없었으니 어떻게 할 줄 알겠어요?”“어...”두 사람의 말이 끝나자, 유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들의 들려왔다.“얘기 다 했어?”시원은 갑자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회장님.”진연월은 부채를 흔들기 시작했다.“그만할 테니까 얼른 본론부터 말씀하세요.”유준은 검은 눈동자로 시원을 바라보았다.“네가 있었던 사무실을 보니, 지금까지 줄곧 부진석을 따라다니고 있었던 거야?”“네, 회장님.” 시원은 안색이 점차 심각해졌다.“그 사람의 곁에 남아서 증거를 모으고 싶었습니다.”“내가 어떻게 네 말을 믿을 수 있는 거지?”유준이 되물었다.이 말을 듣자, 시원은 가슴이 시큰거렸다.‘예전에 난 도련님이 가장 믿는 사람이었는데.’‘이제 오히려 의심을 받고 있다니.’잠시 생각한 후, 시원은 곧 납득을 했다.‘도련님은 원래 의심이 많으신 데다, 지금 기억을 잃었으니 날 믿지 않는 것도 정상이지.’시원은 유준의 시선을 마주했다.“회장님, 제가 부진석의 곁에 남아 있는 동안, 그 사람이 A국 지사의 기밀을 훔쳤다는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다만 지금 이 증거는 제 손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저와 함께 떠나는 것을 안심하시지 못한다면, 저는 이 여사님과 함께 증거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그래요.” 진연월은 승낙하더니 바로 일어섰다.유준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이제 점점 나 대신 결정을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