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한테서 사모님 몸이 좀 편찮으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인사도 좀 드릴 겸 해서 찾아온 거예요.”임재욱은 말하면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유시아를 대하던 까탈스러운 모습을 버리고 부드러운 모습을 장착했다.“좀 어떠세요? 괜찮아 지신 거 같아요?”태도가 달라진 임재욱을 바라보며 유시아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내가 속이 좁았어.’임재욱은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기한테만 나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적어도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외톨이가 되어버린 어르신께 나쁜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좋아졌어요. 바쁠 텐데 이렇게 병문안까지 오고 고맙네요.”이채련은 웃으면서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옆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좀 앉아요.”유시아가 단독 병실을 마련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공립 병원인 만큼 환경이 그리 좋지는 않다.병실에 의자도 하나뿐이고 그 의자마저 상태가 좋지 않다.“고맙습니다.”임재욱은 앉고 싶지 않아 유시아를 끌어당겨 강제로 앉혀 버렸다.다정해 보이는 모습에 유시아는 순간 온몸이 굳어지는 것만 같았다.이채련을 바라보면서 내내 불안해했다. 어찌 됐든 전 며느리로서 새로운 남자인 임재욱을 데리고 병문안을 온다는 건 이치에 맞는 행동인 것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유시아는 심지어 슬슬 같이 온 것에 대해 후회하기도 했다.안절부절못하던 그 순간 간호사가 문을 두드렸다.“11호 보호자 분, 약 좀 가져가세요.”낯이 익은 간호사를 보고서 유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채련을 등지고 임재욱을 바라보았다.간절하게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그러고는 곧바로 숨이 턱턱 막히는 병실을 나왔다.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게 된 병실 안에서 이채련은 덤덤하게 웃으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다른 일로 온 거 아니에요?”“소현우 어머니이시고 시아 전 시어머니이신데...”임재욱은 그 의자에 앉아 이채련과 가능한 한 눈높이를 맞추려고 했다.“시아가 많이 신경 쓰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따라서 신경 쓰고 있는 거고요.
소현우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그도 그의 어머니도 쉽게 이름 석 자만으로 유시아를 흔들 수 있다.이에 대해 임재욱은 아프면서도 어할 도리가 없어 괴로운 것이다.유시아가 모든 짐을 내려놓고 그 한 페이지를 넘기고 자기 옆에 얌전하게 있게 하려면 이채련의 노후 정도는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임재욱 역시 그럴 수만 있다면 흔쾌히 노후를 책임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이채련은 이렇게 굳이 병실까지 찾아온 임재욱의 뜻을 알아차렸다.여자 하나 때문에 빳빳하게 들고 다니던 고개를 숙이기까지 하다니, 그 모습에 이채련은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따라서 이채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한 번 타일러 볼게요.”그러더니 또다시 나지막이 말했다.“시아한테 잘해줘요. 귀엽고 사랑받아도 마땅한 아이잖아요. 시아한테 잘해 주면 시아는 절대 그쪽과 헤어지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임재욱 역시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띠었다.“네, 걱정하지 마세요. 꼭 그렇게 할 거예요.”...임재욱의 도움을 받아 이채련은 아주 순조롭게 이원 절차를 밟았다.새로 옮긴 병원은 도시 외곽에 있어 지리적으로 좀 외딴곳이긴 하나 공기도 환경도 일품이라 요양하기엔 적합하다.그 외에 임재욱은 해외에서 전문가를 모셔 와 이채련을 돌보게끔 했다.이원 하는 그날 임재욱은 회사에 일이 있어 유시아가 함께 갔었다.병실의 인테리어는 력셔리 그 자체였다.창문을 열면 꽃이 활짝 피어 있는 정원과 인공 호수가 보여 시야가 탁 트는 것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평소에 다른 일들로 바삐 도는 유시아는 이곳으로 자주 찾아올 수 없어 이채련이 가장 좋아하는 백합이란 채색 앵무새 두 마리를 사서 친구가 되어주도록 했다.간병인과 함께 침실을 깨끗하고 청소하고 나서야 서서히 떠날 준비를 했다.“어머님, 편히 쉬고 계세요. 그 어떤 병도 마음 상태에 따라 좋고 나빠지는 것이니 매일 편한 마음으로 계시고요. 시간 나는 대로 바로 달려올게요.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해 주세요.”이채련의
‘도청기가 옮겨졌다고?’유시아는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숨이 턱 멈추는 듯했다.작은 도청기를 임재욱 사무실 의자 아래쪽에 붙여놓았는데, 눈에 띄지 않은 곳일 뿐만 아니라 평소에 청소를 자주 한다고 해도 절대 발견될 리가 없는 곳이다.임재욱은 과연 어떻게 알고 도청기를 옮긴 것일까?그 비밀은 어떻게 발견하게 된 것일까?그냥 단순하게 의자를 바꾸고 싶어서 그런 걸까?가장 마지막 추측이기를 유시아는 간절히 바랐다.사무실 안에 감시 카메라도 없거니와 그날 유시아 혼자만이 사무실에 있긴 했는데 자기를 의심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그렇게 스스로 안정을 주며 왠지 모르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마음속의 커다란 짐이 놓이는 것처럼 가슴도 마침내 가라앉았다.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된다고.유시아는 심지어 한서준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거봐요, 안 먹힌다고 했죠? 이쯤에서 다시 하는 말인데, 재욱 씨한테 어떻게 할 생각하지 말아요. 결과는 뻔하잖아요.”“승패를 논하기에 아직 너무 이른 거 아니야?”한서준은 도로 질문을 던지며 피식 웃었다.“그보다도 넌 궁금하지 않아? 자기 여자한테 배신당한 임재욱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것도 다른 남자랑 같이 손을 잡고 배신을 때린 거라면 얼마나 빡칠지...”유시아는 그 말을 듣고서 한참 지나 대답했다.“실은 나도 궁금하긴 해요.”도청기를 의자 밑에 붙인 건 유시아가 사실이다.한서준과 손을 잡고 임재욱을 무너뜨리려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알고 싶었다.모든 걸 알고 난 임재욱의 반응을.4년 전과 4년 후, 임재욱 마음속의 자기는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인제와 보니 슬슬 그 답을 얻게 될 타이밍이 된 듯싶다.콜택시는 곧 도시에 이르렀고 유시아는 예전 그대로 수업에 집중했다.저녁 즈음, 학생들을 보내고 나서 퇴근하려고 위층에서 내려왔다.그때 휴게실 소파에서 잡지를 보며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임재욱이 시야로 들어왔다.“시아야, 퇴근했어?”그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임재욱은 잡지를 내
그런 임재욱과 반대로 신서현은 어디를 가나 밴과 매니저가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여 연애했었지만, 단 한 번도 대놓고 당당하게 한 적이 없다.가장 용기를 낸 순간을 뽑으라면 아마 신서현 아버지에게 들킨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포옹하고 뽀뽀했던 그 순간, 그것이 전부였다.신서현은 호화로운 생활을 바라는 여자도 아니었다.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함께 하기를 바랐는데, 그러한 부분에 대해 임재욱은 죄책감을 느꼈었다.신서현에게 좋은 생활을 안겨다 주지 못한 것 같아서.지금 두 사람 모두 마음속으로 신서현을 떠올리고 있다.순간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남아 넘실거렸던 달콤했던 분위기는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저녁을 먹고 나서 유시아는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예전처럼 화실로 들어가 그림 그리기에 전념했다.오늘 간단하게 스케치하고 싶어 조각상을 모델로 삼아 천천히 선을 긋기 시작해다.아직 채 완성하지 못했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조각상 앞을 가로막았다.욕실에서 이제 막 나온 임재욱이다.그는 회색 가운을 느슨하게 걸치고 의자를 유시아 앞으로 당겨와 앉았다.“내가 오늘 한가해서 그러는데, 모델로 서 줄게.”유시아는 웃었다.“오늘 엄청 바쁘실 텐데, 이럴 시간 있어요?”“왜?”임재욱은 눈썹을 들썩였다.“그려주기 싫어?”유시아는 연필 끝을 물고 그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씩 하고 웃었다.“누구나 모델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치골 라인 선명해요? 복근은 몇 개고요? 등 근육은 어때요? 역삼각형 몸매이긴 한가요?”유시아는 턱을 살짝 올리고 애교를 떠는 듯한 목소리로 연달아 질문을 던졌다.이런 평범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기 때문이다.도청기가 대우 그룹에서 나온 이상 회사 내부에서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이미 조사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언젠가는 자기한테까지 파급될 테니 마지막 남은 이 순간이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모든 게 밝혀지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하는 지도 미지수이다.임재욱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어쩔
하얀 종이 위에는 조금 전 임재욱의 모습이 아니라 그의 뒷모습이었다.정장 차림에 손에 서류를 들고 고개를 약간 숙인 그의 모습, 떡 벌어진 어깨와 땅을 짚고 서 있는 긴 다리, 흑백을 뚫고 나오는 아우라에 저절로 눈이 부셨다.“유시아....”임재욱은 웃으면서 유시아를 품으로 끌어당겼다.“놀린 거 맞지? 온몸이 시큰할 정도로 그렇게 한 자세로 오랫동안 버티고 있었는지, 재밌었어?”유시아는 그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재욱 씨, 이 뒷모습도 재욱 씨잖아요.”다른 바가 있다면 4년 전의 임재욱이었다.그때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임재욱은 변호사를 데리고 이혼 합의서 초고를 들고 병원으로 찾아와 사인을 요구했었다.그날 임재욱이 입은 정장은 바로 지금 그림 속에 있는 흑백 정장이었다.그는 손에 이혼 합의서를 들고 단호하게 떠나는 뒷모습만 남겼었다.그 뒷모습이 가슴속에 낙인되어 지금껏 아프게 하고 있다.5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그 아픔은 처음 느꼈던 그때처럼 똑같았다.살짝 바람이 불어와도 상처가 다시 돋아나고 지난 일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유시아는 손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했다.“여기 한 번 봐요. 재욱 씨가 들고 있는 저 서류는 내가 사인을 마친 이혼 합의서예요. 재욱 씨는 모르겠지만, 그때 전 재욱 씨 뒷모습을 끝까지 봤어요.”얼굴에 번졌던 웃음은 서서히 사라지고 임재욱은 가슴 한쪽 곁이 미어지기 시작했다.그날의 모든 순간을 임재욱 역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이혼 합의서를 들고 감옥으로 찾아가 유시아에게 모욕을 주고 그녀의 신분을 박탈하면서 교도관에게 잘 부탁한다고 했었다.잘 부탁한다...간단한 말 한마디는 유시아에게 악몽처럼 다가왔었다.3년 동안 유시아는 그 짧고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임재욱은 모른다.하지만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가슴 속에 묻고 있던 한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었다.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부터 유시아의 기분이 신경 쓰였고 그녀의 눈물이 두려웠으며 매사에 조심스러
두 사람은 제각기 하고 싶은 말만 했다.유시아는 도청기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했고 임재욱은 화제를 돌리느라 바빴다.“참 잘 그렸어. 분위가 아주 그냥...”유시아는 덤덤해 보이는 임재욱을 바라보면서 순간 놀림을 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어디선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손을 내밀어 그 그림을 빼앗아 왔다.이윽고 갈기갈기 찢어버려 공중에 확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임재욱 씨!”임재욱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고 화난 나머지 빨갛게 달아오른 유시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또 왜 이러는 거야?”유시아는 온몸을 살짝 떨며 또박또박 물었다.“도청기에 대해 얘기하고 있잖아요. 못 들었어요?”“들었어.”임재욱은 덤덤하게 대답했다.귀로도 마음으로도 유시아의 말을 똑똑히 들었는데.임재욱은 잠시 침묵하더니 운을 떼기 시작했다.“잡다한 일로 이러고 싶지 않아. 그럴 가치도 없는 일이고. 그러니 좀 그 일에 대해서 그만 얘기하면 안 돼?”“딱하고 싶은데요.”유시아는 다소 달갑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였다.“그래.”“그럼, 바른대로 알려줄게. 내 사무실에 감시 카메라는 없지만 도청기 제어하는 시스템이 있어.”대우 그룹의 모든 기밀이 임재욱 사무실에 있고 많은 프로젝트에 관한 사항들도 모두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된다.그런 중요한 곳에 유시아와 같은 아마추어를 쉽게 들여서 도청기까지 붙이게 할 수 없단 말이다.하여 유시아가 사무실로 찾아온 그날부터 임재욱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내가 지금까지 말하지 않는 건, 전에 이와 비슷한 일로 널 감옥에 들어가게 했었기 때문이야. 네가 한 짓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랑은 상관없다고 여기면서 평생 말하지 않으려고 했어. 이걸로 손해를 보지 않은 건 내가 운이 좋아서 그렇고 만약 이대로 손해를 본다면 자업자득이라고 하면서.”임재욱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지그시 바라보았다.“시아야, 내가 너한테 빚진 건 앞으로 천천히
늦은 밤, 별장 안은 유난히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어두운 침실에서 임재욱은 서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기절이라도 한 듯한 유시아를 바라보며 그는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녀의 얼굴에 천천히 뽀뽀하고 나서 그는 옷을 걸치고 화실로 향했다.이곳은 평소에 유시아 혼자만의 아지트로 조각상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고 그녀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임재욱은 화실 안쪽으로 들어가 허리를 숙여 유시아가 찢어 버린 그림 조각을 하나씩 주었다.다시 테이블로 가져와 천천히 맞추면서 정성껏 복귀 작업에 들어갔다.풀로 붙인 그림이라 아무리 작업 솜씨가 뛰어난 다고 한들 흔적은 눈에 선명했다.한눈에 보이는 것이 결코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마치 유시아를 대하는 것처럼 아무리 사랑해 주고 보살펴 준다고 해도 전에 안겨다 주었던 그 상처들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없듯이.사실이 이러한데도 임재욱은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노력하면 가능성이라도 있지 노력마저 하지 않으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옆에 강제로 묶어 두는 건 기껏해야 자기를 싫어할 뿐이고 적어도 임재욱은 앞으로 여한이 없게 된다.임재욱은 고개를 숙이고 ‘산산조각’ 난 그림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서재로 향했다.다음 날, 유시아는 거의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깨어났다.커튼을 거두지 않았으나 여름의 햇살은 무척이나 강렬하여 커튼을 뚫고 들어왔다.어젯밤 임재욱이 일방적으로 뜨겁게 사랑을 나눈 바람에 유시아는 몸도 아프고 머리가 아파 났다.하지만 배가 하도 고파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허씨 아주머니는 따뜻한 우유를 건네주며 계란 후라이도 해주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이제 곧 오실 거예요. 같이 식사하러 오신다고 했는데, 일단 허기만 좀 채우시고 이따가 정식으로 식사 하세요.”유시아는 그 말을 듣고서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점심에도 집에 와서 먹어요? 그렇게 할 일이 없나.”허씨 아주머니느 웃으며 말했다.“아가씨께서 맨날 혼자서 식사하
부엌 안으로 들어간 건 아니지만 풍겨 나오는 냄새로 봐서는 대충 짐작이 되었다.임재욱이 점심 먹으러 온다고 하여 쉐프들이 메뉴에 힘을 들였다는 것을.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바로 뒤돌아서서 위층으로 향했다.임재욱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피식 웃고서 바로 따라갔다.여자를 달래는 건, 좋아하는 여자를 달래는 건, 그 또한 일종의 재미이다.침실로 들어서자마자 임재욱은 바로 목소리를 낮추어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화났어? 어디 아파? 내가 어젯밤에 좀 너무 심했지? 미안해... 어디 다쳤는지 한 번 봐봐.”임재욱은 말하면서 그녀를 침대로 데리고 왔다.“누워 봐봐, 한번 보자...”유시아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그를 확 밀쳐 버렸다.“대낮에 뭐라고 그러는 거예요! 낯간지럽게...”임재욱은 내내 웃으며 말했다.“남녀가 사랑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낯간지럽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게다가 어젯밤 너도 엄청 즐겼잖아. 침대 위에서는 엄청 즐기더니 지금은 또 아닌 가 봐? 이걸 보고 ‘침튀’라고 하나?”“시아쌤, 사람은 성실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유시아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임재욱은 계속 그녀를 놀렸다.대낮에 이러한 얘기를 입을 올리고 있으니, 유시아는 듣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웠다.그러다가 순간 어젯밤 침대 위에서 보였던 자기의 그러한 모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입으로는 욕하고 있지만 그의 리듬에 따라 계속 깊숙이 들어가면서 서서히 극에 달하는 그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으니 말이다.천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젯밤의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다.흥분한 나머지 유시아는 발을 들어 그를 차려고 했다.다행히 눈치가 빠른 임재욱은 바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무릎을 막아 버렸다.“시아야, 평생 외롭게 지내고 싶어?”지난번 피팅룸에서 방심한 틈을 타 유시아의 공격이 제대로 먹혔으나 이번에 역사를 재현할 수 없었다.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유시아를 바라보며 임재욱은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안았다.“가자, 배고프다.”무더위를 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