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대학 병원에서.유시아가 병실에 앉아 병상에 누워있는 이채련을 보고서 살짝 넋이 나갔다.오랜만에 만나는 것이고 그동안 무척이나 수척해진 것만 같았다. 피부도 예전처럼 곱게 빛나지 않을 정도로.의사의 말로는 별다른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다만 적지 않은 충격으로 혈압이 높아지면서 당분간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을 뿐이다.더 이상 그 어떠한 충격도 정서 파동이 심해져서도 안 된다면서.유시아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이채련처럼 시야도 넓고 그동안 이러저러한 경험도 많이 쌓았을 것인데 이러한 사기극에 휘말리게 되었으니 말이다.바깥에서 문을 천천히 밀면서 간호사가 들어왔다.그녀는 이채련이 복용해야 할 약들을 침대 머리에 가지런히 놓고 입을 열었다.“환자분 깨어나시면 꼭 드시게 하세요.”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맙습니다...”두 사람의 말 소리에 이채련이 깨어났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는데 유시아를 보자마자 당황함은 곧 짙은 혐오로 변하고 말았다.“네가 어떻게 여기에?”“쓰러지셔서 제가 병원으로 모시고 온 거예요.”유시아는 덤덤하게 말했다.“괜찮으세요? 좀 어떠세요?”“내가 아프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이채련은 차가운 눈빛으로 유시아를 노려보며 덧붙였다.“우리 현우가 남겨준 집도 그놈한테 줬지? 이제 곧 결혼까지 해서 사모님 소리 들으려고? 한창 바쁠 텐데 나한테 이렇게 시간 들이는 이유가 뭐야? 그 사모님 자리에 내가 침을 뱉을 수도 있는데 두렵지도 않아?”욕설이 장마처럼 쏟아져 내려왔다.유시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서 입을 열었다.“제 얼굴 보기 싫으시면 도우미 보내드릴게요.”이채련은 그녀를 싫어한다. 가능한 한 죽이고 싶을 정도로.유시아를 보게 되면 이채련은 하나뿐인 아들 소현우가 저절로 생각나기 때문이다.만약 소현우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고집만 피우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결혼식 당일에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사망할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소현우를 죽인 범인
“...”유시아는 입술을 사리물었다.“알았어요. 하루빨리 완쾌하시길 바랄게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병실 문을 닫았다.병실을 떠난 그녀는 이채련을 전담 마크하고 있는 간호사를 다시 찾아갔다.“죄송합니다만 우리 아주머니 좀 많이 신경 써 주세요. 제가 요즘 좀 바빠서 자주 올 수 없거든요. 이따가 가사 도우미가 올 거예요. 도우미도 연세가 꽤 있으시고 아주머니도 지금 날이 서 있는 상황이라 힘들어도 좀 많이 신경 써 주세요.”유시아는 말하면서 지갑에서 20만 원을 꺼내 간호사에게 주었다.“부탁 좀 할 게요.”“이러실 필요 없어요.”간호사는 연신 거절했다.“처음 겪어보는 케이스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세요. 제 직업이기도 하니 응당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돈은 됐어요.”아무리 밀어 넣어도 받으려고 하지 않자, 유시아는 하는 수 없이 돈을 도로 거두었다.그러고는 자기 전화번호를 남겨주는데.“만약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수시로 전화 주세요. 시아라고 부르시면 되고요.”간호사는 유시아의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했다.“네, 걱정하지 마세요.”화실 수업을 미뤄버리고 유시아는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허씨 아주머니는 유시아의 이마에 작은 붕대가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아가씨, 다치신 거예요?”“괜찮아요. 살짝 부딪힌 것뿐이에요.”유시아는 개의치 않아 하며 슬리퍼로 갈아 신고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하지만 순순히 보내주는 허씨 아주머니가 아니었다.유시아 앞을 가로막고서 이마를 천천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흉터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러세요. 감염될 수도 있는데... 홈닥터 오라고 할게요. 아니면 대표님과 병원으로 가셔서 검사받아 보실래요?”유시아는 어이가 없었다.“그 정도 아니에요. 그냥 아주 살짝 다친 거예요.”말을 마치고 허씨 아주머니를 돌아 바로 올라갔다.허씨 아주머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이윽고
“손가락은 왜 그렇게 내밀고 있는 거예요?”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유시아는 의아하기만 했다.그와 반대로 임재욱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데.“용케 알아 보고 바보가 된 건 아니네.”“재욱 씨!”유시아는 그제야 알아차리면서 넓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솜 주먹으로 임재욱을 때리면서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는데.“나빴어요! 재욱 씨야말로 바보 아니에요?”임재욱은 나지막이 웃으면서 여세를 몰아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들어 안았다.그렇게 한 몸이 된 채로 침실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유시아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서 얼굴을 가슴에 기대었다.불현듯 신서현과 함께 있을 때 그의 모습이 어떠한지 궁금하기도 했다.하지만 그 모습이 과연 어떠할지 알 길도 없었다.자기와 함께 있을 때는 이러한 모습인데, 왠지 싫지만은 않았다.알콩달콩한 분위기 속에 두 사람 모두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임재욱은 그녀를 들어 안은 채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조금 높은 서랍장 위로 내려놓았다.워낙 10센티미터 정도 키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다.평소에 유시아는 늘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이렇게 내려다보는 건 처음이었다.살짝 붉어진 얼굴에는 아직도 수줍은 미소가 남아 있었다.한 송이의 백합처럼 순결하지만 강인해 보여 좋았다.임재욱은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턱에 입을 맞추었다.“시아야, 좋아?”그 질문에 유시아는 살짝 놀라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그 질문 속에 다른 뜻이 들어있는 것도 같았다.유시아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임재욱은 뒤꿈치를 들고서 그녀의 얼굴에 뽀뽀했다.그러고는 애매하기 그지없게 웃기 시작하는데.“그럼, 내가 기분 좋게 만들어 줄까?”바로 그 뜻을 알아차린 유시아는 그를 확 밀어 버렸다.“안 돼요! 아직 날도 밝은데...”“커튼 치면 어두워지잖아.”임재욱은 말하면서 그녀를 서랍장 위에서 내려 주면서 그대로 안고 침대로 갔다.여름이라 해가 무척이나 길었다.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임재욱은 곤
“전 괜찮아요. 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으라고 전해주세요.”유시아는 허씨 아주머니의 말을 끊어버리는 동시에 재빠르게 운동화로 갈아신었다.묵직하고도 화려한 출입문을 열고서 종종걸음으로 다급하게 문을 나섰다.별장 구역을 지나 거리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고 나서야 빈 택시에 오를 수가 있었다.유시아는 택시에 오르자마자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대학 병원으로 가주세요.”...병실 안에서.이채련의 정서는 여전히 안정적이지 못했다.진정제를 맞고 이제 겨우 잠에 들었고 간호사는 유시아를 한쪽으로 불러와 나지막이 말했다.“오후 내내 다른 가족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어요. 환자분 정서 파동도 엄청 심하고 자살 경향까지 있어요. 옆에서 좀 지켜보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시아는 한숨을 깊이 내쉬고 말했다.“네, 고마워요.”“아니에요.”간호사는 말하면서 유시아에게 명세서 하나를 주었다.“이거 가지고 가셔서 병원 비용 지급하시면 돼요. 아주머니 상황을 보아서는 당분간 퇴원하기 힘들 것 같은데, 선급금을 좀 더 내셔야 할 거예요.”유시아는 명세서를 건네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내고 올게요.”어찌 됐든 목숨은 건졌으니 다른 일은 멀리 내다보면 된다.유시아가 기억하기로는 소현우가 죽고 나서 대부분의 재산을 이채련에게 건너간 것을 알고 있다.적어도 수십억은 될 것이고 소씨 가문의 저택까지 있으니 넉넉할 수밖에 없다.제태크 회사의 수단에 말려들지만 않았더라면 돈 때문에 자살하려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도 없다.스스로 목숨을 끊은 끔찍한 행동까지 하는 걸 보면 아마 그 손실이 막심할 것이다.감당하기 힘들 정도로.‘도우미 온다고 했는데, 왜 아무도 안 왔지? 병원 비용 내주는 사람 하나 없고?’유시아는 머리가 아파났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간호사가 알려준 대로 병원비를 지급하려고 카드 안에 있는 돈을 한꺼번에 모두 넣어버렸다.돈을 내자마자 임재욱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시아야, 너 지금 어디야? 아주머니께서 그러시던
유시아는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 보통 화를 잘 내지 않은 편이다.고마운 줄도 모르고 이채련이 자꾸 막무가내로 하는 것을 보고 슬슬 짜증이 나서 대꾸하기 시작했다.“아주머니께서 절 싫어하신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만약 아무런 일도 없었으면 이렇게 나타나서 굳이 그런 쓴 소리를 들을 이유도 없었을 거예요. 근데 제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시름 놓고 갈 수가 있겠어요! 사기당하고 스스로 목숨까지 끝내려고 했던 아주머니를 어떻게 혼자 두고 가냐고요!”어찌 됐든 이채련은 소현우의 어머니이다.아무런 일도 없었으면 평생 마주치지 않고 그렇게 살았을 건데 좋지 않은 일이 생겼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이대로 뒤돌아서서 떠났다가 또다시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유시아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유시아는 그 간호사에게 말했다.“얘기 좀 하고 있을게요.”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쟁반을 들고 나갔다.두 사람만 병실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고 유시아는 천천히 병상 옆으로 다가갔다.“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왜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는지...”소현우가 죽었을 때도 이채련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지 않았었다.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아픔 속에서 어느 정도 헤어 나왔을 건데 단지 사기당한 것 때문에 이 지경이 된다는 게 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어쩌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채련을 고개를 획 돌리고 고집을 피웠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죽든 말든 그것도 너랑 상관없는 일이니 그만 신경 써!”“현우 엄마잖아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저 갈 수 없어요.”유시아는 이채련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무슨 일이 있든 일단은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현우도 그걸 원하고 있을 거예요. 이렇게 힘들게 지내시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할 거예요. 괜찮으시면 제가 자주 댁으로 찾아가서...”이채련은 바로 단호하게 거절하는데.“필요 없어! 우리 집안과 넌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살짝 흔들린 듯한 이채련의 얼굴을 보고 나서 유시아는 계속 덧붙였다.“일단은 살고 봐야지 않겠어요?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을까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잖아요.”이채련은 입을 꾹 다문 채 의외로 고개를 끄덕였다.유시아는 또다시 병원 밖으로 나가 이채련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병원을 떠나 그린레이크로 돌아갔다.별장 안에서 임재욱은 초조한 걸음으로 거실을 누비고 있다.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고서 바로 다가가 다소 난폭한 모습으로 손목을 확 잡아당겼다.노여움이 가득한 얼굴은 그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다.“유시아! 대체 어디 있다가 온 거야! 전화도 안 받고 죽고 싶어 환장했어!”너무 꽉 잡고 있는 바람에 손목이 아파 났다.“아파요...”임재욱은 복수라도 하는 듯이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어디 갔었는지 바른대로 말해!”“화... 화실에 갔다가 친구랑 야식 먹었어요.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유시아는 말하면서 손을 뿌리쳤다.“이것 좀 놔요! 아프다고요!”임재욱은 그제야 그녀를 소파로 밀치고 나서 위층으로 올라갔다.올라가면서 비서인 강석호에게 전화를 걸어 그만 찾아도 된다고 했다.소파로 넘어진 유시아는 손목을 어루만지며 겨우 진정했다.이때 허씨 아주머니가 차 한잔을 건네주면서 말했다.“아가씨, 대표님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아가씨께서 아무런 소식도 없으셔서 저녁도 안 드시고 지금까지 조급해하셨어요. 제가 죽 좀 끓여줄 테니 가져다드리세요.”이는 유시아에게 주동적으로 다가가 임재욱의 환심을 사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애완견이 주인에게 간식을 얻어먹으려고 재롱을 피우는 것처럼.거절하고 싶었으나 유시아는 왠지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평소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건데 임재욱한테서 돈을 얻어내어 이채련에게 줄 생각이었다....윗층, 서재 안에서.기분이 상해버린 임재욱은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어 소파에 앉아 뭉치와 놀고 있었다.뭉치는 그의 다리에
임재욱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유시아는 그가 아직도 삐친 줄 알고 소리를 한껏 낮추었다.“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네?”임재욱은 그제야 안고 있던 뭉치를 내려놓고 책상 쪽으로 다가와 앉아 웃는 듯 마는 듯 유시아를 바라보았다.“유시아, 나한테 부탁할 일이라도 있어?”그렇지 않고서는 유시아처럼 줏대가 있는 사람이 이럴 수가 없다.심씨 가문을 위해서 직접 찾아와 부탁을 하긴 했어도 잘 보이려고 아첨을 떨었던 적은 없었다.유시아는 그 말에 살짝 굳어졌다. 들고 있는 죽을 내려놓고 천천히 다가가 그의 맞은 편에 서서 용기를 냈다.“돈이 필요해서 그래요!”임재욱은 덤덤하게 대답하고서 다시 물었다.“얼마나?”“2억 정도?”유시아는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한 것이다.구체적인 금액은 유시아도 내내 고민했던 바이다.부유한 생활에 습관 되어 있었던 이채련이기에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실은 몇억으로도 여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유시아는 임재욱이 자기와 흥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높게 부른 것이다.금액을 듣고서 임재욱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그 돈으로 뭐 하려고?”돈에 대해서 별다른 개념이 없었던 유시아인데 갑자기 2억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상한 낌새를 느끼게 된 것이다.“돈 좀 가지고 있으려고요.”유시아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면서 책상 위에 있는 장식품을 만지작거렸다.“많이 요구한 것도 아니잖아요. 별장이랑 아파트 모두 재욱 씨한테로 넘겨줬는데, 부동산 찾아서 팔아버리면 2억보다 더 나올 수도 있고요.”임재욱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이리 와 봐.”유시아는 고분고분 다가갔고 임재욱은 그녀를 자기 허벅지 위로 끌어안았다.그 모습에 유시아는 놀리지도 않고 발버둥 치지도 않았다.“카드로 보내줄 수 있죠? 가능한 한 빨리 보내주세요.”“돈으로 안전감을 느끼는 거야?”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알았어. 마침 은행에 아는 친구가 있어.
돈에 대해 확답을 얻지 못한 유시아는 이미 흥이 깨진 대로 깨졌다.바로 임재욱의 손을 뿌리치면서 거절했다.“그럴 기분 아니에요.”“왜? 내가 돈 안 줘서 그러는 거야?”임재욱은 그녀의 턱을 살짝 쥐고서 다소 까칠하게 말했다.“유시아, 너 술집 아가씨야?”간단한 물음 한 마디에 신경이 제대로 건드려졌다.유시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자포자기한 듯 말했다.“비슷한 맥락이죠.”그 대답에 임재욱은 피식 웃는데.“한 번 자는 데 2억인 아가씨는 없어. 그 어떤 클럽에서도.”“주제넘었네요. 제가.”유시아는 그를 밀치고 서재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그럼, 이만.”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서 임재욱은 온몸에 열이 점점 불타올라 다가가 그녀를 들어 안았다.다시 책상 위로 눕혀 놓고 어깨를 꽉 눌렀다.화끈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임재욱은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그동안 너무 순순했지? 네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잊은 거야? 심씨 가문 일로 나한테 찾아와서 빈 거 잊었어? 생각해 보니 밑지는 장사 같아서 또다시 몸값 높여서 나한테 널 팔려는 거야?”그 말에 유시아는 수치스러워 미친 듯이 그를 밀어냈다.“나쁜 놈!”임재욱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욕까지 하네? 그래!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제대로 보여줄게.”‘아파.’지나친 아픔에 유시아는 그의 책상 위에서 생을 마감할 것만 같았다.돈은 둘째 치고 오히려 호랑이 굴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유시아는 이채련의 일로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다.도우미마저 구하지 못하고 있는 이채련, 부유하게 지금껏 살아온 이채련, 만약 짧은 시간 내에 돈을 가져다 주지 않으면 또다시 죽으려고 할 것이다.그 생각에 유시아는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임재욱과 함께 욕조에 누워있을 때도 머릿속으로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부드러운 조명 때문인지 임재욱의 딱딱하고 차가운 얼굴은 유난히 부드러워 보였다.“어디에 쓸 건지 말해 봐. 다른 남자한테 쓰는 것만 아니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