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 별장, 인테리어 끝낸 신혼집, 증서 있음, 저가 매매...유시아는 순간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소현우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꿈꾸었던 그 신혼집, 피난처로 여겼던 그 따뜻한 곳이 어느새 저가로 매매되고 있었다.마우스를 꼭 잡고 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메인 페이지로 들어가게 되었다.별장 내부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고 별장 안은 어느새 텅텅 비어 있었다.소현우와 며칠 동안 정성껏 골랐던 가구들이 모조리 사라진 채 빈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별장뿐만 아니라 소현우의 다른 아파트도 임재욱 밑으로 전이되었기에 똑같이 매매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이때 밖에서 문이 밀리면서 정장을 입은 비서가 차와 다과를 들고 들어왔다.그녀는 무심결에 소파 쪽을 보았는데 유시아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임재욱의 책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차 좀 드세요.”유시아는 찻잔을 건네받으며 웃었다.“고마워요.”따뜻한 찻잔을 손에 꼭 쥐고서 다시 입을 여는데.“회의는 언제쯤에 끝나요?”비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한 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보통 회의 시간이 거의 한 시간 정도 되거든요.”기다림에 유시아가 지친 줄 알고 비서는 창가 쪽에 있는 헬스 기구를 가리키며 말했다.“심심하시면 저쪽으로 가셔서 운동하면서 시간 보내셔도 좋을 것 같아요.”유시아는 사무실을 훑어보더니 다시 묻는데.“여기서 운동하면 재욱 씨가 알 수 있을까요? 혹시 여기 안에 CCTV 있어요?”비서는 순간 실소를 금치 못했다.“아가씨께서 저기서 운동하신다고 한들 대표님께서 화내실 것도 아닌데요. 뭐가 걱정 되시죠?”유시아는 러닝 머신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실은 제가 몸이 좀 뻣뻣해서 재욱 씨가 보고 놀릴까 봐 그래요. 자주 놀렸거든요.”“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안에 CCTV 없어요.”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마워요.”“그럼, 전 이만 나가서 일 보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얼마든지 부르세요. 바로 옆에 있어요.”비서가 나오고 나서야 유시아는 한숨
위층도 마찬가지로 방마다 텅텅 비어 있었다. 풀 하나 나지 않는 사막처럼.유시아는 멍하니 이방 저방 돌아다니면서 무엇인가 계속 찾고 있는 모습이다.그러나 이곳에 소현우와 관련된 건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소현우가 떠난 지 하도 오래되어 이 별장 안에 남아 있던 그의 숨결마저도 서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옅어져 버렸다. 하나도 남김없이.소현우가 없는 이상 이곳은 더 이상 피난처가 아니다.유시아는 2층 난간에 서서 텅텅 비어 있는 거실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 밖으로 걸어나가 별장 구역을 벗어나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았다.“아저씨, HT 아파트로 가주세요.”그곳은 결혼 전 소현우가 살았던 아파트로 소운 그룹 옛 주소와 거리가 가까워 그곳에서 오랫동안 지냈었다.다만 그 아파트도 이제 곧 임재욱의 손에 의해 텅텅 비어버릴 것이다.하여 유시아는 먼저 손을 써서 소현우의 모든 물건을 미리 챙겨서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갈 생각이다.아파트 안에는 물건이 그리 많지 않았다.소현우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반월 별장을 구매했을 때 이미 많은 것들을 별장으로 옮겨 갔었다.지금 이곳에 남은 건 태반이 낡은 물건 들이고 소현우가 버리고 간 것들이다.전에는 그리고 소중한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임재욱이 몽땅 쓸어버리고 있자,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더없이 소중해졌다.유시아는 특별히 이사 센터에 연락까지 했다.낡은 소파, 침대 시트, 찻잔...이곳에서 여러 해 동안 지낸 거라 안에 있는 물건들이 잡다했다.하지만 이사 센터 직원들의 도움으로 아주 빨리 포장을 끝낼 수 있었다.유시아가 물건을 체크하고 있을 때 한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손님, 서재에 매입형 금고가 있는데, 중요한 거라도 들어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그 소리를 듣고서 유시아는 바로 서재로 향했다.전에 본 적이 있는 금고를 소현우가 쓰는 것도 봤었다.평소에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 아닌 그녀는 소현우에게 비밀번호도 알아낸 적이 없다.
수업하는 내내 유시아는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강의하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금고 비밀번호만 유추하고 있었다.‘어머님 생신도 아니고 우리 결혼기념일도 아니야. 그렇다면 또 뭐가 있을까?’‘또 다른 소중한 날을 내가 잊고 있는 걸까? 그걸 비밀번호로 정한 걸까?’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슬슬 아프기까지 했다.수업을 마친 뒤, 퇴근하려고 한창 준비하고 있던 그때 임재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시아야, 아직도 머리 아파?”“많이 좋아졌어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임재욱은 요즘 영문도 알 수 없는 채 스쿠터에 푹 빠지게 되었다. 어쩌면 유시아에게 푹 빠져서 스쿠터는 그냥 핑계일 지도 모른다.유난히 눈에 띄는 스쿠터를 타고 거의 매일 회사로 마중을 나왔었는데 오늘은 오지 않았다.스쿠터를 타고 다니면 차가 막히지 않아서 좋았는데.“시아야, 갑자기 회사에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생겨서 마중 가지 못했어. 조심해서 들어가고 밥 잘 챙겨 먹고 먼저 자. 좀 늦을 것 같으니 기다리지 말고.”임재욱의 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유시아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지면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한동안 야근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임재욱은 늘 제시간에 맞춰서 마중을 나왔었으니 말이다.오늘 도청 장치를 그의 사무실 의자 밑에 붙이자마자 야근한다고 하니 이 모든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도둑이 제 발에 저린 걸까?심지어 거짓말까지 하고서 몰래 반월 별장에 갔었고 HT 아파트의 모든 물건을 몰래 옮겨버리기도 했다.‘재욱 씨가 알아버린 걸까?’서로 이상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한참 동안 돌아오는 답이 없자, 임재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시아야, 왜 그래?”“별거 아니에요.”유시아는 멋쩍은 웃음과 더불어 덧붙였다.“쉬면서 일하세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더 스케치 화실은 정운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저녁 무렵이 되니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몹시나 시끌벅적거렸다.차가
용재휘가 그림을 그만두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 유시아는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미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있을뿐더러 용재휘의 그림 작품은 늘 살아 숨 쉬고 있는 느낌을 주곤 했다.그 말인즉슨, 그림을 그만두기에는 아까운 인재라는 말이다.임재욱과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당분간 해외로 갈 일도 없이 평범하게 좋아하는 그림 그리면서 사랑을 쏟아부은 화실을 운영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심하윤은 고개를 들자마자 한껏 어두워진 유시아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워서인지 천천히 위로하기 시작했다.“시아야,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어. 언젠가는 가업 이어받으러 해외로 떠났어야 했어. 다만 부득이한 일로 좀 앞당겨진 것뿐이야. 삼촌이랑 숙모에게 자식이라고는 재휘 하나뿐인데, 당연히 가업을 이어가게끔 했을 거야. 내 말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니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미술에서 큰 성과를 따내지 못한 이상 재휘는 집안 어른들의 지시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하물며 삼촌 눈에는 재휘 그림 실력은 한낱 보잘것없고 동네 아이들이나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계시거든.”유시아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어색한 분위기가 잠시 흐르고 심하윤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나지막이 물었다.“잘 지냈어?”실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묻고 싶었으나 미안한 마음에 도통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임재욱 그 나쁜 놈 옆에서 잘 지낼 리가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만약 심씨 가문의 일만 아니었다면 유시아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면서.심하윤은 생각하면 할수록 죄책감이 깊어져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시아야,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실은 모르겠어...”그런 그녀를 향해 유시아는 봄날의 햇살처럼 웃었다.“괜찮아요. 저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어쩌면 재욱 씨랑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자꾸 이렇게 얽히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저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언니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일들은 없어요.”홀가분한 표
5년 전, 피고석 자리에 처량하게 서 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유시아이다.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양손을 묶고 있는 수갑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유시아는 재판장의 선고를 들어야만 했다.한 적도 없는 일이지만 죄명에 따라 그 증거는 더없이 정확했다.하늘에 맹세코 절대 한 적이 없다고 해도 재판장의 소리는 서서히 숨통을 조여왔었다.임재욱을 상대로 단 한 번도 경계심을 일으킨 적이 없었던 유시아는 그의 함정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빠져들면서 그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했다.‘3년’이라고 떡 하니 쓰여 있었던 재판서와 이혼 합의서는 그녀에게 준 임재욱의 신혼 선물이 된 셈이었다.어느덧 시간도 지났고 전에 있었던 일이라 유시아는 그 모든 걸 잊은 채 살고 있는 줄만 알았다.하지만 임재욱의 사무실에 다시 들어선 순간 악몽과도 같았던 그 모든 순간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운명은 그토록 기묘하고 잔인하다고.하지도 않은 일을 신서현 하나 때문에 억지로 자기한테 뒤집어씌웠다고.하지만 지금은 한 번 해보려고 한다. 그때 하지도 않았던 일로 대가를 받아야만 했었던 ‘죄’들을.다시 감옥으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임태훈처럼 위험 저택을 찾아서 죽일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임재욱의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해보고 싶었다.심하윤과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두 사람은 영화도 한 편 보았다.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쇼핑까지 하다 보니 그린레이크로 돌아왔을 때 시간은 이미 9시쯤 되어 있었다.별장 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유시아는 임재욱이 평소에 자주 몰고 다니는 마이바흐를 보게 되었고 2층 침실의 전등도 켜져 있음을 보게 되었다.‘벌써 온 거야? 왜 전화 한 통 없었지?’유시아는 시선을 거두고 쇼핑백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아가씨, 쇼핑하고 오셨어요?”허씨 아주머니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저녁은 드셨어요? 대표님께서 아가씨께 드릴 음식을 준비해 놓으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유시아는 웃으며 대답했다.“먹고
복지원에서 자라서인지 임재욱은 대학교에 다녔을 때도 친구들과 그리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같은 기숙사를 사용하고 있는 친구들과 사이가 그나마 괜찮았을 뿐 집단 활동도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그때 유시아는 그런 임재욱이 폼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와 정반대이다.고독하고 괴벽하며 무엇인가 사람이 뒤틀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임재욱은 그녀의 말을 듣고서 잠시 멈칫거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맞아. 듣다 보니 일리가 있네.”그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자, 유시아는 오히려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고 옷방으로 들어가 잠옷을 꺼내서 욕실로 들어가려고 했다.욕조로 들어간 유시아는 사르르 몸이 녹아들었다.바로 그때 욕실의 간유리를 통해 임재욱의 우람진 몸이 시야로 들어왔다.이윽고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는데.“시아야, 문 열어.”당황한 유시아는 욕조 안으로 몸을 더 깊이 숨기려고 했다.“왜 그러는 거예요!”“내가 회사에서 말했었지? 회의 끝나고 나서 하던 거 마저 하자고. 근데 왜 도망갔어?”임재욱은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말했다.기분이 꽤 좋아 보였고 열쇠로 문을 열고 바로 들어왔다.욕실로 들어서는 순간 당황해 마지 못한 유시아의 얼굴이 보였는데.“거봐, 평생 도망갈 수는 없다고 분명히 얘기했잖아.”“...”임재욱은 과연 뱉은 말을 기필코 지키는 남자였다.한 번 도망간 그 대가는 어마어마했다.욕조 안에서 사랑을 탐구하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지난번 유시아가 술에 취해 있을 때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는데, 별다른 기억이 나지 않았다.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 두 사람 모두 정신이 멀쩡하다.임재욱의 남자다움을 몸으로도 머리로도 고스란히 제대로 느낀 유시아이다.굵은 팔다리로 물 안에서 해초처럼 유시아를 칭칭 감싸 안은 채 절대 놓아주려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마지막으로 달리고 있을 때 유시아는 겨우 크게 숨을 내쉬며 온몸에 힘이 쫙 풀려버렸다.젖어버린 머리카락이 어깨에 찰싹 붙어있어 더더욱 괴로웠다.만족한 임재욱
포악적인 임재욱의 모습에 이미 습관 되어 있는 유시아이다.임재욱의 성격을 바꿀 수 없거니와 그러고 싶은 의향조차 없다.지금 유시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손실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최선을 다해 지키는 것이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적응성이 강한 여성이다.임재욱은 그녀의 어깨를 확 감싸 안으며 말했다.“네가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별장이었어. 달마다 여러 비용도 지급해야 하잖아.”임재욱이 알고 있는 바로는 유시아가 야생가에서 출근하면서 받은 월급 중의 절반을 반월 별장과 HT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받쳐야만 했었다.하물며 소현우도 없는 이상 집을 놔둬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었다.소현우가 남긴 집을 처리하지 않은 이상 유시아는 과거에서 나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관리사무소에 받칠 비용으로 부담만 더해질 것이다.이유라고 하기에는 좀 억지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임재욱의 ‘변명’을 듣고서 유시아는 피식 웃었다.“하긴, 제가 대표님처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장 하나를 따로 장만하여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임재욱은 바로 말 속에 숨겨져 있는 그 뜻을 알아차렸다.그가 소현우의 흔적에 신경을 쓰듯이 유시아 역시 신서현을 기억하는 것이다.심지어 임재욱이 더더욱 신경 쓰는 편이다. 신서현을 위해 유시아를 감옥으로 보낼 정도로.“...”유시아의 말에 임재욱은 말 문이 턱 막혀 순간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유시아는 이미 그의 손을 뿌리쳤고 욕조에서 일어나서 샤워 타월로 몸을 감쌌다.이윽고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말리기 시작했는데.온몸이 이미 사르르 녹은 유시아는 머리를 말리자마자 바로 침대로 몸을 던졌다.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힘들었다.다행히도 밤새 두 사람은 서로를 터치하지 않은 채 덤덤하게 잠만 잤다.다음 날 아침, 핸드폰 벨 소리에 유시아가 깨어났다.눈을 떠 보니 침실에는 오직 유시아 혼자만 남아 있었고 임재욱은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침대 머리에
“임청아 씨는 단순한 사람이에요...”“어릴 적부터 고생 한번 한 적 없고 나쁜 사람을 만난 적도 없는데...”“청아 아프게 할 일은 없을 거야.”유시아의 말을 끊어버리면서 한서준이 덧붙였다.“우리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마.”말을 마치고 유시아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미간이 찌푸려진 유시아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향했다.점심시간이 다 되자, 유시아는 한 시간 전에 미리 집을 나섰다.실은 어제저녁에 심하윤과 밥을 먹을 때, 심하윤이 유시아에게 광고 회사를 소개해 주었다.친구가 운영하는 회사라면서 더 스케치 화실을 위해 무료로 광고를 해줄 수 있다고 그랬다.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유시아가 직접 담당자와 의논해야 했다.경제가 내리막을 타고 있는 이 시기에서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화실에 학생들도 들이기 힘들 것이다.더 스케치 화실을 광고라도 하면서 어떻게든 홍보해야만 했다.유시아도 전에 화실 장부를 본 적이 있는데, 심하윤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용재휘가 화실을 넘겨준 이상 유시아는 반드시 보란 듯이 제대로 운영하면서 어떻게든 화실을 지켜야 한다.하여 시간을 자아내 광고 회사 담당자와 얘기하려고 온 것이다.심하윤의 소개로 찾아온 손님이라는 걸 알았을 때, 광고주는 무척이나 열정적으로 유시아를 접대했다.여러 가지 홍보 방안까지 보여주면서 운을 떼기 시작했다.“편하게 훑어보세요. 마음에 드시는 방안대로 실행에 옮기면 되거든요. 심씨 가문과 여러 해 동안 합작해 온 사이라 사양하실 필요 없어요.”유시아는 광고주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네, 고마워요.”말하면서 고개를 숙인 채 방안을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그중의 한 방안으로 선택하고 나서 광고회사에서 나왔는데,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회사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부근에 있는 한 유리문 앞에 모여들어 시끌벅적했다.실은 광고회사가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단독 건물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