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야?” 하이힐을 신은 세나는 손에 서류 파일을 들고 서 있었다. 입고 있는 예쁜 붉은 치마는 고혹적이었고 예쁜 이목구비는 머리 위 하얀 조명 아래서 더 뚜렷하게 보였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황한 니정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세나에게 다정하게 다가가 팔짱을 끼었다. “그냥 언니가 아닌 거 같아서 적응이 안 됐어요.” “그럼 천천히 적응해.” 세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니정에게서 손을 빼더니 몸을 돌려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음.” 니정은 예전처럼 세나의 맞은편에 앉아 애교를 떨며 말했다. “전 그래도 세나 언니의 예전 모습이 더 예쁜 거 같아요. 지적으로 보이잖아요.” 세나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계약서를 살펴보며 입가에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띠었다. “그러면 네가 그런 스타일로 꾸미면 되겠네.” 니정은 대꾸하지 못했고, 당황한 안색을 보였다. “참, 전근 관련해서 전할 말이 있어.” 세나는 서류 한 부를 니정쪽으로 밀었다. 니정의 표정이 바뀌었다. ‘전근이라고? 설마 전 대표님과의 일을 알고서 다른 곳으로 날 보내려는 건 아니겠지?’ “전 전근은 가고 싶지 않은데요? 뭐 저한테 화난 거 있어요? 제가 무슨 실수를 했나요? 전 언니 곁에 계속 있고 싶어요.” 세나는 니정의 애교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썹을 치켜들었다. “일단 서류부터 봐.” 니정은 입술을 깨물고 서류 파일을 열었다. “세나 언니, 이건?” 니정의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전 대표님의 곁에서 일하라고요?” “맞아.” 세나는 책상 위에 놓인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왜? 싫어?”니정의 눈에 탐욕의 빛이 순간 떠올랐다. ‘내가 싫겠어? 당연히 좋지.’ ‘전 대표님 옆에서 일하면 환심을 살 수 있는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거고, 그러면 더 빨리 언니 대신 전씨 집안의 사모님이 될 수 있는데.’ ‘하지만...’ “세나 언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니정은 서류를 다시 세나에
예전이라면 성빈은 세나를 건드릴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촌스럽고 무뚝뚝한 여자는 남자를 성적으로 자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빈을 세나의 모습에 매우 놀랐다. 그는 세나가 열심히 꾸미면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세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순간 뜻밖에도 세나가 그것을 피했다. 자신의 애정 표현이 거절당하자, 성빈의 마음속에서 세나를 차지하고 싶은 더 강한 욕망이 싹텄다. “세나야, 튕기지 말라고.” 성빈은 넥타이를 풀었다. “솔직히 당신도 항상 나를 원했잖아. 직원들도 다 퇴근했으니 여기에서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거야.” 세나는 오늘 사무실에서 있었던 성빈과 니정의 불륜 행각을 머릿속에 떠올리고는 속이 메스꺼웠다. 똑똑똑-세나가 가까이 다가온 성빈을 밀치려고 할 때 누군가 사무실 문에 노크했다. “강 이사님, 부 대표님이 오셨습니다.” ‘부이경?’ ‘갑자기 여긴 왜 왔지?’ 세나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에게 전해요. 난 이미 퇴근했으니 다음에 시간을 정해 다시 만나자고요.” “왜? 안 만나게?” 성빈은 조금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세나를 바라보았다. “부 대표와의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음, 정말 내가 그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세나는 냉소했다. ‘그래 전성빈, 이 남자가 원래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랑 따위는 상관없는 위선자였다는 걸 왜 여태 잊었지?’ ‘이 남자가 부이경과 나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또 무슨 낯짝을 드러낼까?’원래 세나는 뭔가 어색해서 이경과의 만남을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성빈의 불만스러운 눈초리에 복수를 하려는 마음이 빠르게 싹텄다. 그래서 이경을 만나기로 했다. 신분이 특별해서인지 이경의 곁에는 경호원과 비서가 항상 동행했다. 사무실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세나는 여전히 이경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강 이사님!” 세나가 이경을 미처 밀어내기도 전에 니정이 들이닥쳤다. 아직 사무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성빈은 문틈 사이로 이경이 세나에게 가까이 붙어 있는 모습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부, 부 대표님?” 성빈은 아내가 바람피우는 모습을 발견한 사람처럼 놀라며 차가운 표정으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오해예요.” 세나는 니정의 모습을 보고서 애써 평정심을 유지한 채 두 발짝 뒤로 물러나 이경과 거리를 두었다. ‘난 아직 성빈 씨와 니정이 나를 배신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아직 손에 넣지 못했어. 저 두 사람이 먼저 내 약점을 잡게 해서는 안돼.’ “오해요?” 니정은 다부지고 잘생긴 이경의 얼굴을 탐욕스럽게 몇 번 더 바라보고 질투심을 억눌렀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따라 들어오던 성빈에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선남선녀이신 강 이사님께서 부 대표님과 속삭일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나 봐요. 비록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당황한 세나의 표정이 갑자기 차갑게 가라앉았다. 니정의 말은 세나를 더 난감하게 만들었다. ‘선남선녀, 다정한 모습의 두 사람?’ 이경의 신분 때문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감히 그에게 밉보일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이목이 세나에게로 향했다. “강세나!” 성빈이 앞으로 다가와 세나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당신 왜 이렇게 분수가 없어?”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목소리가 꽤 커서 복도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마치 세나의 배신을 남들에게 대놓고 알리는 것과 같았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지금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거야?” 기가 막힌 세나는 성빈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부 대표 같은 사람에게 나 같은 사람이 가당키나 해?” 성빈은 턱을 바짝 당기고 의심의 눈으로 이경을 바라보았다. 이경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짱을 끼고서 자신과는 상관없는 연극을 보듯 바라봤다. 하지만 그에게서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카리스마가 짙
세나가 회의를 한다고 큰소리치자 성빈은 마음이 착잡한 채로 사무실을 떠났고 니정도 당연히 빠른 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전 대표님, 수상하지 않아요?” 두 사람이 차에 오르자 니정이 성빈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됐어. 내가 언제 꼭 증거를 잡을 거야.” 성빈은 음흉하게 실눈을 뜨고 몸을 뒤집어 니정 위에 올라 마음속의 분노를 모두 그녀에게 발산했다. 니정은 성빈의 움직임에 맞추어 주었지만 그녀에 눈에는 악랄한 기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보아하니 내가 좀 더 신경을 써봐야겠는데?’ ...밤이 깊어지고 사무실에 있던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에 세나는 이미 연락된 사람들을 안으로 들였다. “강 이사님, 이 몰카들을 어디에 설치하시려고요?” “앞 사무실에요.” 세나는 이들을 데리고 성빈의 사무실로 들어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카메라를 설치하게 한 뒤 핸드폰에 있는 소프트웨어에 연결되도록 했다. 핸드폰에서 몇 개의 화면이 사무실의 중요한 각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는 만족스럽게 몰카를 설치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었다. 사무실을 나서자 세나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일단 전성빈, 그놈이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만 잡으면 난 두둑하게 위자료를 받을 수 있어.’ ‘전씨 가문에서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내게 굴욕을 주었으니 나도 당연히 내 이익은 챙겨야지.’ “기분이 좋으신가 보네요.” 뒤에서 불쑥 들려오는 소리에 세나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순간 뒤를 돌아보았고, 이경의 잘생긴 얼굴을 본 순간 마치 잘못하다 걸린 것처럼 바로 그를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끌고 갔다. 이경은 세나에게 이끌려 구석으로 끌려갔고 두리번거리는 세나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지 사람들이 몰래 바람을 피우는 것을 좋아하더라니, 다 이런 짜릿함을 만끽해서였군요.” “부 대표님, 저희는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에요.” 세나는 고개를 돌려 이경을 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린 뭔가요? 강 이
“그래요, 일주일.” 이경도 차마 더 이상 몰아붙일 수 없었고 앞에 있는 세나만 빤히 쳐다보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휴.” 세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마음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다. ‘저 남자, 왜 이렇게 막무가내지?’ 그대로 벽에 등을 붙인 그녀는 주위에 남아 있는 채 가시지 않은 이경의 온기를 느끼며 괜히 가슴이 뛰었다. 이때 맞은편 길모퉁이. 한 사람이 몰래 숨어서 핸드폰으로 세나과 이경의 만남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이 떠나고 난 후 그 사람은 만족스러운 듯 휴대폰 촬영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찍힌 사진들을 보며 냉소를 흘렸다. ‘강세나, 벌써 이렇게 꼬투리가 잡히다니.’ ‘이제 넌 끝이야!’ ...세나가 전씨 집안의 집에 돌아와 보니 가라앉은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소파에 앉아 있던 장화숙과 설아는 세나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발소리를 듣고 반응조차 하기 귀찮았다. 그녀를 그저 투명 인간 취급했다. 세나는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자기 방에 들어서자 놀라서 표정이 금세 바뀌었다. “이모, 여기 제 물건들이 왜 다 없어졌어요?” 오영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걸음을 멈추고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사모님, 어젯밤에는 집에 돌아오지도 않으셨고, 오늘 밤에도 또 이렇게 밤늦게 돌아오셔서, 저희는 사모님이 이 집을 무시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짝!” 오영미는 의기양양하게 장화숙에게 칭찬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세나에게 뺨을 한 대 맞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꽤 세게 맞은 터라 오영미는 비틀거리다가 땅에 쓰러졌다. “사모님! 제가 그래도 여기 전씨 집안에서 이렇게 오래 일한 사람인데 어떻게 저를 때릴 수 있어요?”오영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붉어진 뺨을 만지며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가사도우미이긴 했어도 어쨌든 그녀는 세나의 친어머니와 같은 나이의 사람이었다. “또 무슨 일이야?” 인기척을 들은 장화숙이 급히 위층으로 올라왔다. 지금 성빈이 없으니 세나도 그녀 앞에서 연
성빈이 지난 여러 해 동안 장화숙의 뜻대로 말을 잘 들은 것도 장화숙이 분위기 파악을 잘했기 때문이다. 장화숙은 마음속으로 득실을 따져본 후, 결국 오영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을 내려가며 장화숙은 아쉬운 듯 세나의 곱고 아름다운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들도 결국 남자이니 저런 여우에게 꼬드김을 당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뭐 상관없어. 어차피 이 집의 진정한 안주인은 나니까.’ ‘우리 성빈이가 강세나가 질리면 그때 다시 본때를 보여주면 되지.’ 세나는 오영미가 자신의 짐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놓는 것을 냉정한 눈으로 보고 비로소 만족해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세나야.” 성빈은 세나의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당신 나와 헤어지기 싫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 밤 내가 여보에게 끝내주는 밤을 만들어 줄게.” 세나는 마음속에서 강한 반감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나 자신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성빈에게 부를 안겨주었지만, 상대의 존중을 받지 못했고, 스스로 예쁜 외모를 가리고 산 결과로 얻은 것이 성빈의 배신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고 돌아서서 두 팔로 성빈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희고 고운 가느다란 세나의 팔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처럼 느낀 성빈은 그대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여보!” 세나은 성빈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자신의 몸에 징그러운 흔적을 남기는 것을 제지했다. “왜? 싫어?” 정욕이 이미 타오르며 흥분한 성빈은 움직임이 제지당해 불만이 가득했다. 세나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그녀는 긴장한 채 자신의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멋을 부리지 않아서 다른 여자들에 비해 아직 형편없거든.”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성빈이 세나의 허벅지를 만지려고 했다. 세나는 갑자기 성빈을 밀어냈고 상대방이 화를 내기 전에 그녀는 두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껴안고 억울한 목
“여자는 결국 예뻐야 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촌스러우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그런 말 마. 강 이사님이 오늘 아침에 받은 그 큰 옷상자 전 대표님이 사주신 거래. 가격이 몇천만 원이나 한다던데? ” 니정은 찻물을 들이키며 이를 악물었다. “니정아, 무슨 생각해?” 니정의 뒤에서 세나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고 놀란 니정은 순간 움찔했다. 뒤를 돌아보니 어제보다 더 섹시한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세나가 보였다. 치마 뒤쪽에 실크 원단이 둘러져 있어 엉덩이 굴곡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하지만 그녀의 우아한 웃음으로 옷차림이 전혀 저속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니정의 가식적인 웃음이 굳어지며 눈에서 질투의 불길이 일었다. 그녀는 세나가 입은 치마가 명품 브랜드의 신제품으로 가격이 2천만 원 이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설마 이게 전 대표님이 사준 건가? 그걸 이렇게 빨리 꺼내 입었다고?’ “어때 괜찮지? 성빈 씨가 어젯밤에 사준 거야.” 세나가 무의식적으로 툭하고 말을 던졌다. “좋아요. 아주 예쁜데요.” 니정은 내색하지 않고 말했지만 속에서 열불이 나 안색이 붉게 상기되었다.세나는 주변이 소란스러운 틈을 타 떠났다. 그러나 니정은 마음속의 분노를 아무리 해도 억누를 수 없었다. 세나는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며 웃었다. 그녀는 사무실로 돌아와 시간을 보고서 핸드폰을 꺼내 모니터링 앱을 켰다. 잠시 후, 니정이 성빈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의 살색의 몸과 즐기는 표정이 핸드폰 화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욱.’화면을 보는 세나는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모니터 되는 화면이 실시간으로 백업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핸드폰을 닫았다. ‘아직 이 증거들로는 충분하지 않아.’ ‘대략 계산을 해보면 성빈 씨가 결혼하고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으니 적어도 JSH그룹 지분의 15%는 내게 분할해 줘야 해.’ ‘한동안 JSH그룹의 자산을 불어나게 한 뒤 주식을 현
이진구는 특별 비서로서 언제나 실행력이 뛰어난 사람이다.그는 고서영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밖으로 끌고 나갔다. 서영이 미친 듯이 저항하며 몸부림쳐도 전혀 놓을 생각이 없었다.“건방지게 굴지 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당장 손 떼!”진구는 금테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고서영 씨는 88층에서 떨어지고 싶은 건가요?”이곳은 무려 88층이었다.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온몸이 박살 날 것이다.그러나 진구의 표정은 농담하려는 듯 보이지 않았다.서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결국 화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세나는 비서의 안내를 받아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경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부 대표님, 지난번 제안을 반영해 기획안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세나는 차분한 태도로 서류를 건넸다. 그러나 이경의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그녀는 무심코 그의 목선을 힐끔 쳐다보게 되었다.그런데 이경은 서류를 받지 않고, 내밀어진 큰 손으로 오히려 세나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였다.“아!”세나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비서는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이경에게서 풍겨오는 은은한 오드콜로뉴 향과 담배 냄새가 묘하게 어우러져, 그녀는 불쾌하기보다는 묘하게 남성적인 매력을 느꼈다.세나는 그의 옆모습을 살폈다. 정교하게 빚어진 이경의 얼굴은 마치 신이 직접 조각한 것처럼 완벽했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부 대표님은 여자가 그렇게 간절하신가요?”세나의 얼굴이 붉어지며,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자 마음속 깊은 거부감이 스며들었다.“직접 해보면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겠지?”두 사람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웠다. 세나는 이경이 말을 할 때 그의 숨소리가 변하는 순간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한 줄기 깃털이 그녀의 심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