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문 로펌.준수한 외모의 남자가 세나에게 차 한 잔을 건넸다. “오래 기다렸지? 오전에 회의가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괜찮아.” 세나는 소파에 기대어 앉았지만,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호석아, 내가 승소할 가능성은 얼마나 돼?”“이혼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재산 분할을 말하는 거야?”“같은 거 아닌가?”“두 가지는 다르지.” 호석은 사건 자료를 펼치며 말했다. “네가 전성빈과 이혼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하지만 재산 분할은, 외도한 쪽이 재산을 모두 포기한다는 법이 없어. 다만 조금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내가 최대한 네 입장을 반영해 볼게.”세나는 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난 내 몫만 챙기면 돼. 그 정도면 충분해.”“걱정하지 마. 내가 있으니 괜찮을 거야.”“고마워.”“우리 사이에 뭐 이런 걸 다 고마워해.”세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선배, 우린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잖아.”세나와 호석은 대학 동기였다. 호석은 그녀보다 두 학년 선배였고, 법학과의 수재로 유명했다. 호석은 대학 시절 세나가 참여했던 토론 동아리의 회장이었다.“참, 점심 같이 먹자.”호석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가 책상 위에 두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세나는 마침 임주아가 걸어온 전화라는 것을 발견했다. “점심 같이 먹을 사람이 이미 있나 봐?”“그런 게 아니야, 세나야. 오해하지 마. 나랑 주아는...”“변명하지 않아도 돼.” 세나는 가방을 챙기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주아는 내 가장 친한 친구야. 그 상대가 선배라 마음이 놓이네.”호석은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세나는 이미 작별 인사를 했다. “난 먼저 갈게. 관련 자료는 이메일로 보낼게.”호석은 그녀의 뒷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여전히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미간이 찌푸려졌다.[밤 9시에 보자.] 호석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벨소리는 멈췄다....세나는 상문 로펌을 나와 길가에서 택시를 잡
세나는 강제로 끌려가다가 비틀거리며 땅에 주저앉았다.그녀의 눈앞에 한 쌍의 구두가 나타나자, 고개를 들어보니 잘 다려진 정장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본 사람은 바로 전성빈이었다.“전성빈! 미쳤어? 감히 날 납치해?”성빈은 세나의 앞에 쭈그려 앉으며, 그녀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려 했다.“건드리지 마!”세나는 혐오스러운 듯 그의 손을 뿌리쳤다. “더러워!”“내가 더럽다고?” 성빈은 차가운 표정으로 세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넌 얼마나 깨끗한데? 부이경이 왜 너랑 협력하려고 했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 내가 널 더럽다고 하지 않은 게 다행인 줄 알아.”세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좋아. 서로 더럽다고 생각한다면, 빨리 이혼하자. 각자 갈 길 가고 다시는 엮이지 말자.”“이혼은 할 수 있어. 하지만 고객 정보와 JSH 그룹의 주식은 하나도 가져갈 수 없어!”“무슨 근거로? JSH 그룹이 오늘날 이렇게 된 건 누구 덕인지 네가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양심이 무슨 소용 있어?” 성빈의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보지 않아도 니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성빈의 팔짱을 끼고,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성빈 씨,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돼요. JSH 그룹이 강세나에게 반이라도 넘어가면 나머지도 끝장이에요.”세나는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거야?”“뭘 하긴요, 그냥 언니가 이 JSH 그룹의 주식 분배를 모두 포기하겠다는 자발적인 합의서에 서명하기만 하면 돼요.”니정은 한 장의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언니가 서명만 하면, 성빈 씨랑 저는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게요. 성빈 씨, 안 그래요?”성빈이 말했다. “세나야, 우리는 3년간 부부였잖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난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넌 어차피 재판에서 이길 수 없어. 네가 소송을 취소하고 서명하기만 하면, 내 재산 중 일부는 너에게 줄게. 그 정도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을 거야.”“하.” 세나
성빈은 얼굴은 어두워지더니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 “빨리 처리해.”그가 보이지 않자, 송니정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기사는 세나의 팔을 뒤로 꺾어 잡고 있었고, 니정은 쉽게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니정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칼이 달빛 아래서 번뜩였다. “강세나, 봤니? 성빈 씨는 네 죽음에 관심도 없어. 서명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있긴 해? 혹시, 좀 더 큰 대가를 치러야 내가 장난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겠어?”차가운 칼날이 세나의 뺨을 스치며 움직였다.뱀이 기어가는 듯한 그 오싹한 감촉에 세나는 온몸이 소름이 돋았다.“너희들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따를지 알아? 이건 범죄야! 너희는 감옥에 갈 거고, 난 죽어서도 절대 너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난 이번 생만 살면 돼. 그 후의 일은 신경 안 쓴다고.”니정은 차갑게 웃으며, 칼날을 세나의 뺨에 댔다. “서명하지 않아도 돼. 알다시피, 결혼 중에 배우자가 사망하면 재산 분할은 필요 없거든.”세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송니정은 정말로 날 죽이려는 것일까?’칼이 떨어지기 전에, 세나가 급히 말했다. “서명할게!”목숨을 잃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니정은 마치 그녀가 말을 바꿀 줄 알았다는 듯이, 기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풀어줘요.”세나는 서류를 주워 든 후 니정의 앞에서 마지막 장을 넘기고, 빠르게 서명했다.“강세나, 눈치가 빠르네.”니정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독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우리 사이의 일은 아직 끝난 게 아니야!”세나가 반응하기도 전에, 기사는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니정은 칼을 꺼내 들고 세나 앞에서 휘두르며 말했다. “너 때문에 내가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했어. 복수하지 않으면 나는 잠도 못 잘 것 같아.”“넌 얼굴이 정말 예뻐. 그런데 이제부터 얼굴을 가리고 살아야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니정의 악랄한 말투는 마치 뱀의 독을 내뱉는 듯이, 세나의 귀에 거슬리게 울렸다.“안 돼! 당장 놔둬!”세나는
달빛 아래, 이경을 바라보자 세나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찬 바람이 불어오며 그녀의 목에 날카로운 통증이 스쳐 지나갔다.“아...” 세나는 차갑게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차렸다.이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차 안에 데려가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턱을 들어 상처를 확인했다.“괜찮아요, 전...”“움직이지 마요.”이경의 간결한 목소리가 귀에 울리자, 세나는 마치 홀린 듯 저항을 포기했다.남자의 긴 두 손가락이 세나의 턱을 받치고 있었고, 그의 냉정한 얼굴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는 은은한 향이 풍겨왔다. 그 향기는 세나를 그날 밤의 혼란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이걸로 먼저 상처를 누르고 있어요. 바로 병원에 데려다줄게요.”이경이 손수건을 건네자 세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네...”이경은 그녀가 겁에 질렸다고 생각했는지, 손수건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손을 꽉 잡아주었다. “걱정하지 마요. 내가 있으니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세나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그때, 진구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 이미 니정과 기사를 제압하여 둘의 얼굴을 엔진 덮개 위에 짓누르고 있었다.“놔! 놔달라고!”“가만히 있어!”성빈이 JSH 그룹의 대표라서 그런지, 진구는 그를 건드리지 않았고, 대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만 막았다.니정이 붙잡힌 모습을 보며 성빈은 당황한 듯했다. 그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당장 놔줘!”“놔달라고요? 칼을 다시 휘두르면 어쩌려고요?”차가운 목소리가 달빛 아래 울려 퍼졌다. 산언저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로 가득했다.차에서 내린 남자를 보자, 성빈은 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그는 어쩔 수 없이 이경에게 물었다.“부, 부 대표님, 어쨌든 이건 우리 집안의 일입니다. 끼어드실 필요는 없으신 것 같은데요?”“난 부씨 가문의 집안일엔 관심 없어요. 오늘 난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납치 사건을 목격한 것뿐이고, 우연히 정의를 실현했을 뿐이에요
“대표님, 이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진구가 이경에게 물었다. 이경은 땅에 떨어져 있던 칼을 주워 들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반짝이며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그는 딱 한 마디만 물었다. “방금 어느 손으로 칼을 들었지?”이경의 차가운 눈빛이 서서히 니정을 향했다.니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당, 당신 뭐 하려는 거야?”이경은 그녀와 말하는 것이 몹시 불쾌한 듯, 시선을 니정에게서 떼고는 옆에 붙잡혀 있던 남자를 향했다. “살고 싶나?”기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저는 그저 돈을 받고 일을 대신해 준 것뿐입니다. 강세나 씨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외에는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저 여자가 어느 손으로 칼을 들었지?”기사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경은 칼을 그의 발밑에 던지고는 차갑게 말했다. “저 여자의 손가락을 하나만 잘라. 그러면 널 보내주지.”그와 동시에, 옆에서 기사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이 손을 놓았다. 남자는 무릎을 꿇으며 온몸을 떨었다. 그의 앞에는 차가운 칼이 놓여 있었다.기사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는 크게 침을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칼을 집어 들었다.그 모습을 본 니정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당신 뭐 하려는 거야? 저 사람의 말을 듣지 마! 가까이 오지 마! 내가 돈 줄게. 얼마든지 줄게!”‘돈?’‘돈이 목숨보다 중요한가?’‘부이경을 건드리면, D시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기사는 이를 악물고 니정의 손목을 잡아들었다. 칼이 그녀의 손가락 위로 내려왔다.“으악!”비명은 산속을 가득 메웠다.이경의 차는 사실 꽤 멀리 주차되어 있었다. 일부러 그런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알 수 없었다.세나는 여전히 차 안에 앉아 있었지만, 상처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니정이 휘두른 칼은 빗나갔고, 목에 약간의 상처만 남겼을 뿐이었다. 그녀는 상처를 누르고 있었고, 더 이상 피도
D시에선 이미 가을이 스며들어, 공기가 서서히 서늘해지고 있었다.강세나는 화장실 칸에 기대어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 비친 남자의 옆모습은 바로 그녀의 남편, 전성빈이었다.남자 옆에 있는 여자의 얼굴은 모자이크 되어 있고, 어깨 뒤의 장미 문신만이 선명했다.그 순간, 문밖에서 물소리와 직원들의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그러니까, 강 이사님이 하루 종일 일에 치여서 대표님이 바람을 피워도 모를 만큼 바쁘다고?”“그렇다니까. 벌써 결혼한 지 3년이 다 됐는데, 아이도 없잖아.”“내가 듣기로는 강 이사님 불임이라던데...” 웅성거리던 소리는 멀어져 갔고, 화장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창백한 얼굴의 세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올드하지만 깔끔한 정장에 수수한 화장, 뒤로 묶은 긴 머리, 수려한 콧등 위에 얹은 뿔테 안경은 그녀의 촌스러움을 더 강조하는 듯했다.거울 속 자신을 올려다보자, 아까 핸드폰에서 본 사진이 다시 떠올랐다.‘말도 안 돼. 어떻게 저 사진 속 남자가 내 남편 성빈 씨일 수 있지?'‘내가 불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성빈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혼 3년 동안 내가 바쁜 회사 일을 도와줬을 때도 이 남자는 언제나 나에게 따뜻하게 잘 대해줬는데...'“어, 세나 언니.”갑자기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나는 생각을 접고 마음을 진정시켰다.“언니, 무슨 일 있어요? 왜 이렇게 안색이 안 좋아요?”송니정은 그녀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니야, 괜찮아.” 세나는 찬물로 가볍게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송니정이 흰색 탱크톱 긴 드레스를 입고, 곱슬머리를 위로 올린 채 예쁜 화장에 오른쪽 눈가에 큐빅을 장식한 것이 보았다. “오늘 어디 가? 왜 이렇게 잘 꾸몄어?” 세나는 자연스럽게 휴지로 손을 닦으며 물었다. 니정은 눈웃음을 지으며 다정하게 세나의 팔짱을 끼었다. “언니, 잊었어요? 오늘 저녁이 회사 축하 연회가 있잖아요.
“세나 언니? 왜 그래요?” 니정은 세나의 앞에서 손을 흔들면서 깜박이는 눈으로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언니, 정말 괜찮아요? 아니면 제가 전 대표님한테 전화할까요?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회사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세나 눈앞의 니정은 여전히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이다. 세나는 손톱이 살 속에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애써 감정을 억누르면서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응, 괜찮아. 너 먼저 가.”이럴 때 세나가 괜히 화를 낸다면 웃음거리가 될 수 있었다. “예, 알겠어요.” 니정이 환하게 웃으며 다시 팔짱을 끼려 하자 세나는 그것을 슬그머니 피했다. JSH그룹은 몇 년 전부터 경영이 어려워졌지만, 세나가 성빈과 결혼한 후 3년 동안 그녀 덕분에 그해 말부터 순조롭게 D시의 상위 그룹에 진입했다. 더욱이 이번 달에는 BM그룹과 제휴하기로 합의해 그룹의 장래도 밝다고 할 수 있었다. 세나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축하 연회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다소 올드하고 평범한 오피스 정장 차림으로 연회장에 들어섰기 때문에 아무도 세나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앞에서 손님들이 흰색 정장을 입은 잘생긴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들렸다. 바로 세나의 남편 성빈에 관한 것이다. 세나는 평소처럼 앞쪽으로 가지 않고 술 한 잔을 손에 들고는 연회장 구석에 앉았다. ‘성빈 씨가 언제부터 니정이와 그런 사이가 됐지?’ ‘그 둘이 나를 속이고 어디까지 발전한 거야?’ ‘성빈 씨가 정말 니정이를 사랑해서? 아니면 내가 전씨 집안을 위해 아이를 낳지 못해 실망해서 이러는 걸까?’ 세나는 머릿속에서 갖가지 생각들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연이어 술을 여러 병 들이켰고 점차 의식이 흐려졌다. 잠시 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 세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가 바람을 좀 쐬려고 했다. 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 복도에 다다르자 주위가 조용하게 변했다.창문을 열었지만 바람이 충분히 느껴지지
‘우리 어린 시절의 그 만남은 진작에 잊었겠지?’ 난처해진 세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희미하게만 보이는 이경의 얼굴을 향해 말했다. “안경 좀 찾아주시겠어요?” 이경은 침묵을 지켰고, 몇 분간 정적이 흘렀다. 세나의 얼굴은 붉어졌고 살며시 뜨고 있던 반짝이는 두 눈은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두 눈은 초점을 잃어서 이경이 어떤 모습인지 더 선명하게 알 수는 없었다. 과거에 이경은 어쩔 수 없이 먼 외국으로 떠나야 했고 돌아왔을 때 세나는 이미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있었다. “음.” 이경은 의미 모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찾아 손으로 집어 들어 세나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세나는 손을 뻗어 안경을 받으려다 이경의 거친 손끝에 손가락이 닿자 조건반사적으로 손을 다시 거두었다. “앗, 죄송해요.” 안경을 쓰니 눈앞이 마침내 깨끗이 보였다. 이경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세나가 보기 전에 안쪽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세나는 혼자 그 자리에 멍하니 있다가 곧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전 대표님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3년 만에 JSH그룹을 이렇게까지 성장시켰잖아요.” “옆에 계신 분이 아마 사모님이시겠죠?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전 대표님과 딱 천생연분이에요.” “그러네요. 사모님도 회사경영에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전 대표님을 많이 도와주셨을 거예요.” 문에 들어서자마자 세나는 등불 아래에 서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들왔다. 남자는 흰 정장을, 여자는 흰 치마를 입고 나란히 서 있었는데 잠깐만 봐도 정말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였다. 남자가 세나의 남편인 성빈이 아니라면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옆사람이 아부하는 말을 하자 성빈은 살짝 웃음을 머금었고, 니정 역시 수줍은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성빈과 눈을 마주쳤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파진 세나는 옆에 있는 테이블 위의 술 잔을 들고 성큼성큼 두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여보.” 세나는 술잔을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