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이경을 바라보자 세나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찬 바람이 불어오며 그녀의 목에 날카로운 통증이 스쳐 지나갔다.“아...” 세나는 차갑게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차렸다.이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차 안에 데려가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턱을 들어 상처를 확인했다.“괜찮아요, 전...”“움직이지 마요.”이경의 간결한 목소리가 귀에 울리자, 세나는 마치 홀린 듯 저항을 포기했다.남자의 긴 두 손가락이 세나의 턱을 받치고 있었고, 그의 냉정한 얼굴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는 은은한 향이 풍겨왔다. 그 향기는 세나를 그날 밤의 혼란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이걸로 먼저 상처를 누르고 있어요. 바로 병원에 데려다줄게요.”이경이 손수건을 건네자 세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네...”이경은 그녀가 겁에 질렸다고 생각했는지, 손수건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손을 꽉 잡아주었다. “걱정하지 마요. 내가 있으니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세나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그때, 진구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 이미 니정과 기사를 제압하여 둘의 얼굴을 엔진 덮개 위에 짓누르고 있었다.“놔! 놔달라고!”“가만히 있어!”성빈이 JSH 그룹의 대표라서 그런지, 진구는 그를 건드리지 않았고, 대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만 막았다.니정이 붙잡힌 모습을 보며 성빈은 당황한 듯했다. 그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당장 놔줘!”“놔달라고요? 칼을 다시 휘두르면 어쩌려고요?”차가운 목소리가 달빛 아래 울려 퍼졌다. 산언저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로 가득했다.차에서 내린 남자를 보자, 성빈은 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그는 어쩔 수 없이 이경에게 물었다.“부, 부 대표님, 어쨌든 이건 우리 집안의 일입니다. 끼어드실 필요는 없으신 것 같은데요?”“난 부씨 가문의 집안일엔 관심 없어요. 오늘 난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납치 사건을 목격한 것뿐이고, 우연히 정의를 실현했을 뿐이에요
“대표님, 이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진구가 이경에게 물었다. 이경은 땅에 떨어져 있던 칼을 주워 들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반짝이며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그는 딱 한 마디만 물었다. “방금 어느 손으로 칼을 들었지?”이경의 차가운 눈빛이 서서히 니정을 향했다.니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당, 당신 뭐 하려는 거야?”이경은 그녀와 말하는 것이 몹시 불쾌한 듯, 시선을 니정에게서 떼고는 옆에 붙잡혀 있던 남자를 향했다. “살고 싶나?”기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저는 그저 돈을 받고 일을 대신해 준 것뿐입니다. 강세나 씨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외에는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저 여자가 어느 손으로 칼을 들었지?”기사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경은 칼을 그의 발밑에 던지고는 차갑게 말했다. “저 여자의 손가락을 하나만 잘라. 그러면 널 보내주지.”그와 동시에, 옆에서 기사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이 손을 놓았다. 남자는 무릎을 꿇으며 온몸을 떨었다. 그의 앞에는 차가운 칼이 놓여 있었다.기사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는 크게 침을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칼을 집어 들었다.그 모습을 본 니정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당신 뭐 하려는 거야? 저 사람의 말을 듣지 마! 가까이 오지 마! 내가 돈 줄게. 얼마든지 줄게!”‘돈?’‘돈이 목숨보다 중요한가?’‘부이경을 건드리면, D시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기사는 이를 악물고 니정의 손목을 잡아들었다. 칼이 그녀의 손가락 위로 내려왔다.“으악!”비명은 산속을 가득 메웠다.이경의 차는 사실 꽤 멀리 주차되어 있었다. 일부러 그런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알 수 없었다.세나는 여전히 차 안에 앉아 있었지만, 상처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니정이 휘두른 칼은 빗나갔고, 목에 약간의 상처만 남겼을 뿐이었다. 그녀는 상처를 누르고 있었고, 더 이상 피도
D시에선 이미 가을이 스며들어, 공기가 서서히 서늘해지고 있었다.강세나는 화장실 칸에 기대어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 비친 남자의 옆모습은 바로 그녀의 남편, 전성빈이었다.남자 옆에 있는 여자의 얼굴은 모자이크 되어 있고, 어깨 뒤의 장미 문신만이 선명했다.그 순간, 문밖에서 물소리와 직원들의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그러니까, 강 이사님이 하루 종일 일에 치여서 대표님이 바람을 피워도 모를 만큼 바쁘다고?”“그렇다니까. 벌써 결혼한 지 3년이 다 됐는데, 아이도 없잖아.”“내가 듣기로는 강 이사님 불임이라던데...” 웅성거리던 소리는 멀어져 갔고, 화장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창백한 얼굴의 세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올드하지만 깔끔한 정장에 수수한 화장, 뒤로 묶은 긴 머리, 수려한 콧등 위에 얹은 뿔테 안경은 그녀의 촌스러움을 더 강조하는 듯했다.거울 속 자신을 올려다보자, 아까 핸드폰에서 본 사진이 다시 떠올랐다.‘말도 안 돼. 어떻게 저 사진 속 남자가 내 남편 성빈 씨일 수 있지?'‘내가 불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성빈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혼 3년 동안 내가 바쁜 회사 일을 도와줬을 때도 이 남자는 언제나 나에게 따뜻하게 잘 대해줬는데...'“어, 세나 언니.”갑자기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나는 생각을 접고 마음을 진정시켰다.“언니, 무슨 일 있어요? 왜 이렇게 안색이 안 좋아요?”송니정은 그녀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니야, 괜찮아.” 세나는 찬물로 가볍게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송니정이 흰색 탱크톱 긴 드레스를 입고, 곱슬머리를 위로 올린 채 예쁜 화장에 오른쪽 눈가에 큐빅을 장식한 것이 보았다. “오늘 어디 가? 왜 이렇게 잘 꾸몄어?” 세나는 자연스럽게 휴지로 손을 닦으며 물었다. 니정은 눈웃음을 지으며 다정하게 세나의 팔짱을 끼었다. “언니, 잊었어요? 오늘 저녁이 회사 축하 연회가 있잖아요.
“세나 언니? 왜 그래요?” 니정은 세나의 앞에서 손을 흔들면서 깜박이는 눈으로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언니, 정말 괜찮아요? 아니면 제가 전 대표님한테 전화할까요?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회사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세나 눈앞의 니정은 여전히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이다. 세나는 손톱이 살 속에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애써 감정을 억누르면서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응, 괜찮아. 너 먼저 가.”이럴 때 세나가 괜히 화를 낸다면 웃음거리가 될 수 있었다. “예, 알겠어요.” 니정이 환하게 웃으며 다시 팔짱을 끼려 하자 세나는 그것을 슬그머니 피했다. JSH그룹은 몇 년 전부터 경영이 어려워졌지만, 세나가 성빈과 결혼한 후 3년 동안 그녀 덕분에 그해 말부터 순조롭게 D시의 상위 그룹에 진입했다. 더욱이 이번 달에는 BM그룹과 제휴하기로 합의해 그룹의 장래도 밝다고 할 수 있었다. 세나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축하 연회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다소 올드하고 평범한 오피스 정장 차림으로 연회장에 들어섰기 때문에 아무도 세나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앞에서 손님들이 흰색 정장을 입은 잘생긴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들렸다. 바로 세나의 남편 성빈에 관한 것이다. 세나는 평소처럼 앞쪽으로 가지 않고 술 한 잔을 손에 들고는 연회장 구석에 앉았다. ‘성빈 씨가 언제부터 니정이와 그런 사이가 됐지?’ ‘그 둘이 나를 속이고 어디까지 발전한 거야?’ ‘성빈 씨가 정말 니정이를 사랑해서? 아니면 내가 전씨 집안을 위해 아이를 낳지 못해 실망해서 이러는 걸까?’ 세나는 머릿속에서 갖가지 생각들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연이어 술을 여러 병 들이켰고 점차 의식이 흐려졌다. 잠시 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 세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가 바람을 좀 쐬려고 했다. 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 복도에 다다르자 주위가 조용하게 변했다.창문을 열었지만 바람이 충분히 느껴지지
‘우리 어린 시절의 그 만남은 진작에 잊었겠지?’ 난처해진 세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희미하게만 보이는 이경의 얼굴을 향해 말했다. “안경 좀 찾아주시겠어요?” 이경은 침묵을 지켰고, 몇 분간 정적이 흘렀다. 세나의 얼굴은 붉어졌고 살며시 뜨고 있던 반짝이는 두 눈은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두 눈은 초점을 잃어서 이경이 어떤 모습인지 더 선명하게 알 수는 없었다. 과거에 이경은 어쩔 수 없이 먼 외국으로 떠나야 했고 돌아왔을 때 세나는 이미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있었다. “음.” 이경은 의미 모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찾아 손으로 집어 들어 세나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세나는 손을 뻗어 안경을 받으려다 이경의 거친 손끝에 손가락이 닿자 조건반사적으로 손을 다시 거두었다. “앗, 죄송해요.” 안경을 쓰니 눈앞이 마침내 깨끗이 보였다. 이경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세나가 보기 전에 안쪽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세나는 혼자 그 자리에 멍하니 있다가 곧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전 대표님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3년 만에 JSH그룹을 이렇게까지 성장시켰잖아요.” “옆에 계신 분이 아마 사모님이시겠죠?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전 대표님과 딱 천생연분이에요.” “그러네요. 사모님도 회사경영에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전 대표님을 많이 도와주셨을 거예요.” 문에 들어서자마자 세나는 등불 아래에 서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들왔다. 남자는 흰 정장을, 여자는 흰 치마를 입고 나란히 서 있었는데 잠깐만 봐도 정말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였다. 남자가 세나의 남편인 성빈이 아니라면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옆사람이 아부하는 말을 하자 성빈은 살짝 웃음을 머금었고, 니정 역시 수줍은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성빈과 눈을 마주쳤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파진 세나는 옆에 있는 테이블 위의 술 잔을 들고 성큼성큼 두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여보.” 세나는 술잔을 들고
니정은 초연한 눈빛으로 세나를 가련하게 바라보았지만 세나는 그녀의 도발을 한눈에 알아보며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오늘 저녁에 받은 그 사진, 니정이가 보낸 거였어.’ ‘일부러 자기 몸의 장미 문신은 가리지 않고 은근히 자신이라는 걸 알린 거야.’ ‘그럼 성빈 씨는?’ 세나는 가슴에 깨진 유리알이 박힌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자신에게 언제나 친절한 성빈을 쳐다보았다. ‘성빈 씨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설마 내가 이혼 이야기를 먼저 꺼내게 하려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걸까?’성빈은 여전히 친절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세나야, 니정이와 가서 갈아입을 옷을 주고 올 테니까, 여기서 나 대신 손님들 좀 대접해 줘.” 세나는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알겠어.” 하지만 세나의 마음속에서는 불안이 점점 커졌고, 머릿속에서는 불쾌한 그 핸드폰 사진 속 모습이 떠올랐다. ‘니정이와 성빈 씨의 관계가 설마 그 정도로 가까운 건 아니겠지?’ 세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갔다. “강 이사님?” 그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부를 때까지도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세나가 고개를 들자 엘리베이터 안에 이경과 그의 비서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경의 비서가 그녀를 부른 것이었다.이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세나를 봤음에도 잘생기고 무뚝뚝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 세나는 이경을 한번 쳐다보고는 어색하게 엘리베이터에 탔다. 꽉 막힌 엘리베이터 속 분위기가 어색해서인지 세나는 핸드폰을 들어 몇 번이고 확인했다. 76층부터 1층까지 걸리는 시간은 꽤 길었다. 뒤에 가만히 서 있는 이경과 비서의 인기척이 뚜렷하게 느껴졌고 담배의 은은한 향기가 코에 맴돌았다.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세나가 서둘러 내리려고 할 때, 뒤에 있던 이경이 갑자기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 “강 이사님!” “네?” 세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검은 눈동자의 이경은
‘전성빈... 전성빈...’ 세나는 허리를 반듯이 폈고 얼굴의 안경은 그새 어디론가 사라져 한 쌍의 예쁜 눈이 그대로 드러났다.그녀는 손을 뻗어 검고 낡은 외투를 벗으며 셔츠를 밖으로 빼 입었다. 묶었던 머리를 풀자 새까만 머리가 길게 늘어졌고,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낸 그녀는 하이힐을 벗었다... 쏴쏴쏴-화장실에 간 세나는 흘러내리는 수돗물을 보면서 정신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자 맑은 눈동자와 하얀 치아,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은 하지 않은 채 입술만 붉게 립스틱을 발랐지만 사람의 마음을 흔들 만큼 매우 아름다웠다. 대학 시절에도 그녀는 학교의 미녀로 소문 나 수많은 남자가 좋아했었다. 결혼 후에 성빈이 말했다. “세나야, 나는 다른 사람과 너의 이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지 않아. 넌 내 것이니까.” 그래서 세나는 그 후로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쓰고 머리를 묶어 다소 올드하게 자신을 꾸몄다. ‘그런데...’ ‘그런데 전성빈, 너는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분노한 세나의 눈 밑은 온통 새빨개졌고, 이를 세게 악물어 입에서는 약간의 피비린내가 났다. ‘왜?’ ‘전성빈, 저 자식은 버젓이 내 앞에서 바람을 피우는데, 나는 왜 여전히 그놈을 위해 얌전히 지내야 하지?’ ‘네가 감히 나에게 이런 짓을 해?’ 세나는 주먹을 꽉 쥐며 눈빛을 가라앉히고 화장실을 나섰다. 어두운 긴 복도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형형색색의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세나는 아직 술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벽에 기대어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아픔과 고통, 모든 감정이 무방비 상태로 모두 드러났다. 이경은 세나가 넋이 나간 채 이곳으로 오는 것을 보고 따라온 자신의 알 수 없는 감정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세나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서 조금의 동요가 일었다. 바로 그때 비틀거리던 세나가 이경의 품으로 쓰러졌다. 이경은 눈썹을 올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강 이사님.” 세나는 누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키스. 이경은 눈을 뜨고 키스하는 세나를 바라보았고, 두 사람은 서로 더 가까이 붙었다. 그는 세나의 촘촘하면서도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세나도 긴장되고 무서웠다. 가슴이 한쪽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마음이 불편한 것도 있었다. 표정이 진지해진 이경은 손을 뒤로 돌려 세나의 잘록한 허리를 움켜쥐고 더욱 깊게 키스했다. ...‘뜨거워’ 몸이 바다 위 배처럼 떠오르더니 기복을 일으키며 파도를 타고 내려앉는 것 같이 가라앉았다. 세나는 양 손끝을 가죽시트가 씌워진 의자 위에 올린 채 고개를 젖히고 남자가 쏟아내는 키스를 받았다. 어두운 차 안,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면서 신음이 들려왔다. 세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데 마음속에서 아픔과 통쾌하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지금 무슨 생각 해요?” 세나의 몸 위에서 이경은 그녀의 턱을 잡고 몸을 더 바싹 붙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 떠봐요.” 이경은 세나의 허리를 감싸고서 몸 위에서 뜨거운 입김을 귓가에 뿜으며 말했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든 듯 세나는 눈을 떴고 검고 차가운 눈동자와 마주했다. 이럴 때조차 이경의 눈은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였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어요?” 이경은 세나의 턱을 잡고서 아래쪽의 그녀를 쳐다보았다. “부, 부이경 대표님!” 세나는 나지막이 이경의 이름을 부르며 수치스러우면서 애매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 기억해요. 전 부이경이예요.” 이경은 세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다시 몸을 숙여 진하게 키스했다. 숙취로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세나는 눈을 떴지만 눈앞이 캄캄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낯선 방안, 침대 시트는 축축하게 말려있고 바닥은 남자와 여자의 옷가지로 널려 있었다. 그녀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어젯밤의 기억이 한순간 머릿속에 가득 떠올랐다. ‘망했다!’ ‘어떡하지? 나 술 취해서 부 대표랑 잤나 봐!’ 놀라서 숨을 깊게 들이마신 세나가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