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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우리 어린 시절의 그 만남은 진작에 잊었겠지?’

난처해진 세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희미하게만 보이는 이경의 얼굴을 향해 말했다.

“안경 좀 찾아주시겠어요?”

이경은 침묵을 지켰고, 몇 분간 정적이 흘렀다.

세나의 얼굴은 붉어졌고 살며시 뜨고 있던 반짝이는 두 눈은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두 눈은 초점을 잃어서 이경이 어떤 모습인지 더 선명하게 알 수는 없었다.

과거에 이경은 어쩔 수 없이 먼 외국으로 떠나야 했고 돌아왔을 때 세나는 이미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있었다.

“음.”

이경은 의미 모를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찾아 손으로 집어 들어 세나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세나는 손을 뻗어 안경을 받으려다 이경의 거친 손끝에 손가락이 닿자 조건반사적으로 손을 다시 거두었다.

“앗, 죄송해요.”

안경을 쓰니 눈앞이 마침내 깨끗이 보였다.

이경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세나가 보기 전에 안쪽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세나는 혼자 그 자리에 멍하니 있다가 곧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전 대표님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3년 만에 JSH그룹을 이렇게까지 성장시켰잖아요.”

“옆에 계신 분이 아마 사모님이시겠죠?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전 대표님과 딱 천생연분이에요.”

“그러네요. 사모님도 회사경영에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 전 대표님을 많이 도와주셨을 거예요.”

문에 들어서자마자 세나는 등불 아래에 서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들왔다.

남자는 흰 정장을, 여자는 흰 치마를 입고 나란히 서 있었는데 잠깐만 봐도 정말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였다.

남자가 세나의 남편인 성빈이 아니라면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옆사람이 아부하는 말을 하자 성빈은 살짝 웃음을 머금었고, 니정 역시 수줍은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성빈과 눈을 마주쳤다.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파진 세나는 옆에 있는 테이블 위의 술 잔을 들고 성큼성큼 두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여보.”

세나는 술잔을 들고 앞으로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성빈에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니정이 재빨리 성빈의 팔짱을 풀고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

“세나 언니, 왔네요.”

“세나야.”

성빈은 세나를 보고 다정한 남편처럼 그녀에게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세나는 마음속의 증오심을 애써 억누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아, 사모님이셨군요. 오래전부터 익히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니정을 성빈의 아내로 잘못 알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말을 바꿨다. 그들은 모두 재계의 닳고 닳은 고인물이었고 세나는 그 속내들을 대부분 이해하고 있었다.

세나는 억지로 웃으며 잔을 들어 몇 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안녕하세요. 왕 대표님, 진 대표님.”

성빈은 부드러운 눈으로 세나를 바라보다 손에 든 술잔을 발견했다.

“세나야,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

겉으로 보기에 성빈은 한없이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으로 보였다.

“전 대표님과 사모님 사이가 아주 좋아 보입니다.”

“정말 부러운데요?”

옆사람들이 성빈과 세나의 모습에 대해 한 마디씩 하자 낯빛이 조금 어둡게 변한 니정을 보고 세나는 마음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당신이 나 대신 마셔줘.”

성빈은 세나의 잔을 받아 단숨에 술을 마셨다.

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아!”

옆에 서 있던 니정이 갑자기 발을 헛디뎠고 그 순간 손에 쥔 레드와인이 그녀의 하얀 치맛자락에 쏟아졌다.

“니정아!”

성빈은 무의식적으로 세나의 팔짱을 풀고 니정의 앞으로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니정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빛이 가득해지며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세나를 바라보았다.

“치마가 더러워졌네요. 갈아입을 옷이 전 대표님의 차에 있는데, 전 대표님께서 저와 함께 가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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