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화

니정은 초연한 눈빛으로 세나를 가련하게 바라보았지만 세나는 그녀의 도발을 한눈에 알아보며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오늘 저녁에 받은 그 사진, 니정이가 보낸 거였어.’

‘일부러 자기 몸의 장미 문신은 가리지 않고 은근히 자신이라는 걸 알린 거야.’

‘그럼 성빈 씨는?’

세나는 가슴에 깨진 유리알이 박힌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자신에게 언제나 친절한 성빈을 쳐다보았다.

‘성빈 씨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설마 내가 이혼 이야기를 먼저 꺼내게 하려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성빈은 여전히 친절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세나야, 니정이와 가서 갈아입을 옷을 주고 올 테니까, 여기서 나 대신 손님들 좀 대접해 줘.”

세나는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알겠어.”

하지만 세나의 마음속에서는 불안이 점점 커졌고, 머릿속에서는 불쾌한 그 핸드폰 사진 속 모습이 떠올랐다.

‘니정이와 성빈 씨의 관계가 설마 그 정도로 가까운 건 아니겠지?’

세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갔다.

“강 이사님?”

그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부를 때까지도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세나가 고개를 들자 엘리베이터 안에 이경과 그의 비서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경의 비서가 그녀를 부른 것이었다.

이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세나를 봤음에도 잘생기고 무뚝뚝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

세나는 이경을 한번 쳐다보고는 어색하게 엘리베이터에 탔다.

꽉 막힌 엘리베이터 속 분위기가 어색해서인지 세나는 핸드폰을 들어 몇 번이고 확인했다.

76층부터 1층까지 걸리는 시간은 꽤 길었다. 뒤에 가만히 서 있는 이경과 비서의 인기척이 뚜렷하게 느껴졌고 담배의 은은한 향기가 코에 맴돌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세나가 서둘러 내리려고 할 때, 뒤에 있던 이경이 갑자기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

“강 이사님!”

“네?”

세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검은 눈동자의 이경은 진지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프로젝트 중에 약간의 문제라도 생긴다면 언제든 프로젝트를 멈추라고 지시할 겁니다.”

세나는 이경이 자신의 상태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공과 사는 구별할 수 있으니까요.”

이경은 세나를 한 번 살펴보고는 비웃듯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음을 지었다.

“그러길 바라죠.”

이경이 말을 마치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닫혔다.

문 앞에 서서 멍하니 있던 세나는 조금 전 이경의 웃음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한 채 황급히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밖의 기온이 꽤 쌀쌀해 몇 걸음 만에 그녀의 종아리에 소름이 돋았다.

세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내 회사 옆에 주차된 성빈의 차를 발견했다.

세나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차 안에서 남녀의 신음이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놀란 세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있었다.

차체가 살짝 흔들리며 여자의 낮은 신음과 남자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귀에 더 선명하게 들렸다.

차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김이 서려 있는 뒷좌석 창문에는 손바닥으로 창문을 받쳤는지 야릇한 흔적이 희미하게 보였다.

‘내가 생각한 모든 게 정말이었어.’

...

어느 바.

세나는 테이블에 앉아 한 잔 한 잔 입에 술을 들이켜고 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 모습이 끊임없이 아른거렸다.

‘전성빈, 그놈이 나를 이렇게 배신하다니.’

“세나야, 난 네가 좋아. 예전부터 오랫동안 좋아해왔어.”

“세나야, 나와 결혼해 줄래? 내가 평생 행복하게 해 줄게.”

“괜찮아 세나야. 아기를 가질 수 없어도 상관없어. 너만 영원히 내 옆에 있으면 돼.”

“...”

‘다 거짓말이었어! 거짓말쟁이!’

눈앞이 흐릿해지며 눈물이 앞을 가렸고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

지난 3년의 결혼 생활. 그녀는 이 3년을 애써서 지켜온 자신이 우습다고 느껴졌다.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