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빈이 지난 여러 해 동안 장화숙의 뜻대로 말을 잘 들은 것도 장화숙이 분위기 파악을 잘했기 때문이다. 장화숙은 마음속으로 득실을 따져본 후, 결국 오영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을 내려가며 장화숙은 아쉬운 듯 세나의 곱고 아름다운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들도 결국 남자이니 저런 여우에게 꼬드김을 당하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뭐 상관없어. 어차피 이 집의 진정한 안주인은 나니까.’ ‘우리 성빈이가 강세나가 질리면 그때 다시 본때를 보여주면 되지.’ 세나는 오영미가 자신의 짐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놓는 것을 냉정한 눈으로 보고 비로소 만족해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세나야.” 성빈은 세나의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당신 나와 헤어지기 싫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 밤 내가 여보에게 끝내주는 밤을 만들어 줄게.” 세나는 마음속에서 강한 반감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나 자신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성빈에게 부를 안겨주었지만, 상대의 존중을 받지 못했고, 스스로 예쁜 외모를 가리고 산 결과로 얻은 것이 성빈의 배신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고 돌아서서 두 팔로 성빈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희고 고운 가느다란 세나의 팔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처럼 느낀 성빈은 그대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여보!” 세나은 성빈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자신의 몸에 징그러운 흔적을 남기는 것을 제지했다. “왜? 싫어?” 정욕이 이미 타오르며 흥분한 성빈은 움직임이 제지당해 불만이 가득했다. 세나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그녀는 긴장한 채 자신의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멋을 부리지 않아서 다른 여자들에 비해 아직 형편없거든.”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성빈이 세나의 허벅지를 만지려고 했다. 세나는 갑자기 성빈을 밀어냈고 상대방이 화를 내기 전에 그녀는 두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껴안고 억울한 목
“여자는 결국 예뻐야 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촌스러우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그런 말 마. 강 이사님이 오늘 아침에 받은 그 큰 옷상자 전 대표님이 사주신 거래. 가격이 몇천만 원이나 한다던데? ” 니정은 찻물을 들이키며 이를 악물었다. “니정아, 무슨 생각해?” 니정의 뒤에서 세나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고 놀란 니정은 순간 움찔했다. 뒤를 돌아보니 어제보다 더 섹시한 연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세나가 보였다. 치마 뒤쪽에 실크 원단이 둘러져 있어 엉덩이 굴곡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하지만 그녀의 우아한 웃음으로 옷차림이 전혀 저속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니정의 가식적인 웃음이 굳어지며 눈에서 질투의 불길이 일었다. 그녀는 세나가 입은 치마가 명품 브랜드의 신제품으로 가격이 2천만 원 이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설마 이게 전 대표님이 사준 건가? 그걸 이렇게 빨리 꺼내 입었다고?’ “어때 괜찮지? 성빈 씨가 어젯밤에 사준 거야.” 세나가 무의식적으로 툭하고 말을 던졌다. “좋아요. 아주 예쁜데요.” 니정은 내색하지 않고 말했지만 속에서 열불이 나 안색이 붉게 상기되었다.세나는 주변이 소란스러운 틈을 타 떠났다. 그러나 니정은 마음속의 분노를 아무리 해도 억누를 수 없었다. 세나는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며 웃었다. 그녀는 사무실로 돌아와 시간을 보고서 핸드폰을 꺼내 모니터링 앱을 켰다. 잠시 후, 니정이 성빈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의 살색의 몸과 즐기는 표정이 핸드폰 화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욱.’화면을 보는 세나는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모니터 되는 화면이 실시간으로 백업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럽게 핸드폰을 닫았다. ‘아직 이 증거들로는 충분하지 않아.’ ‘대략 계산을 해보면 성빈 씨가 결혼하고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으니 적어도 JSH그룹 지분의 15%는 내게 분할해 줘야 해.’ ‘한동안 JSH그룹의 자산을 불어나게 한 뒤 주식을 현
이진구는 특별 비서로서 언제나 실행력이 뛰어난 사람이다.그는 고서영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밖으로 끌고 나갔다. 서영이 미친 듯이 저항하며 몸부림쳐도 전혀 놓을 생각이 없었다.“건방지게 굴지 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당장 손 떼!”진구는 금테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고서영 씨는 88층에서 떨어지고 싶은 건가요?”이곳은 무려 88층이었다.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온몸이 박살 날 것이다.그러나 진구의 표정은 농담하려는 듯 보이지 않았다.서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결국 화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세나는 비서의 안내를 받아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경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부 대표님, 지난번 제안을 반영해 기획안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세나는 차분한 태도로 서류를 건넸다. 그러나 이경의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그녀는 무심코 그의 목선을 힐끔 쳐다보게 되었다.그런데 이경은 서류를 받지 않고, 내밀어진 큰 손으로 오히려 세나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였다.“아!”세나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비서는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이경에게서 풍겨오는 은은한 오드콜로뉴 향과 담배 냄새가 묘하게 어우러져, 그녀는 불쾌하기보다는 묘하게 남성적인 매력을 느꼈다.세나는 그의 옆모습을 살폈다. 정교하게 빚어진 이경의 얼굴은 마치 신이 직접 조각한 것처럼 완벽했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부 대표님은 여자가 그렇게 간절하신가요?”세나의 얼굴이 붉어지며,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자 마음속 깊은 거부감이 스며들었다.“직접 해보면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겠지?”두 사람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웠다. 세나는 이경이 말을 할 때 그의 숨소리가 변하는 순간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한 줄기 깃털이 그녀의 심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송니정의 의심스럽고 놀란 목소리에, 세나는 두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니정에게 꼬투리 잡혀 소문이 퍼지게 해서는 안 된다. “부 대표님, 저는 충분히 예의를 지킨 것 같으니 더 이상 선을 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내가 선을 넘고 있다는 겁니까?” 이경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세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사이에서 먼저 유혹한 쪽은 강 이사 아니었나요? 안 그래요?” “그날 밤은 실수였어요.” “실수라고요?” “부 대표님, 무슨 특이한 취향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상황을 봤을 때 부 대표님 곁에는 여자가 넘쳐날 테니, 굳이 저를 가지고 놀 필요는 없잖아요?” 세나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어느 정도 외모가 뛰어나다고는 해도 이미 결혼한 몸이다. 그러니 이경이 자신과 장난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강 이사가 이혼하면, 그때 왜인지 알려줄게요.” 이 말이 떨어지자, 세나는 거의 기가 막혔다. ‘이 남자, 내가 방금 한 말을 전혀 듣지 않은 건가?’ 세나는 무언가 반박하려 했지만, 만약 이경을 화나게 한다면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무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자신이 이혼할 때 받을 재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안 돼, 먼저 상황을 안정시켜야 해.’ “저도 이혼할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필요해요. 부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결혼 생활에는 재산과 인맥 같은 여러 관계가 얽혀 있잖아요. 서서히 정리해야 해요.” 이 대답에 이경은 만족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세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 수정한 기획안은 부 대표님께서 보시기에 괜찮은가요? 만약 괜찮다면, 계약을 먼저 체결할 수 있을까요?” 이경은 기획안을 보지도 않고, 곧바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더니 사인했다. 세나는 기뻐하며 문서를 받으려 했지만, 문서는 중간에 걸려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남자의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과 마주
“사진 속에 강세나 씨와 부이경 씨가 맞지 않습니까?” 기자의 몰아치는 질문에 세나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때,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진 속 인물은 분명 저지만, 고작 이 한 장의 사진을 빌미로 우리 회사 앞까지 찾아오신 건가요?”이경이 등장하자,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기자들은 한꺼번에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날 우리 회사 고위급 인사들이 술집에서 회식했는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명단을 제가 하나하나 여러분께 보고해야 하나요?” 이경은 빠른 걸음으로 세나의 곁에 다가왔고, 그녀를 보호하면서도 예의를 지키는 거리를 유지했다. 기자들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간이 큰 한 기자가 고개를 내밀며 질문했다. “그런데 왜 그 회식 자리에 강세나 씨가 있었나요?”부이경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답했다. “JSH그룹은 계속해서 우리 회사와 협력하기를 원하고 있어요.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강 이사는 꽤 큰 노력을 기울였지요.”말을 마치며, 그는 세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세나는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들었다. “여러분께서 오해하신 것 같네요. 저는 기획서를 검토받기 위해 부 대표님을 찾아갔던 겁니다. 믿지 않으신다면, 일부 내용을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이경은 차갑게 말했다. “기획서를 확인한 후에는 우리 회사에서 발송할 법적 문서도 같이 확인하시죠. 우리 회사에 기자들이 이렇게 몰려든 건 처음인데, 정말 영광입니다.”이경의 말이 끝나자, 기자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경의 회사는 막대한 재력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법률팀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변호사팀은 일류 로펌에 버금갔고, 그동안 그들이 치른 소송에서 패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기자들은 겁에 질려 더 이상 묻는 자가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 세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부 대표님.
전화를 끊고 난 후, 차 안은 유난히 고요해졌다.이경이 말했다. “지금 집에 가고 싶지 않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부 대표님, 농담이시죠? 지금 안 돌아가도, 어차피 언젠가는 가야 해요.”남자의 차가운 시선에 맞닥뜨린 세나는 얼른 말을 바꿨다. “제 말은, 이혼 얘기를 하더라도 만나는 건 피할 수 없다는 거죠. 안 그래요?”“오늘 일,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부 대표님이 이미 다 설명해 주셨잖아요.”이경은 가볍게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 말을 몇 명이나 믿을 것 같아요?”술집에서 기획서를 건네다 넘어져 포옹한 사진이 찍힌다니, 그런 우연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그 기자들이 물러난 건 이경을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D시에서 이경의 말 한마디라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지만 세나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알아요.” 세나는 눈을 내리깔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차는 곧 도시 북쪽의 B동 단독주택 구역 도착했다.“대표님.” 이진구의 목소리가 앞좌석에서 들려왔다.차가 전씨 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전씨 별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정문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세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기자들이 여기까지 쫓아왔다니.”“이 비서, 차 돌려.”“그럴 필요 없어요!”세나는 급히 말렸다.“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어요. 잠시 외부에서 머무르다 이곳 경비와 보안팀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어요.”“괜찮아요, 저는 다른 방법으로 들어갈게요.”“부 대표님, 오늘 저를 집까지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머지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그 말을 남기고, 세나는 바로 차에서 내렸다.뒷좌석에 앉은 이경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방금 들어 올리려던 긴 손가락은 공기를 휘저으며 천천히 가죽 시트 위로 내려갔다.진구가 말했다. “부 대표님, 이곳도 꽤 괜찮은 고급 주택 단지
“TV까지 나왔는데, 아직도 발뺌할 거야? 그동안 그 많은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건 모두 이런 수단을 사용한 덕분인가 보네.”“아들아, 저 여우 같은 여자의 진짜 모습을 똑똑히 봐!”장화숙의 모욕적인 말은 마치 벼락처럼 세나의 머릿속을 강하게 때렸다.“새언니도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지? 우리 오빠가 평소에 새언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런 일을 해서 우리 전씨 가문 얼굴에 먹칠을 하다니. 우리 오빠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기나 해?”전설아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세나는 주먹을 꽉 쥐고 물었다. “제가 뭘 했다고 그래요?”“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거야? 기자들이 집 앞까지 몰려왔잖아. 부이경이 D시에서 유명하지 않았다면, 우리 오빠는 계속 속고만 있었을 거야!”세나는 설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설아는 자신이 부잣집 딸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고, 세나 같은 평범한 가정 출신의 여자가 자신과 동등할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이번에 세나의 약점을 잡았으니, 비웃을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세나는 그녀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 대신 설아의 뒤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세나의 남편인 전성빈은 아무 말 없이 그녀가 비난받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성빈은 찌푸린 채 말했다. “이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네가 나에게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할 문제야.”“설명이라면, 내가 부 대표의 회사와 계약을 따냈다는 거야.”세나는 가방에서 이경의 서명이 담긴 계약서를 꺼냈다. “만약 내가 그런 방식으로 계약을 따냈다고 생각한다면, 이 계약서를 찢어도 좋아.”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나는 계약서를 찢으려는 동작을 했다.곧 성빈은 계약서를 낚아채며 급하게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그 순간, 세나의 마음은 무너졌다.성빈의 눈에는, 그녀보다 이 계약서가 더 중요했다. 세나가 이 계약을 따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더 소중했다.그때 설아가 갑자기 소리쳤다. “저것 좀 봐!”TV 방송 화면에
전씨 별장 안의 TV 화면은 두 번 깜빡이더니 꺼져버렸다.성빈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이경이 세나를 마음에 들어 할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떤 여자든 가질 수 있는 이경이 결혼한 평범하고 촌스러운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경의 등장은 성빈에게 치명적인 굴욕을 안겼다.“이 뻔뻔한 년아!”찰싹! 곧 날카로운 뺨을 때리는 소리가 거실 안을 울리며 적막을 깼다.세나는 얼굴을 감싸 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눈으로 분노에 찬 장화숙을 바라보았다.“네 애인이 집 앞까지 찾아왔는데, 할 말이 뭐가 남았겠니?”장화숙은 분에 차서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고, 전설아는 더욱 심한 말로 불을 붙였다.하지만 세나는 그저 성빈을 한 번 바라볼 뿐이었다.그녀가 예전에 모든 것을 걸고 결혼했던 그 남자는 지금 그녀를 위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어차피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성빈이 먼저 바람을 피웠고, 세나 또한 이경과 관계를 가졌으니,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세나는 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강세나, 너 어디 가는 거야?” 성빈은 미간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네가 잘못한 일을 우리 엄마가 좀 뭐라고 했다고, 어디 버릇없게 굴어?”세나는 성빈과 말다툼할 생각도 없었고, 거실을 우회해 나가려 했다.“멈춰!” 장화숙이 그녀를 막아섰다. “너, 손에 든 게 뭐야?”세나는 눈을 감고 속에 차오르는 울분을 억누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제 개인 물건입니다.”“여기는 우리 집이야. 네가 입고 있는 것부터 가지고 있는 것까지 모두 우리 아들이 사준 거잖아. 너한테 무슨 개인 물건이 있어?”“분명 잘못한 일이 들통나서 값진 물건을 챙겨서 나가려는 거겠지. 나가기 전에 한몫 챙기려고?”설아는 세나의 짐을 빼앗으려 했다.쿵-몸싸움 중, 빨간 캐리어가 땅에 떨어지며 두 동강 났다. 그 안에는 갈아입을 옷들만 들어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