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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윤윤서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는 최선의 용기를 다 해 구재건을 떠난 것이었다.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전에 했던 마음의 준비가 아까웠다.

“도와줘요... 제발...”

구재건은 콧방귀를 뀌었다. 윤윤서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편 윤윤서의 상의는 이미 벗겨져 있었다. 예쁜 쇄골은 공기 중에 그대로 드러났다.

한 사람이 흘린 침이 그녀의 얼굴에 뚝 떨어졌다. 끈적한 느낌과 역겨운 냄새는 웬만한 악몽보다도 끔찍했다.

“안돼!”

반항하다 못한 윤윤서는 결국 울다시피 외쳤다.

“대표님이랑 할게요!”

“뭘?”

구재건은 아주 여유로웠다. 그는 노련한 사냥꾼처럼 함정에 빠진 사냥감을 노리고 있었다.

윤윤서는 눈을 꾹 감더니 결국 타협을 선택했다.

“대표님이랑... 자겠다고요...”

이 말이 나온 순간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차량들의 헤드라이트가 이곳을 밝혔다. 눈 부신 빛에 주변은 낮이 된 것처럼 밝아졌다.

차 안에서는 경호원들이 내려왔다. 그들은 손쉽게 부랑인들을 멀리 끌어갔다.

그중 눈치가 없는 한 사람은 윤윤서에게 흠뻑 빠져있었다. 그는 경호원의 손에서 벗어나더니 다시 윤윤서를 향해 덮치려고 했다.

구재건은 성큼성큼 걸어가서 그의 머리를 차버렸다. 부랑인은 꽥 소리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더니 피와 부러진 이빨을 토해냈다.

가방에서 현금다발을 꺼낸 구재건은 부랑인들 앞에 내던졌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건 대학교 시절에 생긴 습관이다. 부자가 된 다음에도 그 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현금은 우수수 떨어졌다. 달빛 아래에서 핏빛으로 물든 꽃잎처럼 보였다. 부랑인들은 우르르 몰려들더니 미친개처럼 빼앗아대기 시작했다.

윤윤서는 바닥에 쓰러진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옷을 입었다. 구재건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힘없이 쓰러져 있는 것이 아주 연약해 보였다. 도망칠 능력도 없으면서 감히 벗어나려고 한 대가였다.

구재건은 차갑게 웃으며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차 안으로 끌어갔다. 구지오와 경호원은 눈치껏 따라가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차 안으로 이끌린 윤윤서는 다리를 제대로 펴본 적도 없이 다시 쓰러졌다. 구재건은 그녀의 옷 속으로 손을 넣으며 강압적으로 입을 맞췄다. 이와 입술이 부딪히면서 피비린내가 났다.

그는 윤윤서를 자신의 품 안에 가둔 채 집어삼킬 듯이 몰아붙였다. 윤윤서는 고통에 눈시울이 붉어졌는데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굴욕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한창 달아오른 구재건은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잡고 아래로 눌렀다.

“네가 했던 말, 기억하지?”

윤윤서는 몸을 흠칫 떨었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구재건은 오만하게 머리를 들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반항의 결과가 어땠는지 다시 한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조금 전의 절망이 떠오르자 그녀는 또다시 파르르 떨렸다.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도록 주먹을 꽉 쥔 그녀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저녁이 되자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공원에 세워진 차는 저녁 내내 흔들렸다.

윤윤서는 원래 지내던 아파트에서 다시 눈을 떴다. 시간은 이미 이튿날이 된 모양이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쓴웃음을 지었다. 빙빙 돌다가 결국 또 원래 자리에 돌아오게 되었다. 이 악연은 대체 언제 끝난단 말인가?

옷을 입은 그녀는 피곤한 몸으로 걸어 나갔다. 구재건은 통화 중이었다. 아무래도 회사 일인 것 같았다.

그녀가 나온 것을 보고 구재건은 테이블에 놓인 도시락을 가리켰다. 열어 보자 해삼이 든 영양죽이었다. 따라온 반찬도 탐스러워 보였다.

하루 종일 굶었던 그녀는 앉아서 죽을 먹기 시작했다. 따듯한 죽이 속 안으로 들어가자 눈앞이 다 환 해졌다. 그리고 이제야 아랫배의 통증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윤윤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너무 심했던 것 같은데, 아이가 무사할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니 원래도 지울 아이였기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계속 죽을 먹었다. 그러나 1초 전까지 맛있기만 하던 죽이 갑자기 구역질이 나도록 역겨워졌다.

그녀는 황급히 그릇을 내려놓고 입을 막은 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겨우 조금 먹은 쌀알은 신물과 함께 다시 토해내고 말았다.

한참 게워 내고 나서야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 차렸다. 수도꼭지를 틀고는 손과 얼굴을 씻었다.

머리를 들자 언제부턴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구재건이 보였다. 그는 등골이 오싹해질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윤서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어, 언제 들어왔어요?”

“왜 그래?”

구재건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배를 바라봤다. 예나 지금이나 참 눈치가 빨랐다.

윤윤서도 그가 무엇을 의심하는지 알았다. 만약 임신 사실을 들킨다면 아이를 지우는 건 물론이고 더 끔찍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녀는 억울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게 다 대표님 때문이잖아요. 어제 무리했더니 속이 안 좋아요.”

“그게 위까지 닿지는 않았을 텐데?”

구재건은 손을 올려 잠옷을 사이 두고 그녀의 배를 쓸어내렸다.

“어디까지 들어갔는지는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직설적인 말에 윤윤서는 얼굴이 빨개졌다. 할 거 못할 거 전부 다 한 사이라고 해도 부끄러웠다. 더군다나 그녀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기만 했던 그녀는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주, 죽 먹으러 갈게요.”

이대로 얼버무릴 수 있나 할 때, 구재건이 뒤에서 말을 보탰다.

“윤윤서, 너 혹시 임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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