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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윤준서 이 새끼가...”

윤윤서는 화가 나다 못해 숨이 다 막혔다. 그러나 욕해 봤자 정작 욕보이는 건 자신과 이혜수였기에 결국 참아냈다.

택시 기사는 그녀가 힘겹게 숨을 고르는 것을 보고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윤윤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아이를 지울 돈도 없었다. 돈을 마련할 방법은 따로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지갑을 뒤져서 현금 5만 원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돈을 택시 기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죄송한데 다시 호텔로 데려다주세요.”

“네.”

5만 원권을 받은 택시 기사는 거스름돈을 찾아주고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 태양은 중천에 있었다. 따듯한 햇살이 몸을 비추는 데도 그녀는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피곤한 기색으로 안에 들어가자 호텔 매니저가 다가와서 말했다.

“윤윤서 씨, 전에 미리 지불하신 투숙 비용을 다 썼는데 계속 투숙하실 건가요?”

윤윤서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그녀는 주먹을 꼭 쥐면서 말했다.

“아뇨. 다른 일이 있어서 곧 나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매니저는 머리를 끄덕이더니 친절하게 벨보이도 보내줬다.

윤윤서가 트렁크를 끌고 떠난 다음 매니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굽신거리면서 말했다.

“네, 도련님. 윤윤서 씨는 금방 떠났습니다.”

“알았어요.”

전화를 끊은 구지오는 구재건의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구재건의 사촌 동생이었다. 구재건의 성공하기 전에는 비정규직에서 일하는 지방대 출신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백영 최고 갑부의 사촌 동생으로 도련님이라고 불렸다. 어딜 가도 최상의 대접을 받았다. 두 사람이 나고 자란 시골마저 예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발달했다.

물론 구지오가 대접받는 건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구재건이 직접 할 수 없는 어두운 일은 전부 그가 도맡아서 했다. 예를 들어 마음에 안 드는 협력사거나, 말 한 드는 윤윤서거나... 구재건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이라면 그는 절대 봐주지 않았다.

...

하늘은 눈 깜빡할 사이에 어두워졌다.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가지고 있는 현금이 몇천 원만 남은 윤윤서는 트렁크를 끌고 한적한 공원에 갔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 외투를 단단히 여몄다.

그녀는 강우진, 혹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들키고 싶었다.

오늘 밤은 일단 이곳에서 보내고, 방법은 내일 생각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트렁크에 기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구재건의 전화였다.

눈꺼풀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구재건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그가 얼마나 잔인한 사람인지도 알았다. 1초 전까지 웃으며 악수하다가도 집안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협력사 대표 앞에서 그런 일을 벌이고 사직까지 했으니, 보복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녀는 원래도 먼저 떠날 자격이 없는 임장이다.

그의 전화를 무시한다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감정을 정리하다가 수락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구재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 건너편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

구재건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저녁의 바람 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주 괴이했다.

등골이 오싹해진 윤윤서는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어둠 속에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구름이 흘러가고 달이 나왔다. 달빛 아래에서 눈빛의 주인은 완전히 정체를 드러냈다. 더러운 부랑인들이었다.

“꺄악!”

윤윤서는 비명을 지르며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트렁크를 챙겨 들고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부랑인들의 동작이 더욱 빨랐다. 그들은 그녀를 포위하고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그들은 구멍 난 옷을 입고 쓰레기 냄새를 풍겼다. 마손된 신발은 바닥과 마찰하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윤윤서는 심장이 빠르게 뛰다 못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식은땀이 맺힌 이마 위로 바람이 불자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녀는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이토록 외진 곳에서는 아무리 외쳐도 들을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상대를 자극만 할 것이다.

이때 그녀는 통화가 아직 끊기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부랴부랴 핸드폰을 들고 도움을 청했다.

“대표님, 여기 부랑인이 너무 많아요! 살려주세요!”

전화 건너편의 구재건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알아.”

이때 부랑인들이 빠르게 다가와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한 사람은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건드리지 마!”

윤윤서는 힘껏 버둥대는 와중에도 무언가 눈치챘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구재건에게 물었다.

“설마 대표님이 꾸민 일이에요? 이런 거 불법이에요! 몰라요?”

“이봐, 윤 비서. 아니 윤윤서 씨. 난 그들과 모르는 사이야. 그저 내 기사가 우연히 근처에서 쉬다가, 우연히 통화를 했고, 우연히 웬 여자가 벤치에서 자려고 하는 걸 발견하고, 또 우연히 부랑인들이 들었을 뿐이야. 그게 어떻게 내 탓이 될 수 있지?”

실질적인 증거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너...!”

윤윤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 그러나 더러운 냄새와 숨결이 너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겁에 질린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도움을 구걸했다.

“도와주세요!”

“그 전에 대답해.”

구재건은 담담하게 물었다.

“나랑 할래? 아니면 그 사람들이랑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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