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재원 그룹 대표실.구지오는 구재건 책상 앞에 우뚝 서서 일정을 보고하고 있었다.“형, 예리 누나를 위한 파티 이미 준비가 다 됐어. 오늘 밤에 바로 하면 돼. 손님들도 제때 도착할 거야.”“그래.”구재건은 고개를 끄덕였다.구지오에게 그만 나가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저도 모르게 윤윤서가 떠올랐다.원래부터 저혈당으로 쓰러진 것이었는데 어젯밤 그에게 또 범해지지 않았던가.아마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아무리 장난감이라고 해도 재정비할 시간은 줘야 했다.그래서 구지오에게 물었다.“윤윤서 상태는 어떻지?”“의사가 말하길 많이 나아졌다고 했어. 하지만 몸이 많이 약해져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대.”비록 구지오는 윤윤서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사촌 형인 구재건이 그녀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병원에 미리 연락해 윤윤서의 상태를 알아보았다.구재건은 담담하게 답했다.“그래.”어젯밤 반항하던 윤윤서의 모습과 최근 변한 듯한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이내 구지오에게 지시했다.“가서 알아봐, 윤윤서 몸 상태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주위에 새로 나타난 인물은 없는지. 계속 정밀 검사를 거부한다면 예전 진료 기록을 뒤져서라도 알아 와. 그리고 바로 나한테 보고해.”“응, 알았어.”구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예리 누나 파티가 끝나면 윤윤서 씨 진료 기록을 정리해서 형 책상에 올려둘게.”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조예리가 당당하게 들어왔다.그녀는 먼저 우아하게 구지오와 인사를 했다.“지오도 있었구나.”구지오는 그저 미소로 대답을 대신에 했다.미래의 사촌 형수를 늘 깍듯하게 대했다.조예리는 구재건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재건아, 오늘 파티 준비 다 했지?”구재건은 웃으며 답했다.“구지오가 준비 다 해놨어.'조예리는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고마워, 재건아.”이번은 그녀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환영 파티였기에 구재건은 백영시에 있는 재벌들을 전부 초대했다.그가 나서는 순간
“윤서 씨가 내키지 않아 한다는 걸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흰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대표님 아래서 일하고 있잖아요. 까라면 까는 수밖에 없죠. 그냥 풍성한 저녁 한 끼 먹으러 간다고 생각해요.”강우진은 윤윤서를 달래며 설득했다.“그리고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스타일링 아주 잘하는 분들한테 얘기 해뒀으니까 윤서 씨는 분명 파티에서 제일 빛나는 사람이 될 거예요!”‘조예리가 또 윤서 씨를 괴롭히려는 수작이 아니겠어?'‘내가 그럼 반격할 거야. 주인공이 바뀌는 기분을 느끼게 해줄 거야!'말을 마친 강우진은 손뼉을 쳤다.그러자 빠르게 전문가 포스 물씬 풍기는 사람들이 병실로 들어왔다.사람이 아주 많았지만 각자 할 일이 분명했다.누군가는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드레스를 한가득 밀며 들어왔다. 심지어 양손 가득 신발을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윤윤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정말로 스타일링 전문가들을 불러오신 거예요?!”“당연하죠. 전 한다면 하는 사람이에요.”강우진은 윤윤서를 향해 눈썹을 튕겼다.‘스타일링 전문가를 부르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이런 전문가를 한 트럭 불러올 수도 있다고!'‘재물신의 비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시간은 빠르게 흘렀다.점심을 먹은 후 스타일링 전문가들은 윤윤서를 꾸미기 시작했다.저녁 파티까지 반 시간 남기고 드디어 끝났다.강우진은 오랜 기다림에 머리카락마저 헝클어졌다.심심한 표정으로 레몬티를 흔들거리며 안에 있던 얼음을 입에 넣고 있을 때 드레스를 입은 윤윤서가 나왔다.윤윤서는 바닥을 끄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드레스에 박힌 보석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그녀의 몸매에 맞게 수선한 것이라 걸을 때마다 예쁜 자태를 보여주었다.심지어 피부도 뽀얗고 화장도 잘 먹혔다. 두 눈은 반짝이는 별 같았으며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모습은 아주 우아해 보이기도 했다.윤기도는 검은 머리는 단아하게 묶었기에 예쁜 목선과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다.얼굴 양옆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잔머리는 그녀
욕실.물안개가 맴도는 공간, 구재건의 목소리는 윤윤서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왜 전처럼 수줍어하지 않아?”윤윤서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그, 그때는... 처, 처음... 이었으니까...”“알지. 내 옷에도 책상에도 전부 네가 흘린 피였잖아.”구재건은 커다란 손으로 윤윤서의 허리를 잡으며 피식 웃었다.“그렇다면 넌 언제가 제일 좋았어?”힘겹게 벽을 잡고 서 있던 윤윤서는 물에 퍼진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모, 몰라요.”구재건은 가슴을 더욱 밀착시키며 비웃었다.“너 나 좋아한다며? 그렇게 역사적인 순간은 일일이 마음에 새겨야지.”물안개 때문인지 살결은 더욱 밀착해서 조금의 공간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윤윤서는 썰렁하기만 했다.“그러는 대표님은 저를 싫어하잖아요. 제 생각이 그렇게 중요해요?”구재건은 잠깐 멈칫하더니 더욱 힘을 줘서 밀어붙였다.“넌 한결같이 뻔뻔하네.”“대표님은 한결같이 저를 미워하네요.”반 시간 후.윤윤서는 피곤한 기색으로 침대에 축 늘어져 있었다. 욕실에서 가져온 물기가 침대를 적셨지만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구재건은 어느샌가 정장을 차려입고 나왔다. 과거의 그와 전혀 다른 고귀하고 오만한 모습이었다.7년 전.대학교 1학년 새내기가 된 윤윤서는 부잣집 딸이었다. 그러나 구재건은 장학금을 받아서 겨우 등록금을 내는 형편이었다.윤윤서는 학교 운동장에서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원래도 사회적 거리가 멀었던 그에게 가까이하기 위해 그녀는 온갖 방법을 다 썼다. 후에는 비열한 수단으로 협박하며 억지로 굴복시키기까지 했다.이 관계는 대학교 4학년 때 끝났다. 구재건은 직접 만든 프로그램으로 첫 수입을 얻었다. 그리고 점점 더 높은 자리로 차근차근 올라가기 시작했다.윤윤서는 진작부터 그의 능력을 보아냈다. 그저 이렇게 빨리 성공할 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대가도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집안 사업이 망하는 건 한순간이었고,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빚쟁이를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천당에
“...”윤윤서의 입술은 창백하게 질렸다. 혀끝을 하도 잘근잘근 씹어서 입안에는 피비린내가 맴돌았다.“하하!”구재건의 허락을 받은 김정섭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더욱 노골적인 눈빛으로 술잔을 들이댔다.“상사가 말했는데도 안 마실 거예요?”윤윤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해서 그녀는 또다시 술잔을 밀어냈다.“죄송해요. 저 진짜 술은 못 마셔요.”“쯧, 성가시게 구네. 이러니까 상사한테 예쁨을 못 받지.”김정섭은 더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그럼 구 대표님 말씀대로 내가 가르쳐줄게.”말을 마친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윤윤서의 턱을 잡았다. 그리고 억지로 술을 먹이려고 했다.그들의 눈에 여자는, 특히 비서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고장 나면 하나 바꾸면 그만이었다. 주인도 신경 안 쓰는 장식품을 남은 더욱 아낄 필요가 없었다.“웁...!”윤윤서는 되는 대로 반항했다. 자극적인 액체는 코와 입을 타고 목과 가슴까지 흘러들었다. 하얀색 셔츠는 술에 적셔지며 속옷의 윤곽을 드러냈다.괴롭힌 당한 고양이라도 된 것처럼, 윤윤서는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버둥거렸다. 남자들은 거친 숨을 쉬며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짝!뺨 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윤윤서는 앞섬을 여미면서 뒷걸음질 쳤다. 김정섭은 콩알만 한 눈을 최대로 뜨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미친년이 감히 나를 때려?!”그는 와인잔을 들어 윤윤서를 향해 던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튄 유리 파편은 윤윤서의 창백한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곧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아이고, 김 대표님! 진정하세요!”피를 볼 필요까지는 없었기에 사람들은 김정섭을 말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무래도 구 대표님 사람이에요. 언제 말을 바꿀지 모르는 일이니까 자중하세요.”김정섭은 이제야 이성이 돌아왔다. 그는 힐끔거리며 구재건의 눈치를 살폈다.구재건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기분 좋은
놀란 것도 잠시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웁!”윤윤서는 입을 막고 간신히 참아냈다.그녀는 입덧이 꽤 심한 편이었다. 임신한 지 한 달 조금 넘었는데 벌써 이러는 걸 보면 말이다.오래간만에 부드러운 표정을 지은 그녀는 가만히 아랫배를 바라봤다. 별걸 다 자기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죄송해요. 윤준서 씨도 환자분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병원비를 돌려받을 권리가 있어요.”윤윤서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 생각을 멈췄다. 주치의는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윤준서 씨가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돈을 안 주면 치료를 포기하겠다고 하셔서, 저희도 어쩔 수 없었어요. 환자분을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었어요.”윤윤서는 핸드폰을 꺼냈다. 확실히 주치의의 부재중 통화가 있었다. 구재건과 함께 있을 때라서 받지 못한 모양이다. 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무음 모드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그녀는 눈을 감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평정심을 되찾았다.“병원비는 얼마나 남았어요?”“일주일 동안의 비용만 남았어요.”윤윤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윤준서가 아무리 밉다고 해도 지금은 일단 병원비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이곳 백영은 전국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이다. 이곳에 있어야만 빠른 속도로 돈을 모을 수 있었다.그렇게 백영을 떠날 계획은 잠시 미루게 되었다. 새로운 일자리도 찾아야 했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윤준서의 일을 잊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했다.주치의가 할 말을 끝내고 돌아섰을 때 윤윤서가 그를 불러세웠다.“잠시만요. 선생님, 저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말씀하세요.”“태아의 심장 소리는 몇 개월부터 들을 수 있나요?”이 말을 들은 주치의는 의아한 눈빛으로 윤윤서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아마 40일에서 50일 정도부터 들릴 거예요. 저는 산부인과가 아니라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요.”“네, 알겠습니다.”윤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오늘로 그녀가 임신한 35일째가 된다. 지
구재건의 얼굴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남았다. 윤윤서는 그 즉시 후회했다.그녀는 조심스레 다가가 그의 얼굴을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있는 힘껏 그녀를 밀어냈다.화가 치밀어 오른 윤윤서는 하이힐을 신은 채 구재건의 다리를 차며 말했다.“그래요, 재건 씨는 내 장난감이에요! 놀다가 질리면 버릴 장난감! 비싼 척하지 마요. 어차피 재건 씨는 나한테 무릎 꿇게 되어 있으니까!”그날 구재건은 상처 가득한 몸으로 기숙사에 돌아갔다. 윤윤서가 약과 선물을 보냈지만, 전부 창문으로 던져졌다.윤윤서는 바닥에서 나뒹구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친구들에게 짜증을 부렸다.“쓸모없는 것들! 선물 하나 제대로 못 전달해?”이때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윤서야, 만약 구재건 씨가 안 알아줘도 되는 거면 익명으로 선물하는 게 어때?”“익명은 받아줄까?”“구재건 씨는 널 싫어하는 거지, 선물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잖아. 다른 사람이 줬다고 생각하면 받을 거야.”구재건에게 눈이 먼 윤윤서는 이 말에 숨겨진 뜻을 몰랐다. 그는 곧바로 물건들을 새로 사서 익명의 편지를 작성했다.[구재건:구재건 씨의 상황에 진심으로 동정을 표합니다. 윤윤서 씨는 저희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이렇게 응원할 수밖에 없습니다.상자 안의 물건들은 저희의 작은 성의이니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힘들다고 해도 공부 포기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윤윤서 씨는 조만간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윤윤서는 일부러 자신을 욕하는 말까지 더했다.역시 이번 선물은 버림받지 않았다. 그는 감동한 표정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그 이후 윤윤서는 조현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구재건을 괴롭혀댔다. 그를 극도로 증오하는 것처럼 말이다.물론 속으로는 아주 속상해했다. 그래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엄청 사줬다. 쉽게 구할 수 없는 한정판 책도 몰래 가방에 넣어주고는 했다. 어떨 때는 현금다발과 응원 편지도 있었다.후에 구재건은 성공했다. 윤윤서가 저질렀던 일은
윤윤서는 작게 심호흡하더니 애써 평온하게 말했다.“안녕하세요, 대표님.”구재건은 고개를 들어 거리감으로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그는 말없이 머리를 까딱할 뿐이었다.그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니 사직 절차를 밟을 서류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사인만 하면 되었다.윤윤서는 주저 없이 펜을 들고 사인했다. 구재건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펜은 종이와 마찰하면서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사인을 끝낸 윤윤서는 펜과 서류를 원래 자리에 놓았다. 그리고 구재건을 향해 꾸벅 인사하며 덤덤하게 말했다.“그럼 안녕히 계세요.”말을 마친 윤윤서는 몸을 돌려 떠났다. 미련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문이 닫힌 순간 구재건을 주먹을 꽉 쥐었다.‘정말 가버린 거야? 왜?’사무실의 분위기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강우진은 이대로 얼음조각이 될 것만 같았다.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용기 내서 구재건에게 말했다.“대표님, 사인한 서류는 제가 인사팀에 가져갈까요?”“꺼져.”구재건은 종래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가는 빨갛게 달아올랐다.살기가 단단히 서린 것이 마왕 못지않았다.“네.”강우진은 후덜덜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서류를 챙겨서 나왔다. 사무실에서 나온 그는 바로 인사팀에 가는 것이 아닌 자리에 앉았다.사인한 서류를 보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에 얽매인 채 살아간다면 영원히 그때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안 맞는 사람을 붙잡으려고 한 윤윤서나, 전혀 안 괜찮으면서 괜찮은 척하는 구재건처럼...생각해 보니 구재건은 꺼지라고 했지 알았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잠시 서류 제출을 보류할 생각이었다.이렇게 생각하며 그는 사인 된 사직서를 문서 파쇄기 안에 넣었다.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와 함께 사인 된 서류는 조금씩 삼켜지기 시작했다.빠르게 작동하는 칼날 아래서 종잇장은 눈꽃이 되어 내렸다.“아차, 실수로 사직 서류를 파쇄기에 넣어버렸네
밤이 깊어 지고...구재건은 커다란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은 채 미간을 꼭 찌푸렸다.그는 또 꿈을 꾸었다. 꿈속에는 여자의 서투른 손놀림과 함께 협박의 말이 들려왔다.“내 말 들어요. 안 그러면 재건 씨가 조예리를 좋아한다고 소문 내 버릴 거니까요. 소문이 나면 모두가 재건 씨를 비웃겠죠? 스캔들의 주인공이라면 장학금도 없겠네요. 그렇게 허망하게 학교에서 쫓겨나고 싶어요?”폐쇄된 교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햇빛은 두꺼운 커튼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오직 초가을의 바람만이 살살 불어와 탁한 공기에 시원함을 더해줬다.어린 구재건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셔츠 단추는 완전히 풀어져서 단단한 가슴 근육을 드러냈다. 바지 벨트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어깨에는 여자의 손이 닿아 있었다.“내가 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했죠?”도발적인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재건 씨도 좋잖아, 안 그래요?”“...”구재건의 이마에는 핏줄이 튀어나왔다. 따듯한 손길에 따라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신경을 감쌌다.그는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 와중에도 싫어하는 사람에게 반응을 일으키는 몸뚱아리가 한스러웠다.이를 꽉 악문 그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속마음과 달리 몸은 자꾸만 바들바들 떨렸다.결국 정신은 육체에 져버리고 말았다. 머릿속에 하얀빛이 스친 것도 잠시 그는 기분 좋은 신음을 냈다.곧이어 구재건은 거칠게 숨을 쉬며 눈을 떴다. 하체는 축축해져 있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불을 켜고 욕실에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면서 바디위시의 향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윤윤서의 몸에서 자주 나던 냄새였다.머리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낸 그는 샤워에 집중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뜨자, 샤워기 아래에 쓰러져 있던 윤윤서의 모습이 떠올랐다. 요정같이 매혹적인 모습이었다.꿈에서 충분히 만족했는데도 몸은 또다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윤윤서가 사직했다는 생각에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그는 그날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