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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구재건의 얼굴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남았다. 윤윤서는 그 즉시 후회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가 그의 얼굴을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있는 힘껏 그녀를 밀어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윤윤서는 하이힐을 신은 채 구재건의 다리를 차며 말했다.

“그래요, 재건 씨는 내 장난감이에요! 놀다가 질리면 버릴 장난감! 비싼 척하지 마요. 어차피 재건 씨는 나한테 무릎 꿇게 되어 있으니까!”

그날 구재건은 상처 가득한 몸으로 기숙사에 돌아갔다. 윤윤서가 약과 선물을 보냈지만, 전부 창문으로 던져졌다.

윤윤서는 바닥에서 나뒹구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친구들에게 짜증을 부렸다.

“쓸모없는 것들! 선물 하나 제대로 못 전달해?”

이때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윤서야, 만약 구재건 씨가 안 알아줘도 되는 거면 익명으로 선물하는 게 어때?”

“익명은 받아줄까?”

“구재건 씨는 널 싫어하는 거지, 선물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잖아. 다른 사람이 줬다고 생각하면 받을 거야.”

구재건에게 눈이 먼 윤윤서는 이 말에 숨겨진 뜻을 몰랐다. 그는 곧바로 물건들을 새로 사서 익명의 편지를 작성했다.

[구재건:

구재건 씨의 상황에 진심으로 동정을 표합니다. 윤윤서 씨는 저희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이렇게 응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자 안의 물건들은 저희의 작은 성의이니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힘들다고 해도 공부 포기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윤윤서 씨는 조만간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윤윤서는 일부러 자신을 욕하는 말까지 더했다.

역시 이번 선물은 버림받지 않았다. 그는 감동한 표정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이후 윤윤서는 조현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구재건을 괴롭혀댔다. 그를 극도로 증오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속으로는 아주 속상해했다. 그래서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엄청 사줬다. 쉽게 구할 수 없는 한정판 책도 몰래 가방에 넣어주고는 했다. 어떨 때는 현금다발과 응원 편지도 있었다.

후에 구재건은 성공했다. 윤윤서가 저질렀던 일은 하나둘씩 그녀에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안 돼...!”

눈물이 하도 많이 흘러서 그녀는 억지로 눈을 떴다. 창밖의 태양은 환하게 걸려 있었고, 핸드폰 알람은 시끄럽게 울려댔다.

윤윤서는 몸을 일으켰다. 오늘 사직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곧 생각을 정리하고 벌떡 일어났다.

결정했으면 실행해야 한다. 주저하는 시간도 이제는 아깝다.

...

정리를 끝낸 윤윤서는 일단 비서실에 가서 인수인계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들어가자마자 사무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동료 비서 강우진이 보였다.

그는 퍽 심란해 보였다. 그래서 윤윤서는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윤윤서를 본 강우진은 바로 언성을 높였다.

“윤서 씨 사직한다면서요?”

윤윤서와 강우진은 구재건의 개인비서였다. 그 아래로 네 명의 비서가 더 있었다.

구재건은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인간미 없는 워커홀릭이다.

할 일이 넘쳐나는 비서실에서 윤윤서와 강우진은 편한 날이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전우애도 생기기 시작했다.

윤윤서가 사직한다는 말을 듣고 강우진은 자칫 혼절할 뻔했다. 그녀가 사직하면 이제 더 이상 그와 함께 야근하고 투덜댈 전우가 없었다.

“네, 저 사직해요.”

“윤서 씨!”

강우진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윤윤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유는요? 사직 이유가 뭐예요?”

윤윤서는 괜히 벽을 만져보며 감성에 젖은 듯 말했다.

“요즘 날씨가 점점 습해지네요. 벽도 축축해서 마를 날이 없어요.”

“네?”

“마치... 저의 눈물처럼요.”

강우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외쳤다.

“제 말이 장난 같아요?”

윤윤서는 싱긋 웃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피곤해서 더 이상 못 하겠어요.”

그녀는 구재건의 냉정함을 견딜 수 없었다. 어떤 열정으로도 녹일 수 없는 냉기였다.

3년 동안 물건으로 살았으면 충분한 것 같다. 더 이상 위험한 생활은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아이까지 생기지 않았는가?

만약 구재건에게 아이의 존재를 들킨다면 더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이다. 그녀는 무조건 떠나야 한다.

강우진은 침묵에 잠겼다. 입사 이래 그도 윤윤서와 구재건의 소문을 들은 적 있었다.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다. 윤윤서는 사람을 너무 잘 보는 것이 문제다. 상대가 평생 패배자로 살아갈 사람이었으면 보복당할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윤윤서는 하필이면 능력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덕분에 악연도 끈질기게 이어갔다.

방관자로서 강우진은 억지로 고구마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자주인공이 이렇게 갑자기 떠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사직할 거예요?”

“네.”

윤윤서는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인수인계에 필요한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금 사직 절차 밟으러 갈 거예요.”

강우진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저도 같이 가요!”

대표이사실 앞에 윤윤서는 평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파에 앉아 있는 구재건이 보였다.

긴 다리는 살짝 구부려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네이비색 셔츠는 그의 이목구비를 더욱 선명하게 비췄다.

그의 아우라는 아주 강렬했다. 누가 봐도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 것이다.

윤윤서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도 그의 외모에 반해 미친 짓을 벌였다. 그의 잔인함을 보아내지 못한 탓에 그녀는 지금의 처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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