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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놀란 것도 잠시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웁!”

윤윤서는 입을 막고 간신히 참아냈다.

그녀는 입덧이 꽤 심한 편이었다. 임신한 지 한 달 조금 넘었는데 벌써 이러는 걸 보면 말이다.

오래간만에 부드러운 표정을 지은 그녀는 가만히 아랫배를 바라봤다. 별걸 다 자기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죄송해요. 윤준서 씨도 환자분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병원비를 돌려받을 권리가 있어요.”

윤윤서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 생각을 멈췄다. 주치의는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윤준서 씨가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돈을 안 주면 치료를 포기하겠다고 하셔서, 저희도 어쩔 수 없었어요. 환자분을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었어요.”

윤윤서는 핸드폰을 꺼냈다. 확실히 주치의의 부재중 통화가 있었다. 구재건과 함께 있을 때라서 받지 못한 모양이다. 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무음 모드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눈을 감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병원비는 얼마나 남았어요?”

“일주일 동안의 비용만 남았어요.”

윤윤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윤준서가 아무리 밉다고 해도 지금은 일단 병원비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곳 백영은 전국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이다. 이곳에 있어야만 빠른 속도로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백영을 떠날 계획은 잠시 미루게 되었다. 새로운 일자리도 찾아야 했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윤준서의 일을 잊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했다.

주치의가 할 말을 끝내고 돌아섰을 때 윤윤서가 그를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선생님, 저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태아의 심장 소리는 몇 개월부터 들을 수 있나요?”

이 말을 들은 주치의는 의아한 눈빛으로 윤윤서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아마 40일에서 50일 정도부터 들릴 거예요. 저는 산부인과가 아니라 기억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네, 알겠습니다.”

윤윤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로 그녀가 임신한 35일째가 된다. 지금부터 10일 정도만 지나면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때가 되면 그녀는 절대 아이를 지우지 못할 것이다. 일이 점점 복잡해지는 와중에 아이의 일도 빨리 결정해야 할 것 같았다.

...

윤윤서는 오후 내내 병원에 있었다. 나와서는 바로 호텔에 갔다.

그녀는 원래 구재건의 명의로 있는 아파트에 살았다. 그러나 앞으로 구재건과 관련 있는 곳에는 절대 안 가기로 했다.

윤윤서가 호텔 방에 들어가기 바쁘게 노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 보니 구재건이 서 있었다. 그다지 놀라운 상황은 아니었다.

구재건은 백영의 실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위치 하나 추적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구재건은 한결같이 차가운 표정이었다. 그는 오만하게 윤윤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무릎 꿇고 사과하면 사직 일은 없던 거로 해줄게.”

전에도 윤윤서가 불만을 토로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구재건의 차가운 눈빛 하나로 전부 해결되었다. 일이 이번처럼 커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윤윤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또박또박 말했다.

“사직 절차 원래대로 진행해 주세요.”

“술 좀 먹였다고 그래?”

구재건은 그녀의 턱을 붙잡고 살살 매만졌다. 부드러운 동작과 달리 말투는 아주 삐딱했다.

“깨끗한 척하지 마. 그게 더 역겨우니까.”

그의 말을 들은 윤윤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3년 동안의 배려에 따라온 것은 이런 말밖에 없었다.

윤윤서도 인간이다. 이런 말을 듣고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다행히 앞으로 안 봐도 되는 사람이라 그나마 후련했다.

고개를 숙인 그녀는 처참하게 말했다.

“역겹지 않게 꺼져줄게요. 대표님도 그걸 원하잖아요.”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법이다.

구재건은 돈과 명예 모든 것을 얻었다. 3년간의 보복이면 그녀가 대학교 시절에 저지른 유치한 짓의 대가로도 충분했다.

아... 그건 또 아닌가?

“좋아.”

구재건은 뒤로 두 발짝 물러나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한 말 잘 기억하고 있어. 지금이 네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말을 마친 그는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모든 발걸음이 윤윤서의 심장을 밟았다. 무겁고도 답답했다.

윤윤서는 창백한 안색으로 방에 돌아갔다.

저녁, 그녀는 편하게 잠들지 못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그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대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구재건에게 빠져서 한창 그의 주변을 맴돌던 시절이었다.

“재건 씨, 내가 이렇게 오래 쫓아다녔는데도 왜 안 받아줘요?”

“나랑 연애하면 등록금도 생활비도 전부 줄게요! 재건 씨는 공부만 하면 돼요!”

“재건 씨, 나 예쁘고 돈도 많아요.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예요? 저는 재건 씨가 가난한 거 하나도 상관없어요.”

사랑받고 자란 부잣집 딸은 아주 당돌했다. 좋아하는 남자한테도 맹목적으로 대시할 줄밖에 몰랐다.

거절에 거절을 거듭하자, 그녀가 뱉는 말은 점점 더 듣기 싫어졌다.

“좋은 말로 할 때 허락하죠. 사람 귀찮게 만들지 말고.”

“시골 출신 주제에 더럽게 비싸게 구네.”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영광인 줄 알아야지, 감히 날 거절해요?”

윤윤서의 말에 구재건은 이렇게 대답했다.

“난 그쪽 장난감이 아니에요. 그쪽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요.”

윤윤서를 바라보는 구재건의 눈빛은 아주 어두웠다. 잘생긴 것은 그때도 여전했다.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윤윤서는 구재건의 입술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칫하면 길거리에서 입술을 맞출 뻔했다. 뒤이어 그의 혐오 섞인 눈빛과 마주한 다음에야 그녀는 자신이 제대로 거절당했음을 눈치챘다.

홧김에 그녀는 손을 들어 구재건의 뺨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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