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구재건에게 집중하면서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구재건은 고개를 들자 창백한 윤윤서의 안색을 발견했다.아무리 룸의 조명이 어둡다고 해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창백했다.구재건은 이상하게도 짜증이 치밀었다.미간을 팍 구기며 윤윤서에게 명령했다.“앉아.”“...”오전에 그 일이 있은 뒤로 윤윤서는 구재건이 조예리를 편을 들고 있어도 딱히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그녀는 대충 구석 자리에 앉았다.다음 순간, 머리가 어질거렸다.지수연이 말하길 임신 초기에 태아의 발육은 모체에 의지하여 성장한다고 했다.그랬기에 많은 임산부들이 빈혈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그녀는 임신한 순간부터 입덧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원래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더구나 오늘 하루 동안 먹은 것이라곤 이곳으로 오기 전 대충 끓인 국수 두 입이었던지라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누구도 그런 그녀의 상태를 발견하지 못했다.다들 구재건과 조예리 곁에 모여서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구 대표랑 조예리는 그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거야?”“아니, 그냥 같은 고향 사람이야. 대학교 입학 하기 전까지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구재건은 담담하게 말하며 무의식적으로 윤윤서에게 눈길을 돌렸다.윤윤서는 구석에서 몸이 불편한지 한 손으로 벽을 지탱하며 다소 괴로운 듯한 모습을 보였다.다른 사람들은 계속 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구 대표 대학교 때 엄청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서.”“에이, 그래도 그런 말이 있잖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맞아, 구 대표의 고생은 끝났으니 이젠 낙이 올 차례지!”“재건이는 지금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니까 예전 일은 그만 언급해. 괜히 분위기만 망치니까.”조예리는 굳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하곤 윤윤서가 가져온 해장국을 열어 맛을 보았다.그러더니 탁 소리를 내며 다시 테이블 위로 거칠게 던졌다.“세상에, 윤 비서. 해장국을 대체 어떻게 만든 거야? 이거 정말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 맞아?!”윤윤서는 머리가 너무도 어지러웠다.조예
구재건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조예리에게 화도 내지 않았다.“시간도 늦었으니까 대충 마무리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조예리는 설득이 통하지 않자 이를 빠득 갈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구재건!”구재건은 고개를 돌리며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누군가를 불렀다.“구지오!”경호원들과 담배를 태우고 있었던 구지오는 구재건의 부름에 바로 달려왔다.정신을 잃은 윤윤서와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있는 조예리가 보였다.멍하니 상황 파악하고 있던 찰나에 구지오는 구재건의 지시를 듣게 되었다.“얼른 차 끌고 와. 병원으로 갈 거니까.”“응, 형.”구지오는 조예리를 힐끗 보곤 얼른 차를 끌고 왔다.구재건은 윤윤서를 안은 채 걸음을 옮겨 차에 올라탔다.차가 떠나간 이곳에 먼지만 남았다.조예리의 안색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윤윤서 이 여우 같은 X!'‘꾀병을 부려?!'‘구재건을 꼬시려고 별짓을 다 하고 있잖아!'룸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지라 조예리는 이를 빠득 갈며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녀에 관해 의론하는 목소리가 들렸다.“구재건이 조예리를 별로 신경 안 쓰고 있을 줄은 몰랐네.”“그러게. 윤윤서가 쓰러진 것도 난 못 봤는데 구재건이 먼저 발견하고 달려나갔잖아. 그때 그 속도 얼마나 빠르던지, 순간이동이라도 한 줄 알았다니까.”“솔직히 윤윤서 몇 년 전보다 더 예뻐진 것 같지 않냐?”“윤윤서 별명 모르는 사람 없잖아. 우리 학교 여신은 역시 달라. 몇 년 직장 생활 좀 했다고 기품이 더 달라졌잖아.”“뭐야, 네가 웬일로 칭찬을 후하게 하냐. 혹시, 좀 꼬셔보려고?”“뭐라는 거야. 헛소리하지 마. 그런 생각 절대 하지 않았으니까!”사람들은 웃으며 얘기를 나누다가 문 앞에 서 있는 조예리를 발견했다.파리해진 그녀의 안색은 꼭 악귀 같은 모습이었다.룸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뭐가 어찌 되었든 구재건이 조예리를 아낀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누구도 멍청하게 조예리에게 밉보이는 짓을 하지 않을
병실 안에 조용해졌다.누구도 윤윤서가 이렇게 흥분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구재건에게 욕을 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심지어 구재건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그는 윤윤서가 싫었지만, 머리가 좋은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다.설령 아무리 화가 나도 이렇듯 그대로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어처구니가 없었던 구재건은 분노가 담긴 미소를 지으며 윤윤서의 턱을 확 잡고 억지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쓰러지면서 벽 어딘가에 머리라도 부딪쳤나 봐?”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멍청한 짓을 할 수 있겠는가?!윤윤서는 구재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안색이 병실 하얀 벽보다 더 창백했다.그녀의 입에선 여전히 도발하는 듯한 말이 나왔다.“머리를 부딪치든 말든 구재건 씨와 무슨 상관이죠?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조예리한테나 가보세요. 괜히 자꾸 이상한 거로 트집 잡지 말고요!”“하, 그래!”구재건은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났다.채혈하려던 것도 뒤로 미뤘다.조금 전 윤윤서를 보면서 느낀 약간의 동정도 사라지고 없었다.‘하, 천하기 짝이 없지!'‘조금만 잘해줘도 바로 기어오르다니.'‘감히 내 앞에서 반항해? 아직도 주제 파악 못 하고 있구나?'남자는 침대 위로 올라가면서 윤윤서를 아래에 깔았다.그의 행동엔 망설임도 없었다.뒤에 있던 간호사와 의사는 환자인 윤윤서가 걱정되어 앞으로 나서며 말려보려고 했지만 구지오가 팔을 뻗으며 두 사람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했다.그들은 감히 반항할 엄두가 나지 않아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구지오는 마지막으로 나가면서 친절하게 문도 닫아주었다.커다란 VIP 병실에 윤윤서와 구재건만 남았다.윤윤서의 하얀 피부에서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구재건이 꽉 잡고 있으니 더 많은 피가 흐르면서 그의 팔에도 묻었다.아팠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며 참았다.다른 한 손으로는 남자의 단단한 가슴팍을 밀어냈다.그 순간 구재건이 힘으로 윤윤서를 엎드린 자세로 만들었다.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여자의 목소리에 윤윤서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복도 끝에 무릎을 꿇은 여자가 보였다.여자는 요즘 유행하는 겨울 패션이었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었다.만약 눈물로 인해 화장이 번지지 않고 무릎을 꿇고 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예쁘고 자태가 아름다운 여성이었을 것이다.하지만 미모의 여성은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자의 다리를 잡고 애원하고 있었다.윤윤서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남자를 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순간 기억이 떠올랐다.구재건과 함께 접대 자리에 갔을 때 억지로 그녀에게 술을 마시게 하던 김정섭이었다.윤윤서를 처음 본 순간 김정섭의 눈빛이 음흉한 것이 불쾌했다. 게다가 온몸에 짙은 술 냄새가 나 분명 사생활이 음란하리라 생각했다.오늘 보니 확실히 그러했다.“꺼져!”김정섭은 여자를 발로 차곤 옷매무새를 정리했다.그리곤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내가 처음부터 말했지? 내 아이 밸 생각하지 말라고! 임신으로 어떻게든 날 협박해서 원하는 거 얻으려고 했나 본데 주제 파악 좀 하고 살아.”“분명 피임약도 꼬박꼬박 먹었어요. 그런데도 임신할 줄은 몰랐다고요. 저도 몰래 아이를 지우려고 했어요. 하지만 의사가 아이가 무척 잘 자라고 있다고 말하니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어요!”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김정섭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배 위에 가져다 대며 만지게 했다.“이미 3개월 됐대요.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태동도 느낄 수 있대요. 애초에 애인도 없던 나를 꼬셔 결혼하자고 한 것도 당신이잖아요! 그 말을 믿고 당신을 따른 거란 말이에요! 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냥 이 아이만 낳을 수 있게 해줘요, 네?”“나한테는 아들과 딸이 있어. 네 아이 따윈 필요하지 않아.”김정섭은 여자를 뿌리치며 얼굴의 지방 살까지 찌푸리며 협박했다.“내 아내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네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헛꿈 그만 꿔!”세게 뿌리친 탓에 여자는 비틀대더니 바닥에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쿵!그다음 순간 그녀는 배를 움켜
한편 재원 그룹 대표실.구지오는 구재건 책상 앞에 우뚝 서서 일정을 보고하고 있었다.“형, 예리 누나를 위한 파티 이미 준비가 다 됐어. 오늘 밤에 바로 하면 돼. 손님들도 제때 도착할 거야.”“그래.”구재건은 고개를 끄덕였다.구지오에게 그만 나가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저도 모르게 윤윤서가 떠올랐다.원래부터 저혈당으로 쓰러진 것이었는데 어젯밤 그에게 또 범해지지 않았던가.아마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아무리 장난감이라고 해도 재정비할 시간은 줘야 했다.그래서 구지오에게 물었다.“윤윤서 상태는 어떻지?”“의사가 말하길 많이 나아졌다고 했어. 하지만 몸이 많이 약해져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대.”비록 구지오는 윤윤서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사촌 형인 구재건이 그녀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병원에 미리 연락해 윤윤서의 상태를 알아보았다.구재건은 담담하게 답했다.“그래.”어젯밤 반항하던 윤윤서의 모습과 최근 변한 듯한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이내 구지오에게 지시했다.“가서 알아봐, 윤윤서 몸 상태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주위에 새로 나타난 인물은 없는지. 계속 정밀 검사를 거부한다면 예전 진료 기록을 뒤져서라도 알아 와. 그리고 바로 나한테 보고해.”“응, 알았어.”구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예리 누나 파티가 끝나면 윤윤서 씨 진료 기록을 정리해서 형 책상에 올려둘게.”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조예리가 당당하게 들어왔다.그녀는 먼저 우아하게 구지오와 인사를 했다.“지오도 있었구나.”구지오는 그저 미소로 대답을 대신에 했다.미래의 사촌 형수를 늘 깍듯하게 대했다.조예리는 구재건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재건아, 오늘 파티 준비 다 했지?”구재건은 웃으며 답했다.“구지오가 준비 다 해놨어.'조예리는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고마워, 재건아.”이번은 그녀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환영 파티였기에 구재건은 백영시에 있는 재벌들을 전부 초대했다.그가 나서는 순간
“윤서 씨가 내키지 않아 한다는 걸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흰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대표님 아래서 일하고 있잖아요. 까라면 까는 수밖에 없죠. 그냥 풍성한 저녁 한 끼 먹으러 간다고 생각해요.”강우진은 윤윤서를 달래며 설득했다.“그리고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가 스타일링 아주 잘하는 분들한테 얘기 해뒀으니까 윤서 씨는 분명 파티에서 제일 빛나는 사람이 될 거예요!”‘조예리가 또 윤서 씨를 괴롭히려는 수작이 아니겠어?'‘내가 그럼 반격할 거야. 주인공이 바뀌는 기분을 느끼게 해줄 거야!'말을 마친 강우진은 손뼉을 쳤다.그러자 빠르게 전문가 포스 물씬 풍기는 사람들이 병실로 들어왔다.사람이 아주 많았지만 각자 할 일이 분명했다.누군가는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드레스를 한가득 밀며 들어왔다. 심지어 양손 가득 신발을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윤윤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정말로 스타일링 전문가들을 불러오신 거예요?!”“당연하죠. 전 한다면 하는 사람이에요.”강우진은 윤윤서를 향해 눈썹을 튕겼다.‘스타일링 전문가를 부르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이런 전문가를 한 트럭 불러올 수도 있다고!'‘재물신의 비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시간은 빠르게 흘렀다.점심을 먹은 후 스타일링 전문가들은 윤윤서를 꾸미기 시작했다.저녁 파티까지 반 시간 남기고 드디어 끝났다.강우진은 오랜 기다림에 머리카락마저 헝클어졌다.심심한 표정으로 레몬티를 흔들거리며 안에 있던 얼음을 입에 넣고 있을 때 드레스를 입은 윤윤서가 나왔다.윤윤서는 바닥을 끄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드레스에 박힌 보석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그녀의 몸매에 맞게 수선한 것이라 걸을 때마다 예쁜 자태를 보여주었다.심지어 피부도 뽀얗고 화장도 잘 먹혔다. 두 눈은 반짝이는 별 같았으며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모습은 아주 우아해 보이기도 했다.윤기도는 검은 머리는 단아하게 묶었기에 예쁜 목선과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다.얼굴 양옆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잔머리는 그녀
욕실.물안개가 맴도는 공간, 구재건의 목소리는 윤윤서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왜 전처럼 수줍어하지 않아?”윤윤서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그, 그때는... 처, 처음... 이었으니까...”“알지. 내 옷에도 책상에도 전부 네가 흘린 피였잖아.”구재건은 커다란 손으로 윤윤서의 허리를 잡으며 피식 웃었다.“그렇다면 넌 언제가 제일 좋았어?”힘겹게 벽을 잡고 서 있던 윤윤서는 물에 퍼진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모, 몰라요.”구재건은 가슴을 더욱 밀착시키며 비웃었다.“너 나 좋아한다며? 그렇게 역사적인 순간은 일일이 마음에 새겨야지.”물안개 때문인지 살결은 더욱 밀착해서 조금의 공간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윤윤서는 썰렁하기만 했다.“그러는 대표님은 저를 싫어하잖아요. 제 생각이 그렇게 중요해요?”구재건은 잠깐 멈칫하더니 더욱 힘을 줘서 밀어붙였다.“넌 한결같이 뻔뻔하네.”“대표님은 한결같이 저를 미워하네요.”반 시간 후.윤윤서는 피곤한 기색으로 침대에 축 늘어져 있었다. 욕실에서 가져온 물기가 침대를 적셨지만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구재건은 어느샌가 정장을 차려입고 나왔다. 과거의 그와 전혀 다른 고귀하고 오만한 모습이었다.7년 전.대학교 1학년 새내기가 된 윤윤서는 부잣집 딸이었다. 그러나 구재건은 장학금을 받아서 겨우 등록금을 내는 형편이었다.윤윤서는 학교 운동장에서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원래도 사회적 거리가 멀었던 그에게 가까이하기 위해 그녀는 온갖 방법을 다 썼다. 후에는 비열한 수단으로 협박하며 억지로 굴복시키기까지 했다.이 관계는 대학교 4학년 때 끝났다. 구재건은 직접 만든 프로그램으로 첫 수입을 얻었다. 그리고 점점 더 높은 자리로 차근차근 올라가기 시작했다.윤윤서는 진작부터 그의 능력을 보아냈다. 그저 이렇게 빨리 성공할 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대가도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집안 사업이 망하는 건 한순간이었고,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빚쟁이를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천당에
“...”윤윤서의 입술은 창백하게 질렸다. 혀끝을 하도 잘근잘근 씹어서 입안에는 피비린내가 맴돌았다.“하하!”구재건의 허락을 받은 김정섭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더욱 노골적인 눈빛으로 술잔을 들이댔다.“상사가 말했는데도 안 마실 거예요?”윤윤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해서 그녀는 또다시 술잔을 밀어냈다.“죄송해요. 저 진짜 술은 못 마셔요.”“쯧, 성가시게 구네. 이러니까 상사한테 예쁨을 못 받지.”김정섭은 더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그럼 구 대표님 말씀대로 내가 가르쳐줄게.”말을 마친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윤윤서의 턱을 잡았다. 그리고 억지로 술을 먹이려고 했다.그들의 눈에 여자는, 특히 비서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고장 나면 하나 바꾸면 그만이었다. 주인도 신경 안 쓰는 장식품을 남은 더욱 아낄 필요가 없었다.“웁...!”윤윤서는 되는 대로 반항했다. 자극적인 액체는 코와 입을 타고 목과 가슴까지 흘러들었다. 하얀색 셔츠는 술에 적셔지며 속옷의 윤곽을 드러냈다.괴롭힌 당한 고양이라도 된 것처럼, 윤윤서는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버둥거렸다. 남자들은 거친 숨을 쉬며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짝!뺨 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윤윤서는 앞섬을 여미면서 뒷걸음질 쳤다. 김정섭은 콩알만 한 눈을 최대로 뜨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미친년이 감히 나를 때려?!”그는 와인잔을 들어 윤윤서를 향해 던졌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튄 유리 파편은 윤윤서의 창백한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곧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아이고, 김 대표님! 진정하세요!”피를 볼 필요까지는 없었기에 사람들은 김정섭을 말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무래도 구 대표님 사람이에요. 언제 말을 바꿀지 모르는 일이니까 자중하세요.”김정섭은 이제야 이성이 돌아왔다. 그는 힐끔거리며 구재건의 눈치를 살폈다.구재건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기분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