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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웨딩홀까지
대학교에서 웨딩홀까지
작가: 김애

제1화

욕실.

물안개가 맴도는 공간, 구재건의 목소리는 윤윤서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왜 전처럼 수줍어하지 않아?”

윤윤서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그, 그때는... 처, 처음... 이었으니까...”

“알지. 내 옷에도 책상에도 전부 네가 흘린 피였잖아.”

구재건은 커다란 손으로 윤윤서의 허리를 잡으며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넌 언제가 제일 좋았어?”

힘겹게 벽을 잡고 서 있던 윤윤서는 물에 퍼진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모, 몰라요.”

구재건은 가슴을 더욱 밀착시키며 비웃었다.

“너 나 좋아한다며? 그렇게 역사적인 순간은 일일이 마음에 새겨야지.”

물안개 때문인지 살결은 더욱 밀착해서 조금의 공간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윤윤서는 썰렁하기만 했다.

“그러는 대표님은 저를 싫어하잖아요. 제 생각이 그렇게 중요해요?”

구재건은 잠깐 멈칫하더니 더욱 힘을 줘서 밀어붙였다.

“넌 한결같이 뻔뻔하네.”

“대표님은 한결같이 저를 미워하네요.”

반 시간 후.

윤윤서는 피곤한 기색으로 침대에 축 늘어져 있었다. 욕실에서 가져온 물기가 침대를 적셨지만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구재건은 어느샌가 정장을 차려입고 나왔다. 과거의 그와 전혀 다른 고귀하고 오만한 모습이었다.

7년 전.

대학교 1학년 새내기가 된 윤윤서는 부잣집 딸이었다. 그러나 구재건은 장학금을 받아서 겨우 등록금을 내는 형편이었다.

윤윤서는 학교 운동장에서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원래도 사회적 거리가 멀었던 그에게 가까이하기 위해 그녀는 온갖 방법을 다 썼다. 후에는 비열한 수단으로 협박하며 억지로 굴복시키기까지 했다.

이 관계는 대학교 4학년 때 끝났다. 구재건은 직접 만든 프로그램으로 첫 수입을 얻었다. 그리고 점점 더 높은 자리로 차근차근 올라가기 시작했다.

윤윤서는 진작부터 그의 능력을 보아냈다. 그저 이렇게 빨리 성공할 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대가도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건 한순간이었고,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빚쟁이를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순식간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구재건을 찾아갔다. 그리고 구재건은 관심도 없을 자기 몸을 팔아 살길을 도모했다.

이제 비굴한 생활을 시작한 지도 3년째 되었다. 윤윤서는 지금 하는 프로젝트만 끝내고 떠날 생각이었다. 원래도 그래야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윤서는 아랫배를 매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임신했다. 지난달 술에 취한 구재건이 절제를 잃으면서 생긴 일이다.

정신 차린 다음 바로 피임약을 사 먹었지만 결국 새 생명이 생기고 말았다. 약물도 막지 못한 끈질긴 생명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구재건은 머리를 돌려 아직도 누워있는 윤윤서를 바라봤다. 윤윤서는 넋이 나간 눈빛으로 막연하게 허공을 바라봤다.

“윤 비서, 잊었나 본데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

윤윤서는 심호흡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대표님, 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하루만 쉬면 안 될까요?”

저녁에 만난다는 것은 술을 마셔야 한다는 뜻이다. 그럴 때마다 윤윤서는 구재건의 곁에서 대신 마셔줬다. 속이 아무리 안 좋은 날이라고 해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에게 독이 되는 일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아이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안 돼.”

구재건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넌 쉴 자격 없어.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까.”

윤윤서는 눈을 감으며 슬픔을 가려봤다.

원래도 예상했던 결과다. 그녀가 멍청한 탓에 괜한 말을 꺼냈다.

그녀는 억지로 일어나 옷을 차려입었다. 10분 후, 그녀는 평소의 윤 비서로 환골탈태했다.

구재건은 만족스럽게 머리를 끄덕이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윤윤서는 안경을 쓱 올리며 뒤따랐다.

두 사람이 레스토랑 룸에 도착했을 때 약속 상대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구재건이 온 것을 보고 그들은 곧장 아부하기 시작했다.

큰 문제 없이 지속되던 식사 분위기는 술기운이 오른 사람 때문에 변하기 시작했다. 한 남자는 술잔을 들고 윤윤서에게 건네줬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윤 비서도 한잔해요!”

윤윤서는 아주 연약하게 생겼다. 애교 하나 부려도 마음 약해질 남자가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공석에서는 항상 정색한 얼굴로 누구와도 거리를 유지했다. 사적인 감정은 전부 안경 밖으로 단절했다.

그럴수록 남자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더욱 자극되었다. 윤윤서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모습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었다.

윤윤서는 단아한 미소와 함께 물잔을 들어 올렸다.

“죄송하지만 제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요. 물로 대신하겠습니다.”

단호한 거절에 김정섭은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위협적인 말투로 말했다.

“윤 비서 참 너무 하네요. 술 한 잔도 한 마셔주고 앞으로 협력은 어떻게 하나 몰라.”

분위기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구재건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윤윤서도 무의식적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 자리에서 구재건의 입지는 압도적이었다. 그는 불쾌하다는 눈빛 하나로도 그녀를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러나 구재건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개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구재건은 피식 웃더니 느긋하게 말했다.

“제 비서가 좀 눈치 없어요. 이제는 제 말도 안 듣더라고요. 원하시면 김 대표님이 가르쳐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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