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은진은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증오에 찬 눈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난 아직 너한테 복수할 능력이 없어.”“하지만 언제든지 할 거야.”여석진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누나.”그는 어릴 때부터 그녀를 이렇게 불러왔다.차분한 눈빛으로 여은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누나 어젯밤에 기절했어요. 내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임신했다고요!”“그 자식이 이렇게 괴롭힌 거에요?”내가 아끼는 누나를 누구도 괴롭혀서는 안 된다.그는 독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그 놈을 죽여버릴 거야.”여은진은 어리둥절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석진을 바라보았다.“뭐라고?”임신이라니! 그럴 수가? 분명 어제 밤 생리도 왔는데...하지만 그게 생리가 아니었다면?여은진은 어제 밤 배가 너무 아프고 출혈량도 생리가 왔을 때와 달리 엄청 많았던 것이 기억났다.설마 정말 임신이란 말인가? 그렇다면...그녀는 평평한 아랫배에 손을 올렸다. 허허! 너무 멍청한 것이 아닌가?생리가 그렇게 늦어졌는데도 임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아이가 없어지다니.여은진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차라리 날 죽여줘.”그녀는 초점을 잃은 까만 눈동자로 여석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삶의 희망을 잃었고 복수고 뭐고, 그냥 죽고 싶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안 계시고 바보처럼 자기 아이까지 죽게 했다. 죽으면 아버지, 어머니조차 보지도 못한 채로 떠나보내야겠지?여석진은 한심한 듯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이가 아직 살아있으니, 누나도 죽을 필요 없어요.”초점을 잃었던 그녀의 눈동자에 금방 생기가 돌았다.“내 아이가 괜찮다고? 아직 살아있어?”“응.”“그때 많이 위험하긴 했지만 내가 제때에 병원에 데려온 덕분에 아이는 다행히 살아있어요.”여석진은 한 마디 더 보탰다.“이 아이가 누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어느 한순간 여은진만 무사하다면 그녀 배 속의 아이는 차라리 유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유산되면 여은진과 그 남자는 더
그는 양도서와 서약서, 그리고 사인펜을 여은진에게 건넸다.“사인해요.”여은진은 놀라운 듯 눈이 휘둥그레져서 앞에 있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네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손에 넣은 주식을 이렇게 쉽게 나한테 준다고?”“그럴 리 없을 것 같은데.”하지만 여은진은 그녀의 사인이 꼭 필요하다는 서약서를 보고는 이내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그녀가 여석진과 결혼해서 여석진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이다.게다가 그녀는 주식을 보유할 뿐 여신그룹의 관리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즉 여신그룹의 실제 권력자가 여석진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허허.”여은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여석진, 넌 진짜 계산에 밝구나.”“나랑 결혼하려고 주식을 주는 거였어. 게다가 여전히 네가 회사와 여씨 가문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어.”여은진이 이렇게 오해하자 여석진은 즉시 해명했다.“누나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우리를 결혼시키는 건 부모님의 마지막 소원이였고 두 분은 오래전부터 이 생각을 갖고 계셨어요.”“그리고 제가 계속 회사 관리에 참여하는 것은 누나가 너무 단순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여유롭게 대처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죠.”“주식은 다 누나 거야.”“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단지 너의 일꾼으로 살고 싶은데, 그것도 싫어요?”“꿈도 꾸지 마!”여은진은 차가운 눈초리로 여석진을 쳐다보며 말했다.“우리를 결혼시키는 것이 부모님의 마지막 소원이고 회사도 두 분이 너한테 줬지만, 그때는 두 분이 너의 정체를 몰랐어.”“두 분은 아마 죽을 때까지도 차 사고가 너랑 관련이 있다는 걸 모르셨을 거야.”미간을 찌푸리는 여석진, 그런 그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여은진은 말을 이었다.“게다가 난 널 사랑하지 않아.”“나에게 너는 이전에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동생이자 가족이었고 지금은 원수야.”“나는 죽는 한이 있어도 너랑 결혼하지 않을 거야.”여석진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서 죽을 것 같았지만 얼굴빛은 하나도 변하지
한편, 원이림은 하루가 지나도록 출근하지 않은 그 여자가 궁금해졌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휴가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어젯밤 애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기를 놓아달라고했다. 비록 그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안 그러겠다고, 복수를 도와줄 필요도 없고 멀리 떠나겠다고 했다.“빌어먹을!”원이림은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나를 모함했는데 어떻게 가만둘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죽을 만큼 힘든 벌을 내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허허, 내가 말했잖아? 네가 나한테 빚진 거라고. 내가 끝났다고 말하기 전까지 너는 영원히 나의 노리개로 살 수밖에 없다고.원이림은 딴사람이 돼버렸다. 지금의 그는 온몸에 독기가 가득하다.그는 퇴근 시간이 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 외투를 들고 나갔다. 급히 차에 오른 그는 가속 페달을 밟아 곧바로 아파트로 향했다.그는 큰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탄 후 여은진이 사는 층수를 눌렀고 조금 뒤 그의 훤칠한 모습이 여은진의 아파트 문 앞에 나타났다.벨을 누르려는 순간 출입문이 약간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문을 잠그지 않다니, 원이림은 문을 열고 들어가 직접 침실로 향했다.침실의 큰 침대 위는 깨끗이 정리할 틈이 없었는지 난잡하게 어질러진 상태였고 침대 위와 바닥에 말라버린 피가 섬뜩하게 남아있었다.원이림은 머릿속이 쿵 하고 울렸다.어떻게 된 거지?설마 그 여자가 다친 건가? 아니면...내가 어젯밤에 너무 험하게 굴어서 그 여자가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건 아니겠지?그 가능성을 생각하자 원이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조금 무서워졌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슴속부터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지면서 다리 힘이 쫙 풀렸다.“누구세요?”차가운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려보니 훤칠한 키의 여석진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허! 원 대표님, 뭘 보고 있어요?”원이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쌀쌀맞게 말했다.“여긴 뭐 하러 왔어?”여석진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살기등등해서 다가오더
여석진은 원이림에 대한 여은진의 짝사랑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원이림은 듣고 나서 미간을 찌푸렸다. 자기를 향한 여은진의 사랑이 이렇게 깊은 줄을 전혀 몰랐다.19살 때부터 나를 좋아하고 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노력을 했다고? 줄곧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다고?하지만 그러면 뭘 해? 나에 대한 사랑이 깊다고 나를 모함해도 되는 건 아니다.이때 여석진이 차분한 눈으로 원이림을 보며 갑자기 질문했다.“우리 양부모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요?”“...”그가 입을 열기 전에 여석진이 말을 이었다.“부모님은 누나에게 마음속에 담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걸 진작 알고 있었어요.”“그리고 그 남자가 당신이고 당신은 누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게다가 좋아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왜 상처는 줬어?”“좋아하지 않는데 왜 관계는 가져서 누나의 순결을 빼앗았어요?”“부모님이 모든 걸 알게 되고 당신을 찾아가 결판을 내려 했어요. 남의 귀한 따님을 어떻게 할 건지 따지려 한 거지.”“하지만...”여은진의 부모는 결판을 내려고 원이림을 찾아가는 길에 차 사고가 났다.부모님은 눈을 감을 때까지 그녀가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불행하지 않을까, 오로지 딸 걱정뿐이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여신그룹과 여씨 가문의 모든 것, 그리고 소중한 딸까지 여석진에게 부탁했다.“누나는 아직 이 사실을 몰라. 알게 되면 받아들일 수 없을 거야.”“부모님이 자기와 당신 사이 일을 알고 당신을 찾아가 따지려다가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면, 자기 자신과 당신을 죽도록 미워하게 될 거야. 심지어 평생 자신의 불효를 용서하지 못하겠지.”생각 밖의 진실에 원이림은 충격을 받았다.여석진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그런 그를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원이림, 당신이 누나에게 준 것은 고통과 재난과 상처뿐이야.”“끝나게 돼서 다행이고, 오늘부터 당신은 우리 누나와 아무 관계도 없어.”여석진은 사직서를 꺼내 원이림에게 넘겨주었다.“사
고은희와 송아름은 강주혜를 픽업하러 공항에 왔다.잠시 후 강주혜는 한 남자와 팔짱을 낀 채 승객무리를 따라 출구에서 천천히 나왔다.이기적이고 거침없는 강주혜가 이 순간만큼은 여린 여자애로 보였다.고은희를 발견한 강주혜는 그 남자의 팔을 뿌리치면서 말했다.“엄마가 온 것 같은데!”강주혜는 고은희를 향해 달려갔다.강주혜는 생기발랄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엄마!”“그래그래. 얼른 와.”고은희는 강주혜에게 한 여자애를 소개해 줬다.“얘가 바로 내가 저번에 너랑 통화하면서 말했던 오윤미 딸 송아름이야.”강주혜는 시무룩하게 대답하고는 송아름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아~ 네.”그리고 돌아서서 옆에 있던 남자의 팔짱을 다시 끼더니 고은희에게 그 남자를 소개해 줬다.“엄마, 우리 선배야. 예전에도 본 적이 있을 텐데.”“근데 지금은 선배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내 남자 친구야.”강주혜가 팔짱을 끼고 있던 그 남자의 이름은 남궁성우였다.180센티미터를 넘는 훤칠한 키에 안경을 낀 뽀얀 얼굴 그리고 깔끔한 옷차림을 한 남궁성우에게서는 지적인 분위기가 풍겼다.햇빛에 반사되는 렌즈의 무지개색 빛이 남궁성우의 맑고 이해심 깊은 눈동자를 희미하게 가렸다.“어머님, 안녕하세요.”“그래. 안녕!”남궁 가문은 M국 의학계 명문가이다.남궁성우는 남궁 가문의 계승자로서 어릴 적부터 뛰어난 의학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수년간의 부지런한 노력을 끝에 지금의 남궁성우는 존경받는 의사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젊은 의학계에 유망주로 불린다.고은희는 남궁성우가 맘에 들었다.이런 사윗감이 어디 있나 싶을 정도로 자랑스럽고 기뻤다.“그래그래.”“서 있지만 말고 우리어서 집으로 가자.”고은희의 말에 경호원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남궁성우의 트렁크는 경호원에게 넘겨지고 고은희는 강주혜와 남궁성우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집에 도착한 후 고은희는 송아름더러 강주혜와 남궁성우랑 얘기를 나누게 하고 반대쪽으로 걸어가 강주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궁성우는 심리학을 공부한 적이 있을까? 최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는 걸까?’송아름은 무척 궁금했다.남궁성우는 무심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릴 때부터 의학에 관련된 거라면 모두 흥미로워 보였고 배워보고 싶었어요.”“물론 심리학도 포함이고요.”송아름은 환한 미소를 짓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계속 물었다.“그러면 F 국 페르만타운에 엄청 유명한 심리치료사가 있는데 혹시 그분이랑도 친분이 있나요?”남궁성우는 대답했다.“그럼요. 알죠.”남궁성우는 그 심리치료사 어머니의 학생이기도 했고 예전에 함께 최면을 배웠던 경험도 있었다.하지만 그 후 어떤 일로 인해......이 또한 남궁성우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지금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고 그 어떤 일로도 남궁성우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남궁성우가 떠나고 난 몇 년 뒤에 그 심리치료사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한 여자애를 제자로 삼았다.남궁성우는 그 제자가 바로 송아름이란걸 몰랐다.송아름은 선생님으로 삼은 그 심리치료사로부터 남궁성우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선생님 곁을 떠난 지 꽤 오래됐는지라 사진 속 주인공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송아름이 보았던 사진 속 남자아이는 열일곱 열여덟 살쯤 되어 보였고 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스물여섯 살의 남궁성우와는 매우 달랐다.그래서 남궁성우가 구면인 것 같았지만 정확히 어디서 봤던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송아름은 계속 대화하고 싶었지만 강주혜는 남궁성우를 소파에서 끌고 일어나면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가자. 내 방 구경 시켜줄게.”방금 통화를 마친 고은희는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는 송아름을 보고 물었다.“왜 혼자야? 주혜랑 성우는?”송아름은 대답했다.“주혜가 남궁성우 씨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어요.”송아름은 멈칫했으나 결국에는 고은희한테 솔직하게 말했다.“은희 아줌마, 주혜가 저를 싫어해요.”고은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그럴 리가! 너랑 주혜는 친......”아차 싶었던 고은
그 날밤 가족 모임은 그렇게 서로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강주혜는 돌아온 첫날부터 화가 치밀어 남궁성우를 데리고 강 씨네 본가에서 나와 호텔로 갔다. 남궁성우가 옆에서 달래줘서야 강주혜는 화가 가라앉았다. “성우 오빠, 미안해. 오늘은 오빠를 우리 가족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이렇게 됐네.”“괜찮아.”미안해하며 사과하는 강주혜에게 남궁성우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강주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렇지만 너도 너희 어머니한테 그렇게 화내는 거 아니야. 너희 오빠 일은 오빠가 알아서 잘 해결할 거야.”“오빠를 보면 마음이 아파서 그래.”강주혜는 이렇게 말하며 남궁성우의 품에 안겨서 손으로 그의 셔츠 단추를 끼웠다 풀었다 또다시 끼웠다 하며 반복했다. 단추를 만지며 자신이 알고 있는 강주환과 윤성아의 이야기를 했다. “언니가 다시 돌아와서 오빠랑 있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나는 정말 엄마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왜 성아 언니는 그렇게 싫어하면서 송아름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인지.”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강주혜의 손은 멈추지 않았고 남궁성우의 눈동자는 잔잔한 욕망으로 파도쳤다. 그는 강주혜의 작은 손을 덥석 잡았고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는 지그시 강주혜를 쳐다보며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이러면 내가 참기 힘들 것 같은데.”강주혜는 멀뚱히 남궁성우를 쳐다보다가 말뜻을 알아채고는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지만 속으로는 ‘내가 언제 하지 말라고 했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강주혜도 기대하고 있었다. 남궁성우는 그 모습을 보고 웃다가 몸을 기울여 자신의 입술을 강주혜의 도톰한 입술에 가져다 댔다. 두 사람은 폐 속의 공기마저 빨아들일 듯이 깊게 키스했다. 두 사람의 호흡이 가빠졌다. 애초에 그들은 연인이었고 지금은 호텔 방 소파에 있었으며 이렇게 사랑스러운 분위기에서는 마땅히 다음 순서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궁성우는 자신의 욕망을 자제하고 강주혜를 바라보며
강주혜는 남궁성우를 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문젠지 보아냈어?”남궁성우는 머리를 끄덕이며 강주혜를 데리고 나가 말했다.“아마도 최면에 걸린 것 같아.”“뭐?”놀란 토끼 눈이 된 강주혜는 불현듯 뭔가 생각나서 화를 내며 말했다.“설마 송아름이 한 짓이야?”“아마도. 설사 송아름 씨가 아니라고 해도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하성이에게 최면을 걸었을 거야. 하지만 아름 씨는 하성이를 좋아해. 그러니까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성이를 다치게는 하지 않았어. 사용한 최면도 약한 거고.”“그게 무슨 말이야. 최면이 아무리 약하다 해도 하성이를 최면한 사실은 변함이 없어. 자기를 좋아하게 하고 성아 언니를 싫어하게 만들었잖아. 이런 방법은 너무 비겁해.”직설적인 성격의 강주혜는 지금 당장 가서 송아름의 실체를 폭로하려 했다. 남궁성우도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그는 방임적인 태도로 강주혜를 따라 강 씨네 집 거실로 돌아왔다. 강주혜는 화가 나서 얼굴이 터질듯했다. “송아름, 어디서 순진한 척이야. 어떻게 이렇게 낯짝에 철판을 깔고 있을 수 있어?”그 소리를 들은 남궁성우는 눈가가 미세하게 구겨지며 나긋한 목소리로 강주혜에게 말했다. “주혜야, 여자애가 나쁜 말 하는 거 아니야.”“알았어.”강주혜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남궁성우의 말에 순순히 동의했다. 그리고는 쑥스러워하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들여보냈다. “저 간사한 여자 때문에 너무 화가 나.”강주혜는 송아름을 간사한 여자라고 욕했다. 그 말에 고은희는 눈살이 찌푸려지며 강주혜에게 한소리 했다.“얘가 정말, 우리 강씨 집안 아가씨 같은 기품은 하나도 없어. 그리고 내가 너한테 계속 말했지. 너는 아름 언니랑 친해져야 한다고.”“엄마, 그 여자가 엄마한테 무슨 주술이라도 걸었어? 설마 엄마도 그 여자한테 최면 당한 거야?”그 소리를 들은 송아름은 순간 얼어버렸고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강주혜 뒤에 서 있는 남궁성우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때 강주혜는 송아름을 쳐다보며 말했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