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예는 표정 하나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아요. 별로 관심 없어요.” 그녀는 혼자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 저 여자가 그걸로 날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남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지예에 오미수는 씁쓸함을 느꼈다. 지예가 거실을 둘러보니 아수라장으로 변한 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카톡 지갑을 열었다. “청소비 주세요.” 지예는 아파트 입구의 쓰레기를 돈을 주고 치울 사람을 찾으려고 했다. ‘돈은 일을 벌인 사람이 내야지.’ 어쨌든 기씨 가문이 벌인 일이었다. 기영석이 인상을 구겼다. “무슨 청소비? 기지예, 우리 기씨 가문에 돈이 많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막 퍼주지는 않아.” 기영석이 보기에 지예의 말은 가난한 사람의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윤희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사실 사람은 그녀가 몰래 찾아서 보낸 거고 기영석과 오미수는 그것을 몰랐다. ‘기지예, 저 뻔뻔한 미친년.’ 윤희는 속으로 욕설을 퍼붓고는 지예가 다른 말을 하기 전에 돈을 보냈다. 그녀는 200만 원을 송금했다. 윤희의 안색이 불편해 보였다. “됐지? 기지예, 너 빨리 우리 집에서 나가.” 입금됐다는 표시를 보며 지예는 만족했다. 돈이 많고 적고는 사실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상대에게 똑같이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 ‘역시 윤희 네 짓이었구나.’ 지예가 비웃으며 윤희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리자 윤희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윤희 자신의 힘으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지예가 돌아가려고 하자 오미수가 위협하며 소리쳤다. “기지예, 빨리 유씨 가문과 파혼해. 그 자리는 원래 우리 윤희것이니까.” 기씨 가문은 일찍이 경해시에서의 영향력이 매우 눈에 띄게 커졌지만 기영석이 이끈 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기씨 가문의 최고 어른인 기석현과 유씨 가문의 최고 어른인 유문식 사이에 친분이 없었다면 지예와 우
“혹시 좋아하시는 사람이 있어요?” 지예는 놀란 눈으로 진철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의 두 눈은 안경에 가려져 있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예는 정말 궁금했다. ‘어떤 여자길래 부 선생님 같은 남자가 저리 적극적으로 나오는 거지?’ “누군지 알고 싶어요?” 진철이 되물었다. 순간 왠지 모르게 지예의 심장이 뛰었다.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들고 있던 잔을 쳐다보았다. “부 선생님께 실례가 됐다면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그래 부 선생이 좋으면 그만이지 이게 무슨 오지랖이야?’ 진철은 따뜻한 시선을 거두며 조용히 말했다.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는 화제를 돌려 몇 마디 잡담을 나누고 지예에게 일찍 쉬라고 했다. 밖에서는 비가 다시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지예가 잘 준비를 하고 침대 위로 올라가자 빠르게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그녀는 자기 전 휴대폰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몇 개를 확인했다. [강수연: 지예 씨, 오늘 폐를 끼치게 돼서 너무 미안해요. 잔금은 이미 지예 씨 계좌로 이체했어요. 더 보낸 비용은 정신적 보상금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 [강수연: 남편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해 줘서 고마워요. 미련 없이 이혼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지예가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계좌를 보니 과연 비용의 거의 두 배나 되는 돈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 줄의 회신을 했다. [수연 씨는 훨씬 괜찮은 사람이에요. 주병진 씨와 어울리지 않아요.] ‘주병진은 유우진의 친한 친구라고 했지? 지금 보니 정말 유유상종이야.’ ‘모두 똑같은 쓰레기 같은 놈들.’ 지예는 뒤척이며 잠을 자다가 갈증으로 잠시 잠에서 깼다. 그녀는 주방에 가서 물을 따라 마시려고 방을 나갔다. 그러다 거실에 있는 진철을 보게 되었다. 그는 편한 실내복 차림에 검은 머리가 헝클어져 있어서 지예가 서 있는 각도에서는 그의 턱만 또렷하게 보일 뿐이었다. 진철은 서랍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우진은 이 말을 하며 예리하면서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진철의 잘생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지예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기씨 가문 쪽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진철의 집에 한번 와봤다. 어제 지예가 진철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우진은 어제 지예의 행동에 너무 짜증이 났었다. ‘이해가 안 돼. 지예는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나?’ ‘아무리 우리가 이미 헤어졌다고 해도 외삼촌과 그렇게 가버리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되겠냐고.’ 진철은 우진이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다. 우진에게서 진철에 대한 적개심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진철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편안한 자세로 차가운 눈빛을 던지며 우진의 질문에 답했다. “내가 누구와 가깝게 지내든, 일일이 너에게 보고해야 해?” 항렬이나 능력 면에서 우진은 진철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우진은 이마의 핏줄이 나올 정도로 화가 났지만 주먹을 불끈 쥐며 참았다. “외삼촌, 지예는 제 약혼녀예요.” “우진아, 너흰 이미 헤어졌어.” 진철은 조용히 이 사실을 상기시켰다. 우진은 자신의 작은 외삼촌인 진철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진은 자기도 모르게 냉소했다. “외삼촌, 저와 지예의 지난 7년간의 감정은 끊는다고 해서 바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 말을 듣고 진철은 눈을 들어 우진의 눈빛을 마주했다. 잠시 후 진철이 말했다. “7년간의 감정이 있다면서 너는 아무렇지 않게 기윤희를 만난 거야?” 우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내가 쥐 죽은 듯이 아주 조용했다. 엿듣던 지예가 진철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진실을 말하니까 유우진이 꿈쩍도 못하는군.’ ‘역시 외삼촌이라 잘 알아.’ 우진은 화가 너무 났지만 애써서 가라앉혔다. “윤희와 저는 단지 친구일 뿐이에요. 그리고 그건 저의 개인적인 일이니 외삼촌이 참견하실 일도 아니고요.” 진철은 우진을 주시했다. ‘25살이나 되었는데 여전히 쉽게 동요하는구나.’ ‘네 엄마의 장점을 하
우진은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눈을 반짝이며 일어섰다. “외삼촌, 혹시 지예와 연락이 되면 전해주세요. 피하기만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요.” 주씨 가문의 둘째 아들인 주병진이 누군가에 의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주씨 가문이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우진이 지예와 연락하려는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만약 지예가 잘못을 인정한다면 우진은 그녀를 도와서 이번 일을 잘 해결하려 했다. 우진이 나가고 현관문이 닫힌 뒤에 지예가 다시 방에서 나왔다. 진철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이었다. “다 들었어요?” “죄송해요.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니에요.” 지예는 진철을 쳐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앞으로 우진 씨가 다시 저에 대해 물으면 부 선생께서 그저 저와 가깝지 않다고 해주셨으면 해요.” 그 말에 진철은 불쾌한 듯 눈을 반쯤 가늘게 떴다. 잘 알아 들기 어려울 정도로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지예는 어리둥절했다. 진철 역시 급하게 자신의 마음을 모두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서두르다 괜히 일을 그르치기 싫었다. ‘몇 년을 기다렸는데 좀 더 기다려도 아무 상관없어.’ 그의 인내심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했다. 진철은 먼저 화제를 돌렸다. 그는 점심을 먹은 후 지예에게 서류를 건넸다. 두 사람이 거실에 마주 앉았다. 바깥 하늘이 흐린 것이 곧 비가 올 것 같이 보였다. 지예는 서류 앞에 제목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부 선생님, 이것은?” “친구가 조사해 줬어요. 아마 지예 씨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지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재벌가의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재벌가의 흑역사를 조사하겠어? 게다가 그게 하필 주씨 가문이라니.’ 진철이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지예는 알고 있었다. ‘부 선생님은 지금 나를 도와주려는 거야.’ ‘이 은혜는 제가 꼭 기억할게요.’ 지예가 정중하게 말했다. “부 선생님, 제가 꼭
수연은 지예를 데리고 경해시 최고 인기 술집에 갔다. 딱 봐도 그녀는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다. 룸에 들어서자 스타일이 다른 10여 명의 남자가 줄지어 섰는데 예외 없이 모두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지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연은 궁금해하며 지예에게 먼저 상대를 고르라고 했다. “지예 씨, 어차피 우린 혼자예요. 이제 한 남자에게 굳이 목을 맬 이유가 없다고요. 여기 지예 씨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 있으면 마음대로 골라봐요. 오늘은 제가 한턱 쏠게요.” 수연이 이 말을 하자 앞에 서 있던 남자들이 서로 자신의 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 지예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수연 씨, 전 남자는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 그냥 같이 술 마시는 거예요. 스트레스 좀 풀라고요.” 지예가 계속 거절했다. 그녀의 태도가 강경한 것을 보고 수연은 더 이상 강요할 수 없었다. 남자들이 모두 나가자 룸 안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지예가 술을 따르고 먼저 고개를 들어 건배를 하자 수연은 깜짝 놀랐다. “지예 씨, 주량이 이렇게 센 줄 몰랐어요.” 지예가 웃었다. “그냥 쫌 하는 정도?” 지예가 술을 배운 건 대학을 졸업한 후였다. 그 당시 우진은 유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기 시작했는데 거의 매일 접대를 해야 했다. 지예는 위가 뚫릴 때까지 술을 마신 우진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때 우진이 농담 같은 말 한마디를 던졌다. “지예야,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 그 후 지예는 우진을 위하는 마음으로 매일 함께 술자리에 동석했고 주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속이 메스껍고 신물이 날 때까지 계속 술을 마셔야 했다. 나중에 그녀는 이런 자신의 희생이 우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심지어 우진은 윤희가 술을 마시는 게 안타까워서 지예에게 대신 마시게 하기도 했었다. 술의 쓴 향기가 가슴에 차오르며 마음이 더 괴로웠다. 지예와 수연, 두 사람은 말없이 계속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누군가 주병진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우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당연히 때린 사람이 책임져야지.” ‘지예, 네가 언제까지 잘난 체하며 버틸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 경해시에서 그녀가 의지할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우진은 지예가 자신의 말만 잘 들어도 그녀를 다시 잘 대해주려고 했다. ‘그래도 7년을 사귄 사이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우진은 지예가 자신을 칼같이 떠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근데...’ 우진은 생신 잔치에서 지예가 입었던 그 드레스가 떠올랐다. 짜증이 갑자기 밀려왔다. ‘도대체 그건 누가 지예에게 준 거지?’ 우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감지한 다른 사람들은 눈치 있게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차디찬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지예의 귓가에서 그들이 한 말이 모두 맴돌았다. 그들은 한때 그녀와 함께 놀았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에게 독설을 퍼붓고 있었다. ‘정말... 역겨운 것들.’ 지예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오늘 밤의 좋은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세수를 하니 정신이 더 맑아졌다. 그녀는 지금 매우 짜증이 났다. ‘한번 엎어버려?’ ‘그냥 참아야겠지?’ 지예는 재빨리 룸으로 돌아와 다른 일에 주의를 기울였고 자신의 뒤로 다른 사람이 따라 들어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윤희가 비로소 험상궂은 얼굴을 드러냈다. 윤희는 오늘 우진에게 불려 나왔다.그녀는 화장실에서 화장을 정리하다가 지예를 보게 되었다. 순간 지난날의 모든 질투와 광기가 뒤섞기며 계략이 떠올랐다. ‘오늘 밤 내가 완전히 지예가 우진 씨 곁으로 돌아올 수 없게 해 주지.’ ‘할아버지가 지예를 좋아하는 게 대수야? 앞으로 유씨 가문은 우진 씨가 이끄는 건데.’ ‘우진 씨가 지예를 미워하는 한 지예에게 신분 상승은 꿈에 불과하지.’ “윤희, 너 미쳤어?” 지예가 몸을 돌려 윤희를 발견하자 가뜩이나 화로 가득했던 마음이 절정에 달했다. 이번
노골적인 시선이 지예에게로 향했다. 상대는 그녀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우진 주변에서 가깝게 지내는 추성훈이었다. 그녀는 예전 일을 모두 잊고 살았지만 추성훈이 방금 다시 언급한 덕분에 기억이 분명해졌다. 추성훈은 원래 그녀에게 음흉한 마음이 있었다. 겉으론 우진 때문에 표현하지 않아도 계속 그런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딱 한 번 속내를 보인적이 있었는데 우진이 윤희를 데리고 자선 만찬에 참석했을 때였다. 그때 추성훈은 우진의 마음이 변했다며 자신은 어떤지 물었었다. 그 역시 약혼녀가 있었지만 다른 내연녀를 만드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예가 그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이후 서로 아주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당신이 이러는 거 우진 씨가 아나요?” 지예는 말하는 동시에 침착하게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고민했다. ‘룸 안에 남자는 모두 세 명. 만약 수연이가 일찍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 저렇게 잠들어서 정신이 없으니 일어나 날 돕는 건 거의 불가능해.’ “지예 씨, 우진이 형은 이미 당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데 아직도 우진이 형 생각을 하나요? 형이 이렇게 우리와 당신을 두고 그냥 갔다는 건 의도가 분명하잖아요? 이제 포기해요. 내가 형보다 더 잘해줄게요.” 추성훈은 말하면서 손을 뻗어 지예의 얼굴을 만지려고 했다. 지예는 “퍽”하고 그의 손등을 한 대 때렸다. “그 더러운 손으로 날 건드리지 마.” 지예의 혐오스러워하는 눈빛이 추성훈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다른 두 남자는 추성훈의 지시를 따랐다. 추성훈은 그들에게 지예의 팔을 잡으라고 했다. ‘이러다 이 여자를 처리하기도 전에 날새겠네.’ 두 사람이 손을 쓰려할 때 지예는 두 개의 술병을 깨뜨려 손에 들었다. 얼굴에는 차가운 독기가 서려 있었다. “죽고 싶으면 얼마든지 와봐.” 날카로운 술병 조각을 본 두 사람이 멈추었다. 추성훈이 웃었다. “기지예, 난 당신이 그저 얌전한 고양인 줄 알았는데 아직 가시가 가득
추성훈은 지예를 내려다보며 아주 기뻐했다. “기지예, 괜히 힘 빼지 마. 그 약은 아무리 고고한 인간이라도 금방 얌전한 개로 만들어 주니까.” 지예는 온몸이 괴로웠다. “개X식, 이건 범죄야.” 무슨 농담을 들은 것처럼 추성훈은 아무런 대꾸 없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가 웃음을 멈췄다.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증거 있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투여한 약은 8시간이 지나면 전문 기기로도 검출이 되지 않았다. 만약 지예가 추성훈을 강간범으로 고소한다면 그는 동영상을 보여 줄 것이고 오히려 모두 지예가 원해서 일이 벌어졌다는 것으로 고소가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추성훈은 곧 있을 지예와의 성관계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직 서두르면 안 되지.’ ‘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빌게 해 주마. 아주 개처럼 말이야.’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서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예는 온몸이 후끈거리고 타오르는 갈증을 느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추성훈, 이 야비한 놈.” ‘이 모욕은 내 평생 잊지 않으마.’ 추성훈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도발했다. “걱정 마. 난 우진이 형보다 기술이 좋을 테니. 완전 기분 좋게 해 줄게. 좀 있으면 너도 좋아서 날 오빠라고 부를걸.” 추성훈과 일당들은 늘 함께 모여 놀았다. 일찍부터 그들은 여자와 노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유진은 달랐다. 그는 잘 놀긴 했지만 여자를 부르진 않았다. 그래서 추성훈은 그가 여자 경험이 부족해 지예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예는 메스꺼움이 극에 달했다. 거기에 몸이 뜨거워지며 힘이 빠졌다.그녀의 상태가 변할수록 추성훈은 더욱 흥분했다. 지예는 순간 절망감이 솟구쳤다. 그녀는 머리가 어지럽고 눈동자에 힘이 풀리면서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안았다. ‘추성훈 같은 쓰레기에게 겁탈을 당하느니 차라리 다 같이 죽는 게 낫지.’ ‘어차피 난 외톨이니까 죽어도 아무 상관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