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계단. 그녀는 남자의 뜨거운 큰 손에 허리를 잡혀 몸을 밀착했다. 서로의 숨결이 뒤엉키고 벽에 두 사람이 기대며 이상한 분위기가 흘렀다. “지예야, 내 안경 좀 벗겨줘.” 허스키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부드러운 유혹처럼 들렸다. 진철은 그녀의 쇄골에 키스를 했고 그의 호흡이 지예의 몸을 찌릿하게 자극했다. 지예의 가느다란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고 그의 넓은 어깨에 하얗고 가느다란 팔이 얹혀 입술 사이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예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고 진철이 시키는 데로 그녀는 움직였다. 손을 뻗어 안경을 벗기자 진철이 더욱 거리낌 없이 키스를 했다. 서서히 감각이 고조되면서 지예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기지예. 이 바람둥이 년아. 네가 감히 내 작은 외삼촌을 꼬셔?” 다른 사람이 계단에 나타났다. 우진의 표정은 아내의 바람을 목격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지예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온통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멍한 눈빛으로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지예의 의식이 점차 돌아왔다. 그녀의 하얀 피부가 엷은 홍조로 물들었다. 지예는 25살의 나이에 이런 꿈을 꾼 자신이 부끄러웠다. 꿈의 상대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생각한 그 진철이었다. 중간에 방해자에 의해 꿈이 끊겼지만 사랑을 나누던 상대가 진철이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었다. 지예는 진철을 대할 면목이 없다고 느꼈다. ‘이게 모두 수연이 때문이야. 하루 종일 내게 유우진의 외숙모가 되라고 떠들어대서 그래.’ ‘아무에게도 꿈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지.’ 지예는 자신의 꿈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일어나자마자 지예는 인터넷 생방송 플랫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 어림도 없겠지?’ ‘내가 그렇게 여러 재벌가 사람들 눈 밖에 났으니, 대기업들과 계약하는 건 일이 틀어지기 너무 쉽지.’ 지예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 후 그녀는 여러 곳을 차례로 살펴보았고 결국 새로 사업을 시
우진에게 받은 20억까지 해서 지예의 수중에 이미 30억이 넘는 돈이 있게 되었다. 그녀는 원래 20억을 수연과 반으로 나누려고 했는데 수연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수연이 말했다. “그 돈은 다 네가 가져가. 내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리고 주병진과 이혼하면 재산을 반은 내 거야. 네가 나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유우진도 아주 껍질을 홀딱 벗겨버렸을 거야.” 지예는 마지못해 수표를 챙겼다. 그녀는 20억의 절반을 그녀와 수연의 이름으로 빈곤한 산간 지역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사람이 좋은 일은 하고 살아야지.’ 여유 있는 동안 지예는 청소를 하면서 플랫폼의 회신을 기다렸다. 그녀는 모두 아홉 회사에 연락했는데 여덟 회사에게 거절당했다. 모두 익숙한 이유였다. [저희 대표님이 점을 본 적이 있는데 기씨 성을 가진 사람과 계약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지예가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다행히 첫 번째 플랫폼에서 그녀의 신청이 순조롭게 통과되었다. 온라인 계약은 간단하고 편리했다. 그녀가 알아서 생방송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고 얼마나 벌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지예는 계약서 법인란의 진씨 성이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로 큰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지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며 기분 좋게 자신을 위한 만찬을 만들었다. 이후 7월에는 별다른 큰일이 없었다. 진철의 말처럼 추성훈의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동시에 추씨 가문의 악행이 폭로되면서 회사가 빠르게 인수되었고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진철의 입김이 한몫했다. 지예는 처음으로 진철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본지 꽤 오래됐네.’ 지예는 자신이 꾼 꿈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를 만나지 않았다. 진철 역시 자신의 행동 때문에 지예가 놀란 줄 알고 더욱 신중해졌다. 평일에 그저 몇 마디 문자만 할 뿐이었다. 이를
유우진과 함께한 지 7년, 기지예는 결국 파혼을 제안했다.메시지에 대한 회신은 두 시간이 지난 후에 도착했다.[파혼하자고? 만나서 얘기하자.]지예는 자신의 실시간 위치를 보냈다.시원한 카페 안에 해가 지며 창밖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창백한 얼굴을 한 지예가 눈을 감자 유우진과 기윤희가 얽혀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한 사람은 그녀의 약혼자였다.다른 한 사람은 그녀의 양부모가 찾은 친딸이었다.그녀는 생리 기간의 심한 통증을 참지 못하고 병원에 혼자 수액을 맞으러 갔었다.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우진이 윤희를 안고 있는 다정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유우진, 그는 경해시 최고의 명문가 상속자이자 US 그룹의 대표였다.그는 1분 1초가 아깝다며 늘 바쁘게 일했고, 약혼자인 지예도 미리 며칠 전에 약속을 잡아야 겨우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바쁜 업무 시간 중에도 모든 일을 제쳐두고 윤희와 함께 병원에 와 있었다.더 황당한 건 지예가 오늘 오전에 우진에게 오후에 시간이 있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그럼 바빴던 게 아니라 일부러 대답을 안 한 거였어?’지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시간은 흘러가고 기다림은 점점 지루해졌다.지예는 아랫배의 통증을 참으며 고개를 숙인 채 카톡 스토리를 열었다.그녀의 양어머니 오미수의 메시지가 와 있었고, 굳은 표정으로 그것을 확인했다.오미수가 3분 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이모티콘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렸던 것이다.지예는 떨리는 손으로 그 사진 파일을 열었다.사진 속에는 윤희가 병상에 힘없이 누워 있었고, 그녀 옆에는 한 남자가 허리를 숙여 다정하게 돌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뒷모습이었지만 지예는 그 남자가 7년 동안 함께했던 우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이 사람 여태 병원에서 윤희를 돌보고 있었던 거야?’사진을 확인한 지예는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숨이 가빠지며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을 느
지예의 말이 끝났을 때 창밖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진의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무정하게 떠나는 지예의 뒷모습을 보고 이를 악물며 냉소했다. “그래. 기지예, 후회하지 마!” 지예는 잠시 발걸음을 멈출 뿐 돌아보지는 않고 그대로 떠났다. 밖은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지예는 한 손으로 아랫배를 누르고 다른 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았다. 30분이 지나도 여전히 택시가 잡히지 못했다.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더블을 외치자 마침내 멀리서 택시가 다가왔다. 그때 오미수에게 전화가 왔다. [너 방금 우진이를 만났어?] 오미수가 다짜고짜 물었다. 지예는 못마땅해하며 쪼그리고 앉아 고통으로 괴로운 배를 문질렀다. “내가 누구를 만나든 아줌마와 무슨 상관이에요?” 윤희가 기씨 가문에 돌아온 후 지예는 그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었다. 평소에도 기씨 가문은 지예와 우진을 빨리 파혼 시키려고 자주 연락해 압박했다. 기씨 가문에서 지예는 마치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손님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진짜 아가씨가 돌아왔으니 지예에게 그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요구했다. 사실 우진의 결혼 문제는 기씨 가문과 유씨 가문이 따로 상의하면 되는 일이었고 지예에게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유씨 가문의 최고 어른인 유문식이 지예를 이미 자신의 손자며느리라고 여기고 있어서 결혼 문제를 처음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지예, 너 지금 무슨 태도야? 어쨌든 우리 기씨 집안이 널 20년 넘게 키워줬어. 그리고 너 때문에 우리 윤희가 밖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오미수의 목소리는 야박하고 날카로웠다. 지예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 그때 아기였던 제가 병원에서 우리 둘이 누워 있던 침대가 몰래 바뀌었다는 말인가요?”오미수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물론 그녀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니,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윤희가 겪은 고생이 정말로 지예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하지만 지예 역시 윤희만큼 피해자
다음날. 경해시 각계 인사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유문식의 생신 잔치가 시작되려면 아직 세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 유씨 가문이 초청한 손님들이 속속 이어서 도착했는데 줄지어 있는 고급차 사이에 있는 콜택시 한 대가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예가 그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뭐야? 기지예가 지금 콜택시를 타고 여길 온 거야? 유 대표가 차도 안 보냈어?” “쯧쯧, 딱하네. 기씨 가문에서 쫓겨나고 벌써 25살이 됐는데 아직 유씨 가문에서 받아 주지도 않는 건가? 딱 보니 결혼도 그냥 흐지부지구만.” 지예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소하다는 눈빛과 연민의 눈빛을 보냈다. 지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유문식을 찾아갔다. 문 앞에 도착해 노크를 하려 할 때 안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진아, 넌 이제 곧 가정을 꾸릴 사람이니 밖에서 특히 언행에 주의해야 해.” 유문식의 위엄 있는 목소리는 손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었다. 우진은 그 앞에 얌전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눈 속의 감정이 속눈썹에 가려져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 윤희와 전 그저 친구일 뿐이에요.” 유문식이 퉁명스럽게 우진을 노려보았다. “친구?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선을 지켜야지. 그럼 말해봐. 방금 그 기윤희와 뭘 하고 있었어?” “윤희 머리가 헝클어져서 그냥 정리만 해준 거예요. 할아버지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지예뿐이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우진은 자신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유문식이 즉시 지팡이로 우진을 내리쳤다. “네가 정말 그렇게 지예를 좋아한다면 빨리 결혼해. 나중에 놓쳐서 후회하지 말고.” 아어지는 우진의 대답이 듣기 싫었던 지예는 바로 노크를 해 유문식과 우진의 대화를 끊었다. “할아버지.” “그래, 지예 왔어?” 지예를 보자마자 유문식이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지예를 반기며 눈웃음을 쳤다. 지예는 우진
“어머, 미안. 내가 실수로 밟았어요.” 한 여자가 고소하다는 기색을 비추며 말했다. 발목을 까지 내려왔던 지예의 드레스 자락이 허벅지까지 찢겨 흠집이 생겼다. 하얗고 매끄러운 그녀의 다리가 보일 듯 말 듯했다. 지예가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우진의 여동생 유우희였다. 예전부터 유우희는 지예를 많이 괴롭혔지만 지예는 매번 우진을 생각해서 화를 참아 왔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이젠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아.’ 거의 모든 사람이 지예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예를 도발적으로 노려보던 우희는 테이블에서 음료수 잔을 집어 든 상대를 보며 문득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예감이 맞았다. 지예는 그녀에게 음료를 쏟았고 그러자 우희가 비명을 질렀다. 우희의 비싼 드레스가 순식간에 얼룩졌다. “어이구, 미안해요. 손이 미끄러졌네요.” 지예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대담한 행동에 주위 사람들은 놀라 숨을 들이켰다. “기지예! 너 미쳤어?” 우희가 소리쳤다. 유문식의 생신 잔칫날이었기에 지예는 더 이상 밉살스럽게 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화가 난 우희를 보며 말했다. “제가 정말 손이 미끄러져서 그랬어요.” 우희는 너무 화가 나 미쳐버릴 것 같았다. ‘기지예, 저년 분명히 고의야.’그녀가 지예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우진이 나타나 그녀를 붙잡았다. 우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우희, 너 그만해. 오늘은 할아버지 생신이야. 이따가 엄마가 알면 크게 혼날 거야, 너!” 우희는 억울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 “오빠, 오빠도 봤잖아. 기지예, 저년이 일부러 나한테 뿌린 거. 오빠가 당장 나한테 사과하라고 해.” 잠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때 윤희는 자신의 부모와 함께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동안 쌓였던 울분이 싹 가시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니 유씨 가문의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그의 말을 들은 세 사람은 모두 놀랐다. ‘언제부터 삼촌이 저렇게 다른 사람에게 친절했지?’ 우진이 생각한 부진철은 늘 차갑고 매정한 사람이었다. 성인이 된 후 오랫동안 해외에서 과학 연구를 해온 그가 누구와 친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삼촌이 먼저 지예를 데려다주겠다고?’ 우진은 의아하면서 이상하게 경계심이 들었다. “외삼촌 걱정마세요. 제가 데려다주면 돼요.” “할아버지 생신 잔치야. 넌 아직 할 일이 많잖아.” 말을 할 때 진철의 시선이 우진과 윤희를 오갔고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윤희는 손가락을 떨며 불편함을 느꼈다. ‘이 남자 기가 왜 이리 세?’ ‘지예하고 잘 아는 사이인가?’ 윤희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지만 지예에 대한 질투심이 더 컸다. 진철은 두 사람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의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가 친절하게 말했다. “지예 씨, 타세요.” 상황이 이래서 지예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우진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고 그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언제부터 지예와 삼촌이 저렇게 가까웠지?’ 생각에 잠겨있는데 윤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예도 참, 약혼자 앞에서 다른 남자랑 저렇게 간다고?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 차 안. 진철과 지예, 두 사람은 멀찍이 좌우로 앉아있었다. 지예는 눈을 아래로 두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궁리했다. 진철은 은근하면서도 절제된 눈빛으로 예쁜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우진이랑 싸웠어요?” 냉담한 어조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예 역시 그를 속일 생각이 없었기에 솔직히 말했다. “전 이미 그 사람과 헤어졌어요.” 지예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드레스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돈은 제가 나중에 보낼게요.” “아니에요. 원래 선물로 드린 겁니다.” 차 안이 다시 잠잠해졌다. 운전기사는 차를 매우 부드럽게 운전했다. 지예는 약간 긴장
“이거 놔!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이 미친년아!” 윤희는 아파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지푸라기가 되어 붙잡혀 있었다. 강수연은 냉소를 지으며 힘껏 잡아당겨 그녀의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세게 뺨을 때렸고 윤희의 얼굴에 삽시간에 손바닥 자국이 하나 생겼다.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은 모두 강수연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정신을 차리고 맞서려던 윤희는 한쪽 뺨을 또다시 한 대 얻어맞았다. “허 그래, 내 남자의 어깨에 기대니까 좋아?” 윤희는 너무 맞아서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침침했다. 그녀는 아직 무슨 영문인지 몰라 정신이 없었는데 강수연이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뺨을 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거 완전 똘아이 아니야.’ “수연아, 그만해.” 화가 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룸 안에서 울렸고 윤희와 강수연을 떨어뜨려 놓은 그의 안색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윤희가 억울하게 울자 다른 사람들이 다가와 위로했다. “윤희야 울지 마. 절대 이건 그냥 두면 안돼. 우진 오빠가 오면 너 대신 다 해결해 줄 거니 걱정 마.” “알았어, 넌 수건이랑 얼음 좀 가져와, 양쪽 얼굴이 부어서...” 강수연은 자신을 노려보는 주병진을 보니 기가 막혔다. “네가 말한 접대라는 게 여자랑 노는 거냐?” 강수연이 룸으로 뛰어들었을 때 안에는 주병진과 그의 두 친구 그리고 여자는 윤희만 있었다. 그녀는 안에 여자가 있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가 주병진과 붙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이런 걸 어느 아내가 참아?’ “수연아. 윤희는 내 친구야.” ‘응? 뭔가 익숙한 대사인데?’ 입구에 서 있던 지예가 얼떨떨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룸 안의 혼란스러운 장면을 지켜보던 우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그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 윤희는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우진에게 그녀 얼굴이 뚜렷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지금 뺨을 맞고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한없이 불쌍해 보였다.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