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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음날.

경해시 각계 인사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유문식의 생신 잔치가 시작되려면 아직 세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 유씨 가문이 초청한 손님들이 속속 이어서 도착했는데 줄지어 있는 고급차 사이에 있는 콜택시 한 대가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예가 그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뭐야? 기지예가 지금 콜택시를 타고 여길 온 거야? 유 대표가 차도 안 보냈어?”

“쯧쯧, 딱하네. 기씨 가문에서 쫓겨나고 벌써 25살이 됐는데 아직 유씨 가문에서 받아 주지도 않는 건가? 딱 보니 결혼도 그냥 흐지부지구만.”

지예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소하다는 눈빛과 연민의 눈빛을 보냈다.

지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유문식을 찾아갔다.

문 앞에 도착해 노크를 하려 할 때 안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진아, 넌 이제 곧 가정을 꾸릴 사람이니 밖에서 특히 언행에 주의해야 해.”

유문식의 위엄 있는 목소리는 손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었다.

우진은 그 앞에 얌전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눈 속의 감정이 속눈썹에 가려져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 윤희와 전 그저 친구일 뿐이에요.”

유문식이 퉁명스럽게 우진을 노려보았다.

“친구?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선을 지켜야지. 그럼 말해봐. 방금 그 기윤희와 뭘 하고 있었어?”

“윤희 머리가 헝클어져서 그냥 정리만 해준 거예요. 할아버지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지예뿐이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우진은 자신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유문식이 즉시 지팡이로 우진을 내리쳤다.

“네가 정말 그렇게 지예를 좋아한다면 빨리 결혼해. 나중에 놓쳐서 후회하지 말고.”

아어지는 우진의 대답이 듣기 싫었던 지예는 바로 노크를 해 유문식과 우진의 대화를 끊었다.

“할아버지.”

“그래, 지예 왔어?”

지예를 보자마자 유문식이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지예를 반기며 눈웃음을 쳤다.

지예는 우진의 곁을 지나가면서 그에게 조금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 드레스는 우진이가 고른 거야? 정말 우리 지예와 아주 잘 어울리네.”

유문식은 자신이 지예를 칭찬을 할 때 유진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예는 1.65미터의 키에 여자들 사이에서 늘씬한 편에 속했다.

오늘 그녀는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었는데 어깨와 목을 노출시켜 쇄골을 아름답게 강조했다.

목에는 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디자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착용하고 있었다.

검은 긴 생머리를 묶어 올렸고 귓가에 잔머리를 늘어뜨렸다. 그러면서 시원하고 세련된 메이크업까지 했다.

지예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우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

지예는 친구가 드레스를 선물했다며 유문식이 자세하게 물을까 봐 빨리 화제를 돌렸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유문식은 자연스레 다시 두 사람의 결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예야, 너하고 우진이가 만난 지도 꽤 되지 않았니? 대체 언제 결혼할 생각이야?”

“할아버지, 저와 우진 씨는 이미...”

뒷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우진이 말을 끊었다.

“할아버지, 엄마가 온다고 했어. 지예하고 마중 나갈게요.”

지예는 거절하려 했지만 우진이 다짜고짜 자신의 손목을 잡자 인상을 썼다.

그때 하필이면 유문식이 두 사람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가보렴.”

방을 나서자 지예는 우진의 손을 뿌리쳤다.

복도는 다른 사람 없어서 아주 조용했다.

“우진 씨, 할아버지를 계속 속일 셈이야?”

“할아버지의 수술이 막 끝나서 충격을 받으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

우진은 매우 짜증 난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차갑고도 날카로운 시선을 지예에게 던지며 물었다.

“그런데 왜 내가 보낸 그 드레스를 입지 않았어?”

지예가 입은 드레스는 심플한 듯 보이지만 그 솜씨가 정교해서 일반인들을 쉽게 살 수 있는 가격은 아니었다.

거기다 우진이 아는 지예는 이 정도의 드레스를 살 정도의 능력은 되지 않았다.

‘기씨 가문에서 해 준 것일 리도 없고, 내가 준 돈도 절대 쓰지 않는 사람인데.’

‘지예의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는 저 옷 한 조각도 살 수 없어.’

‘그럼 이 옷은 다른 누가 지예에게 선물했다는 건데.’

우진의 표정은 냉랭하기만 했고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은 마치 서로 칼을 겨눈 것처럼 원수처럼 보였다.

“우진 씨, 우린 이미 헤어진 사이야.”

지예는 차분하게 반복해서 말했다. 더 이상 예전에 우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던 눈빛마저 그녀에게 보이지 않았다.

지예의 마음이 조금 아팠다.

우진은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생각을 했다.

“지예, 네가 나와 서둘러 헤어지려고 한 게 네게 이 드레스를 선물한 그 X 같은 남자 때문이야?”

말투에서 독기가 느껴졌다.

마치 듣기에 지예가 우진을 두고 바람을 피운 사람 같았다.

그 순간 지예의 손바닥이 날아와 우진의 뺨을 때렸다.

경악과 분노의 감정이 교차했다. 지예를 쳐다보는 우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예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붉어진 손바닥이 아팠고, 눈에서는 분노가 타올랐다.

“유우진, 너가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 있어?”

지예는 또다시 그날 밤에 본 것을 떠올렸다.

속이 뒤집히면서 안색이 약간 창백해졌다. 그녀는 주먹을 쥐며 애써 분노를 참고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할아버지의 생신 잔칫날이야. 좋은 날에 나쁜 말은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 더 이상 날 건드리지 마.”

연인 관계에서 지예는 줄곧 약자였다.

모두들 지예가 우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진은 지예를 쉽게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예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지예가 우진의 뺨을 세게 때렸다.

우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예의 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지예는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났다.

그녀는 복도 모퉁이를 지나다가 윤희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윤희는 그녀와 거의 같은 차림새로 기품이 있어 보이면서 아름다웠다. 그러나 윤희는 자신과 지예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괜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질투의 눈빛을 거두며 뭐라 말을 하려 하자 지예가 그녀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불과 몇 초 사이였지만 지예는 그녀에게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윤희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

반면 지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곧 생신 잔치가 시작됐다.

지예는 외딴 구석을 찾아 조용히 혼자 있었다. 우진이 대표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한 뒤 주인공인 유문식을 소개했다.

유문식은 수술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기운이 좀 부족해 보였다.

그는 몇 마디 인사말을 한 후 아래쪽의 하객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찾다가 곧 목표를 발견했다.

“지예야, 그렇게 멀리 서서 뭐하고 있어? 이리 나와라.”

갑작스러운 호명에 지예는 한순간 당황했다.

수많은 시선들이 그녀를 향했다.

유씨 가문의 가족들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고 기씨 가문의 가족들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져 난감해했다.

드레스의 치마를 잘 정리한 지예가 걸음을 옮기려 하자 뒤에서 누군가 밟는 느낌이 들며 ‘찌이익’소리와 함께 옷이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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