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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혹시 좋아하시는 사람이 있어요?”

지예는 놀란 눈으로 진철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의 두 눈은 안경에 가려져 있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예는 정말 궁금했다.

‘어떤 여자길래 부 선생님 같은 남자가 저리 적극적으로 나오는 거지?’

“누군지 알고 싶어요?”

진철이 되물었다.

순간 왠지 모르게 지예의 심장이 뛰었다.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들고 있던 잔을 쳐다보았다.

“부 선생님께 실례가 됐다면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그래 부 선생이 좋으면 그만이지 이게 무슨 오지랖이야?’

진철은 따뜻한 시선을 거두며 조용히 말했다.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는 화제를 돌려 몇 마디 잡담을 나누고 지예에게 일찍 쉬라고 했다.

밖에서는 비가 다시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지예가 잘 준비를 하고 침대 위로 올라가자 빠르게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그녀는 자기 전 휴대폰에 읽지 않은 메시지가 몇 개를 확인했다.

[강수연: 지예 씨, 오늘 폐를 끼치게 돼서 너무 미안해요. 잔금은 이미 지예 씨 계좌로 이체했어요. 더 보낸 비용은 정신적 보상금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

[강수연: 남편의 진짜 모습을 보게 해 줘서 고마워요. 미련 없이 이혼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지예가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계좌를 보니 과연 비용의 거의 두 배나 되는 돈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 줄의 회신을 했다.

[수연 씨는 훨씬 괜찮은 사람이에요. 주병진 씨와 어울리지 않아요.]

‘주병진은 유우진의 친한 친구라고 했지? 지금 보니 정말 유유상종이야.’

‘모두 똑같은 쓰레기 같은 놈들.’

지예는 뒤척이며 잠을 자다가 갈증으로 잠시 잠에서 깼다.

그녀는 주방에 가서 물을 따라 마시려고 방을 나갔다.

그러다 거실에 있는 진철을 보게 되었다.

그는 편한 실내복 차림에 검은 머리가 헝클어져 있어서 지예가 서 있는 각도에서는 그의 턱만 또렷하게 보일 뿐이었다.

진철은 서랍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부 선생님?”

지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야 그녀는 진철의 안색이 창백해서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렸고 한 손으로는 복부를 감싸고 있어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지예가 얼른 몸을 숙여 물었다.

“부 선생님, 약 어디 있어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아마... 서랍 속에 있을 겁니다.”

갈라진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지예는 서랍 두 개를 뒤지고 나서 마침내 작은 흰 병을 발견했다.

“혹시 이건가요?”

“고마워요.”

진철이 그 안에 약 두 알을 꺼내 바로 삼키고 눈을 감은 채 잠시 기다렸다.

지예는 재빨리 주방으로 가서 물 두 잔을 따라 그중 한 잔을 그에게 건넸다.

“자 여기 물이요.”

물 한 잔을 마시자 진철의 찌푸렸던 미간도 서서히 풀렸다.

그는 손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미안해요 괜히 귀찮게 했네요.”

지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잠깐 멈칫하고 물었다.

“위가 아픈 건가요?”

진철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 고질병이에요. 별것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거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여전히 서 있는 지예를 보고 진철의 예쁜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지예 씨는 다시 들어가 쉬세요.”

벽시계의 시곗바늘이 숫자 4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예는 이미 잠이 달아나 버렸다.

그녀는 어제의 일을 모두 다시 떠올리면서 자신이 거의 하루 종일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부 선생님도 나와 계속 함께 있었는데 뭘 먹는 걸 보지 못했어.’

순간 지예의 마음속에서 미안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지금 별로 안 졸리네요. 부 선생님, 아까 주방에 국수 있는 거 봤는데 함께 드실래요?”

우진과 함께한 7년 동안 그녀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 하나가 요리였다.

하지만 그녀가 요리를 하면 우진은 대충 몇 입 먹고 배부르다고만 했다.

나중에야 우진이 이미 윤희와 배불리 먹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리석었던 옛일을 떠올리는 지예의 눈에서 희미하게 회한이 보였다.

진철의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제가 만들게요.”

진철은 위약을 먹고 난 후 쥐어뜯는 듯한 느낌이 사라졌고 약간의 탈진 증상 외에는 몸이 괜찮은 것 같았다.

그는 키가 훤칠해 지예보다 머리가 반 정도 더 컸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겹쳤다.

지예는 진철에게 그냥 앉아서 쉬고 있으라고 말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진지하고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예를 보며 진철은 그럼 돕기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주방은 커서 두 사람이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서로 일을 나누어 하니 마치 호흡이 잘 맞는 한 쌍의 연인 같았다.

재료로 토마토와 계란이 있어서 토마토 계란 국수 두 그릇을 만들 수 있었다.

15분 후.

지예와 진철은 그릇을 하나씩 들고 식탁에 앉았다.

무럭무럭 나는 연기가 시야를 흐렸고 국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진철이 식사하는 동작은 우아해서 흠잡을 데가 없었다.

지예는 그제야 지금은 그가 안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얀 얼굴에 잘생긴 이목구비가 더 잘 눈에 들어왔고 차가우면서 고급진 뭔가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자신을 너무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진철은 먹던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지예의 눈과 마주쳤다.

“지예 씨?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마치 물건을 훔치다 걸린 사람처럼 지예는 민망함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아, 아니요.”

지예가 말을 더듬었다.

“부 선생님 같은 분이 어떻게 요리도 할 줄 아시는지 갑자기 궁금해서요.”

그녀는 아까 요리를 하며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진철의 칼 다루는 솜씨가 요리 초보 같지 않아 보였다.

“부씨 가문에서는 모든 남자가 밥을 하거든요.”

지예는 놀랐다.

‘부씨 가문은 유씨 가문처럼 최고 재벌가 아니었어?’

‘그런데 집안 모두 남자가 밥을 한다니, 누가 들으면 거짓말을 한다고 하겠어.’

진철이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우진이는 요리를 할 줄 몰라요?”

찌질한 전 약혼자를 언급하자 지예의 안색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진철은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난 그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지예가 말했다.

“괜찮아요. 사과할 거 없어요. 선생님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요.”

‘그래도 혈연관계인데, 어떻게 우진 씨와 부 선생님이 서로 이렇게나 다른 거지?’

지예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의심했다.

주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국수를 먹었고 지예가 젓가락을 내려놓는 순간 진철이 먼저 일어나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지예는 도와주려 했지만 진철이 그것을 완강히 제지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방에 가서 좀 더 쉬어요. 이건 제가 해도 돼요.”

진철의 눈빛은 약간의 강제성을 띄고 있었다.

지예는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배가 불러서인지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그녀는 11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

처음 남의 집에서 잤는데 늦잠을 잤다는 사실에 짜증을 느끼며 지예는 일어나 뒷정리를 서둘렀다.

그녀가 침대를 정리하고 나갔을 때 거실에는 진철 말고도 아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순간 지예의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가 진철에게 물었다.

“외삼촌, 지예와 가까운 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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