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선생님, 또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있어요.” 효신은 빙빙 돌리지 않고 말해다. “어제 제가 지예 씨께 문자로 물었잖아요. 제 친구의 친구가 화가 났는데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지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나요?” 효신은 정말 알려주기를 바랬다. 그는 사람을 달래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가 강희선이 왜 화가 났는지 정말 모른다는 것이다. 그녀는 물어보면 화가 안 났다고만 답했다. 하지만 답장하는 말투는 차가웠고, 말미에 이모티콘을 붙이던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다.효신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설마 큰 이모님이 오셨나? 하지만 희선이는 며칠 전부터 그랬는데.’ 평소 게임을 즐기는 효신은 처음으로 게임을 하는 거 외에 며칠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예가 자세히 말했다. “이런 일은 상황에 맞게 적절한 약을 처방해야 해요. 구체적인 상황을 적어서 제게 보내주세요. 가능하다면 양측의 상세한 정보도요. 이따가 제가 선생님께 양식을 보내드릴게요.” 효신은 뒷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는 재빨리 해명했다. “지예 씨, 오해하지 마세요. 정말 제 친구가...” “그럼요. 잘 알아요. 친구분 얘기잖아요.” 지예의 눈에 떠오른 웃음에 효신은 할 말을 잊었다. ‘역시.’ ‘형이 좋아하는 여자는 평범하지 않다니까.’ ‘아주 똑똑해.’ 효신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도망갔다....수액실에는 수연 외에도 서너 명의 환자가 더 있었다. 공기 중에 강한 소독수 냄새가 짙게 났고 지예는 수연 옆에 앉아 끓인 물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어렵게 물을 받아 드는 걸 보고서야 수연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연아, 아직 불편해?” 지예가 의사를 부르겠다고 하자 수연이 막았다.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그래?” 지예는 다시 앉았다. 수연은 냉소를 지었다. “방금 카카오스토리를 올렸는데 전 시어머니가 댓글을 달았어.” 휴대폰 화면에는 수연의 카카오스토리가
이미 늦은 밤이었다. 주차장은 매미 소리와 남자의 발걸음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지예는 신경이 곤두섰다.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선 그녀는 상대가 진철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지예가 긴장한 모습을 보고 진철이 먼저 사과했다. “괜찮아요.” 지예는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 “부 선생님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병원에 웬일이세요? 또 위가 안 좋으세요?” 지예는 옆쪽 가로등 덕분에 진철의 창백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마치 천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 같았다. “아니요. 효신이를 만나러 왔어요.” 지예를 기다리는 동안 진철은 이미 적당한 핑계를 생각해 두었다. 효신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둘은 가까운 사이라 핑계를 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진철의 진짜 목적은 지예였다. “아, 그렇군요” 지예의 말에 금세 분위기가 묘해졌다. 진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눈이 잠깐 번뜩였다. 그는 천천히 조용하게 말했다. “마침 지예 씨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잘됐어요.” 지예는 어렴풋이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았다. “추성훈에 관한 일 말인가요?” “네, 만약 경찰이 물어보면 그냥 모른다고만 하면 돼요. 다른 건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진철의 말을 듣고 지예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며 망설이다가 말했다. “부 선생님, 추성훈의 일은 사실 선생님이 상관하지 않아도 돼요. 전...” “부담 가질 거 없어요. 지예 씨는 제가 그저 추성훈에게 원한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진철이 지예의 말을 끊었다. 안경 아래 그의 눈동자에서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그는 지예가 이 일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다른 일이었다면 상관하지 말라는 그녀의 뜻에 따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만은 내키지 않았다. ‘내 심기를 건드리고도 아직 살아있으니 추성훈, 그놈은 머리 숙여 조상님의 은혜에 감사해
우진은 지예와 기 씨 가문의 사이가 나빠진 것이 전적으로 그녀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들은 적 없어요. 지예와 그 사람이 왜요?] 윤희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진이 말했다. “아냐, 그냥...” 무심코 고개를 들다가 앞쪽으로 보고는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 분노가 다시 타오르고 새빨갛게 충혈되어 다른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앞쪽에 지예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효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애매하고 다정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우진 씨? 우진 씨, 그쪽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윤희의 애타는 목소리를 듣고 우진은 이성을 찾았다. 우진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대충 몇 마디 둘러댄 채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가 다시 고개를 들고 확인했을 때 이미 두 사람은 사라지고 난 후였다. ... 수연을 태운 지예의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다. 머릿속은 온통 진철이 자신에게 다가서는 장면뿐이었다. “움직이지 마요. 당신 머리에 벌레가 있어요.” 지예는 다른 것은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유독 유연하고 매끄러운 벌레가 무서웠다. 그녀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철의 품에 안겼다. “지예야,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너무 더워서 그래? 창문 좀 열어. 열을 좀 식히는 게...” 수연의 목소리에 지예는 생각에서 정신을 차렸다. 지예는 핸들을 잡고 있었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 외에는 다른 이상한 점이 없었다. “좀 덥긴 하네.” 차 유리를 내리자 밖에서 밤바람이 들어왔다.그러자 복잡한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지예는 먼저 수연을 일찍 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둘의 집은 반대 방향이었다. 수연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아참, 지예야, 주병진이 나중에 너를 귀찮게 하지는 않았지?” 그녀는 주병진에게 지예를 건드리지 말라고 여러 번 경고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주씨 가문은 그와 달리 시한폭탄처럼 언제든지 폭발해 달려들 수 있었다. “그 사람은 감히 날
어두컴컴한 계단. 그녀는 남자의 뜨거운 큰 손에 허리를 잡혀 몸을 밀착했다. 서로의 숨결이 뒤엉키고 벽에 두 사람이 기대며 이상한 분위기가 흘렀다. “지예야, 내 안경 좀 벗겨줘.” 허스키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부드러운 유혹처럼 들렸다. 진철은 그녀의 쇄골에 키스를 했고 그의 호흡이 지예의 몸을 찌릿하게 자극했다. 지예의 가느다란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고 그의 넓은 어깨에 하얗고 가느다란 팔이 얹혀 입술 사이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예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고 진철이 시키는 데로 그녀는 움직였다. 손을 뻗어 안경을 벗기자 진철이 더욱 거리낌 없이 키스를 했다. 서서히 감각이 고조되면서 지예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기지예. 이 바람둥이 년아. 네가 감히 내 작은 외삼촌을 꼬셔?” 다른 사람이 계단에 나타났다. 우진의 표정은 아내의 바람을 목격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지예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온통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멍한 눈빛으로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지예의 의식이 점차 돌아왔다. 그녀의 하얀 피부가 엷은 홍조로 물들었다. 지예는 25살의 나이에 이런 꿈을 꾼 자신이 부끄러웠다. 꿈의 상대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생각한 그 진철이었다. 중간에 방해자에 의해 꿈이 끊겼지만 사랑을 나누던 상대가 진철이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었다. 지예는 진철을 대할 면목이 없다고 느꼈다. ‘이게 모두 수연이 때문이야. 하루 종일 내게 유우진의 외숙모가 되라고 떠들어대서 그래.’ ‘아무에게도 꿈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지.’ 지예는 자신의 꿈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일어나자마자 지예는 인터넷 생방송 플랫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 어림도 없겠지?’ ‘내가 그렇게 여러 재벌가 사람들 눈 밖에 났으니, 대기업들과 계약하는 건 일이 틀어지기 너무 쉽지.’ 지예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 후 그녀는 여러 곳을 차례로 살펴보았고 결국 새로 사업을 시
우진에게 받은 20억까지 해서 지예의 수중에 이미 30억이 넘는 돈이 있게 되었다. 그녀는 원래 20억을 수연과 반으로 나누려고 했는데 수연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수연이 말했다. “그 돈은 다 네가 가져가. 내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리고 주병진과 이혼하면 재산을 반은 내 거야. 네가 나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유우진도 아주 껍질을 홀딱 벗겨버렸을 거야.” 지예는 마지못해 수표를 챙겼다. 그녀는 20억의 절반을 그녀와 수연의 이름으로 빈곤한 산간 지역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사람이 좋은 일은 하고 살아야지.’ 여유 있는 동안 지예는 청소를 하면서 플랫폼의 회신을 기다렸다. 그녀는 모두 아홉 회사에 연락했는데 여덟 회사에게 거절당했다. 모두 익숙한 이유였다. [저희 대표님이 점을 본 적이 있는데 기씨 성을 가진 사람과 계약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지예가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다행히 첫 번째 플랫폼에서 그녀의 신청이 순조롭게 통과되었다. 온라인 계약은 간단하고 편리했다. 그녀가 알아서 생방송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고 얼마나 벌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지예는 계약서 법인란의 진씨 성이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로 큰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지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며 기분 좋게 자신을 위한 만찬을 만들었다. 이후 7월에는 별다른 큰일이 없었다. 진철의 말처럼 추성훈의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동시에 추씨 가문의 악행이 폭로되면서 회사가 빠르게 인수되었고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진철의 입김이 한몫했다. 지예는 처음으로 진철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본지 꽤 오래됐네.’ 지예는 자신이 꾼 꿈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를 만나지 않았다. 진철 역시 자신의 행동 때문에 지예가 놀란 줄 알고 더욱 신중해졌다. 평일에 그저 몇 마디 문자만 할 뿐이었다. 이를
유우진과 함께한 지 7년, 기지예는 결국 파혼을 제안했다.메시지에 대한 회신은 두 시간이 지난 후에 도착했다.[파혼하자고? 만나서 얘기하자.]지예는 자신의 실시간 위치를 보냈다.시원한 카페 안에 해가 지며 창밖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창백한 얼굴을 한 지예가 눈을 감자 유우진과 기윤희가 얽혀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한 사람은 그녀의 약혼자였다.다른 한 사람은 그녀의 양부모가 찾은 친딸이었다.그녀는 생리 기간의 심한 통증을 참지 못하고 병원에 혼자 수액을 맞으러 갔었다.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우진이 윤희를 안고 있는 다정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유우진, 그는 경해시 최고의 명문가 상속자이자 US 그룹의 대표였다.그는 1분 1초가 아깝다며 늘 바쁘게 일했고, 약혼자인 지예도 미리 며칠 전에 약속을 잡아야 겨우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바쁜 업무 시간 중에도 모든 일을 제쳐두고 윤희와 함께 병원에 와 있었다.더 황당한 건 지예가 오늘 오전에 우진에게 오후에 시간이 있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그럼 바빴던 게 아니라 일부러 대답을 안 한 거였어?’지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시간은 흘러가고 기다림은 점점 지루해졌다.지예는 아랫배의 통증을 참으며 고개를 숙인 채 카톡 스토리를 열었다.그녀의 양어머니 오미수의 메시지가 와 있었고, 굳은 표정으로 그것을 확인했다.오미수가 3분 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이모티콘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렸던 것이다.지예는 떨리는 손으로 그 사진 파일을 열었다.사진 속에는 윤희가 병상에 힘없이 누워 있었고, 그녀 옆에는 한 남자가 허리를 숙여 다정하게 돌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뒷모습이었지만 지예는 그 남자가 7년 동안 함께했던 우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이 사람 여태 병원에서 윤희를 돌보고 있었던 거야?’사진을 확인한 지예는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숨이 가빠지며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을 느
지예의 말이 끝났을 때 창밖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진의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무정하게 떠나는 지예의 뒷모습을 보고 이를 악물며 냉소했다. “그래. 기지예, 후회하지 마!” 지예는 잠시 발걸음을 멈출 뿐 돌아보지는 않고 그대로 떠났다. 밖은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지예는 한 손으로 아랫배를 누르고 다른 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았다. 30분이 지나도 여전히 택시가 잡히지 못했다.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더블을 외치자 마침내 멀리서 택시가 다가왔다. 그때 오미수에게 전화가 왔다. [너 방금 우진이를 만났어?] 오미수가 다짜고짜 물었다. 지예는 못마땅해하며 쪼그리고 앉아 고통으로 괴로운 배를 문질렀다. “내가 누구를 만나든 아줌마와 무슨 상관이에요?” 윤희가 기씨 가문에 돌아온 후 지예는 그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었다. 평소에도 기씨 가문은 지예와 우진을 빨리 파혼 시키려고 자주 연락해 압박했다. 기씨 가문에서 지예는 마치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손님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진짜 아가씨가 돌아왔으니 지예에게 그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요구했다. 사실 우진의 결혼 문제는 기씨 가문과 유씨 가문이 따로 상의하면 되는 일이었고 지예에게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유씨 가문의 최고 어른인 유문식이 지예를 이미 자신의 손자며느리라고 여기고 있어서 결혼 문제를 처음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지예, 너 지금 무슨 태도야? 어쨌든 우리 기씨 집안이 널 20년 넘게 키워줬어. 그리고 너 때문에 우리 윤희가 밖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오미수의 목소리는 야박하고 날카로웠다. 지예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 그때 아기였던 제가 병원에서 우리 둘이 누워 있던 침대가 몰래 바뀌었다는 말인가요?”오미수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물론 그녀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니,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치 윤희가 겪은 고생이 정말로 지예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하지만 지예 역시 윤희만큼 피해자
다음날. 경해시 각계 인사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유문식의 생신 잔치가 시작되려면 아직 세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 유씨 가문이 초청한 손님들이 속속 이어서 도착했는데 줄지어 있는 고급차 사이에 있는 콜택시 한 대가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지예가 그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뭐야? 기지예가 지금 콜택시를 타고 여길 온 거야? 유 대표가 차도 안 보냈어?” “쯧쯧, 딱하네. 기씨 가문에서 쫓겨나고 벌써 25살이 됐는데 아직 유씨 가문에서 받아 주지도 않는 건가? 딱 보니 결혼도 그냥 흐지부지구만.” 지예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소하다는 눈빛과 연민의 눈빛을 보냈다. 지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유문식을 찾아갔다. 문 앞에 도착해 노크를 하려 할 때 안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진아, 넌 이제 곧 가정을 꾸릴 사람이니 밖에서 특히 언행에 주의해야 해.” 유문식의 위엄 있는 목소리는 손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었다. 우진은 그 앞에 얌전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눈 속의 감정이 속눈썹에 가려져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 윤희와 전 그저 친구일 뿐이에요.” 유문식이 퉁명스럽게 우진을 노려보았다. “친구?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선을 지켜야지. 그럼 말해봐. 방금 그 기윤희와 뭘 하고 있었어?” “윤희 머리가 헝클어져서 그냥 정리만 해준 거예요. 할아버지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지예뿐이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우진은 자신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유문식이 즉시 지팡이로 우진을 내리쳤다. “네가 정말 그렇게 지예를 좋아한다면 빨리 결혼해. 나중에 놓쳐서 후회하지 말고.” 아어지는 우진의 대답이 듣기 싫었던 지예는 바로 노크를 해 유문식과 우진의 대화를 끊었다. “할아버지.” “그래, 지예 왔어?” 지예를 보자마자 유문식이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지예를 반기며 눈웃음을 쳤다. 지예는 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