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지예와 우진에게 집중되었다. 지예가 바닥에 놓인 수표를 내려다보았는데 우진이 말했다. “돈 달라는 거 아니야? 돈 줬잖아. 네 친구를 데리고 꺼져.” 우진은 고택에서의 일을 거치면서 지예를 아주 증오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예의 얼굴을 보자마자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 지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있는 수표를 주웠다. 수연은 갑자기 초조해졌다. “지예야...” 뒤의 말을 뱉기도 전에 이어지는 지예의 행동에 목이 막혔다. 지예는 “쫙”하고 수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우진은 화가 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지예!” “유 대표, 저 귀 멀쩡하거든요? 좀 조용히 말씀해 주시죠.” 이 말을 하며 지예는 수표 조각을 허공에 뿌렸고 조각들이 흩어져 떨어졌다. 우진은 이런 모욕을 당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의 반응을 보고 지예는 너무 고소해하며 비웃었다. “유 대표, 설마 2억으로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밤이 깊어져 네온사인이 더 반짝였다. 우진에게 지예의 차갑고 예쁜 얼굴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하하, 욕심이 정말 대단하네. 날 자극해서 돈을 더 받아 내겠다고? 야, 기지예 너 참 대단하다.” 지예는 그의 말을 바로잡았다. “유 대표, 당신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 같네요. 그쪽이 신호 위반을 해서 벌어진 사고인데 뭐 욕심? 말 좀 가려하시죠.” “수연이의 반응이 조금만 느렸어도 당신이 지금 여기 서 있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아, 유 대표의 목숨이 2억 정도의 가치가 있어서 그 돈을 주려고 한 건가?”지예의 현란하게 비꼬는 말이 우진을 더 화나게 했다. 그때 하필이면 윤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우진은 지예의 면전에서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너머로 가냘프고 울음 섞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진 씨, 저 너무 무서워요. 언제 와요?] 우진
추성훈의 소식을 듣고 지예는 방금 수연과 함께 응급실에서 나왔다. 수연은 창백한 얼굴에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지예에게 몸을 기댔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가 막혀서 욕을 하다가 바로 위장염이 왔다. “수연아, 일찌감치 내일 휴가 내고 집에서 하루 쉬어.” 수연은 힘없이 대답하고 나서 지예를 따라 수액실로 갔다. “추성훈, 그놈은 당해도 싸! 그래도 죽지 않았잖아? 정말 운이 좋다니까.” 수연이 욕설을 퍼부었고 지예도 맞장구를 쳤다. 수연이 안정을 되찾자 지예는 물을 사러 나갔다. 지예가 자판기 앞으로 가서 물 두 병을 사고 막 계산을 마쳤는데 뒤에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기지예, 성훈이 일이 너와 관계가 있어?” 우진은 방금 윤희의 병실에서 나왔다. 그 두 사람은 모두 추성훈과 잘 아는 사이였고 이미 경찰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의구심이 들던 우진은 직감적으로 지예는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추성훈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지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진은 이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그는 직접 지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어쩌면 이게 운명일지도? 지예와 어떻게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내가 뭘 할 수 있을 거 같아?” 지예는 우진과 거리를 두고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성훈이가 네게 약을 먹였다고...” “이봐, 유 대표.” 지예는 그의 말을 끊었다. “당신은 이 모든 게 내 자작극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지예는 그날 추성훈에 대해 말한 후 보인 우진의 의심의 눈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7년을 사랑했는데 유우진이 이런 일을 가지고 내가 장난칠 거라고 생각하다니.’ ‘반면 윤희는 만난 지 불과 5년 만에 조건 없는 믿음을 얻었고.’ ‘이렇게 비교해 보니 내가 정말 아주 우습게 됐네.’ “난...” “유우진, 만약 이 일이 내가 한 자작극이라고 생각한다면 경찰 보고 나를 잡으라고 해.” ... 위층 난간. 방금 병실에서
그 일은 마치 가시처럼 우진의 머릿속에 잘 박혀 있었다. 매번 생각할 때마다 그는 매우 짜증이 났다. “유우진, 쓸데없는 말을 할 거면 그냥 닥쳐.” 지예는 무슨 쓰레기 같은 인간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소리쳤다. “왜? 내 말이 맞아서 갑자기 화가 나?” 우진은 자신의 예상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저 무정한 눈빛, 두 사람이 7년 동안 연애를 했던 사이라고 누가 믿겠어?’ 효신은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유 대표님, 사람이 너무 이중적이면 안되죠.” 우진이 윤희의 대학교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사람들 사이에 큰 파문이 일었었다. ‘기윤희의 관상은 딱 봐도 남자 등쳐먹게 생겼는데.’ ‘하필이면 유우진이 거기에 홀려서.’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엮였는지 효신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유우진은 정말 여자가 고팠나 봐.’ ‘멀쩡한 약혼녀는 놔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니.’ ‘그런 놈이 이제 와서 지예 씨에게 다른 남자가 준 드레스를 받았느냐고 따질 낯이 있어?’ ‘하, 정말 우습네.’ 효신의 경멸하는 듯한 눈빛은 우진의 자존심을 정확하게 자극했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우진의 말투는 차가웠고 눈빛은 그리 좋지 않았다. 성씨 가문은 일반적인 의학 가문으로 조상 대대로 의학을 연구해 왔다. 평소에 다른 재벌가의 일에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진 역시 효신과의 접촉이 그리 많지 않았고 외삼촌과 사이가 좋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뜻밖에도 자신의 전 약혼녀인 지예와 한편에 섰다 우진은 초조함을 느끼며 동시에 지예에게 화살을 돌렸다. “내가 정말 당신을 얕잡아 봤네. 어쩐지 그 2억 원을 무사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이미 다른 사람 때문에 적응이 된 거...” “짝!” 청량한 뺨 때리는 소리와 함께 우진의 뒷말이 뚝 그쳤다. 효신은 애써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나이스.’ ‘역시 형이 반한 여자다워.’ “기지예!”우진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를 갈다.
“성 선생님, 또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있어요.” 효신은 빙빙 돌리지 않고 말해다. “어제 제가 지예 씨께 문자로 물었잖아요. 제 친구의 친구가 화가 났는데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지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나요?” 효신은 정말 알려주기를 바랬다. 그는 사람을 달래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가 강희선이 왜 화가 났는지 정말 모른다는 것이다. 그녀는 물어보면 화가 안 났다고만 답했다. 하지만 답장하는 말투는 차가웠고, 말미에 이모티콘을 붙이던 예전과는 완전히 달랐다.효신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설마 큰 이모님이 오셨나? 하지만 희선이는 며칠 전부터 그랬는데.’ 평소 게임을 즐기는 효신은 처음으로 게임을 하는 거 외에 며칠 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예가 자세히 말했다. “이런 일은 상황에 맞게 적절한 약을 처방해야 해요. 구체적인 상황을 적어서 제게 보내주세요. 가능하다면 양측의 상세한 정보도요. 이따가 제가 선생님께 양식을 보내드릴게요.” 효신은 뒷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는 재빨리 해명했다. “지예 씨, 오해하지 마세요. 정말 제 친구가...” “그럼요. 잘 알아요. 친구분 얘기잖아요.” 지예의 눈에 떠오른 웃음에 효신은 할 말을 잊었다. ‘역시.’ ‘형이 좋아하는 여자는 평범하지 않다니까.’ ‘아주 똑똑해.’ 효신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도망갔다....수액실에는 수연 외에도 서너 명의 환자가 더 있었다. 공기 중에 강한 소독수 냄새가 짙게 났고 지예는 수연 옆에 앉아 끓인 물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어렵게 물을 받아 드는 걸 보고서야 수연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연아, 아직 불편해?” 지예가 의사를 부르겠다고 하자 수연이 막았다.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그래?” 지예는 다시 앉았다. 수연은 냉소를 지었다. “방금 카카오스토리를 올렸는데 전 시어머니가 댓글을 달았어.” 휴대폰 화면에는 수연의 카카오스토리가
이미 늦은 밤이었다. 주차장은 매미 소리와 남자의 발걸음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지예는 신경이 곤두섰다.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선 그녀는 상대가 진철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지예가 긴장한 모습을 보고 진철이 먼저 사과했다. “괜찮아요.” 지예는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 “부 선생님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병원에 웬일이세요? 또 위가 안 좋으세요?” 지예는 옆쪽 가로등 덕분에 진철의 창백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서 마치 천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 같았다. “아니요. 효신이를 만나러 왔어요.” 지예를 기다리는 동안 진철은 이미 적당한 핑계를 생각해 두었다. 효신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둘은 가까운 사이라 핑계를 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진철의 진짜 목적은 지예였다. “아, 그렇군요” 지예의 말에 금세 분위기가 묘해졌다. 진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눈이 잠깐 번뜩였다. 그는 천천히 조용하게 말했다. “마침 지예 씨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잘됐어요.” 지예는 어렴풋이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았다. “추성훈에 관한 일 말인가요?” “네, 만약 경찰이 물어보면 그냥 모른다고만 하면 돼요. 다른 건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진철의 말을 듣고 지예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며 망설이다가 말했다. “부 선생님, 추성훈의 일은 사실 선생님이 상관하지 않아도 돼요. 전...” “부담 가질 거 없어요. 지예 씨는 제가 그저 추성훈에게 원한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진철이 지예의 말을 끊었다. 안경 아래 그의 눈동자에서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그는 지예가 이 일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다른 일이었다면 상관하지 말라는 그녀의 뜻에 따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만은 내키지 않았다. ‘내 심기를 건드리고도 아직 살아있으니 추성훈, 그놈은 머리 숙여 조상님의 은혜에 감사해
우진은 지예와 기 씨 가문의 사이가 나빠진 것이 전적으로 그녀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들은 적 없어요. 지예와 그 사람이 왜요?] 윤희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질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진이 말했다. “아냐, 그냥...” 무심코 고개를 들다가 앞쪽으로 보고는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 분노가 다시 타오르고 새빨갛게 충혈되어 다른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앞쪽에 지예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효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애매하고 다정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우진 씨? 우진 씨, 그쪽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윤희의 애타는 목소리를 듣고 우진은 이성을 찾았다. 우진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대충 몇 마디 둘러댄 채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가 다시 고개를 들고 확인했을 때 이미 두 사람은 사라지고 난 후였다. ... 수연을 태운 지예의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다. 머릿속은 온통 진철이 자신에게 다가서는 장면뿐이었다. “움직이지 마요. 당신 머리에 벌레가 있어요.” 지예는 다른 것은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유독 유연하고 매끄러운 벌레가 무서웠다. 그녀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철의 품에 안겼다. “지예야,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너무 더워서 그래? 창문 좀 열어. 열을 좀 식히는 게...” 수연의 목소리에 지예는 생각에서 정신을 차렸다. 지예는 핸들을 잡고 있었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 외에는 다른 이상한 점이 없었다. “좀 덥긴 하네.” 차 유리를 내리자 밖에서 밤바람이 들어왔다.그러자 복잡한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지예는 먼저 수연을 일찍 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둘의 집은 반대 방향이었다. 수연이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아참, 지예야, 주병진이 나중에 너를 귀찮게 하지는 않았지?” 그녀는 주병진에게 지예를 건드리지 말라고 여러 번 경고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주씨 가문은 그와 달리 시한폭탄처럼 언제든지 폭발해 달려들 수 있었다. “그 사람은 감히 날
어두컴컴한 계단. 그녀는 남자의 뜨거운 큰 손에 허리를 잡혀 몸을 밀착했다. 서로의 숨결이 뒤엉키고 벽에 두 사람이 기대며 이상한 분위기가 흘렀다. “지예야, 내 안경 좀 벗겨줘.” 허스키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부드러운 유혹처럼 들렸다. 진철은 그녀의 쇄골에 키스를 했고 그의 호흡이 지예의 몸을 찌릿하게 자극했다. 지예의 가느다란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고 그의 넓은 어깨에 하얗고 가느다란 팔이 얹혀 입술 사이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예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스러웠고 진철이 시키는 데로 그녀는 움직였다. 손을 뻗어 안경을 벗기자 진철이 더욱 거리낌 없이 키스를 했다. 서서히 감각이 고조되면서 지예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기지예. 이 바람둥이 년아. 네가 감히 내 작은 외삼촌을 꼬셔?” 다른 사람이 계단에 나타났다. 우진의 표정은 아내의 바람을 목격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지예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온통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멍한 눈빛으로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지예의 의식이 점차 돌아왔다. 그녀의 하얀 피부가 엷은 홍조로 물들었다. 지예는 25살의 나이에 이런 꿈을 꾼 자신이 부끄러웠다. 꿈의 상대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생각한 그 진철이었다. 중간에 방해자에 의해 꿈이 끊겼지만 사랑을 나누던 상대가 진철이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었다. 지예는 진철을 대할 면목이 없다고 느꼈다. ‘이게 모두 수연이 때문이야. 하루 종일 내게 유우진의 외숙모가 되라고 떠들어대서 그래.’ ‘아무에게도 꿈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지.’ 지예는 자신의 꿈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일어나자마자 지예는 인터넷 생방송 플랫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 어림도 없겠지?’ ‘내가 그렇게 여러 재벌가 사람들 눈 밖에 났으니, 대기업들과 계약하는 건 일이 틀어지기 너무 쉽지.’ 지예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 후 그녀는 여러 곳을 차례로 살펴보았고 결국 새로 사업을 시
우진에게 받은 20억까지 해서 지예의 수중에 이미 30억이 넘는 돈이 있게 되었다. 그녀는 원래 20억을 수연과 반으로 나누려고 했는데 수연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수연이 말했다. “그 돈은 다 네가 가져가. 내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리고 주병진과 이혼하면 재산을 반은 내 거야. 네가 나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유우진도 아주 껍질을 홀딱 벗겨버렸을 거야.” 지예는 마지못해 수표를 챙겼다. 그녀는 20억의 절반을 그녀와 수연의 이름으로 빈곤한 산간 지역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사람이 좋은 일은 하고 살아야지.’ 여유 있는 동안 지예는 청소를 하면서 플랫폼의 회신을 기다렸다. 그녀는 모두 아홉 회사에 연락했는데 여덟 회사에게 거절당했다. 모두 익숙한 이유였다. [저희 대표님이 점을 본 적이 있는데 기씨 성을 가진 사람과 계약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지예가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다행히 첫 번째 플랫폼에서 그녀의 신청이 순조롭게 통과되었다. 온라인 계약은 간단하고 편리했다. 그녀가 알아서 생방송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고 얼마나 벌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지예는 계약서 법인란의 진씨 성이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로 큰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지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며 기분 좋게 자신을 위한 만찬을 만들었다. 이후 7월에는 별다른 큰일이 없었다. 진철의 말처럼 추성훈의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동시에 추씨 가문의 악행이 폭로되면서 회사가 빠르게 인수되었고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진철의 입김이 한몫했다. 지예는 처음으로 진철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본지 꽤 오래됐네.’ 지예는 자신이 꾼 꿈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를 만나지 않았다. 진철 역시 자신의 행동 때문에 지예가 놀란 줄 알고 더욱 신중해졌다. 평일에 그저 몇 마디 문자만 할 뿐이었다.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