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주병진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우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당연히 때린 사람이 책임져야지.” ‘지예, 네가 언제까지 잘난 체하며 버틸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 경해시에서 그녀가 의지할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우진은 지예가 자신의 말만 잘 들어도 그녀를 다시 잘 대해주려고 했다. ‘그래도 7년을 사귄 사이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우진은 지예가 자신을 칼같이 떠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근데...’ 우진은 생신 잔치에서 지예가 입었던 그 드레스가 떠올랐다. 짜증이 갑자기 밀려왔다. ‘도대체 그건 누가 지예에게 준 거지?’ 우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감지한 다른 사람들은 눈치 있게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차디찬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지예의 귓가에서 그들이 한 말이 모두 맴돌았다. 그들은 한때 그녀와 함께 놀았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에게 독설을 퍼붓고 있었다. ‘정말... 역겨운 것들.’ 지예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오늘 밤의 좋은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세수를 하니 정신이 더 맑아졌다. 그녀는 지금 매우 짜증이 났다. ‘한번 엎어버려?’ ‘그냥 참아야겠지?’ 지예는 재빨리 룸으로 돌아와 다른 일에 주의를 기울였고 자신의 뒤로 다른 사람이 따라 들어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윤희가 비로소 험상궂은 얼굴을 드러냈다. 윤희는 오늘 우진에게 불려 나왔다.그녀는 화장실에서 화장을 정리하다가 지예를 보게 되었다. 순간 지난날의 모든 질투와 광기가 뒤섞기며 계략이 떠올랐다. ‘오늘 밤 내가 완전히 지예가 우진 씨 곁으로 돌아올 수 없게 해 주지.’ ‘할아버지가 지예를 좋아하는 게 대수야? 앞으로 유씨 가문은 우진 씨가 이끄는 건데.’ ‘우진 씨가 지예를 미워하는 한 지예에게 신분 상승은 꿈에 불과하지.’ “윤희, 너 미쳤어?” 지예가 몸을 돌려 윤희를 발견하자 가뜩이나 화로 가득했던 마음이 절정에 달했다. 이번
노골적인 시선이 지예에게로 향했다. 상대는 그녀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우진 주변에서 가깝게 지내는 추성훈이었다. 그녀는 예전 일을 모두 잊고 살았지만 추성훈이 방금 다시 언급한 덕분에 기억이 분명해졌다. 추성훈은 원래 그녀에게 음흉한 마음이 있었다. 겉으론 우진 때문에 표현하지 않아도 계속 그런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딱 한 번 속내를 보인적이 있었는데 우진이 윤희를 데리고 자선 만찬에 참석했을 때였다. 그때 추성훈은 우진의 마음이 변했다며 자신은 어떤지 물었었다. 그 역시 약혼녀가 있었지만 다른 내연녀를 만드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예가 그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이후 서로 아주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당신이 이러는 거 우진 씨가 아나요?” 지예는 말하는 동시에 침착하게 이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고민했다. ‘룸 안에 남자는 모두 세 명. 만약 수연이가 일찍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 저렇게 잠들어서 정신이 없으니 일어나 날 돕는 건 거의 불가능해.’ “지예 씨, 우진이 형은 이미 당신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데 아직도 우진이 형 생각을 하나요? 형이 이렇게 우리와 당신을 두고 그냥 갔다는 건 의도가 분명하잖아요? 이제 포기해요. 내가 형보다 더 잘해줄게요.” 추성훈은 말하면서 손을 뻗어 지예의 얼굴을 만지려고 했다. 지예는 “퍽”하고 그의 손등을 한 대 때렸다. “그 더러운 손으로 날 건드리지 마.” 지예의 혐오스러워하는 눈빛이 추성훈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다른 두 남자는 추성훈의 지시를 따랐다. 추성훈은 그들에게 지예의 팔을 잡으라고 했다. ‘이러다 이 여자를 처리하기도 전에 날새겠네.’ 두 사람이 손을 쓰려할 때 지예는 두 개의 술병을 깨뜨려 손에 들었다. 얼굴에는 차가운 독기가 서려 있었다. “죽고 싶으면 얼마든지 와봐.” 날카로운 술병 조각을 본 두 사람이 멈추었다. 추성훈이 웃었다. “기지예, 난 당신이 그저 얌전한 고양인 줄 알았는데 아직 가시가 가득
추성훈은 지예를 내려다보며 아주 기뻐했다. “기지예, 괜히 힘 빼지 마. 그 약은 아무리 고고한 인간이라도 금방 얌전한 개로 만들어 주니까.” 지예는 온몸이 괴로웠다. “개X식, 이건 범죄야.” 무슨 농담을 들은 것처럼 추성훈은 아무런 대꾸 없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가 웃음을 멈췄다.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증거 있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투여한 약은 8시간이 지나면 전문 기기로도 검출이 되지 않았다. 만약 지예가 추성훈을 강간범으로 고소한다면 그는 동영상을 보여 줄 것이고 오히려 모두 지예가 원해서 일이 벌어졌다는 것으로 고소가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추성훈은 곧 있을 지예와의 성관계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직 서두르면 안 되지.’ ‘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빌게 해 주마. 아주 개처럼 말이야.’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서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예는 온몸이 후끈거리고 타오르는 갈증을 느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추성훈, 이 야비한 놈.” ‘이 모욕은 내 평생 잊지 않으마.’ 추성훈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도발했다. “걱정 마. 난 우진이 형보다 기술이 좋을 테니. 완전 기분 좋게 해 줄게. 좀 있으면 너도 좋아서 날 오빠라고 부를걸.” 추성훈과 일당들은 늘 함께 모여 놀았다. 일찍부터 그들은 여자와 노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유진은 달랐다. 그는 잘 놀긴 했지만 여자를 부르진 않았다. 그래서 추성훈은 그가 여자 경험이 부족해 지예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예는 메스꺼움이 극에 달했다. 거기에 몸이 뜨거워지며 힘이 빠졌다.그녀의 상태가 변할수록 추성훈은 더욱 흥분했다. 지예는 순간 절망감이 솟구쳤다. 그녀는 머리가 어지럽고 눈동자에 힘이 풀리면서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안았다. ‘추성훈 같은 쓰레기에게 겁탈을 당하느니 차라리 다 같이 죽는 게 낫지.’ ‘어차피 난 외톨이니까 죽어도 아무 상관없
추성훈의 놀란 눈빛을 보며 진철은 그대로 그의 오른손을 밟았다. 피 묻은 손바닥이 그대로 땅에 짓눌렸다. 룸 전체에 추성훈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따라왔던 직원이 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이 형님, 정말 독기가 장난이 아니시네.’ 안경 아래 진철의 눈은 차가운 독기로 가득했고 추성훈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와 함께하기에 나조차도 부족한 사람인데,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감히.’ 진철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속에 살의가 짙어졌다. “형님, 잘못했습니다. 저, 전 기지예가 형, 형님 사람인 줄 몰랐어요. 제발, 한 번만 저를 용서해 주세요.” ‘진작 알았더라면 강수연을 건드려도 기지예를 건드리지 않았을 텐데.’ 추성훈은 자기 목숨이 달아날 판이라 진철과 지예가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네 그 변명은 아무 쓸모가 없어.” 한 손으로 안경을 벗은 진철의 기다란 눈은 이미 조금의 온기도 없이 차갑기만 했다. 추성훈은 그 앞에 마치 곧 도살될 물고기처럼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진철의 주먹이 번개처럼 추성훈의 몸과 얼굴로 날아왔고 맞은 그는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했다. 그래도 진철은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얌전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독기를 가득 띤 채로 주먹질을 했고 뒤에서 끙끙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멈추었다. 목숨을 건진 추성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더워...” 소파에서 지예는 두 손으로 계속 자신의 옷을 잡아당겼다. 하얀 어깨가 드러나면서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카락은 흐트러졌다. 이를 본 진철의 눈빛이 걱정으로 어두워졌다. 그는 다가가 그녀를 외투로 다시 꼭 감싸고 안아서 밖으로 나갔다.그의 품에서 지예가 몸을 뒤척였다. 그녀의 온몸이 방금 찜질을 마친 것처럼 뜨거웠다. 룸을 나오자 진철은 어두운 얼굴로 함께 온 경호원에게 지시했다. “가서 저놈 몸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좀 봐요.” 진철이
진철은 난동을 피우는 그녀의 팔을 잡아 자신을 마주하게 했다. “지예 씨, 내가 누군지 알겠어요?” ‘누구?’ 지예는 한순간 멈칫하다가 다시 몸속의 불길에 이성을 잃었다. “유우진...”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우진의 이름 때문에 진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더워요.” 만약 지예가 우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진철은 저택에 가기 전에 지예와 관계를 가졌을지도 몰랐다. ‘지금은 아니야.’ 진철은 그녀에게 코트를 다시 입히고 운전기사에게 온도를 최대한 낮추라고 지시했다. “쫌만 참아요.” 차의 속도가 빨라지며 그 어색한 기운도 말끔히 사라졌다. 지예는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그녀는 옆에서 잡고 있는 진철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힘이 너무 약해 그의 팔에 화풀이를 하듯 물었다. 진철은 눈살을 찌푸렸고 불쌍하게 지예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음이 아팠다. “지예 씨, 우진이는 당신과 어울리지 않아요.” ...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의사인 성효신이 지예에게 진정제 주사를 놓았다. 품속에서 반항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히 잠들었다. 조심스럽게 지예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는 진철의 모습에 성효신은 안쓰러운 듯“쯧쯧”하고 두 번 혀를 찼다. 성효신은 진철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지만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정말 멍청하기는.” ‘지예 씨가 지 조카와 헤어지고 파혼하자마자 움직였다는 사람이 저렇게 방심해서는.’ ‘이번 일은 형이 잘못한 거야.’ 효신은 씁쓸해하며 함께 온 여자 제자에게 눈짓을 했다. “네가 가서 도울 일이 있는지 살펴봐.”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의아해했다. “저요?” “그래, 아니면 형이 왜 나더러 특별히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겠어? 내가 괜히 보지 말아야 할 것이라도 봤다간 형이 나를 때려죽일걸?” ‘그래도 가까운 사이인데 내가 어찌 그걸 모를까?’ ‘형은 겉으로는 금욕적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소유욕이 강한 위선자라고.’ ‘저런 사람이 한번 화나면 제일 무섭지.’ 효신은
진철의 말을 듣고 지예는 우진을 생각하며 비웃었다. 국그릇을 든 두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 손등의 힘줄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어제 일을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우진 씨와 늘 어울려 다니는 추성훈, 그놈은 아무리 내게 마음이 있어도 함부로 할 배짱은 없어.’ ‘그렇다면 어젯밤 그놈이 내게 벌인 짓은 우진 씨의 묵인이 있었다는 얘긴가?’ ‘윤희에 대한 화풀이를 하려고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어.’ 거센 분노가 지예의 마음을 온통 뒤덮었다. 그녀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을 때 진철은 몸을 굽혀 그녀가 들고 있던 국그릇을 가져갔다. “지금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진철의 목소리에 지예는 차츰 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먼저 휴대폰을 찾았는데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진철은 그 모습을 보고 그녀의 휴대폰을 바로 건넸다. 그건 오늘 아침에 경호원이 와서 상황을 보고하며 전해준 것이었다. 지예는 즉시 고맙다고 말하고 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끝나가기 전 반대편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수연아, 지금 어디야?” 숙취 때문에 수연의 반응이 조금 느렸다. [나, 여기 집인 거 같은데?] 확실하지 않은 어조에 지예가 다시 물었다. “혹시 주씨 가문 저택이야?” 다시 몇 초가 지났다. 그제야 수연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놀라서 소리쳤다.[말도 안 돼! 내가 왜 이 집에 있지?] 수연은 주병진과 결혼한 후부터 이사를 나가 독립했다. 그리고는 설날 같은 명절 때만 주씨 가문 저택에 오곤 했다. ‘일단은...’ 수연은 아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어젯밤 일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수연아, 자세한 건 내가 다시 알려줄게. 나중에 보자.” 지예가 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자 진철의 그윽한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는 한순간 당황했다. 재빨리 시선을 피하며 진철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어젯밤에 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난 이미 만신창이가 되
창피해진 지예는 숨고 싶었다. 그녀의 술버릇은 사람을 깨무는 것이었다. ‘어젯밤에 약을 먹은 거지 취하지는 않았는데 부 선생님을 물었다고? 설마 다른 짓은 안 했겠지?’ 지예는 기억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괜히 물었다가 더 어색해질까 무서워.’ 진철은 지예가 불편해할까 봐 방에서 나가며 그녀에게 정리하고 밥 먹으러 나오라고 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지예는 뒤늦게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은 누가 갈아입힌 거지?’ ... 30분 후. 지예는 본의 아니게 진철과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수연 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 진철은 가는 길에 그녀를 데려다주었고 차에서 내릴 때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 줘요.” 지예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수연은 카페 창가에 앉아 있어서 공교롭게도 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지예가 들어와 앞에 앉자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지예야, 벌써 새 남자친구 만든 거야?” 지예는 라떼를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진 씨의 외삼촌이야.” “부진철?” 수연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예에게 어떻게 그와 함께 왔냐고 묻지 않고 오히려 칭찬부터 했다. “지예, 너 아주 고단수네. 유우진의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바로 그놈의 외숙모가 되겠다는 거 아니야? 아주 괜찮은 복수야.”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쳇, 아쉽네. 주병진에게는 외삼촌도 없고 그나마 있는 삼촌도 이미 결혼했는데.’ “... 난 그 사람과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수연이 여전히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겠다는 표정을 짓자 지예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지예는 간단명료하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수연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분노하면서 자책했다. ‘내가 지예를 그 술집에 데려가지 않았어도 유우진과 기윤희, 그 몹쓸 놈년을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
며칠 동안 시원하게 큰비가 내린 후 경해시의 기온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병원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수연은 어두운 얼굴로 주병진의 병실로 들어갔다. “주병진,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당신이 이혼을 안 한다고 해도 결국 하게 될 거야.” ‘감히 이혼을 안 하겠다고 협박을 해?’ ‘그런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할 줄 알고?’ ‘순진하기는.’ 만약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수연은 다시 그날 밤으로 돌아가 주병진의 머리에 술병을 몇 개 더 내리치고 싶었다. 주병진은 병상에 기대앉아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방금까지 태연하던 표정이 수연의 말을 듣고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지예가 반 박자 늦게 병실로 들어왔다. 그러자 주병진은 더 화가 났다. “수연이, 너, 역시 기지예, 저년과 짠 거였어.” 그는 너무 화가 나서 말소리를 떨었다. 수연은 냉소를 지었다. “우리 도련님께서 아주 소설을 써라. 왜? 내가 기윤희에게 네 어깨에 기대라고 했다고 하지 그래?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빨리 이혼합의서에 서명이나 해.” 말이 끝나자 수연은 미리 준비한 합의서를 “퍽”하고 주병진에게 던졌다. 주병진은 서류를 움켜쥐고 이를 갈며 말했다. “이것도 기지예가 널 부추긴 거야?” 지예는 가만히 있어도 의심을 받자 어이가 없었다. ‘역시 유우진의 친구, 유유상종이지.’ ‘문제가 생기면 결코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는 건 생각 안 하고 다른 사람에게만 트집을 잡으니.’지예는 비꼬며 말했다. “그러게 네가 바람을 안 피웠으면 이혼 얘기가 나왔겠어?” “지금 누가 바람피웠다는 거야? 괜히 헛소리하지 마.” 주병진은 잠시 당황하더니 다시 눈을 붉히며 화를 냈다. 그가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하자 수연이 직접 그를 제지했다. “사인이나 해.” “강수연!” 수연과 주병진, 두 사람이 서로 맞섰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뜨겁게 불타올랐다. 지예는 한쪽에서 이 모습으로 구경하다가 끼어들며 말했다. “주병진, 네가 감히 주씨 가문을 이용해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