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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수연은 지예를 데리고 경해시 최고 인기 술집에 갔다.

딱 봐도 그녀는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다.

룸에 들어서자 스타일이 다른 10여 명의 남자가 줄지어 섰는데 예외 없이 모두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지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연은 궁금해하며 지예에게 먼저 상대를 고르라고 했다.

“지예 씨, 어차피 우린 혼자예요. 이제 한 남자에게 굳이 목을 맬 이유가 없다고요. 여기 지예 씨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 있으면 마음대로 골라봐요. 오늘은 제가 한턱 쏠게요.”

수연이 이 말을 하자 앞에 서 있던 남자들이 서로 자신의 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

지예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수연 씨, 전 남자는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 그냥 같이 술 마시는 거예요. 스트레스 좀 풀라고요.”

지예가 계속 거절했다.

그녀의 태도가 강경한 것을 보고 수연은 더 이상 강요할 수 없었다.

남자들이 모두 나가자 룸 안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지예가 술을 따르고 먼저 고개를 들어 건배를 하자 수연은 깜짝 놀랐다.

“지예 씨, 주량이 이렇게 센 줄 몰랐어요.”

지예가 웃었다.

“그냥 쫌 하는 정도?”

지예가 술을 배운 건 대학을 졸업한 후였다.

그 당시 우진은 유씨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기 시작했는데 거의 매일 접대를 해야 했다.

지예는 위가 뚫릴 때까지 술을 마신 우진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때 우진이 농담 같은 말 한마디를 던졌다.

“지예야,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어.”

그 후 지예는 우진을 위하는 마음으로 매일 함께 술자리에 동석했고 주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속이 메스껍고 신물이 날 때까지 계속 술을 마셔야 했다.

나중에 그녀는 이런 자신의 희생이 우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우진은 윤희가 술을 마시는 게 안타까워서 지예에게 대신 마시게 하기도 했었다.

술의 쓴 향기가 가슴에 차오르며 마음이 더 괴로웠다.

지예와 수연, 두 사람은 말없이 계속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다섯 번째 병이 되니 마시는 속도가 느려졌다.

긴 생머리에 얼굴에 곱게 홍조를 띤 수연이 지예를 바라보았다.

“유우진, 그놈 정말 나쁜 놈이네요. 기윤희, 그년이 어디 지예 씨와 비교가 돼요? ”

경해시 안에서 재벌가의 영향력이 이렇게 컸다.

지예와 우진의 일은 이미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둘이 7년을 사귀었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조금의 눈치만 있어도 누구나 둘 사이의 감정이 식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둘 사이에 윤희가 있었다.

지예는 못마땅한 듯 입꼬리를 치켜세우고 자조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누가 알았겠어요?”

‘유우진, 그 자식이 변할 줄.’

지예는 윤희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다기보다 본래 남자의 본성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오래되니까 지겨웠겠죠.”

“신선한 것에 자꾸 끌리고.”

수연도 일찍이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도 감정이 벅차올랐다.

“그래도 지예 씨는 저보다 나은 거예요. 결혼은 안 했잖아요. 전 졸업하자마자 혼인신고를 했어요. 올해 아이를 가지려고 했는데 그놈이 절 더 이상 사랑하지 않더라고요.”

여자는 원래 육감이 남자보다 더 예민했다.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그 누구보다도 더 빨리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온 것뿐이다.

지예가 말했다.

“주병진은...”

수연이 말을 끊었다.

“전 그놈 변심의 대상이 기윤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냥 그년이 눈에 거슬려서 한바탕 화풀이를 한 것뿐이에요.”

두 사람은 성격이 서로 딱 맞았다.

둘은 어색한 관계를 뒤로하고 이제 진정한 친구가 되기로 했다.

술 몇 잔을 더 마시자 수연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어지러움을 느낀 그녀는 소파에 털썩 쓰러졌다.

그래도 지예는 수연보다 상태가 나았다. 지예는 일어나 화장실에 가 세수를 좀 하려고 했다.

그녀는 모퉁이 쪽의 룸을 지나다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우진 오빠, 기지예가 올린 카카오스토리 봤는데... 둘이 정말 헤어졌어?”

“틀림없이 또 연기하는 거야. 기지예가 원래 그런 쪽으로 전문가거든. 기지예가 윤희의 반만큼이라도 솔직했다면 형이 기지예와 이 정도까지는 안 갔을 거야.”

“그래, 기지예는 기씨 가문 가짜 아가씨잖아. 난 우진이 형 하고는 윤희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

룸 안에는 우진이 정중앙에 앉아 있었는데 위치로 볼 때 사람들 중 그의 지위가 가장 높았다.

우진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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