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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지예는 표정 하나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아요. 별로 관심 없어요.”

그녀는 혼자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 저 여자가 그걸로 날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남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지예에 오미수는 씁쓸함을 느꼈다.

지예가 거실을 둘러보니 아수라장으로 변한 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카톡 지갑을 열었다.

“청소비 주세요.”

지예는 아파트 입구의 쓰레기를 돈을 주고 치울 사람을 찾으려고 했다.

‘돈은 일을 벌인 사람이 내야지.’

어쨌든 기씨 가문이 벌인 일이었다.

기영석이 인상을 구겼다.

“무슨 청소비? 기지예, 우리 기씨 가문에 돈이 많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막 퍼주지는 않아.”

기영석이 보기에 지예의 말은 가난한 사람의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윤희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사실 사람은 그녀가 몰래 찾아서 보낸 거고 기영석과 오미수는 그것을 몰랐다.

‘기지예, 저 뻔뻔한 미친년.’

윤희는 속으로 욕설을 퍼붓고는 지예가 다른 말을 하기 전에 돈을 보냈다.

그녀는 200만 원을 송금했다.

윤희의 안색이 불편해 보였다.

“됐지? 기지예, 너 빨리 우리 집에서 나가.”

입금됐다는 표시를 보며 지예는 만족했다.

돈이 많고 적고는 사실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상대에게 똑같이 되돌려 주는 것이었다.

‘역시 윤희 네 짓이었구나.’

지예가 비웃으며 윤희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리자 윤희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윤희 자신의 힘으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예가 돌아가려고 하자 오미수가 위협하며 소리쳤다.

“기지예, 빨리 유씨 가문과 파혼해. 그 자리는 원래 우리 윤희것이니까.”

기씨 가문은 일찍이 경해시에서의 영향력이 매우 눈에 띄게 커졌지만 기영석이 이끈 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기씨 가문의 최고 어른인 기석현과 유씨 가문의 최고 어른인 유문식 사이에 친분이 없었다면 지예와 우진이 결혼약속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기씨 가문은 이제 지예가 기씨 가문을 떠난 이상 결혼약속은 윤희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윤희가 내연녀는 될 수 있을 거 같던데. 제가 보기에 윤희가 그걸 은근히 즐기는 것 같고요.”

‘아무런 명분 없이도 우진과 엮인 걸 보면 윤희는 정말 내연녀가 딱 적성이야.’

“기지예!”

기영석 등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지예는 만족해하며 기씨 가문 저택을 나섰다.

저택 밖.

키가 크고 턱선이 매끄러운 진철이 차문 옆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그는 누군가 나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차갑고 무표정의 얼굴이 지예를 보자 조금 부드러워졌다.

“저 사람들이 또 괴롭힌 건 아니죠?”

지예는 웃었는데 마음속의 울분이 이미 깨끗이 사라진 것 같았다.

“제가 착하다는 착각을 깨 주고 왔죠.”

차에 오르자 지예는 카톡 스토리에 한 마니 글을 올렸다.

[적시에 조치해 더 큰 손실을 막는다.]

그녀는 지난 7년간의 감정을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진철이 첫 번째로 ‘좋아요’를 눌렀다.

잠시 후 그가 물었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건가요?”

“그냥 호텔에 묵는 게 좋겠어요.”

‘기윤희는 뒤에서 일을 꾸미는 걸 좋아하는 거 같은데 그녀가 지예 씨가 어디에 사는지 잘 알고 있는 이상 위험할 수 있어.’

지예 역시 자신의 안전을 담보로 더 이상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아파트는 처분해야겠어.’

지예는 지금 사는 아파트는 중개인에게 팔고 몇 년 동안 더 일해 새집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진철은 잠시 궁리를 했다.

그리고 먼저 지예를 데리고 경해시에서 가장 큰 5성급 호텔로 갔다. 그러나 프런트 데스크에서 오늘 밤 방이 없다고 통보했다.

그 후 몇 군데를 더 옮겨 다녔지만 역시 빈방이 없었다.

지예는 답답했다.

‘요즘 여행 성수기도 아니고 특별한 행사도 없는데?’

‘왜 방이 없다는 거야?’

진철은 태연하게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지예를 바라보았다.

“지예 씨만 괜찮다면 저희 집에 빈방이 많이 있어요.”

지예의 첫 반응은 거절이었다.

외로운 남녀가 한 지붕 아래 있는 것도 어색한데 진철이 그녀의 전 약혼자의 외삼촌이라 기분이 더욱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저 작은 저택이에요. 지예 씨는 1층에서, 저는 2층에서 쉬면 돼요. 그러면 서로 방해도 안될 거고요.”

지예가 여전히 달가워하지 않자 진철이 말했다.

“요즘 뉴스에서 독신 여성이 밤에 살해당하는 사례가 많던데, 오늘은 너무 늦어서 별로 안전하지가 않아요.”

지예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실례 좀 할게요.”

...

진철은 성인이 된 후 부씨 가문에서 나와 혼자 살았다.

이 저택은 경해시 강변 교외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이 조용하고 탁 트였다.

내부 장식은 전체적으로 현대식이었고 주 색상은 흑색, 회색, 백색 세 가지였다.

진철은 신발장에서 깨끗한 여자 슬리퍼를 하나 꺼내 지예에게 건네주었다.

지예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보아하니 내가 이 저택에 처음 온 여자는 아닌가 보네.’

‘하긴 부 선생님은 29살이라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어떻게 여자친구도 사귀지 않았겠어? 같은 나이의 친구들은 모두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데.’

‘그럼 아직 혼자라는 건 눈이 너무 높아서 웬만한 사람은 눈에 안 차는 건가?’

그녀는 그냥 보이는 데로 진철을 판단했다.

진철이 말했다.

“누가가 전에 집에 왔었는데 이거 그때 사서 미처 입지 못한 옷이에요.”

그는 결벽증이 있어서 누군가 자신의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싫어했다.

설사 가족이라도 늘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그래서 지예가 그의 집에 처음 들어온 외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예는 조금 긴장되어 보였다.

진철은 직접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며 겉에 입은 회색 조끼를 벗었다. 이어서 셔츠의 단추 두 개를 풀자 안쪽에 섹시하고 하얀 쇄골이 드러나 보였다.

잠시 후 긴장이 풀어지면서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지예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두 손으로 잔을 들었다.

“앞으로 무슨 계획이 있어요?”

진철이 낮고 매력적인 음성으로 물었다.

“일단 일해야죠.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감정상담사 일이요?”

지예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부 선생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음, 들은 적이 있거든요.”

진철의 눈빛이 마치 별 빛처럼 그윽했다.

“부 선생님께서도 필요하시면 제게 연락하세요. 지인 할인해 드릴게요. 참고로 전 어린이와 노인은 건드리지 않아요.”

진철이 지예를 바라보았다.

머리 위의 빛이 그의 빼어난 이목구비를 매우 돋보이게 만들면서 지예는 순간 멍해졌다.

진철이 물었다.

“그럼 지예 씨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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