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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진철이 섬세한 배려가 지예를 당황시켰다.

그녀는 새 옷을 받아 갈아입었다.

헐렁헐렁한 반팔과 옅은 색의 긴 바지였다.

스타일이 단순해서 오히려 맘에 들었다.

커튼을 젖히고 지예가 말했다.

“부 선생님, 옷값은 제가 보내드릴게요.”

요 몇 년 동안 그녀는 큰일이 일어나지 않게 아주 조심했다. 사실 그녀는 우진과 결혼하기 위해 엄청난 압박들을 이겨내야 했다.

기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빨리 파혼하고 그 자리를 윤희에게 양보하기를 바랐다.

유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하든 배후에서 누군가 일을 꾸며 그녀를 막다른 곳으로 내몰았다.

진철은 카톡의 QR코드를 열었다.

손을 쭉 뻗으며 말했다.

“그럼 친구 추가하시죠.”

지예는 당황해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녀는 예전에 진철이 우진의 외삼촌이라는 것을 알고 가장 먼저 그의 연락처를 삭제했다.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있었어?’

‘그럼 내게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는 건가?’

지예는 난처해하며 QR코드를 스캔하고 저장할 때 “부 선생님”이라고 이름을 썼다.

“시간 나실 때 밥 한 끼 사주세요.”

휴대폰을 거둔 진철의 가느다란 두 눈에 유쾌한 미소가 번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예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바깥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고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우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의 외투는 팔에 걸쳐져 있었고 다부진 얼굴의 표정은 어둡고 무서워 보였다. 굳게 닫은 입은 낯선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는 듯했다.

진철과 지예를 보자 우진의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지예가 입고 있는 옷은 아까 옷이 아니라 새 옷이야.’

‘외삼촌이 사 준 건가?’

“외삼촌, 이번에는 언제 돌아가세요?”

우진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는 지예가 진철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불쾌했다.

“내가 언제 가든 너하고 무슨 상관이야?”

진철은 냉랭한 태도로 우진을 위아래로 살펴보며 말했다.

“넌 네 걱정이나 해. 여자 때문에 경찰서에 들어갔다 나오다니, 네 엄마가 오시면 어떻게 해명할지 생각이나 잘해.”

바로 몇 분 전.

그는 멀리 외국에서 실험 중인 부현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진이 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를 위해 경찰서에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바쁜 와중에도 그녀는 바로 귀국을 할 것이다.

진철은 지예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그냥 둘 수 없었다.

진철이 고자질한 것은 우진을 화나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철에게 화를 터뜨릴 수 도 없었다.

그의 외삼촌인 진철은 겉으로 보기에 세상 일에 그리 밝지 않는 것 같지만 사람의 골치를 아프게 할 만큼의 수완이 있었다.

속을 알 수 없는 것이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았다.

진철은 진짜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외삼촌이 나 말고 지예에게 화살을 돌리게 할 수 없을까?’

“난 지금 주병진 씨를 보러 갈 거야. 당신이 병원에 입원시킨 거니까, 같이 가.”

지예는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믿을 수 없어.’

예전에 고등학생이던 지예가 괴롭힘을 당했을 때 우진은 수업도 빼먹고 밖에서 사람들을 막아서며 그들을 죽이려고 들었다.

그 일로 그는 유씨 가문에서 한 달 동안 외출금지를 당했고 반성문도 수백 장을 썼다.

지예는 마음이 아팠지만 오히려 우진은 웃으며 그녀를 위로했었다.

“울지마. 내가 어디 팔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니잖아. 이제 앞으로 아무도 감히 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생각을 거두고 지예가 말했다.

“당신 눈이 멀었어? 주병진 씨가 먼저 나를 공격했어. 난 정당방위로 그런 것뿐이고.”

“네가 윤희를 때리지 않았다면 주병진이 너를 때리려고 했겠어?”

우진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자 지예는 그의 뺨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애써 참았다.

진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지예를 두둔했다.

날카롭게 눈을 뜨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룸에 CCTV가 있었으니 확인해 볼까?”

“외삼촌, 이건 저와 지예 사이에 일이에요. 외삼촌과는 아무 상관없다고요.”

진철이 지예를 자꾸 감싸자 우진은 매우 불쾌했다.

우진은 진철에게 날을 새웠다.

“그만해!”

결정적인 순간에 지예가 소리쳤다.

그녀의 표정은 차가웠고 우진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우진 씨, 그 사람 상태가 괜찮은가 봐? 나를 데려간다고 하는 걸 보니. 그래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은 다시 술병으로 맞을 각오를 해야 할 거야.”

‘이게 무슨 미친?’

우진은 경악했고 이어서 흥분하여 말했다.

“기지예, 꼭 말을 그런 식으로 해야겠어?”

“내 말이 뭐 어때서?”

지예는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그게 싫으면 빨리 경찰에 신고해서 다시 나를 잡게 하던지.”

이제 지예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우진은 지예의 이런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

‘지예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분위기가 험악해며 화가 난 우진이 지예를 잡아당기려고 손을 내밀었다.

손이 그녀에게 닿기 전에 큰 손에 의해 제지당했다.

“유우진, 유씨 가문에서 널 그렇게 가르쳤어?”

진철은 차가운 기세를 내뿜으며 눈을 날카롭게 뜨고 우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우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가 냉소하며 말했다.

“외삼촌, 그렇다고 외삼촌이 제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을 거 같은데요.”

‘외삼촌이 아무리 대단하면 뭐?’

‘지금 나도 잘 나간다고.’

‘몇 년 동안 줄곧 외국에서 과학 연구를 해온 외삼촌이 경해시에서 나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지예는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는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불쑥 손을 뻗어 진철의 손목을 잡았다.

“부 선생님, 괜히 고집 센 인간과 말 섞을 거 없어요.”

진철은 손을 풀었고 지예에 의해 끌려 나갔다.

뒤에서 우진이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기지예! 너 후회하지 마!”

...

병원을 나서자 지예는 진철을 잡은 손을 놓았다.

진철은 방금 잡혔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눈동자에서 희색이 돌았지만 밖으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고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때 지예가 진철에게 말했다.

“부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이미 저를 충분히 많이 도와주셨어요. 이제 뒷일은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어쨌든 부 선생님과 우진 씨는 친척이야.’

‘나 때문에 괜히 부 선생님을 난처하게 할 필요는 없지.’

진철은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그럼 혹시 필요하면 바로 연락 주세요.”

‘늘 차갑고 무정한 남자라고 하던데.’

‘하지만 오늘 내가 본건?’

‘대체 어디가 어떻게 차갑다는 거야?’

지예는 교환학생 때를 떠올리며 진철은 여전히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차에 타자 진철은 메시지를 보냈다.

[주씨 가문 좀 조사해 봐.]

그리고는 휴대폰을 닫았다.

지예가 다치지 않은 어깨 쪽을 차창에 기대어 힘을 빼고 눈꺼풀을 축 늘어뜨리니 금세 졸음이 쏟아졌다.

진철이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줬는데 그녀는 창백한 얼굴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잠을 설쳤다.

운전기사가 차의 속도를 줄였다.

원래 30분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20분이 더 걸렸다.

지예가 사는 아파트 아래층에 차가 도착하자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진철이 손을 내밀어 그녀를 깨우려다가 다시 거두었다.

“지예 씨, 집에 도착했어요.”

지예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아파트로 들어갔지만 진철은 바로 떠나지 않았다.

그가 잠깐 메시지 회신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아파트 아래층에서 지예가 다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진철은 의아하게 여기며 바로 차에서 내렸다.

“지예 씨? 무슨 일이에요?”

“관리실에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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