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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우진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경해시에서 성이 부씨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야.’

‘거기에 부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외삼촌?’

심문실 문이 다시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역시 진철이었다.

그는 단추를 모두 채운 흰색 셔츠를 입었고 그 위에 회색 조끼를 걸쳤다. 검은색 바지는 그의 다리를 늘씬하게 보이게 했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머리는 잔머리 없이 깔끔하게 정리했다.

안경 뒤의 눈매는 날카롭고 냉정한 이미지를 전달했다.

온몸에서 절제와 기품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아이고, 부 선생.”

임현성이 먼저 진철을 마중했다.

진철은 “형님”이라고 부르며 손에 든 선물을 건넸다.

“이건 현일이가 전해드리라고 제게 부탁한 겁니다.”

임현일은 진철과 함께 일하는 유능한 인재로 겨우 30살도 안된 천재 과학자였다.

임현성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눈가에 주름이 잡히도록 밝게 웃었다.

“우리 현일이가 부 선생과 함께 일하는 것도 감사한 일인데, 이렇게 여기까지 오시게 했군요.”

진철은 별일 아니란 듯이 대답했다.

사실 진철이 가져온 선물은 핑계에 불과했다.

그의 눈이 지예와 마주치자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했다.

우진은 이 모든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진철의 앞을 가로막았다.

“외삼촌.”

두 사람의 제형은 비슷하지만 우진의 기세는 진철보다 훨씬 약했다.

진철이 윗사람이었고 능력 역시 더 강했기에 그는 눈을 가늘게 떨구었다.

“여기서 뭐 해?”

진철의 질문에 우진이 대답했다.

“일이 좀 생겨서요. 변호사는 불렀...”

말을 다하기도 전에 진철이 말을 끊었다.

“기윤희 씨 때문이야?”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윤희는 자신에 대한 의외의 관심에 조금 놀랐다.

그녀는 진철을 보고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다가 진철의 다음 말을 듣고 당황했다.

“우진아, 넌 유씨 가문의 후계자야. 밖에서 경거망동은 하지 말아야지.”

진철의 목소리는 낮으면서 차가웠고,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감정 하나 드러나지 않았다.

갑자기 혼이 난 우진은 매우 불쾌했다.

“외삼촌, 삼촌은 이게 무슨 일인지도 잘 모르시잖아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지예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윤희라고요.’

우진의 머릿속에서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지예를 탓했다.

‘지예가 괜히 사람을 데리고 와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윤희가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리들도 경찰서에 있을 필요가 없었을 거야.’

진철이 우진을 한 번 쏘아보았다.

“그 어떤 경우라도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키우면 안 돼.”

경해시에서 유씨 가문은 경쟁과 질투의 대상이었고 수많은 눈들이 뒤에서 기회를 엿보며 주시하고 있었다.

우진 역시 유씨 가문의 후계자인 만큼 다른 사람들의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그가 지금 한 여자 때문에 경찰서에 있다는 건, 사람들에게 정말 비이성적인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진 스스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임현성이 상황을 이해하고 말했다.

“부 선생, 여기에 서명만 하면 유 대표를 데리고 갈 수 있어요.”

‘유 대표가 자기 외삼촌을 부른 거구만.’

‘보석으로 나가려고 말이야.’

그러나 진철은 줄곧 조용히 앉아 있는 지예를 바라보았다.

안경 뒤의 그의 눈동자에 미묘한 빛이 스쳐 지나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기윤희 씨 외 다른 분들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윤희는 너무 당황했다.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진철이 윤희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그녀에게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 잘못이 없는데?’

윤희는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두 뺨에서 느껴지는 따끔거림이 그녀를 제지했다.

진철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생각을 드러내자 우진은 외삼촌에 대한 반항심이 더 커졌다.

‘외삼촌은 나보다 고작 몇 살 위인데 매번 내가 자기 말대로 하길 바래.’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자꾸 이런 일이 많아지자 우진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진철에게 계속 지고 살고 싶지 않았다.

“저도 안 가요.”

우진이 바로 거부했다.

진철은 개의치 않았다.

“그럼 네 마음대로 해.”

원래 그의 목적도 우진의 구출에 있지 않았다.

만약 친척이 아니었다면 상대하기조차 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강수연이 말했다.

“지예 씨, 먼저 부 선생님과 나가 계세요. 저는 여기 남아서 뒷일을 처리할게요.”

지예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알겠어요.”

지예가 진철 곁으로 다가가자 우진이 참지 못해 말했다.

“지예야, 외삼촌과 함께 가지 마.”

지예는 웃음이 나왔다.

“유우진,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해?”

우진은 말문이 막혔고 달가워하지 않았다.

“가죠.”

진철은 임현성이 건네준 서류에 서명을 하고 지예를 데리고 경찰서를 떠났다.

윤희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기 우진 씨?”

우진의 머릿속은 온통 지예와 진철이 함께 떠나는 모습으로 가득 차 다른 사람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런 우진의 모습을 윤희는 처음 보았다.

그녀는 화가 나 이를 악물고 속으로 지예를 욕했다.

역시 지예는 언제나 그녀보다 우세였다.

...

밖은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경찰서 밖 처마 밑에 선 지예가 입을 열었다.

“부 선생님, 오늘 일 감사해요.”

진철이 우연히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여기서 밤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로 끝내려고요?”

나지막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맴돌았다.

지예는 어리둥절해하며 용기 내 말했다.

“그럼 다음에 제가 밥을 살게요.”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지만 진철은 진짜로 들었다.

“좋아요.”

운전기사가 우산을 하나 가져왔다.

진철은 우산을 폈다.

“지예 씨, 제가 병원에 데려다 드릴게요.”

진철의 시선이 지예의 어깨를 향했다.

그녀의 어깨 쪽은 술에 젖어있었고 살갗에 미세한 유리조각이 박힌 상태였다.

그녀는 아팠지만 계속 참고 있었다.

그런데 진철이 그것을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려하자 지예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감정을 추슬렀다.

진철은 조용히 그녀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고 지예가 드디어 다시 입을 열었다.

“부 선생님, 이미 저를 충분히 많이 도와주셨어요. 이건 제가 알아서...”

“지예 씨, 제가 마침 병원에 가야 해서 그러는 거니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진철이 그녀 말은 막았다.

그의 말에 지예는 다른 핑계를 댈 수 없었다.

그녀는 결국 진철의 친절을 받기로 했다.

‘그래, 내 몸을 괜히 혹사시킬 필요는 없지.’

우산 자루를 잡고 있는 길고 뼈마디가 굵은 진철의 손가락은 마치 정교한 공예품 같았다.

지예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자 우산면이 그녀를 향해 기울어졌고 차가운 바깥의 비를 완벽히 막아 주었다.

대신 진철의 어깨가 반쯤 젖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30분 후.

진철은 지예를 데리고 병원 진료실로 가 상처를 치료했다.

커튼이 그녀의 야윈 실루엣을 드러냈다. 옷은 반쯤 벗겨져 있었고, 피 묻은 둥근 어깨가 드러났다.

간호사는 먼저 알코올로 상처부위를 소독한 다음 핀셋을 사용하여 피부에 박힌 유리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제거했다.

지예는 온몸에 식은땀이 날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꽉 감은 눈을 떨면서 아랫입술을 꼭 깨문 그녀의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참 후에야 처치가 끝났다.

그녀에 어깨에 붕대를 감고 있을 때 진철의 길고 하얀 손이 커튼을 사이로 들어왔다.

“지예 씨, 아까 제가 사 오라고 시킨 옷인데, 괜찮으면 갈아입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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