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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원서윤 씨, 정말 원서윤 씨 맞아요?”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정원준이 원서윤을 붙잡았다. 그녀는 피하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차가운 엘리베이터 벽에 부딪혔다.

그녀의 손에서 약봉지가 떨어졌다. 정원준은 바닥을 한번 훑어보고 나서 비웃듯이 말했다.

“원서윤 씨, 5년 전에 그렇게 무정하게 떠나버리더니, 이제 와서 왜 돌아온 거예요? 돌아온 의도가 뭐냐고 묻는 거예요! 외국에서 일이 잘 안 풀렸던 건가요? 승재에게 도움이라도 받으려고 온 거예요?”

정원준은 여승재와 친한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의 과거를 잘 알고 있었다.

“원서윤 씨, 승재는 원서윤 씨가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서 함부로 다룰 사람이 아니에요. 5년 전엔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이제는 더는 원씨 가문이 무시할 사람이 아니라고요! 원서윤 씨가 떠나면서 말 한마디 안 남긴 게, 그게 승재에게 얼마나...”

“거기까지만 하세요. 지금은 아주 행복해 보이더군요. 제가 직접 봤어요.”

원서윤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원준 씨, 저도 결혼했어요. 아들도 있고요.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로서 축하 인사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원서윤 씨...”

평소 온화한 성격으로 알려진 정 대표가 그녀의 말에 욕설을 내뱉을 정도로 화가 났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황하며 두 사람을 지켜봤지만, 원서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원준의 손을 뿌리치고 떨어진 약 봉투를 줍지도 않고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정원준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

“원서윤 씨, 당신 가족이 승재에게 진 빚은 평생 갚을 수 없을 거예요!”

원서윤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승재가 제게 진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허망하게 잃어버린 아버지의 목숨, 어머니의 건강, 그리고 생사조차 모르는 동생까지... 이 모든 것을 여승재가 갚을 수 있을까?’

원서윤은 호텔을 나와 시청 담당자와 함께 약국으로 향했다. 정원준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곁에 있던 프로젝트팀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 대표님, 여 대표님께서 갑자기 회의를 중단하고 약을 사러 가신 건 예원 씨 때문이라고 했었는데... 이 약이 왜 여기에...”

“쓸데없는 소리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모두 눈치껏 행동하세요!”

정원준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여승재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소음이 잘 차단된 루프탑에서 담배를 피웠다. 여승재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담배 연기가 옷에 배는 것을 싫어하는 듯 행동했다.

정원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예원 씨가 임신한 건 네가 어제오늘 안 것도 아니잖아. 근데 왜 갑자기 담배를 끊어?”

“감기 걸렸어.”

여승재가 무심하게 대답하자, 정원준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네가 감기 걸린 거야?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아픈 거야?”

“날 찾아온 이유가 뭐야?”

여승재는 여전히 성가신 듯 말했다.정원준은 거실에서 태교 영상을 보고 있는 민예원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승재야, 예원 씨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마라. 원서윤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모르는 건 아니지? 게다가 그녀는 이제 가정도 있고 아들까지 있다고 하더라...”

정원준이 가지고 있던 녹음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여승재는 녹음기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그것을 집어 던져 부숴버리고는 화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민예원이 그의 뒤를 쫓아가며 울먹였지만 여승재는 멈추지 않았다.

정원준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예원 씨, 승재는 예원 씨의 남편이잖아. 뱃속 아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남자를 꼭 붙잡아야 해. 알았지?”

그날 저녁, 평온하던 하늘에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서서히 해가 저물며, 붉은 석양을 찢어내듯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원서윤은 약국에서 돌아왔다.

위층에서 여승재와 민예원이 다정하게 함께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방으로 올라가기가 꺼려졌다. 그녀는 약을 먹고 한결 나아진 듯 배를 쓸어내리며 호텔 1층의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약기운이 퍼지며 약간의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때마침 비가 쏟아지자, 카페 주인은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즉석 음악회를 열고 싶어 했지만, 피아노를 칠 사람이 없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원서윤은 무심코 피아노 앞에 앉았다.

따뜻한 조명이 그녀를 감싸며 환상적인 빛을 발산했다. 그녀의 모습은 현실보다 더 비현실적이었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춥지... 너무 추운데...’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마음의 온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며 잠시나마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약기운 때문에 흐릿한 정신 속에서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곡이 결혼행진곡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갑자기 몸에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원서윤은 다리에 몸을 기댄 채 갑자기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지 못했다.

“너무 춥다... 아빠, 엄마... 저 너무 추워요. 어디 있어요? 보고 싶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기회가 있다면 저도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사랑은 필요 없어요... 엄마 아빠 곁에서 살게 해주세요. 제발...”

몸이 아프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원서윤은 어렴풋이 여승재가 자신의 곁에 있는 듯한 환영을 느꼈다. 그가 자신을 안아 올려 카페 밖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다.

‘내가 미쳤나... 여승재가 나를 이렇게 챙길 리가 없잖아...’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런데 그때 귀가에 여승재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원서윤, 넌 나한테는 죄인이야.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웃는 거야?”

“그래. 웃을 자격이 없어. 여승재, 네가 바랐던 건 나의 불행 아니었어? 미안해서 어떡하지? 나 정말 행복하게 잘 살았어!”

그녀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비록 힘든 일을 겪으며 고생했지만, 5년 동안 자유를 되찾았고 나름 행복했다.

“너는 어땠어?”

여승재는 원서윤을 호텔의 VIP 진료실 침대에 눕혔다. 그녀는 불편한 듯 몸을 뒤척이며 두 손을 턱에 괴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오빠, 너도 지난 5년 동안 나만큼 행복했어?”

그 순간, 원서윤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떨어지며 화면이 켜졌다.

[서윤아, 우리 아들이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해.]

잠금 화면에는 두, 세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사진이 있었다. 아이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생기 가득한 모습이었다.

원서윤은 지쳐 잠이 들었다. 간호사는 그녀에게 해열제를 투여한 뒤 진료실을 나왔다. 간호사는 땀을 닦으며 동료에게 중얼거렸다.

“여 대표님께서 엄청 화가 나신 것 같아요. 원서윤 씨에게 링거를 놓을 때 내내 옆에서 얼굴이 검게 변해있었어요. 그리고 원서윤 씨의 핸드폰을 한참 동안 쏘아보는 눈빛이 정말 무섭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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