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얼마를 원하시는데요?”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할머니 옆에 얌전하게 쪼그리고 앉아서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성숙하다기보다는 활발하면서도 열정적이었다. 젊음에서 나오는 활력인 것 같았다.“내... 내가 원하는 만큼 주겠다는 거야?”차에 치인 척 연기하던 할머니가 이 말에 깜짝 놀랐다.젊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개하기 시작했다.“할머니, 저는 간호사예요. 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했는데 한 달 월급에서 국민건강보험을 빼면 한 90만 원 정도가 남거든요? 근데 여자 친구가 없으니까 한 달에 10만 원에서 12만 원 정도는 모을 수 있어요. 지금 카카오페이에 200만 원 정도 있는데 다 드릴까요?”“다... 다 가져도 돼?”할머니가 오히려 주춤했다.젊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으면 여기서 기다려줄래요? 월세방 빼면 몇십만 원은 더 나올 거예요.”“어디, 어디 사는데?”할머니가 젊은 남자를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젊은 남자가 진지하게 대답했다.“숙소에서 지내죠. 가끔은 병원 바닥에서 자면 하룻밤은 대충 때울 수 있어요. 저는 아직 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아이고, 딱해라.”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더니 자애로운 눈빛으로 젊은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머니에서 현금다발을 꺼냈다. 20만 원에서 40만 원은 되는 것 같았다.“아이야, 이리 와봐. 이건 할머니가 주는 용돈이야. 내 번호 저장하고. 앞으로 지낼 곳이 없으면 할머니 집으로 와.”“네, 감사합니다. 할머니.”젊은 남자가 할머니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옆에서 구경하던 원서윤은 젊은 남자가 자리를 뜨려는 할머니의 주머니에 받은 돈을 몰래 다시 넣는 걸 봤다.구경꾼들이 손뼉을 치더니 흩어졌다.원서윤이 앞으로 다가가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저는 산부인과 원서윤이에요. 혹시... 방이연 씨?“네, 저 맞아요. 원 선생님 안녕하세요.”방이연이 고개
“사모님은 뭔가 내가 외도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요?”원서윤이 당당한 눈빛으로 민예원을 바라봤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보여야 할 당황함과 부자연스러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그리고 원서윤이 정말 외도 중이라고 해도 민예원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옆에 있던 방이연이 이를 보고 얼른 해명했다.“오해에요. 혹시 누나 친구들인가요? 사실 누나는 원장님 부름을 받고 자리만 채우기 위해서 온 거지 직접 오겠다고 신청한 건 아니에요.”극장은 핑크빛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강한 불빛보다는 따듯한 불빛을 선택했다.여승재와 민예원은 처음 들어왔을 때 원서윤 옆에 선 방이연을 발견하지 못했다. 키가 큰 남학생이 갑자기 나서자 몸이 약한 사모님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민예원은 가슴을 움켜쥔 채 눈시울을 붉히며 여승재의 품으로 쏙 들어가더니 울먹이며 말했다.“선생님, 내가 너무 놀라니까 우리 아이까지 놀란 것 같아요. 얼른 손 좀 올려줘요. 아이가 무서워하고 있어요.”민예원이 여승재의 손을 잡아다 아직 밋밋한 아랫배에 올렸다.하지만 여승재는 원서윤이 방이연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방이연을 아래위로 훑었다.원서윤이 무의식적으로 방이연을 등 뒤로 당겨오더니 별다른 정서가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덤덤하게 말했다.“여 대표님, 사모님, 여기는 두분이 오실 곳이 아니에요. 별다른 용무가 없으면 먼저 나가시는 게 어떨까요?”여승재라는 이름은 경항시, 그리고 협상이라는 업종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여승재의 언행은 막론하고 오늘 어떤 요리에 젓가락이 갔는지까지 주목하고 있었다. 여승재의 젓가락 한 번에 그 요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이름을 날리는 경우도 파다했다.그런 여승재가 와이프를 데리고 의료 협회에서 주최한 소개팅 현장에 나타났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원서윤은 자신과 방이연이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는 게 싫었다. 이 남자와 엮이는 일이라면 더더욱 싫었다.원서윤의 말에 여승재가 웃음을 터트렸다.“원서윤 씨가 언제부터
여승재가 얼굴을 원서윤의 머리로 바짝 들이밀었다. 그러자 뜨거운 숨결이 원서윤의 귓가로 전해졌다.여승재의 웃음은 날카로우면서도 음침했다.“원서윤, 날 자극하지 않은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나도 내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별장을 위해서라도 절대 대표님과 사모님을 욕보이는 일은 없을 거예요.”원서윤의 미소는 여전히 눈부셨다.여승재는 짜증이 치밀어올라 표정이 어두워졌다.“원서윤, 너에게 나는 그 별장 말고 다른 용도가 없어?”“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는 남자에게 뭘 더 바랄까요?”원서윤은 이 상황이 정말 너무 우스웠다.5년간 여승재는 원서윤을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고, 쫓으면 털레털레 도망가는 강아지쯤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여승재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원서윤은 자존심과 존엄을 포기했고 그녀를 제일 사랑하고 아껴주던 가족까지 버렸다.하지만 여승재가 모르는 게 있었다. 무한한 열정으로 머릿속에 온통 여승재뿐이었던 원서윤은 5년 전 있었던 화재에서 죽어버렸다는 걸 말이다.지금의 원서윤은 인생에서 여승재라는 사람을 깔끔하게 지우고 다시 태어난, 과거에는 눈곱만치의 미련도 없는 원서윤이었다.“대표님, 비켜주실래요? 친구 데리고 병원 가서 진단서 끊어야 해서요. 만약 친구가 폭행죄로 고소하겠다고 한다면 내가 증인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잘 준비하고 계세요.”원서윤의 말은 하나같이 가시가 돋쳐 있었다.여승재가 콧방귀를 꼈다.“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고작 저 남자 때문에?”“대표님이 사모님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손찌검한 것과 같은 맥락이죠. 이연이 내 친구인데 이연이를 전적으로 고려하는 게 맞죠.”원서윤이 앞길을 막은 커다란 체구를 밀어냈다. 그러고는 방이연 옆으로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어깨동무하고는 천천히 극장을 빠져나갔다.여승재도 더는 쫓아오지 않았다.하지만 등 뒤로 민예원이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를 위해서 주먹다짐할 생각을 다
민예원은 달려오는 내내 여승재와 깍지를 끼고는 잉꼬부부임을 티 냈다.방이연이 그런 민예원을 째려보며 차갑게 비웃었다.“연애질은 호텔 가서 해요. 호텔로 간다는 게 병실로 잘못 들어온 거 아니에요?”“이연 씨, 오해하지 마요. 저랑 선생님이 이렇게 온 건 다 이연 씨가 걱정돼서예요. 하지만 지금 보니...”민예원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원서윤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순진한 눈빛으로 말했다.“아니다. 제가 너무 생각이 많았나 봐요. 하지만 서윤 언니가 워낙 사람을 잘 챙기니까 저희가 여기 있는 게 더 민폐겠네요.”원서윤과 방이연이 불륜이라도 저지른다는 식으로 비꼬는 걸 듣고 있자니 너무 불편했다. 안으로 들어와 방이연의 약을 바꿔주던 간호사도 민예원을 몇 번 더 힐끔 쳐다봤다.원서윤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귀띔했다.“사모님, 잊었나 본데 이연이가 다쳐서 입원한 거 다 여 대표님이 그런 거예요. 아직 고소할지 말지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건 아니지 않아요?”“선생님... 너무 무서워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예원은 울먹이며 여승재의 품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억울해 보였다.“언니, 이연 씨 많이 좋아하는 거 알아요. 요즘 세상에 편견이 없어지긴 했지만 귀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선생님이 내 옆에 자주 있어 주는 게 부러웠던 거죠? 남편이 자주 옆에 없으니까 외로워서 그런다는 거 알아요. 나도 선생님도 다 이해할 수 있어요.”이 말은 원서윤과 방이연이 불륜 관계라는 것에 쐐기를 박는 말이었다.원서윤이 웃으며 우아한 자태로 물었다.“사모님,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 하나 해줄까요?”“그게 뭔데요?”민예원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묻자 원서윤이 미소를 지었다.“옛날에 어떤 황제가 있었는데 사복을 입고 관리들과 민정을 살피러 갔다가 기생집을 지나치는데 갑자기 대문이 열리더니 기생들이 글쎄 가슴을 훤히 드러내놓고 온갖 교태를 부리는 거예요. 따라온 관리들이 이를 보고 입을 모아 비판했죠. 어디 이런 듣도 보도 못한 망
방이연이 내리친 것이었다. 그는 마치 큰 굴욕이라도 당했다는 것처럼 빨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여승재 씨, 돈이 많으면 다예요? 돈이 있으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돼요? 돈이 있으면 우리 누나 상처 주고 모욕해도 돼요? 무슨 자격으로요? 우리 누나도 사람이에요. 자존심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요.”아주 나이스였다.원서윤은 방이연에게 고마웠다. 친동생이든 아니든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 5년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을 대신 해준 것이다.심지어 여승재가 민예원을 위한답시고 2,000만 원을 송금했을 때도 사실은 이 말이 하고 싶었다.하지만 5년 동안 이런저런 상황에 치이며 간신히 버텨내다 보니 습관적으로 가면을 쓰고 입을 꾹 다문 채 투명 인간인 척하게 되었다. 방이연처럼 제일 원시적인 열정과 기대와 사랑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지는 못했다.민예원이 점점 더 세게 울었다. 아직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던 원서윤이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카드를 줍더니 위에 묻은 먼지를 털어 얼굴이 까맣게 굳은 여승재에게 다시 건넸다.여승재가 미간을 찌푸렸다.“뭐 하자는 거야?”“2억 주면 고소 취하하는 거 고민해 볼게요.”원서윤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민예원이 울음을 뚝 그치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언니, 언니 돈만 보는 사람 아니잖아요. 왜...”인내심을 잃은 원서윤이 민예원의 말을 잘라버렸다.“첫째, 민예원 씨, 나와 이연이는 민예원 씨의 수호신이 아니에요. 여 대표님은 민예원 씨를 위해 목숨 걸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럴 의무가 없다는 소리죠. 둘째, 여 대표님. 여 대표님에게 2억이 더 중요한지 아니면 사회적 이미지가 더 중요한지 생각해 보세요.”여승재에겐 여론을 뒤집을만한 힘이 있었고 진위가 검증된 증거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하지만 방이연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소송에서 이기든 지든 지금 이 상황을 잘 처리하지 못할 경우 여승재의 커리어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원서윤은 여승재를 너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그래도 2억은 줘야 협상의 여지가 있었다.방이연은 거절하려 했지만 원서윤이 일부러 얼굴을 굳힌 채 정색했다.“누나라고 부르니까 내 말 들어.”“그래. 앞으로도 누나 말 들을게. 헤헤헤...”무거웠던 분위기가 갑자기 풀리기 시작했다.월요일, 여승재가 약속한 2억을 송금했고 방이연도 퇴원했다.원서윤은 바로 택시를 잡아 방이연과 함께 차량 판매점이 모여있는 공항로로 향했다.방이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누나, 여기는 왜 온 거예요?”“차 사러 왔지.”“누나 차 사려고?”방이연이 미간을 찌푸렸다.원서윤이 방이연을 가리키며 말했다.“아니. 오늘 네가 끌고 다닐 차 사러 온 거야. 체리 큐티큐는 이미 폐차 조치했어.”“잉? 누나, 그 큐티 큐 아직 짱짱한데. 기름값도 엄청 적게 들고.”방이연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원서윤이 방이연을 이끌고 BMW 전문점으로 향했다.“시속 30킬로만 조금 넘어도 보닛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던데? 그리고 전임 차주가 하이브리드로 불법 개조했더라고. 이연아, 그 체리 큐티 큐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폭탄 같은 존재야. 알아?”“누나, 너무 솔직해서 뼈 때리는데?”방이연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표정을 하고 있자 원서윤이 웃음을 터트렸다.“누나, 웃으니까 너무 예쁜데? 앞으로 가식적으로 웃는 거 줄여요. 그러면 누나도 힘들고, 보는 사람도 마음 아파요.”원서윤이 멈칫했다.지금까지 원서윤에게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고 한 건 방이연이 처음이었다.“가자. 일단 차부터 사자.”원서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살짝 가셨다. 방이연이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맞은편 도로.신난 민예원이 여승재의 팔을 꼭 잡고 흔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정말 나 페라리 사주는 거예요?”“그래. 네가 기쁘면 됐어.”여승재가 민예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돌리다 원서윤과 방이연이 나란히 BMW 전문점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민예원도 옆에서 그 장면을 목격
“알겠습니다.”원서윤이 창밖으로 도로 상황을 살폈다.“20분쯤 걸릴 것 같네요.”“그래요.”전화를 끊고 방이연이 원서윤을 병원에 데려다줬다.원서윤이 행정과 사무실로 향했다. 뒤따라오던 방이연이 동료들과 마주쳤다.“도요타 최신 차종 아니에요? 6,000만 원은 줘야 할 텐데 대출로 산 거예요?”동료들이 감탄했다.“아니요. 누나가 사준 거예요.”방이연이 솔직하게 털어놓자 동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누나? 고아 아니었어요? 누나는 무슨 누나? 혹시 스폰 막 그런 거 아니에요? 얼굴이 반반하니까 돈 많은 아줌마들이...”“혹시 제가 옛이야기 하나 해줄까요?”앞에서 걷고 있던 원서윤이 겨우 웃음을 참아냈다.원서윤이 원장 사무실로 들어섰다. 안에 다른 과 주임과 민예원까지 함께 있는 걸 보고 원서윤은 ‘가면’을 다시 쓰는 수밖에 없었다.원장이 웃으며 말했다.“원 선생, 축하해요. 앞으로 우리 병원 산부인과는 원 선생 소관이에요. 아, 그리고 오늘부터 부원장으로 함께 하게 된 민예원 씨에요. 인사해요.”“민예원 씨요?”원서윤은 가슴이 철렁했다.행정 부원장은 비록 행정 업무를 소관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수순으로 보면 병원 이사회에서 금융 쪽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으로 임용하곤 했다.전임 부원장도 의대 출신에 박사 학위로 금융 관리를 전공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후임자도 전임 부원장의 표준으로 임용하는 게 맞았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 부원장이 되고 싶으면 최저 학력이 전임 부원장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하지만 민예원은...원장이 껄껄 웃으며 민예원에게 직접 차를 따라주더니 설명했다.“병원 이사회는 젊은 사람에게 기회를 많이 주자는 취지에요. 그래야 젊은 피를 끊임없이 수혈할 수 있지 않겠어요? 게다가 민예원 씨는 명문대 졸업에 여 대표님의 제자기도 하니까 행정 부원장 직을 맡기에 충분하죠.”“민예원 씨 성원 그룹에서 나왔죠?”원서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원장이 이마를 ‘탁’ 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아이고, 내 기억
원서윤은 원래 있던 사무실로 돌아가 개인 물품을 정리해야 했다. 하지만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인부들이 사무실에서 상자 몇 개를 꺼내 아무렇게나 복도에 던지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문에 걸린 팻말을 바꿨다.전에 붙어있던 팻말은 [산부인과: 원서윤]이었는데 지금은 [행정 부원장: 민예원]으로 바뀌었다. 인부가 원서윤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두 동강으로 부시더니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원서윤이 차가운 눈빛으로 이를 방관했다.‘경항시로 돌아오면서 모든 걸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나?’붕붕.핸드폰이 울렸다.[집주인]에게서 온 카톡이었다.[원서윤, 아니면 와서 빌어볼래?]여승재는 이제 원서윤을 대놓고 면박을 주고 있었다. 민예원을 위해 모든 체면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마치 그때 원서윤이 여승재를 위해 온갖 우스운 일을 자청했던 것처럼 말이다. 도서관에서 봐둔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기 싫어 아예 막무가내로 책상에 드러누운 적도 있었다.여승재가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시험에 날 문제를 귀신같이 맞힌다는 학원 강사를 만나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그 강사를 따라다니며 여승재에게 강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다 학원 강사가 스토킹으로 신고하는 바람에 구치소에서 15날을 감금해 있었다.돌이켜보니 정말 너무 우스웠다. 여승재가 지금 다른 여자를 위해 간과 쓸개를 빼주는 모습이 어쩌면 그때의 그녀와 똑 닮아 있었다.[대표님, 대표님에게서 다른 사람이 보여요.]원서윤이 답장했다.1분 후.[?][내가 보여요.]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원서윤은 여승재를 차단했다.수요일이 되자 협상 프로젝트팀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2차 협상의 목적은 초보적으로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들에 대해 협의 달성하는 것이었다. 그 뜻인즉 가격 외에 후속 구매 및 공급 방안, 그리고 비용 납부 루트 등도 결정해야 했다.이 부분은 당연히 법무팀에서 연속 3일의 낮과 밤을 고군분투한 끝에 작성한 것이었다.“허, 원서윤 씨,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