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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방이연이 내리친 것이었다. 그는 마치 큰 굴욕이라도 당했다는 것처럼 빨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승재 씨, 돈이 많으면 다예요? 돈이 있으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돼요? 돈이 있으면 우리 누나 상처 주고 모욕해도 돼요? 무슨 자격으로요? 우리 누나도 사람이에요. 자존심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아주 나이스였다.

원서윤은 방이연에게 고마웠다. 친동생이든 아니든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 5년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을 대신 해준 것이다.

심지어 여승재가 민예원을 위한답시고 2,000만 원을 송금했을 때도 사실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5년 동안 이런저런 상황에 치이며 간신히 버텨내다 보니 습관적으로 가면을 쓰고 입을 꾹 다문 채 투명 인간인 척하게 되었다. 방이연처럼 제일 원시적인 열정과 기대와 사랑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지는 못했다.

민예원이 점점 더 세게 울었다. 아직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던 원서윤이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카드를 줍더니 위에 묻은 먼지를 털어 얼굴이 까맣게 굳은 여승재에게 다시 건넸다.

여승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하자는 거야?”

“2억 주면 고소 취하하는 거 고민해 볼게요.”

원서윤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민예원이 울음을 뚝 그치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언니 돈만 보는 사람 아니잖아요. 왜...”

인내심을 잃은 원서윤이 민예원의 말을 잘라버렸다.

“첫째, 민예원 씨, 나와 이연이는 민예원 씨의 수호신이 아니에요. 여 대표님은 민예원 씨를 위해 목숨 걸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럴 의무가 없다는 소리죠. 둘째, 여 대표님. 여 대표님에게 2억이 더 중요한지 아니면 사회적 이미지가 더 중요한지 생각해 보세요.”

여승재에겐 여론을 뒤집을만한 힘이 있었고 진위가 검증된 증거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방이연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소송에서 이기든 지든 지금 이 상황을 잘 처리하지 못할 경우 여승재의 커리어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서윤은 여승재를 너무 잘 알았다.

여승재가 원서윤을 차갑게 비웃더니 오히려 방이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봤어? 원서윤이 어떤 사람인지는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이 말을 뒤로 여승재가 수표 한 장을 던져줬다.

“2억이야. 이제 만족해?”

원서윤은 받지 않았다.

“지금 바로 이연이 월급 계좌에 넣어요. 연말 보너스라고 적어서 넣어요.”

“직업 고등학교 간호학원을 졸업한 남자가 보너스를 2억이나 받는다고?”

여승재가 코웃음 쳤지만 원서윤이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받아도 되는 사람이잖아요.”

“원서윤, 너 능력 좋다? 매번 너에 대한 역겨움이 새로운 수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

여승재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원서윤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여 대표님, 역겨움도 일종의 감정이라고 했어요. 우리 사이에 ‘역겨움’이라는 감정조차 필요 없는 거 알잖아요.”

게다가 원서윤은 여승재가 그녀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아빠가 남긴 별장만 순조롭게 받아낸다면 여승재가 아무리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펑.

여승재가 민예원을 데리고 문을 박차고 나섰다.

복도에서 민예원이 여승재를 달랬다.

“선생님, 화내지 마요. 언니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이연 씨가 언니 친구기도 하고 친분이 두터우니까 챙겨주려고 그런 거죠. 이연 씨가 돈이 부족한 건 확실하잖아요.”

“역시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맞네.”

참으로 듣기 거북한 말이었다.

방이연이 허허 웃었다.

“무지개 반사. 여승재와 민예원이야말로 끼리끼리지. 누나, 신경 쓰지 마. 그 2억 나 한 푼도 가질 생각 없어. 쓰레기 같은 그 면상에 던져버리나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방이연은 표정이 풍부한 편이라 원서윤이 보고 빵 터졌다.

원서윤이 사과를 하나 깎아서 건넸다.

“그 돈은 잘 챙기고 있어. 여승재가 폭행해서 장기가 파열될 뻔했는데 네가 받아 마땅한 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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