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주임이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원 선생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제2차 협상은 원 선생님이 주도해야겠는데요?”원서윤이 거절했다.“황 주임님, 죄송합니다. 저는 총책임자를 돕는 역할일 뿐입니다. 게다가 저는 협상에 관해 배워본 적도 없으니 그럴만한 그릇이 못 됩니다.”원서윤이 자리를 뜨려는데 황 주임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원 선생님, 이번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여 대표님이 뭐라고 생각할까요?”“...”원서윤이 멈칫했다.프로젝트가 멈추고 협상에 실패하면 경항시에서 민예원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원서윤이 아는 여승재는 민예원을 보호하기 위해 미친 듯이 원서윤을 괴롭히고도 남을 것이다.아빠가 남긴 별장은 물론이고 그녀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5년 전처럼 죽거나 미쳐버릴지로 모른다.여승재는 원서윤에게 늘 매정했다.“원 선생님, 회의 곧 시작인데 가시죠.”황 주임이 자신만만하게 한쪽으로 비키며 원서윤을 안으로 안내했다.원서윤이 황 주임 옆을 지나며 찬란하게 웃었다.“황 주임님, 몸집에 맞지도 않은 물건을 삼켰던데요? 하이만섬에 있는 계좌번호 뒷자리가 1633이죠?”이 말에 중심을 잃은 황 주임이 쿵 하고 문에 부딪히며 얼굴에 멍이 들었다.원서윤이 제일 앞쪽에 위치한 자리에 앉아 느긋한 표정으로 정원준에게 전화를 걸었다.“10분 줄 테니까 법무팀 좀 잠깐 빌려줘요.”“당신이 뭔데요?”정원준이 허허 웃었다.원서윤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위위구조가 어떤 이야기인지 인터넷에 확 올려버릴까요?”“젠장. 원서윤 씨, 설마 엘리베이터에서 녹음한 거예요?”정원준은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올랐다.원서윤은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5분 줄게요.”“여보세요? 아까는 10분이라면서요. 여보세요?”원서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원서윤이 옆에 앉은 팀원에게 지시했다.“오늘 그만둔 법무팀 인원들 앞으로 3일간 감시하면서 을과 결탁한 증거를 찾아내 경제사범으로 신고해요. 아는 사람
“뭔가 순서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여 대표님이 먼저 감동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려야죠.”원서윤이 일부러 다친 손을 높게 쳐들었다. 원서윤이 일부러 듣는 사람이 거북하게 웃었다.“민예원 씨는 을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나서도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울면서 도망칠 생각만 했어요. 제2차 협상을 위해 준비한 기획서도 다 다른 곳에서 복사해서 붙인 자료더라고요. 페이퍼 사이트를 이용하는 데는 민예원 씨만 한 고수가 없을걸요?”원서윤은 지금까지 민예원이 싸지른 똥을 치운 것이다. 협상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는데 협상 시작 시간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것 외에는 그녀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정원준은 원서윤의 반박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 결국 법무팀 인원을 몇 명 남겨두고 일이 있다는 핑계로 얼른 병실에서 나갔다.밤.원서윤은 민예원이 싸지른 똥을 치우기 위해 아직도 분주히 돌아쳤다.붕붕.방이연이 카톡을 보내왔다.[누나, 인스타 좀 봐봐. 서프라이즈.]원서윤은 따끔거리는 눈가를 주무르다가 링거 바늘을 건드리는 바람에 피가 수액 튜브로 역류했다.간호사가 들어오더니 한 소리 했다.“원 선생님, 의대 나오신 분이 왜 이렇게 자기 몸 하나 아낄 줄 몰라요?”“미안해요. 최대한 그러느라 노력하는 중이에요.”원서윤이 씁쓸하게 웃더니 아이패드 잠금화면을 풀고 메모장에 적힌 사항을 체크했다. 미완성 사항이 아직 7, 8건은 있었다.연속 일주일을 밤새우면서 완성했지만 아직도 시간이 빠듯했다. 이런 상황에 휴식하면서 몸조리하는 건 사치였다.물론 이 업무는 원래 민예원이 완성해야 할 것들이었다.방이연이 다시 카톡을 보내왔다.[누나, 인스타 좀 보라니까.][알았어.]원서윤이 기분 전환도 할 겸 인스타를 열었다. 열자마자 누에 들어온 건 예쁘장한 그녀가 찍힌 사진이었다. 하지만 각도를 보니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첫 장은 원서윤이 병실 소파에 앉아 쪽잠을 자는 사진이었다. 코멘트에 [자는 모습도 예쁜
하지만 그때 여승재는 여씨 가문 돈이라면 질색했기에 궁핍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대학 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모았고 끼니마다 밥을 사 먹을 돈은 없어서 꼭 한 끼는 빵으로 대체했고 고기보다는 밀가루가 더 많이 들어가 싸기만 한 소시지도 사 먹기 아까워했다.그런 여승재에게 값비싼 캐리어는 사치였다. 하여 원서윤은 고등학교 때부터 몰래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세뱃돈은 물론이고 부모님이 쓰라고 준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 심지어 학교에서 나눠주는 급식도 먹지 않고 급식비까지 다 끌어모았다.그러다 운동회에서 저혈당으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여승재가 병원으로 달려오더니 나를 보자마자 한 소리 했다. 그것도 모자라 원서윤이 먹지 않고 모은 돈으로 산 캐리어를 그녀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다.그 캐리어는 G 브랜드 신상이었는데 생김새가 민예원이 올린 사진과 똑같았다.원서윤은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여승재도 그런 스타일의 캐리어를 좋아하지만 그녀가 사줬다는 사실을 외면하려고 버린 걸 수도 있다.사진 아래에 코멘트까지 달려 있었다.[출장 갔다가 부랴부랴 돌아온 우리 선생님, 욕하기엔 마음이 아파서 결국 한마디도 못 함. 나도 아이도 사랑해~]VIP 병실.원서윤과 야근하던 팀원들이 민예원이 올린 인스타를 보고는 하나같이 미간을 찌푸리며 원망했다.“세상 참 잘 돌아가네요. 잘못한 사람은 아무 걱정 없이 연애나 하면서 두 다리 쭉 뻗고 자는데 우리처럼 본분 지키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잘못한 사람 똥이나 치우고 있다니. 너무 짜증 나는데요?”“잘못한 사람이 사모님인 걸 어떡해요? 안 봐도 뻔하죠.”“사모님? 허. 대표님이 우리 팀에만 몇 번을 왔는데 한 번도 두 사람이 부부라고 직접 인정한 적이 없어요. 그 호칭도 결국에는 본인만 입에 달고 다니는 거잖아요.”팀원들이 불만을 쏟아냈다.다른 팀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대표님이 무뚝뚝해서 그런 거 신경 안 쓸 수도 있죠. 사랑하지도 않는
“아픈 걸 알면서 그런 거야? 원서윤, 너 미쳤지?”여승재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갑지 않았고 매우 부드러웠다. 오히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음 아파하는 듯한 말투였다.원서윤은 잠에서 깰 수가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의식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얼른 눈을 떠야 한다고 지령을 내렸지만 몸이 들어주지를 않았다.입은 마치 대뇌에서 독립해 자아의식이라도 가진 듯이 억울한 말투로 울먹이기 시작했다.“오빠, 왜 서윤이라고 안 불러? 어릴 때는 나 엄청 잘해줬잖아. 내가 크면 나랑 결혼하겠다고 했잖아.”참으로 아름다운 미래였지만 아쉽게도 비극으로 끝났다.원서윤은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아니, 시베리아에 벌거벗은 채로 버려진 것처럼 너무 추웠다. 하여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따듯한 보금자리를 찾았다.“뭐야? 열 난 거야?”여승재가 따듯한 손바닥으로 보물을 다루듯이 원서윤의 이마에 갖다 대고는 온도를 체크했다. 그러더니 원서윤의 목과 등을 만져봤다.원서윤이 간지러웠는지 깔깔 웃었다.“오빠, 장난 그만. 나 열은 안 나는데 요즘엔 자꾸 몸이 춥다? 막 힘들 정도로 몸이 추워. 정말이야.”“원서윤, 사실 나는...”여승재가 뭔가 말하려는데 원서윤이 중도에 잘라버렸다.“오빠, 내가 피라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정원준은 내가 외국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오빠가 죽든 살든 신경 쓰지 않고 매정하게 버렸다고 하는데 사실은 아니야.”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마치 맛이 이상한 어성초에 취두부가 섞여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너무 역겨웠다.원서윤은 가슴을 움켜잡은 채 여승재의 다리에 엎드려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위가 찢어질 듯이 아파 피를 왈칵 토해냈다.“원서윤.”어둠 속에서 여승재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원서윤을 안고 의사에게 가고 싶었지만 원서윤이 손사래를 치며 졸린다고 거절했다.“괜찮아. 오빠. 피라드에 간 첫해에 호적을 올리지 못해서 그럴싸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을 수가
“저희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원서윤은 서둘러 여승재와 선을 그었지만 여승재는 그와는 다른 의미의 말을 내뱉었다.“예원아, 나랑 원서윤 씨 사이는 돌아가서 자세히 설명해줄 테니까 일단은 가자.”원서윤은 왜 여승재가 이렇게 해명할 필요도 없는 일을 모호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서윤은 지금 손도 아프고 속도 불편하며 목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해서 침을 삼킬 때마다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았지만 그래도 애써 웃음을 지으며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사모님, 대표님이 아까 그렇게 말한 건 다 일부러 사모님 화나게 만들려고 그랬던 걸 거에요.”“나를 일부러 화나게 한다고요?”원서윤의 말에 민예원은 눈에 매달았던 눈물을 닦아내며 눈을 크게 떴다.“네, 사모님이 본인 몸도 소중하게 안 다루시니까 대표님이 화나서 일부러 질투하게 만들려고 그런 말을 한 거예요. 남자들 유치한 거 아시잖아요, 그냥 그런 마음에서 친 장난이죠.”“진짜요?”원서윤의 말에 활짝 웃은 민예원은 바로 여승재의 품으로 달려가 안기며 그의 목에 자신의 말랑한 볼을 대고 부비적거리며 말했다.“선생님, 진짜 나빠요! 그래도 내가 이렇게 애교부리면 이제 화 안 낼 거죠?”‘이러면 이제 화 푸는 거지, 오빠?’어릴 적 여승재가 화를 낼 때마다 원서윤도 똑같은 말을 하곤 했었다.원씨 집안이 파산하고 여승재가 모든 사실을 알려주었을 때도 원서윤은 모든 자존심을 다 버리고 여승재의 목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오빠, 다 우리 잘못인 거 아는데 이렇게 화내지 마... 우리 아빠가 그때 잠깐 미쳤었나 봐, 그래서 잘못한 건 맞는데... 오빠도 너무 화만 내지 말고, 이렇게 충동적으로 나오면 안 되는 거잖아... 일단 진정해봐 오빠, 제발...”하지만 여승재는 눈물겨운 원서윤의 애원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었다.원서윤이 여승재에 대한 마음을 접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일이 있었던 5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그때 여승재는 제 품에 들어온
“알아요, 감사 인사하는 거. 그래서 제가 답례로 조언 하나 해준 거잖아요, 문제 있나요?”원서윤은 환한 미소 뒤에는 그녀의 진짜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미소는 그야말로 그녀의 가면이 되어버린 것이다.여승재는 그런 원서윤을 보며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내 사람한테 뭐라고 할 권리, 원서윤 씨한테는 없어요.”“그럼 이만 가보세요.”원서윤은 문을 막고 서 있는 정원준을 밀어내고는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조심히 가세요.”“원서윤 씨, 그러다 진짜 후회해요.”여승재는 원서윤을 한번 노려보더니 씩씩대며 밖으로 향했고 민예원은 그런 여승재를 달래듯 말했다.“오빠, 화 풀어요. 언니가 아직 사회 생활경험이 부족해서 말을 돌려서 할 줄을 모르나 봐요, 내가 앞으로 잘 가르치면 나아질 거니까 걱정 마요.”그들의 대화 소리가 점차 작아지자 원서윤은 함께 야근한 팀원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따로 10만 원의 보너스를 계좌 이체해주었다.물론 팀원들은 당연히 거절했지만 원서윤은 웃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야근 수당이니까 그냥 받아둬, 어차피 다 세금 올려가야 돼.”유머러스한 원서윤의 말에 다들 웃다 보니 야근 때문에 쌓였던 불만도 눈 녹듯이 사라졌고 팀 분위기는 전보다 더 좋아졌다.그런데 그때, 민예원이 팀원들이 다 있는 단톡방에서 문자 하나를 남겼다.[팀원분들, 야근이나 출근이나 다들 외적인 부분에 신경 좀 써주세요. 성원 얼굴에 먹칠하면 안 되니까 주의 부탁드릴게요.]곧이어 민예원은 오늘 원서윤과 함께 야근했던 팀원들의 이름을 골뱅이 뒤에 붙여 하나하나 보내기 시작했다.마지막으로 원서윤의 이름까지 보내고 나서 민예원은 한마디 더 보탰다.[원 비서가 잘 좀 체크해요.]그 문자를 본 VIP 진료실 직원들은 다 웃음을 터뜨렸고 직원 중 하나는 아예 민예원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아, 진짜 카리스마 있는 척하는 것도 이젠 질려요 정말.”그때 다른 팀원이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보더니 원서윤을 향해 물었다.“원 선생님, 제가 입은 게 진짜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믿기 힘든 모습에 정원준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이게 뭐예요...”“원준 씨, 난 이미 여승재한테 크게 실망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기대할 것도 없고요. 다들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엮이지 않고 살고 싶어요. 원준 씨도 나 도와줘요.”원서윤은 유난히도 길었던 그 날 밤을 떠올리며 말했다.그에 정원준이 밖으로 나가기 전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보탰다.“서윤 씨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승재도 5년 동안 그렇게 잘 지낸 건 아니에요.”그가 나가고 진료실의 문이 다시 닫혔다.그렇게 진료실 안에는 피가 흐르는 손을 꽉 쥐고 있는 원서윤만 남게 되었다.그때 누군가가 보낸 문자에 의해 그녀의 핸드폰이 울려왔다.[원서윤, 너 대체 언제까지 나 피해 다닐 거야.]그 문자를 보자마자 원서윤은 무언가 억눌러 왔던 것이 터진 사람처럼 핸드폰을 바닥으로 내던지며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진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참혹했던 그 날이, 죽지 못해 살았던 지난 5년이 원서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천천히 그녀의 목을 옥죄여 와 원서윤은 숨을 쉬는 것조차도 버거웠고 그날의 기억은 영영 벗어나지 못할 지옥처럼 느껴졌다.원서윤은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홀로 흐느끼며 중얼거렸다.“유지훈, 그냥 나 좀 내버려 둬,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한편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여승재는 사람이 드나든 흔적에 바로 경찰에게 신고했고 소식을 들은 정원준도 여승재의 집으로 달려갔다.“강도 들었다며? 뭐 사라진 건 있어?”“없어.”다리를 벌린 채 소파에 앉아 열 손가락을 맞잡고 있던 여승재는 지끈거리는 머리에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맞은편 벽을 보며 말했다.“방이연이 돌아온 것 같아. 걔에 대해서 알아보라 했던 건 어떻게 됐어?”정원준이 그 벽으로 고개를 돌리자 빨간 글씨로 쓰인 문장 하나가 보였다.[여승재, 네가 짓밟았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너한테 복수할 거야. 죽는 날이나 기다리고 있어.]그 문장을 보
원서윤은 인터뷰를 할 때도 민예원에게 시선이 집중되게 하려고 일부러 뒤로 빠져있었다.화장도 연하게 하고 옷도 오피스 정장으로 챙겨입은 원서윤은 프랑스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드레스를 입고 있는 민예원에 묻힐 게 당연했지만 그냥 이 인터뷰와 미팅들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직장인은 그런 거에 딱히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원서윤은 그저 빨리 이번 계약 건을 잘 마무리 지어 여승재 손에 들어간 아빠의 별장을 찾아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 시각, 터지는 플래시를 받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던 민예원이 태연하게 말했다.“네, 프로젝트 책임자를 역임하기에는 제 나이가 많이 어리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선생님이신 여승재 대표님이 남들보다 능력만 뛰어나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다독여주셔서 이렇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기자는 가십거리를 만들기 위해 바로 반박하며 물었다.“그런데 제가 들은 바로는 첫 번째 미팅에 이사님이 늦으셔서 비서분이 조정하시고 두 번째 미팅 때도 이사님은 중요한 서류 잃어버리셨는데 그것도 비서분이 해결했다고 하던데요.”기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메라의 초점은 민예원이 아닌 원서윤에게로 맞춰졌다.그에 미간을 찌푸린 원서윤이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생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건 기자가 제대로 된 매체 사람이 아니라 가십거리를 만드는 데만 집중해서이거나 누군가 일부러 사실을 알고 민예원이 망신당하게 만들려고 꾸민 일, 이 두 가지 가능성뿐이었다.그에 원서윤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빠르게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민예원은 때와 장소도 가리지 못하고 원서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힌 채 따지고 있었다.“언니, 그건 비밀로 하기로 했던 거잖아요, 어떻게...”“이사님, 배 불편하시지 않으세요?”원서윤이 내뱉은 뜬금없는 말에 민예원은 더 어이없어하며 물었다.“언니, 왜 말을 돌려요? 찔려서 그러는 거예요?”“걱정 마세요 이사님, 바로 의료진들 부를 테니까 이사님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