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 것을 싫어하던 원서윤은 사람들 틈에 끼지 않고 사거리 방향으로 걸어갔는데 로비 앞에 멈췄던 차가 다시 원서윤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처음에는 우연이겠거니 싶어서 별 신경을 안 쓰던 원서윤도 1, 2분 정도 계속 따라오는 차에 일부러 걸음을 멈추어봤다.그러자 차도 바로 멈추었고 원서윤이 다시 걸으니 차가 출발하는 것이었다.반사 필름으로 선팅돼 있는 차창 때문에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에도 원서윤의 평온했던 심장이 세차게 뛰어댔다.그때 차창이 내려졌고 여전히 신사다운 겉모습을 하고 있는 유지훈이 높은 사람답게 뒷좌석에 기대앉아 원서윤을 향해 웃고 있었다.그렇게 보기만 해도 역겨운 그 얼굴이 예고도 없이 원서윤 앞에 나타나 버린 것이다.“서윤아,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네가 왜 여깄어? 왜 또 너야?!”유지훈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원서윤이 뒤에 있는 나무도 보지 못하고 뒷걸음질 친 탓에 등이 나무에 부딪혀버렸다.그 때문에 전해진 통증과 유지훈을 보니 떠오르는 기억에 원서윤은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졌다.그때 유지훈이 차에서 내리더니 원서윤을 부축하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언뜻 보면 다정해 보이는 둘이었지만 원서윤은 유지훈에게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하지만 그럴수록 유지훈은 원서윤을 꽉 껴안으며 그녀의 귀에 자신의 구레나룻을 붙이고 오랫동안 사랑한 부부 사이를 연출했다.유지훈의 미소는 어둠을 밝혀줄 태양처럼 찬란하고 뜨거우며 화사하기까지 했지만 원서윤에게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온 힘을 다해 도망쳤던 지옥이 다시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서윤아, 화나서 도망간 것까진 이해해. 그날은 내가 잘못했어. 그렇다고 아들 그렇게 버려두고 집에 안 들어온 건 네가 잘못한 거야.”여승재와 함께 피라드에서 전 세계 탑10 미성에 선정된 만큼 유지훈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지만 원서윤에게만은 끔찍한 기억이었기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어 통증으로 두려움을 무마시키며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유지
그 냄새에 원서윤은 가슴이 막혀와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그때 한쪽에서 민예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가 어떻게 여길 들어왔어요?”민예원 뒤로는 그녀 대신 가방을 들고 서 있는 여승재가 보였다.곧 강연을 하기 위해서인지 조금 더 짙은 색 정장으로 갈아입고 셔츠 소매가 보이게 길이를 조절한 여승재는 정말 누가 봐도 반할 것 같은 외모와 피지컬의 소유자였다.그때 유지훈이 앞으로 나서며 여승재와 악수를 했다.“여 대표님, 훌륭한 분이라고 성함만 들어봤지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네요.”“아닙니다, 유지훈 씨이야 말로 IT업계의 일인자 아닙니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각 업계의 일인자들의 만남이라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격식 있어 보였지만 사실은 서로 지지 않으려고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그 모습에 여승재의 팔짱을 낀 채 촉촉한 눈망울을 두어 번 깜빡이던 민예원도 유지훈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다.“안녕하세요, 저는...”“여기는 제 아내, 원서윤입니다. 두 분은 이미 아는 사이시죠?”유지훈은 백조처럼 차려입은 민예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웃으며 말하자 민예원은 금세 울상을 지어 보였다.하지만 더 이상의 잡음은 만들고 싶지 않았던 원서윤이 유지훈의 팔을 잡으며 속삭였다.“그만해, 나랑 여승재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면서 왜 이래, 다들 곤란해지잖아.”“응? 여보랑 여 대표님은 남매 아니었어? 그것 말고도 내가 모르는 다른 사이가 더 있어?”결국 모든 걸 까발리려는 듯 말하는 유지훈에 민예원은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려댔다.“언니, 우리 선생님이랑 진작부터 아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왜 나한테 안 말해줬어요? 설마... 나한테 뭐 숨길 게 있어서 그런 거예요?”“아가씨, 입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면 내가 여 대표님 대신 가르쳐 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좀 도와줄까요?”서른여섯의 나이로 이미 사회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유지훈이 풍기는 카리스마와 아우라는 갓 학교를 졸업한 민예원같이 순진한 사람이 감
여승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강연을 못 하게 되자 그를 보러온 많은 투자자들이 유감을 표했지만 덕분에 유지훈의 등장이 큰 화젯거리가 될 수 있었다.“소크 테크놀로지는 피라드에서 시작한 회사입니다. 지금의 소크 테크놀로지가 있기까지 늘 저를 믿고 지지해주셨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저랑 결혼한 지 올해로 3년이 되는 아내가 있는데요, 오늘날의 소크 테크놀로지가 있을 수 있었던 건 다 제 아내 덕분인 것 같습니다.”나스닥 IPO에 상장하기 전 소크 테크놀로지의 기업 가치는 70조였는데 그런 기업이 상장에까지 성공한다면 그건 IT업계에 새 시대를 불러오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제 아내가 고향을 너무 그리워해서 경항시에 돌아오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남편으로서 아내의 뜻에 따라주고 싶어서 소크 테크놀로지와 함께 조국으로 돌아오려고 합니다.”유지훈의 강연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큰 파장이 일었다.해외에서 상장할 기회를 저버리고 오직 아내를 위해 소크 테크놀로지의 본부까지 이전하며 국내에서 새로 시작하겠다는 유지훈의 사랑꾼 면모는 기삿거리로 삼기 딱 좋은 소재였다.많은 사람들이 실명까지 공개하며 도대체 누가 유지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내인지 궁금해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건 그들을 향한 비판이었다.소크 테크놀로지에게 있어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인데 사랑 때문에 그 좋은 기회를 저버리는 유지훈과 이기적이게 남편의 사업도 신경 쓰지 않고 고향에 돌아와 버린 원서윤 둘 다 어리석다고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있었다.정상회담이 끝나자 유지훈은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고 원서윤을 감싸며 그곳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이미 퇴근한 기사에 유지훈이 직접 운전을 하게 되자 원서윤은 뒷좌석에 타려 했지만 이미 조수석 문을 열어놓은 유지훈이 입을 열었다.“서윤아, 넌 왜 자꾸 내 기분을 나쁘게 해?”“유지훈, 너 나스닥 상장 포기하고 소크 테크놀로지 국내로 이전한 거 나 때문이 아니잖아, 난 그냥 네 핑계일 뿐이지?”차 옆
친인척 하나 없는 피라드의 매정한 거리에서 원서윤은 정말 죽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이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려던 그때, 원서윤 앞에 신사다운 남자 하나가 나타나서 웃으며 말했다.“죽고 싶어요? 며칠만 더 살아주면 안 돼요? 버리려고 했던 목숨 나 좀 빌려줘요, 나한테 당신이 너무 필요해요.”그 남자의 말에 홀려 원서윤은 또 다른 지옥으로 제 몸을 내던졌다.“아!”“아아아!”원서윤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비싸 보이는 거, 아니 던질 수 있는 건 모조리 집어던지고 깨부쉈다.그렇게 원서윤은 산발이 된 채로 방바닥에 주저앉았다.두려운 것도 아니었고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았다.그저 원서윤은 자신이 살아왔던 세상이 너무 추워서,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추워서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또 다른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혀왔다.그때 원서윤의 핸드폰이 울렸고 여승재에게서 온 친구신청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원서윤, 왜 나 차단해?]여승재가 다른 번호로 보낸 친구신청임을 알기에 원서윤은 무시했지만 여승재는 포기하지 않고 1, 2분 건너 한 번씩 친구신청을 보내왔다.[다시 추가해.][별장 안 갖고 싶어?][왜 전화도 안 받는 거야?][원서윤, 보고 싶어.][우리 계속 보던 데서 기다릴게.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할 말이 있어.]“원 선생님? 원 선생님!”“원 선생님이 자해를 하시다가 과다출혈로 쓰러진 것 같아, 얼른 병원으로 모셔!”원서윤이 시끄럽다고 컴플레인을 넣었던 사람들도 피를 흘리며 실려 나가는 그녀를 보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그 와중에 원서윤의 핸드폰은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 밟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이튿날 아침, 커튼을 뚫고 얼굴에 비치는 눈 부신 햇살에 원서윤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곧바로 들려오는 유지훈의 목소리에 원서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서윤아, 이젠 이런 식으로 나 협
유지훈한테도 무시당하던 민예원은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을 하며 형부라는 호칭까지 입에 올렸다.여승재는 그녀의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검은 눈동자로 원서윤만 주시하고 있었다.오늘은 정장이 아니라 편안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위에 새겨져 있던 로고도 여러 번의 세탁 탓에 옅어져 있었다.하지만 여승재 특유의 고귀한 아우라 덕분에 유지훈처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과 비교해도 그는 전혀 손색이 없었다.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는 두 사람이 만나니 병실에는 미묘한 기운이 감돌았다.그에 원서윤이 다급히 나서며 말했다.“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저 괜찮으니까 두 분 이제 가보셔도 돼요.”“언니, 아까 들어올 때 두 분 안고 계시던데, 저희가 방해한 거예요?”원서윤은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지만 그게 멀리서 보면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기도 했다.민예원은 눈치 없이 둘의 사이를 넘겨짚으며 계속해서 떠들어대고 있었다.“언니, 진짜 너무 부러워요. 형부가 언니를 위해서 회사까지 다 옮겼잖아요. 전에 언니랑 이연 씨 사이 오해해서 미안해요.”“이연?”민예원의 말에 유지훈이 미간을 찌푸리자 원서윤은 땀이 가득한 손을 꼭 말아쥐며 태연자약한 척 대답했다.“그냥 친구야,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선생님, 언니랑 형부 봐요. 진짜 우리랑 아기도 보는 앞에서 이렇게 사랑을 나누잖아요, 보는 저도 부끄러운데.”민예원이 여승재의 품을 파고들며 말하자 여승재도 그녀의 볼을 쓰다듬어주며 대꾸했다.“난 너한테 잘 안 해줬어? 응?”“아이, 진짜. 다들 나이 많은 남자가 더 잘해준다고 하긴 하던데 나는 우리 선생님도 엄청 잘해주는 편이라고 생각해요!”민예원은 아양을 떨며 원서윤에게 자랑질을 하기 시작했다.“언니, 우리 선생님 젊고 잘생기셨지 그리고 사업도 형부 못지 않게 잘하지, 너무 대단하지 않아요?”“사모님, 이만...”원서윤은 민예원을 빨리 돌려보내려 했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지훈이 손을 들어 올리더니 여승재가 보는 앞에서 민
다른 쪽 진료실에서는 민예원이 하도 울어대서 여승재는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오빠, 내가 뭐라고 나 때문에 유지훈 씨랑 싸우기까지 해요, 언니가 너무 매정하게 대하니까 유지훈 씨가 오해한 게 분명해요.”“예원아, 넌 일단 호텔에 가 있어.”정원준이 오자마자 비서더러 민예원을 호텔로 데려다주라고 하는 여승재였다.민예원이 나가는 걸 본 정원준은 하고 싶은 말들을 필터링 없이 뱉어내기 시작했다.“예원 씨 때문이야 아니면 원서윤 씨 때문이야? 네가 피라드에 사람 보내서 두 사람 관계에 대해 조사했다는 거 알아. 그 뒤로 너 이상해졌어, 도대체 뭐 때문인 건데?”“유지훈 그 사람 아들이야.”“누구?”감이 잡히지 않아 묻는 정원준에 유지훈이 주먹을 으스러질 정도로 꽉 쥐며 말했다.“유건훈, 성동건설 대표.”“뭐?”여승재의 말에 깜짝 놀란 정원준이 다급히 물었다.“그럼 너희 집에 있던 서윤 씨 동생이 갖고 놀던 인형이 유지훈이 널 죽이려고 묻어둔 거란 말이야?”“그건 몰라, 아직 조사중이라서. 경찰서 쪽에 연락해서 성동건설 일 크게 만들라고 전해.”“진짜?”걱정스레 묻는 정원준에도 여승재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유지훈이 어떤 패를 쥐고 있는 지 알아야겠어.”“너 이렇게 하는 이유가 설마 서윤 씨...”“나랑 예원이 배 속에 있는 내 아이를 위해서야.”상처 처치를 마친 여승재에 정원준도 나가려 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굳이 뒤돌아 여승재를 보며 말했다.“승재야, 네가 서윤 씨한테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는데 예원 씨가 임신한 건 네 자식이야. 예원 씨도 앞으로 네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고.”“알아.”여승재는 생각을 알 수 없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일주일 뒤, 유지훈이 경찰에 소환됐다는 기사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지만 그 이유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그 와중에 3차 협상이 끝나자 민예원이 울상을 지은 채로 원서윤에게 다가와 말했다.“언니, 미안해요. 저는 진짜 괜찮은데 우리 선생님이 화가 안 풀렸는지 형부를
“누구라고?”워낙 거짓말을 못 하는 방이연이 이런 표정을 짓는다는 건 원수빈이라는 이름이 그만큼 생소하다는 뜻이었다.하지만 DNA 검사 보고서에는 방이연 몸 안에 전혀 다른 두 종류의 DNA가 있는데 하나는 원서윤과 아무 관련도 없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98%나 일치하는 것이었다.“골수를 이식하면 두 DNA가 자연스레 섞여버려서 어떤 게 원래 가지고 있던 거고 어떤 게 이식받은 건지 분간하기 어려워.”“그럼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방이연이 제 동생인데 다른 사람의 골수를 이식받은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수빈이가 방이연한테 골수를 이식해줬을 수도 있다는 뜻이죠?”동생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복잡해지는 상황에 원서윤의 목소리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버렸다.“서윤아, 방이연 씨 암세포가 그렇게 안정적인 건 아니야, 백혈병이 언제고 다시 재발할 수 있는 상태야. 그러니까 일단은 기억해내라고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천천히 시도해봐.”그리고 방이연도 기억을 잃은 적이 있으니 원서윤도 저 혼자 급해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누나?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창밖만 바라봐? 유지훈 걱정돼서 그래? 아니면...”차가 호텔 주차장을 벗어나자 원서윤은 애써 웃으며 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 동생 생각나서 그랬어.”“누나한테 친동생이 있었어?”원서윤은 고개를 들고 백미러로 호기심에 차 묻는 방이연의 맑은 눈을 바라봤다.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눈에 원서윤은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응, 이름은 원수빈이고 나이는 너만 할 거야.”“지금 어딨어? 난 의료학원 다닐 때 다들 나 고아라고 나랑은 안 놀아줘서 친구도 없는데.”부끄러운 듯 말하는 방이연은 아무리 남자라도 자신도 외로울 때가 있으니 원수빈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그걸 알아챈 원서윤은 미소를 짓더니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수빈이는 지금 여기 없어, 나중에 오면 너한테 꼭 소개해줄게. 둘 다 내 동생들이니까 둘
원서윤은 당장이라도 대학생들을 속여 몸을 팔게 한 이 악의 근거지를 신고하려 했다.방이연이 제 동생일 수도 있는데 그런 아이가 이런 곳에서 일을 하며 연명을 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원서윤이 동생을 잘 지켰었다면 둘이 헤어질 일도 없었을 텐데 그녀는 이 모든 게 제 탓인 것만 같아 더 마음이 아팠다.“저기요, 지금 누가 누굴 팔았다는 거예요? 누가 팔아넘긴 사람한테 고마워한다는 건지 정말.”원서윤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신고를 하려 할 때 담배를 오래 피워서인지 목소리가 다 갈라진 남자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원서윤이 뒤돌아봤는데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무거워졌다.남자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지 않고 오히려 방이연과 비슷한 또래 같아 보였다.그는 화려한 꽃무늬 셔츠를 입은 채 단추를 두세 개 풀어헤치고 굳은 표정으로 원서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드러난 쇄골과 탄탄한 가슴근육에는 밝은 조명 때문에 생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보스!”남자를 본 방이연은 원서윤이 말릴 새도 없이 큰 강아지마냥 남자에게 뛰어가 안겼고 남자 또한 익숙한 듯 원서윤이 그랬던 것처럼 방이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간호사 됐다며? 할만해?”“괜찮아요, 야근이 좀 많아서 힘들긴 해요.”민예원이 부원장이 된 뒤로 이상하게 산부인과만 야근이 잦아서 방이연을 포함한 간호사들 모두 불만이 만만치 않게 쌓여있는 상태였다.남자는 별말 없이 웃다가 저를 잔뜩 경계하고 있는 원서윤을 보며 물었다.“저분은...”“우리 누난데 원서윤이라고 산부인과 치프님이세요.”자랑스러운 듯 말하는 방이연이었지만 원서윤의 이름을 듣자마자 남자는 눈에 띄게 놀라며 몸을 떨었다.그에 원서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우리가 아는 사이였나요?”“그럴 리가요.”금세 원래 표정대로 돌아온 남자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저는 이 클럽 사장 연우진이라고 합니다, 물론 당신은 절 애들 몸이나 팔게 하는 범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