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원서윤은 서둘러 여승재와 선을 그었지만 여승재는 그와는 다른 의미의 말을 내뱉었다.“예원아, 나랑 원서윤 씨 사이는 돌아가서 자세히 설명해줄 테니까 일단은 가자.”원서윤은 왜 여승재가 이렇게 해명할 필요도 없는 일을 모호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서윤은 지금 손도 아프고 속도 불편하며 목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해서 침을 삼킬 때마다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았지만 그래도 애써 웃음을 지으며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사모님, 대표님이 아까 그렇게 말한 건 다 일부러 사모님 화나게 만들려고 그랬던 걸 거에요.”“나를 일부러 화나게 한다고요?”원서윤의 말에 민예원은 눈에 매달았던 눈물을 닦아내며 눈을 크게 떴다.“네, 사모님이 본인 몸도 소중하게 안 다루시니까 대표님이 화나서 일부러 질투하게 만들려고 그런 말을 한 거예요. 남자들 유치한 거 아시잖아요, 그냥 그런 마음에서 친 장난이죠.”“진짜요?”원서윤의 말에 활짝 웃은 민예원은 바로 여승재의 품으로 달려가 안기며 그의 목에 자신의 말랑한 볼을 대고 부비적거리며 말했다.“선생님, 진짜 나빠요! 그래도 내가 이렇게 애교부리면 이제 화 안 낼 거죠?”‘이러면 이제 화 푸는 거지, 오빠?’어릴 적 여승재가 화를 낼 때마다 원서윤도 똑같은 말을 하곤 했었다.원씨 집안이 파산하고 여승재가 모든 사실을 알려주었을 때도 원서윤은 모든 자존심을 다 버리고 여승재의 목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오빠, 다 우리 잘못인 거 아는데 이렇게 화내지 마... 우리 아빠가 그때 잠깐 미쳤었나 봐, 그래서 잘못한 건 맞는데... 오빠도 너무 화만 내지 말고, 이렇게 충동적으로 나오면 안 되는 거잖아... 일단 진정해봐 오빠, 제발...”하지만 여승재는 눈물겨운 원서윤의 애원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었다.원서윤이 여승재에 대한 마음을 접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일이 있었던 5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그때 여승재는 제 품에 들어온
“알아요, 감사 인사하는 거. 그래서 제가 답례로 조언 하나 해준 거잖아요, 문제 있나요?”원서윤은 환한 미소 뒤에는 그녀의 진짜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미소는 그야말로 그녀의 가면이 되어버린 것이다.여승재는 그런 원서윤을 보며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내 사람한테 뭐라고 할 권리, 원서윤 씨한테는 없어요.”“그럼 이만 가보세요.”원서윤은 문을 막고 서 있는 정원준을 밀어내고는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조심히 가세요.”“원서윤 씨, 그러다 진짜 후회해요.”여승재는 원서윤을 한번 노려보더니 씩씩대며 밖으로 향했고 민예원은 그런 여승재를 달래듯 말했다.“오빠, 화 풀어요. 언니가 아직 사회 생활경험이 부족해서 말을 돌려서 할 줄을 모르나 봐요, 내가 앞으로 잘 가르치면 나아질 거니까 걱정 마요.”그들의 대화 소리가 점차 작아지자 원서윤은 함께 야근한 팀원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따로 10만 원의 보너스를 계좌 이체해주었다.물론 팀원들은 당연히 거절했지만 원서윤은 웃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야근 수당이니까 그냥 받아둬, 어차피 다 세금 올려가야 돼.”유머러스한 원서윤의 말에 다들 웃다 보니 야근 때문에 쌓였던 불만도 눈 녹듯이 사라졌고 팀 분위기는 전보다 더 좋아졌다.그런데 그때, 민예원이 팀원들이 다 있는 단톡방에서 문자 하나를 남겼다.[팀원분들, 야근이나 출근이나 다들 외적인 부분에 신경 좀 써주세요. 성원 얼굴에 먹칠하면 안 되니까 주의 부탁드릴게요.]곧이어 민예원은 오늘 원서윤과 함께 야근했던 팀원들의 이름을 골뱅이 뒤에 붙여 하나하나 보내기 시작했다.마지막으로 원서윤의 이름까지 보내고 나서 민예원은 한마디 더 보탰다.[원 비서가 잘 좀 체크해요.]그 문자를 본 VIP 진료실 직원들은 다 웃음을 터뜨렸고 직원 중 하나는 아예 민예원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아, 진짜 카리스마 있는 척하는 것도 이젠 질려요 정말.”그때 다른 팀원이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보더니 원서윤을 향해 물었다.“원 선생님, 제가 입은 게 진짜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믿기 힘든 모습에 정원준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이게 뭐예요...”“원준 씨, 난 이미 여승재한테 크게 실망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기대할 것도 없고요. 다들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엮이지 않고 살고 싶어요. 원준 씨도 나 도와줘요.”원서윤은 유난히도 길었던 그 날 밤을 떠올리며 말했다.그에 정원준이 밖으로 나가기 전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보탰다.“서윤 씨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승재도 5년 동안 그렇게 잘 지낸 건 아니에요.”그가 나가고 진료실의 문이 다시 닫혔다.그렇게 진료실 안에는 피가 흐르는 손을 꽉 쥐고 있는 원서윤만 남게 되었다.그때 누군가가 보낸 문자에 의해 그녀의 핸드폰이 울려왔다.[원서윤, 너 대체 언제까지 나 피해 다닐 거야.]그 문자를 보자마자 원서윤은 무언가 억눌러 왔던 것이 터진 사람처럼 핸드폰을 바닥으로 내던지며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진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참혹했던 그 날이, 죽지 못해 살았던 지난 5년이 원서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천천히 그녀의 목을 옥죄여 와 원서윤은 숨을 쉬는 것조차도 버거웠고 그날의 기억은 영영 벗어나지 못할 지옥처럼 느껴졌다.원서윤은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홀로 흐느끼며 중얼거렸다.“유지훈, 그냥 나 좀 내버려 둬,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한편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여승재는 사람이 드나든 흔적에 바로 경찰에게 신고했고 소식을 들은 정원준도 여승재의 집으로 달려갔다.“강도 들었다며? 뭐 사라진 건 있어?”“없어.”다리를 벌린 채 소파에 앉아 열 손가락을 맞잡고 있던 여승재는 지끈거리는 머리에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맞은편 벽을 보며 말했다.“방이연이 돌아온 것 같아. 걔에 대해서 알아보라 했던 건 어떻게 됐어?”정원준이 그 벽으로 고개를 돌리자 빨간 글씨로 쓰인 문장 하나가 보였다.[여승재, 네가 짓밟았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너한테 복수할 거야. 죽는 날이나 기다리고 있어.]그 문장을 보
원서윤은 인터뷰를 할 때도 민예원에게 시선이 집중되게 하려고 일부러 뒤로 빠져있었다.화장도 연하게 하고 옷도 오피스 정장으로 챙겨입은 원서윤은 프랑스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드레스를 입고 있는 민예원에 묻힐 게 당연했지만 그냥 이 인터뷰와 미팅들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직장인은 그런 거에 딱히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원서윤은 그저 빨리 이번 계약 건을 잘 마무리 지어 여승재 손에 들어간 아빠의 별장을 찾아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 시각, 터지는 플래시를 받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던 민예원이 태연하게 말했다.“네, 프로젝트 책임자를 역임하기에는 제 나이가 많이 어리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선생님이신 여승재 대표님이 남들보다 능력만 뛰어나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다독여주셔서 이렇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기자는 가십거리를 만들기 위해 바로 반박하며 물었다.“그런데 제가 들은 바로는 첫 번째 미팅에 이사님이 늦으셔서 비서분이 조정하시고 두 번째 미팅 때도 이사님은 중요한 서류 잃어버리셨는데 그것도 비서분이 해결했다고 하던데요.”기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메라의 초점은 민예원이 아닌 원서윤에게로 맞춰졌다.그에 미간을 찌푸린 원서윤이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생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건 기자가 제대로 된 매체 사람이 아니라 가십거리를 만드는 데만 집중해서이거나 누군가 일부러 사실을 알고 민예원이 망신당하게 만들려고 꾸민 일, 이 두 가지 가능성뿐이었다.그에 원서윤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빠르게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민예원은 때와 장소도 가리지 못하고 원서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힌 채 따지고 있었다.“언니, 그건 비밀로 하기로 했던 거잖아요, 어떻게...”“이사님, 배 불편하시지 않으세요?”원서윤이 내뱉은 뜬금없는 말에 민예원은 더 어이없어하며 물었다.“언니, 왜 말을 돌려요? 찔려서 그러는 거예요?”“걱정 마세요 이사님, 바로 의료진들 부를 테니까 이사님이랑
“이사님, 적어도 양심이란 게 있으면 이러면 안 되죠, 원 비서님이 서포트 안 했으면 이 프로젝트 진작에 망했어요.”한우영이 먼저 말을 꺼내자 다른 팀원들도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그러니까요, 이사님은 뭐 서민체험 그런 거 하려고 일하러 나오시는 거예요? 정말 직장인처럼 열심히 임하면서 성과를 내보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해요?”“예원 씨, 만약 놀고 싶으면 그냥 아예 놀아요 일에는 신경 끄고. 이렇게 중요한 일들은 알아서 원 비서님한테 일임하면 서로 편하고 좋잖아요, 그럼 우리 야근도 좀 줄어들 텐데.”그에 시청 주요 인사들도 동의를 표했다.“그래, 민 이사 지금 안 그래도 임신 중인데 이번 프로젝트만 끝내고 조금 쉬어. 어차피 아랫사람들이 잘하면 다 민 이사 덕이잖아. 서윤 씨 민 이사 공로 탐낼 사람 아니니까 믿고 맡겨.”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된 원서윤은 시청 의료부문에서도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그에 이렇게 추천까지 받은 것인데 민예원은 잔뜩 토라진 채 원서윤한테 자리를 뺏긴 사람마냥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이내 민예원은 마이크를 던져버리고 이를 꾹 악물고 치마를 펄럭이며 걸어갔고 그걸 본 한우영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또 저러네 진짜, 아니 아직도 본인이 어린앤 줄 아나 봐요, 유치하다는 생각도 안 드나?”그에 시청 인사는 웃으며 답했다.“하하, 아직 어린애 맞죠, 졸업하자마자 결혼부터 했는데 남편이 그렇게 잘 해주니 성숙해지려면 멀었죠. 정말 원서윤 씨랑은 비교도 안 되네요.”그런 뜻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 말을 듣자마자 원서윤은 여승재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민예원과 찬밥신세인 저를 애초에 비교도 안 된다고 생각부터 들었다.여승재의 눈에 원서윤은 그저 마음대로 밟을 수 있는 잡초일 것 같아 원서윤은 이내 씁쓸해졌다.그날 저녁 한우영은 바로 침입한 가짜 기자를 경찰에 넘겼다.배후는 아직 조사 중에 있었지만 원서윤은 아마 거래처와 관련이 있는 일 같았다.하지만 거래처에서 민예원을 망신 주고 자신을 추
그래, 이건 분명히 꿈이었다.정원준한테 들은 말에 의하면 여승재는 민예원을 위해 제 목숨도 바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 같았는데 그런 그가 자신의 귀에 대고 노래를 불러준다는 사실을 원서윤은 믿을 수가 없었다.“좀 괜찮아졌어?”꿈이라서 그런가 여승재의 말투는 전처럼 날이 서 있지 않았다.아예 자신을 안아 침대에 눕히는 그의 행동에 원서윤은 어차피 꿈인 김에 한 번쯤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보고 싶었다.그래서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인 원서윤은 여전히 잘생긴 여승재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오빠, 가까이 좀 와봐.”“왜.”여승재가 가까이 다가오자 원서윤은 빠르게 그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그러고는 미친 여우처럼 웃어대며 말했다.“여승재, 내 지난 5년이 어땠는지 네가 알기나 해? 돌아오자마자 우리 아빠가 준 별장으로 네 와이프랑 같이 나 괴롭혔잖아.”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원서윤은 두 손으로 여승재의 볼을 잡고 늘리며 그동안의 울분을 토해냈다.“여승재, 이거 하나는 똑똑히 알아둬, 5년 전의 나한테 여승재는 엄청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말을 하던 원서윤은 갑자기 여승재의 얼굴에 가슴이 닿아버릴 정도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지금 넌 나한테 상종할 가치도 없는 놈이야!”여승재가 민예원을 사랑하든 말든 원서윤은 더 이상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다.그녀가 원하는 건 그에게서 아빠의 별장을 되돌려받아서 동생을 데려오는 것 그뿐이었고 여승재의 가치고 그게 전부였다.“여승재, 나한테 넌 아무것도 아니야.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라고...”흐르던 눈물도 말라붙어버렸고 목도 다 쉬어버렸다.그렇게 정신줄을 놓고 분풀이를 하고 나니 원서윤은 기진맥진해서 침대로 쓰러지듯 누워버렸다.원서윤이 마지막으로 들은 건 조롱 섞인 여승재의 말이었다.“원서윤, 네가 했던 말 잊었어? 증오도 미련이 남아서 존재하는 거랬잖아. 넌 날 증오하는 만큼 사랑하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았어?”그날 밤 원서윤은 지독한 악몽에 시달렸다.꿈속에서 그녀
그에 체념한 듯 헛웃음을 흘린 원서윤은 운동이라도 해서 이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리려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그런데 문을 나서기도 전에 민예원이 보낸 인사 이동결과에 프로젝트 단톡방에 문자가 수도 없이 쌓이고 있었다.원서윤을 제외한 모든 팀원들을 프로젝트팀에서 퇴출시키고 본사로 보낸다는 결과는 그들을 해고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일 하면서 프로젝트를 원만히 마쳤다는 건 그들의 능력과 충성심 모두 입증되었다는 건데 그런 사람들을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본사로 보낸다는 건 그들은 애사심이 부족해서 이 일에는 적합한 인재가 아니라고 동네방네 소문내는 것이었다.하지만 민예원은 그냥 어제 일에 대한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 건지 그것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진지하게 문자를 보냈다.[미안해요, 제가 선생님한테 여러분들이랑 같이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여기까지 한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원 비서님도 계속 연락이 안 돼서 어쩔 수 없게 됐네요.]민예원은 또 따로 원서윤에게 문자를 보내왔다.[언니, 어젠 제가 너무 흥분해서 말실수를 한 것 같아요. 미안해요, 용서해주실 거죠?][그리고 저도 제가 많이 부족한 거 알아요. 직원분들이 해주신 조언 잘 듣고 앞으로 많이 배울게요.]제 할 말을 다 한 민예원은 원서윤이 답장을 하기도 전에 그 채팅 기록을 캡처해서 단톡방에 보내버렸다.그럼으로써 여승재가 인사이동을 결정한 건 자신의 화를 풀어주기 위한 사적인 결정이 아니고 원서윤은 이런 결정을 다 알면서도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자신을 따르는 팀원들을 위해 나서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오전 9시, 원서윤은 직접 팀원들을 배웅했다.당연히 민예원이 의도한 상황대로 흘러가진 않았고 팀원들은 오히려 원서윤과 포옹을 하며 그녀를 위로했다.“원 비서님, 괜찮아요. 저희는 성원 그룹에서 나간다 해도 다른 협상회사 들어가면 되니까 어떻게든지 다 살 수 있을 거예요.”그중에서도 가
진심인지 오해인지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여승재에 원서윤은 예상했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여승재는 이 세상 모든 나쁜 말은 다 저를 형용하는데 쓸 것 같은 사람이었다.그러면서도 민예원만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싸고도는 게 바로 여승재였다.그렇게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정원준이 입을 열었다.“승재야, 이번엔 너랑 예원 씨가 오해한 거야, 서윤 씨는...”“대표님, 한번은 지각하고 한번은 상대편 속임수에 걸려들어서 다 제가 수습하게 만들고 저번 인터뷰 때는 없는 말 지어내면서 다른 사람 공로 채가려고 한 건 진심인가요 아니면 오해인가요?”어떤 순간에도 민예원만 감싸고 도는 여승재가 꼴 보기 싫었던 원서윤이 그동안 참았던 말들을 뱉어냈다.애초에 뭐 그리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민예원이 남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여승재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정원준은 자꾸 여승재를 긁어대는 원서윤에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원서윤 씨, 진짜 어쩌자고 이래요!” 여승재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민예원을 감싸 안은 채 원서윤을 바라보았다.원서윤은 크고 따뜻한 손으로 민예원의 등을 쓸어주는 여승재를 보면서도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그 답을 듣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원하는 건 언제나 예원이었어.”“선생님!”그 말에 감격한 민예원은 우는 것도 멈추고 여승재를 바라보았다.원서윤은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흐드러지게 핀 독말풀마냥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그럼 몇 년 간 제대로 소원성취하셨네요.”“원서윤 씨!”정원준은 그만하라는 듯 그녀를 잡아당겼지만 원서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승재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입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니 빨갛게 부어오른 그의 볼이 눈에 띄었다.누구한테 맞은 것 같은 볼에 원서윤은 불현듯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거의 반쯤 눈을 감고 있어서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꿈이라 생각하고 여승재의 뺨을 연속 때린 것만은 생생하게 기억났다.“원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