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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여승재가 얼굴을 원서윤의 머리로 바짝 들이밀었다. 그러자 뜨거운 숨결이 원서윤의 귓가로 전해졌다.

여승재의 웃음은 날카로우면서도 음침했다.

“원서윤, 날 자극하지 않은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나도 내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별장을 위해서라도 절대 대표님과 사모님을 욕보이는 일은 없을 거예요.”

원서윤의 미소는 여전히 눈부셨다.

여승재는 짜증이 치밀어올라 표정이 어두워졌다.

“원서윤, 너에게 나는 그 별장 말고 다른 용도가 없어?”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는 남자에게 뭘 더 바랄까요?”

원서윤은 이 상황이 정말 너무 우스웠다.

5년간 여승재는 원서윤을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고, 쫓으면 털레털레 도망가는 강아지쯤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여승재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원서윤은 자존심과 존엄을 포기했고 그녀를 제일 사랑하고 아껴주던 가족까지 버렸다.

하지만 여승재가 모르는 게 있었다. 무한한 열정으로 머릿속에 온통 여승재뿐이었던 원서윤은 5년 전 있었던 화재에서 죽어버렸다는 걸 말이다.

지금의 원서윤은 인생에서 여승재라는 사람을 깔끔하게 지우고 다시 태어난, 과거에는 눈곱만치의 미련도 없는 원서윤이었다.

“대표님, 비켜주실래요? 친구 데리고 병원 가서 진단서 끊어야 해서요. 만약 친구가 폭행죄로 고소하겠다고 한다면 내가 증인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잘 준비하고 계세요.”

원서윤의 말은 하나같이 가시가 돋쳐 있었다.

여승재가 콧방귀를 꼈다.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고작 저 남자 때문에?”

“대표님이 사모님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손찌검한 것과 같은 맥락이죠. 이연이 내 친구인데 이연이를 전적으로 고려하는 게 맞죠.”

원서윤이 앞길을 막은 커다란 체구를 밀어냈다. 그러고는 방이연 옆으로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어깨동무하고는 천천히 극장을 빠져나갔다.

여승재도 더는 쫓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등 뒤로 민예원이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를 위해서 주먹다짐할 생각을 다 해요? 나랑 우리 아이 사랑하는 거 알지만 선생님이 다치면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프잖아요.”

“어떤 사람은 교훈을 주지 않으면 기억 못 하고 계속 까불지.”

원서윤이 들은 마지막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공연장에서 나온 원서윤은 곧 폐차해도 될 것 같은 체리 큐티 큐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향했고 끊을 수 있는 진단서는 다 끊었다.

게다가 극장에서 나오기 전에 원서윤은 극장 CCTV 영상을 카피해서 나왔다. 방이연은 그런 원서윤을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누나, 이렇게까지 해야 돼? 여승재도 공인인데 나 같은 일반 백성을 죽어라 내몰진 않겠죠.”

“그건 네가 여승재를 몰라서 그래. 됐어. 일단 푹 쉬어. 내상을 입었으니까 말도 그만하고.”

원서윤도 이미 협상 프로젝트팀에 차를 낸 상태라 다음 주 수요일 제2차 회의가 열리기 전에 도착하면 된다.

장난기가 발동한 방이연이 윙크했다. 그는 링거 바늘이 꽂혀있는 손으로 원서윤의 손을 꼭 잡더니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누나, 여승재랑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누나 보호해 줄게.”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니까 허튼 생각 말고, 나 보호해 줄 생각도 말고 몸조리부터 잘해.”

원서윤은 방이연에게 화를 내려고 해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방이연이 선을 넘는 친근함을 보여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문 앞.

민예원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듣기 매우 거북했다.

“선생님, 서윤 언니랑 친구 하면 정말 좋다고 했죠? 봐봐요. 서윤 언니가 결혼하지만 않았으면 열애 중인 커플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민예원이 여승재에게 이렇게 말하더니 해맑은 표정을 하고는 침대맡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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