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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민예원은 여승재를 보자, 부드러운 얼굴이 순식간에 발그레해졌다. 그녀는 두어 걸음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걱정하지 말라니까. 언니가 나랑 아기를 잘 챙겨주고 있어. 일 때문에 바쁜 거 알아.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프로젝트팀의 핵심 인원들이 그녀의 말을 듣고는 반가운 듯 웃으며 여승재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여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하는데, 너무 잘 됐습니다.”

여승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예원이도 이번에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됐으니 부족한 점이 많을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승재는 협상 계에서 20대에 이름을 알린 유일한 전문가답게,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위엄을 드러냈다. 그가 예의상 건넨 한마디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했다.

원서윤은 옆에서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아랫배의 통증이 극심해지며 입술이 떨렸지만, 그녀는 여승재가 사업적 인간관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봤다. 프로젝트팀의 핵심 인원들조차도, 여승재의 앞에 서는 그들의 노련한 언변 기술이 무색해진 듯 아무 말도 못했다.

“네. 여 대표님, 예원 씨가 총괄하시는 프로젝트인 만큼, 저희 선배들이 성심껏 돕겠습니다.”

팀 내 지위가 가장 높은 중년 남성이 거듭 말했다.

그러자 여승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하하...”

그들은 웃음과 함께 땀을 훔치며 자리를 떠났다.

민예원은 여승재의 품에 안겨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 정말 고마워.”

민예원이 애교를 부리자, 공기 중에 달콤한 향기가 퍼지는 듯했다.

원서윤은 생리통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며 입술을 떨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발끝까지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여 대표님, 그리고... 예원 씨, 저는...”

그녀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 여승재가 먼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는 민예원의 뺨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

“고맙긴! 당연한 말은 하지 않아도 돼. 우리 애기, 오빠가 협상 전문가가 된 건 네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켜주기 위해서야.”

원서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보통의 연인 사이에서 충분히 오갈 만한 평범하면서도 진심 어린 한 마디였지만, 그 말은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냈고 원서윤의 마음을 산산이 조각냈다.

아주 오래전, 원씨 본가 저택의 옥상에서 밝은 달빛 아래에서 여승재는 어린 원서윤의 볼을 쓰다듬으며 조금 전 민예원에게 고백했듯이 맹세했었다.

“우리 애기, 오빠가 약속할게. 나중에 꼭 협상 전문가가 돼서 세상의 나쁜 사람들로부터 널 지켜줄 거야.”

...

세월이 흐르면서 원서윤은 여승재가 자신을 ‘우리 애기’라고 부르던 기억조차 희미해질 뻔했다. 그날, 여승재는 밝은 달빛 아래에서 원서윤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그렇게 불렀었다.

‘그렇게 사랑을 맹세해 놓고... 결국 5년 전 그 일로 나를 버렸었잖아. 그랬던 네 옆에 새로운 애인이 생겼네? 내가 축하라도 해주길 바라는 거야?’

원서윤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언제나 그렇듯 무표정한 가면을 썼다. 그러나 민예원과 다정하게 서 있는 여승재는 가끔 원서윤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원서윤은 생리통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발끝까지 힘을 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 작은 행동이 그녀가 화난 신호라는 걸 알았지만, 여승재는 벌써 잊어버린 듯했다.

“예원아, 안으로 들어가자. 날씨가 쌀쌀하다.”

여승재는 다정하게 자기 재킷을 벗어 민예원에게 둘러주었다. 민예원은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잡으려다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종이봉투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오빠, 이거 뭐야? 내가 좋아하는 간식 사 온 거야?”

“진통제야.”

약국에 가려고 했던 원서윤은 순간 멈칫했다. 그녀의 시선과 여승재의 시선이 불현듯 마주쳤다.

민예원은 무심하게 두 사람 사이에 서서 그들의 시선을 가로막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갑자기 진통제는 왜 사 온 거야?”

그러면서 그녀는 종이봉투를 가져가 들여다봤다. 그 속에는 생리통에 먹는 진통제 한 상자가 들어 있었다.

민예원은 잠시 굳어진 표정으로 말끝에 약간의 서운함을 담아 말했다.

“오빠, 나 임신했잖아...”

그녀는 말하며 원서윤을 잠깐 쳐다봤다. 원서윤은 항상 그렇듯이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정해 보였지만, 다가서기 어려운 차가운 분위기를 풍겼다.

여승재는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고 관자놀이가 질끈 해졌다. 세 사람 사이에 미세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는 무심한 듯 말했다.

“잘못 샀나 봐. 두통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걱정돼서 샀어.”

‘역시... 민예원이 엄살부리는 말조차 귀담아듣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구나.’

원서윤은 쓴웃음을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 대표님, 예원 씨,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두 분께 방해가 된 것 같네요.”

민예원은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어머, 언니 여기 계셨어요? 오빠한테 정신이 팔려 언니가 이렇게 오래 서 계셨을 줄 몰랐네요. 오빠, 빨리 언니한테 사과해. 오빠 때문에 언니가 복도에 오래 서 있었잖아!”

민예원은 당당하게 말했다.

‘여승재 같은 자존심이 강한 남자가 쉽게 ‘미안하다’고 말할 리가 없지...’

원서윤은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빨리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그때 여승재의 깊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말을 마치고 나서 여승재는 민예원의 오뚝한 코를 살짝 꼬집으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됐어?”

“좋아. 오빠 최고!”

민예원은 기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원서윤은 차가운 마음속에 돌멩이가 던져진 듯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잔잔했던 그녀의 마음에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딩동!”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원서윤은 생리통 때문에 다리가 저려 손으로 꽉 눌러보며 통증을 참았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후 강한 조명이 눈이 부셔 눈을 찡그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날려 들어온 무언가를 잡았다. 그것은 바로 여승재가 사 온 진통제였다.

여승재는 민예원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예원이가 낭비를 싫어해서요. 이 약은 처리해 주세요.”

‘처리? 민예원에게 필요 없는 걸 나한테 버린다는 거야? 여승재한테 난 대체 뭐지? 쓰레기통? 재활용장?’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닫히며, 민예원의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오빠, 그렇게 말하면 언니가 오해하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여승재의 단호함은 원서윤에게만 가혹하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이 호텔은 경항시에서 유일한 5성급 호텔로, 시청의 여러 부서 회의가 자주 열리는 장소였다. 현재는 민예원이 맡은 국민건강보험 협상 프로젝트 외에도, 성원그룹의 또 다른 프로젝트가 비공개 형태로 진행 중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몇몇 정장을 차려입은 남녀가 30대 초반의 잘생긴 남성을 에워싸며 환하게 웃으며 들어섰다.

원서윤은 그 남성을 잠깐 쳐다보고 나서 곧바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경항시로 돌아온 후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인물은 여승재였지만, 그다음으로 피하고 싶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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