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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원서윤의 어머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크든 작든, 언제든 돌아갈 수 있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집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원서윤의 아버지는 당시 100만 원을 가지고 어머니와 함께 발전이 덜 된 한면도에서 경항시로 올라와 사업을 시작했다.

때마침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고, 두 분 모두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신 덕에 1년도 채 되지 않아 첫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집값도 비싸지 않아서 몇천만 원이면 송주에 땅을 사고 번듯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이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집값도 함께 치솟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부동산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거품이 꺼지면서 큰 폭으로 내려갔다.

덕분에 원서윤은 원씨 가문의 집을 다시 사들여 경항시에 뿌리를 내릴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본가 마당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린 원서윤은 익숙한 키 큰 실루엣을 발견했다. 마당 구석에 그녀가 어머니와 함께 직접 심었던 복숭아나무는 이제 말라 죽어 있었다.

달빛이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들이 뒤엉킨 사이로 여승재의 몸을 어슴푸레 비추고 있었다.

여승재의 손가락 끝에 빨간 담뱃불이 번졌다. 봄바람이 불어오자, 여승재가 툭툭 털어버린 담뱃재가 바람에 흩날렸다.

그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료실에서 재회한 이후 처음으로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는 눈빛이었다.

원서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빠... 아니지... 여 대표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오랜만이에요.”

“5년이 지났어... 원서윤, 난 네가 죽은 줄 알았어.”

담배 연기를 뚫고 나온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에는 거친 감정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원서윤이 기억하는 소년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실망이겠지만, 아직 살아 있어요. 살아있어서 미안해요.”

원서윤은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정말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마주친 것처럼, 시간 속에서 스쳐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태연하고 무덤덤했다.

두 사람 사이의 침묵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냈다.

잠시 후, 여승재는 거의 다 탄 비싼 담배를 한 모금도 피우지 않은 채 맨손으로 비벼 끄며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커다란 손을 그녀의 얼굴 가까이 뻗고 나서야 멈췄다.

‘만지려는 거야? 아니면 때리려는 거야?’

원서윤은 겁먹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여승재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원서윤, 내가 왜 협상 전문가가 되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는지 알아?”

“몰라.”

그녀는 그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5년 전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통증이 몰려왔다. 온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원서윤은 자기도 모르게 날카로운 손톱을 소매 넘어 나비 문신 위에 세게 눌러 흉터를 긁었다. 조금만 더 세게 긁으면 피가 날 것만 같았다.

원서윤은 손을 뒤로 감추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지난 5년간 살아남기 위해 배운 습관이었다.

여승재는 뭔가 눈치챈 듯 빠르게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손목을 확인하려 했다. 당황한 원서윤은 본능적으로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짝!”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한 고요가 찾아왔다.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찬 달빛이 그녀의 마음속 깊숙이 스며들어 서늘한 공허함만 남겼다.

입술이 몇 번 떨리다 마침내 힘겹게 목소리가 나왔다. 목이 메어 쉰 듯한 목소리는 허스키하면서도 차가웠다

“여 대표님! 이제는 가정이 있으니 자중해 주세요.”

여승재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며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원서윤은 하루라도 빨리 집 매매 절차를 끝내고 싶었다. 일을 질질 끌어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중개인에게 연락하려는 순간, 중개인이 공문 가방을 들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원서윤 씨, 여 대표님, 오래 기다리셨죠? 차가 중간에 고장 나서 좀 늦었어요. 게다가 순환 대교가 꽉 막혀서...”

경항시 사람들은 늘 그렇듯이, 이 도시의 복잡한 교통 상황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중개인은 몇 마디를 더 하다가 본론으로 돌아갔다.

“원서윤 씨, 여 대표님이 이 집의 주인이셔서 오늘 가격만 합의되면 바로 계약서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원서윤 씨가 대출을 받으신다고 하셔서...”

“이 집은 안 팔아요!”

원서윤이 가격에 상관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여승재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여 대표님, 이 집은 원씨 가문의 본가예요.”

그녀는 5년 전의 비극, 그들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진 사건이 바로 이 집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떠올렸다.

‘여승재가 이 집을 왜 필요로 하지? 자신의 과거와 치욕을 되새기려는 건가?’

그녀가 뭔가 더 말하려는 순간, 여승재가 말했다.

“예원이가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해. 이 집은 예원이와 곧 태어날 아이에게 줄 거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로 그토록 증오했던 원씨 집안을 잊고 이곳에 정착할 수 있다는 건가?’

5년 전, 원서윤은 여승재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빌었다. 자존심과 체면을 모두 버리고 아버지와 가족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돌아온 답은 가차 없는 절망뿐이었다.

원서윤은 민예원의 사랑이 자신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고 느꼈다. 남자가 진심으로 여자를 소중히 여긴다면 증오조차도 쉽게 녹아버릴 수 있는 법이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내 모든 애원과 무너진 내 가족을 이렇게 쉽게 잊히게 할 줄이야...’

집을 사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여승재가 내린 결정을 뒤집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차에 오르기 전, 그녀는 중개인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매물 나온 집이 또 있나요? 몇 군데 좀 보여주세요.”

그 이유는 어머니가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실려 갈 때까지도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집을 되찾을 수 없더라도 비슷한 환경에서 어머니를 돌본다면 병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동생이 돌아온다면, 이곳으로 와서 그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 앱을 뒤적였다.

“조금 먼 곳에 몇 군데 있긴 해요. 집주인들은 경항시에 계시지 않다 보니... 원하시면 제가...”

“원서윤, 이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마!”

여승재가 다시 등장했다. 그는 한정판 페라리를 세워두고,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서 위엄을 풍기며 서 있었다. 그의 분위기는 봄밤의 차가운 공기마저 압도할 만큼 위압적이었다.

중개인은 순간 겁을 먹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여승재가 비웃으며 말했다.

“예원이 지금 임신 중이야. 네가 근처에 있으면 불편하니까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떠나.”

원서윤은 그 말을 듣고 씁쓸하게 웃었다.

“여 대표님, 우리가 무슨 관계라고 생각하길래 제가 당신 아내와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불편하게 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몇 년 전, 여승재는 누구에게도 그녀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눈에 그녀는 그저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부를 수 있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민예원 같은 아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둠 속의 존재일 뿐이었다.

여승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맞아.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눈에 거슬릴 뿐이야.”

‘내가 여전히 네 눈에 거슬리는 존재인 거야?’

원서윤은 차분하게 말했다.

“여 대표님, 저 결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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