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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내 어깨를 짓눌러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문제의 근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윤아 씨, 할 말 없어요?”

진윤아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건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계획서와 자료는 회의실로 가져오기 전에 진윤아 씨가 정리한 겁니다. 당시 제가 확인했을 때, 진윤아 씨는 계획서와 자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렷하게 말했다.

진윤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계획서와 자료를 진윤아 씨가 잃어버린 겁니까?”

도건하의 날카로운 시선이 진윤아에게 꽂혔다.

진윤아는 더욱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 사업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했고, 모두가 온 힘을 다해 준비했다.

만약 실수로 문제가 생긴다면, 진윤아라고 해서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진윤아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연신 저었다.

“아, 아니에요... 저는 계획서와 자료를 팀장님께 드렸고, 팀장님에게도 확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거잖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당시 유미선 부장이 회의를 서두르며 우리를 재촉했고, 나는 시간이 촉박해 회의실로 바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계획서와 자료를 다시 확인할 시간이 도저히 없었고, 서로 믿고 회의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진윤아 씨, 제가 계획서와 자료를 확인하는 걸 봤어요?”

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진윤아는 겁먹은 듯 고개를 숙이며 확실히 확인했다는 말도 아니고,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태도는 사실상 인정한 셈이었다.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해 날카로워졌다.

나는 마치 수백 개의 가시가 내 등에 꽂힌 듯한 느낌이었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문득 남자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체 무슨 일인가요?”

문지성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의 키는 크고 체격은 당당했으며, 잘생긴 얼굴에는 냉담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나를 흘낏 쳐다보았고, 곧바로 진윤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개 들어.”

그는 진윤아 앞에 서서 담담하게 말했다.

진윤아는 어깨를 살짝 떨더니, 고개를 들었고, 붉어진 눈가를 드러내면서 눈물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에 맺혀 있었다.

...

‘진윤아 지금 무슨 이유로 이렇게 서러워하는 걸까?’

‘지금 잘못을 뒤집어쓰고 있는 건 나인데?’

나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누가 널 괴롭혔어?”

문지성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내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진윤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고개를 저으며 마치 모든 게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누구나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문지성은 이런 진윤아를 안쓰럽게 여겼다.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진윤아에게 건넸다. 그 손수건의 한쪽 끝에는 ‘M’이라는 영문 대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건 문지성의 성을 의미하는 자신의 고유한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 손수건은 내가 문지성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문지성은 이 손수건을 수년 동안 사용하며, 그 누구에게도 건네지 않았었다.

그 사실이 예전에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비참하고 씁쓸했다.

결국, 문지성이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울지 마.”

문지성의 낮은 목소리에는 깊은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진윤아는 코를 훌쩍이며 정말로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내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이 분위기...’

문지성은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도건하는 문지성의 옆으로 가서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설명했다.

문지성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표정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는 최대한 빠르게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갑자기 나를 힐끔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하 팀장, 본인은 책임자이고, 팀원이든 하 팀장님 자신이든 실수가 발생했으면 다 하 팀장 책임이죠. 계획서와 자료를 복구하는 일은 하 팀장이 맡아서 하루 안에 계획서와 자료를 완벽하게 준비해 도 실장에게 다시 제출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문지성이 진윤아를 편애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건 제 잘못이 아니...”

나는 변명하려 했지만, 유미선이 나를 살짝 당기며 말렸다.

유미선은 고개를 저으며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내 입속 모든 말이 목구멍에 걸려버렸다.

‘그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나 그저 일개 직원일 뿐이잖아.’

‘문지성이 자기 여자친구를 감싸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해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나는 이를 악물었고, 입안 가득 피비린내가 퍼졌다. 너무 세게 이를 악물었는지, 혀를 깨물고 말았다.

“걱정 마세요, 문 대표님. 이번에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계획서와 자료를 일일이 확인할 겁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는 없을 겁니다.”

문지성의 뒤에 숨어 있던 진윤아는 고개를 푹 숙이며 죄책감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하 팀장, 본인이 팀장으로서 모범을 보여야겠죠. 잘못을 했으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하고, 그래야 팀원들이 팀장을 신뢰할 수 있겠죠? 그냥 하 팀장의 이번 달 월급의 절반을 깎는 선에서 오늘 일을 마무리합시다.”

문지성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마치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 말하는 듯한 가벼운 말투였다.

하지만 내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한 달 월급의 절반은 나에게는 마치 생명을 반쯤 잃는 것과 같지만, 나는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

문지성은 도건하와 함께 회의실을 떠났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동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저 웃어 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서와 자료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가자, 진윤아가 나를 따라왔다.

문을 닫자 그녀가 나를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에요?”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진윤아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언니,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그 페이지를 실수로 잃어버렸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아까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가 실수했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일을 맡기지 않을까 봐 무서웠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깊숙이 허리를 굽혀 내게 사과했다.

나는 서둘러 몸을 피했다.

이 사과를 받아들이기라도 하면, 나중에 문지성이 알게 되면 남은 월급마저 깎아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때가 되면 난 정말 울 곳도 없을 것이다.

“윤아 씨 잘못 아니에요. 다 내 책임이죠.”

‘다 내가 너무 어리석었지. 회사에 막 들어온 경험 없는 신입사원이 이런 간단한 일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건 멍청한 게 아니라 그냥 어리석은 거지.’

“됐어요.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윤아 씨도 이제 그만 가봐요.”

문을 바로 닫고 나서야 내 마음이 겨우 차분해졌다. 자리에 앉아 계획서와 자료 파일을 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하유나 씨, 내 사무실로 좀 와봐요.]

한명훈 대표의 목소리였다.

...

내가 서둘러 대표실에 갔지만,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사람은 문지성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내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끝도 없이 나를 괴롭히는 건가?’

“문 대표님, 이미 제 월급을 깎으셨잖아요. 대체 또 뭘 원하시는 건가요?”

‘설마 남은 절반의 월급마저 빼앗으려는 건가?’

내 마음속 분노가 치솟았고,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문지성은 잠시 멈칫하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 팀장, 지금 말투가 왜 그러지? 나한테 따지는 건가?”

“그럴 리가요.”

나는 월급의 남은 절반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대표실 안은 적막에 휩싸였다.

잠시 후, 내가 말실수를 후회하던 찰나에 문지성이 입을 열었다.

“정말 그깟 월급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의 말투는 내 어려운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비꼬는 듯했고, 말 속에 담긴 무심한 어조가 마치 비수가 되어 나를 찌르는 듯했다.

‘문지성 같은 사람은 절대 내 처지를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내 월급 절반은 이 남자에게는 한 끼 식사 비용에도 못 미치겠지만, 나에게는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활비...’

나는 속으로 밀려오는 서러움을 억누르려 했지만, 눈가가 붉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문 대표님은 명문가에서 태어난 천재시죠. 저 같은 하찮은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실 수 없을 겁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손을 들어 책상 위에 카드를 던졌다.

“그만해. 나한테 불쌍한 척해도 통하지 않아. 이 카드에는 하 팀장의 한달치 월급이 들어 있어.”

나는 멍하니 그 카드를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뭐지? 보상인가?’

다음 순간, 문지성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돈 받고 입 다물어. 윤아에게는 완벽한 경력이 필요해서 이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문지성의 호의는 보상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여자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네.’

나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문 대표님, 참으로 너그러우시네요. 제가 이 일을 진윤아 씨에게도 알려드릴까요? 문 대표님께서 진윤아 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쓰시는지 알면 좋아하겠네요.”

내 말이 문지성을 자극했는지, 그는 갑자기 카드를 집어 들어 나에게 던졌다.

날카로운 카드가 내 팔을 스치며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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