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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내 피부는 희고 민감해서 한 번 생긴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런 점 때문에 문지성이 나를 애지중지했지만, 이제는 나조차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한 번 흘깃 보고 지나갈 뿐이었다.

내가 카드를 집어 들고, 카드 뒷면에 붙어 있는 메모의 비밀번호를 확인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문 대표님, 이 카드에 정말 돈이 들어 있는 거 맞죠?”

“내가 하 팀장을 속일 것 같아?”

문지성의 표정은 극도로 불쾌해 보였다.

그의 말에 카드 안에 돈이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내 마음은 마치 누군가가 움켜쥐고 후려친 듯 아팠고,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차분히 카드를 챙겼다.

“문 대표님,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문지성은 비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돈을 위해선 어떤 모욕도 참아내고, 돈을 위해선 어떤 것도 포기하는구나. 정말 탐욕스럽고 역겹네.”

나는 무표정하게 그의 말을 들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돈이 필요하니, 문지성의 말에 변명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의 모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에 내가 겪은 모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빚쟁이들 중 누가 나를 쉽게 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가.”

문지성은 마침내 내 무신경한 태도에 격분한 듯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돌아섰다.

문을 나서자마자 간신히 유지했던 강인한 모습과 차가운 태도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피로와 서러움이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때, 마주친 사람은 안석현이었다. 그의 눈에는 언제나처럼 따뜻한 배려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저으기도 했다.

안석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늘 회의실에 있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어. 프로들의 세상에는 공평함이 없지. 하지만 내 생각에는 네 잘못이 아니야.”

그것은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가 들은 유일한 따뜻한 말이었다.

“날 믿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네.”

“널 믿을 이유가 충분하니까, 유나야. 힘내. 반달치 월급... 아무것도 아니야. 이 사업이 끝나면 너의 보너스는 두 배가 될 거야. 왜냐하면 넌 이번 사업의 주역이니까.”

안석현이 나를 위해 일부러 해준 격려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 네 말이 맞기를 빌어야겠네.”

우리는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고, 덕분에 내 기분은 조금씩 나아졌다.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찰나, 유미선이 우리를 보고 다가와 아무 말없이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녀의 행동이 내 마음을 위로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도 그녀를 안아 주었다.

유미선이 내게 눈짓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멀리서 두 사람 걸어오는 걸 보니까, 정말 잘 어울려요. 진짜 천생연분이 따로 없네요!”

나는 무심코 안석현을 쳐다보았다.

유미선은 이렇게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할 때가 많았다. 특히 툭하면 미혼인 직원들의 인연을 이어주려는 본능이 발동할 때가 있었다.

그녀에게 악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난 안석현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는 부드럽고 공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부장님, 그런 말씀은 그만하세요. 하 팀장님은 정말 빛나는 분이시고, 저 같은 사람은 하 팀장님에게 어울리지 않죠.”

“아이고!”

유미선은 장난스럽게 반응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말소리가 커서, 사무실의 다른 동료들도 우리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얼른 유미선을 살짝 밀었다.

“부장님, 그만하세요.”

더 이상 내 사생활에 대한 소문이 퍼지길 원치 않았다.

유미선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정말로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한 끝에, 빠진 페이지를 겨우 완성했고, 다음 날 계획서와 자료를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한 후에야 회의실로 가져갔다.

직원들은 하나둘씩 회의실에 모였지만, 문지성과 한 대표는 아직 도착하기 전이었다.

다들은 이러저러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대화의 주제가 나에게로 향했다.

유미선은 어제 일을 과장해서 얘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유미선을 말릴 수 없어서 이마를 짚었다.

이때 진윤아가 다가왔다.

“언니, 진짜 안 대리님이랑 사귀는 거예요?”

나는 대답도 하기 전에 그녀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얼굴 가득 설렘을 담고 말했다.

“사실 저도 두 분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안 대리님은 잘생기고, 언니도 예쁘잖아요. 게다가 두 분 다 능력 있고, 서로 잘 알고 있으니까, 정말 이어지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칭찬 고마워, 하지만...”

“그러니까! 두 분이 진짜 사귀는 거죠? 사실 전에 저는 항상 두 분이 같이 걸어가는 걸 봤거든요. 그런데 당시엔 두 분 사이를 확신하지 못했어요. 아무튼 언니, 언니 입도 정말 무겁네요. 어떻게 이렇게 오래 숨길 수 있었어요!”

진윤아는 갑자기 손뼉을 치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말투와 태도는 나와 안석현의 관계를 기정사실화하는 것 같아서 나는 미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때 문 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업무 시간에 회의실에서 누가 잡담하라고 했습니까?”

문지성이 들어오자, 모든 직원은 긴장한 채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까까지 떠들썩하던 회의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도건하가 올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문지성이 직접 온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다잡고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순조로웠고, 내가 이 사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문지성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내 말을 끊었다.

“핵심 아이디어는 좋지만, 전체적인 방향이 좀 벗어난 것 같아요.”

그는 이어서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냈다.

문지성의 MS그룹 주인으로서의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의 공격적인 태도에 감탄할 여유도 없이 그의 질문에 대응하느라 바빴다. 왠지 모르게 문지성은 나를 일부러 괴롭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질문들은 대부분 타당한 지적이었다.

다행히 나는 사전에 모든 질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차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결국 문지성도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했다.

회의실은 박수갈채로 가득 찼고, 모두가 나를 존경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문 대표님, 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우리 팀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문지성은 여전히 차갑게 나를 바라보았다.

이때 진윤아가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오빠, 그렇게 무섭게 굴지 마요...”

그 말에 문지성의 굳었던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응.”

그는 진윤아를 한 번 쳐다보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나는 이미 문지성이 진윤아를 얼마나 특별하게 여기는지 익숙했기에, 아무런 감정 없이 서류를 정리했다.

그 뒤로 우리 팀의 다른 팀원들이 세부사항을 보고했고, 문지성은 침묵한 채 팀원들의 말을 들었다.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하나둘 떠나갔다.

나는 회의 계획서와 자료들을 정리했다.

원래 이런 일은 내가 아닌 비서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실수를 생각하면, 다시 진윤아에게 맡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계획서와 자료들은 매우 중요했고, 또다시 잃어버리면 나중에 내 월급을 깎으려 들지도 모르니까.

갑자기 은은한 향기가 어디선가 풍겨오자, 내 몸이 바짝 긴장했다.

뒤에서 문지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 팀장, 사생활에 대해 신경 좀 써줘야 할 것 같아. 회사에 그런 혼란스러운 일들을 끌어들이지 말고. 회사 분위기를 해치면, 나도 한 대표와 상의해서 새로운 팀장을 찾는 것도 고려해볼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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